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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비즈니스 '밀림의 개척자'… 印尼 시장 70% 장악 경제∙일반 편집부 2017-07-25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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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韓商 인터뷰 승은호 코린도그룹 회장
돈 한 푼 없이 사업 기반만 가지고 '미지의 땅'에 섰다" 
 
지난 15일(현지 시각) 오전 인도네시아 수도 자카르타에서 남동쪽으로 50㎞ 떨어진 칠릉시(Cileungsi) 코린도 신문 용지 제조 공장. 축구장 100배 면적의 공장 창고 한쪽에는 폐종이가 수북이 쌓여 있었다. 이미 수명이 다한 종이는 갈기갈기 찢기고 색이 바랜 쓰레기처럼 보였다. 폐종이가 분류·세척·표백 장비를 차례로 통과하자 이물질이 걸러지고 잉크가 벗겨졌다. 잉크를 뺀 펄프를 초지기(抄紙機·종이를 만드는 기계)에 넣고 돌리자 말끔한 종이가 나왔다. 고재웅 공장장(전무)은 "코린도 칠릉시 공장은 연간 26만t(28페이지 신문 2억3000만부 규모)의 신문 용지를 생산하는 동남아에서 가장 큰 제조 시설"이라며 "100% 재생용지만 사용해 인도네시아의 자원 재활용과 환경 보호에 일조한다"고 말했다. 이 공장은 코린도그룹의 60여개 계열사 중 하나다.
 
코린도그룹은 동남아 지역의 대표적 한상(韓商)인 승은호(75) 회장이 이끌고 있다. 승 회장은 한국 목재 산업의 거목(巨木) 고(故) 승상배 동화기업 창업주의 장남이다. 승 회장은 1970년대 부친의 사업을 도와 고급 원목을 구하러 동화기업의 인도네시아 밀림 개척에 앞장섰다. 1975년 동화기업의 갑작스러운 부도로 앞길이 막막해진 그는 일본 기업으로부터 벌채 장비 구입과 운영자금 130만달러(약 14억6000만원)를 빌렸다. 빚더미에서 출발한 코린도는 원목·합판 사업으로 일어나 오늘날 계열사 60여개, 연 매출 12억달러(약 1조3500억원)의 대기업이 됐다.
 
지난 14일 인도네시아 수도 자카르타에 있는 코린도 사옥을 찾았다. 14층에 있는 승 회장의 집무실에 들어서자 오른쪽에 인도네시아 지도가 눈에 확 들어왔다. 그는 한 시간 동안 진행된 인터뷰에서 "작은 나무에서 숲을 보는 '선견(先見)', 변화를 선도하는 '선행(先行)', 고객 요구를 먼저 실천하는 '선점(先占)'의 경영 철학으로 인도네시아에 꼭 필요한 사업을 남들보다 빨리 시작한 것이 성공 비결"이라고 말했다.
 
승은호 코린도그룹 회장(왼쪽에서 둘째)은 40년 이상 인도네시아 밀림을 개척해 합판, 조림, 팜오일, 곡물 사업을 발전시켰다. 승 회장이 인도네시아 동부 파푸아 아시끼 팜오일 농장을 전망대에서 바라보고 있다.
 
1. 先見: 나무 사업은 사라지지 않는다
 
승 회장은 70대 중반의 나이에도 인터뷰 내내 우렁찬 목소리와 거침없는 설명을 자랑했다. 악수를 할 때 두꺼운 손은 '밀림의 개척자'다운 힘이 느껴졌다. 창업 초기부터 코린도를 관통하는 근간은 '나무'였다. 원목, 합판, 조림(造林) 등이 그 예다. 승 회장은 "목재는 계속 필요하고 없어지지 않을 사업"이라고 했다.
 
―40년 넘게 사업을 했다. 성공 비결이 무엇인가.
 
"사업을 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이 어떤 아이템을 정하느냐다. 나한테는 세 가지 원칙이 있다. 첫째, 세상에서 없어지지 않을 아이템을 연구한다. 둘째, 한국에서 과거엔 했지만 지금은 안 하는 아이템을 택한다. 이렇게 하면 인력을 구하기도 쉽고 사업을 추진할 때 유리한 점이 많다. 셋째, 소비자를 직접 상대하는 사업은 어렵다. 그래서 공장·원료를 기반으로 기업을 상대하는 사업을 한다."
 
―모든 사업에서 좋은 결과를 낸 것은 아닐 텐데.
 
"새로 사업을 할 때 3~4년은 적자를 낼 각오를 한다. 그래서 사업 밑천을 댈 수 있는 계열사가 필요하다. 처음에 사업을 시작할 때 '안 되는 사업은 더 많은 손해가 나기 전에 그만둔다'는 원칙을 세웠다. 아까워도 안 되는 사업은 처분을 빨리하는 게 좋다. 컨테이너는 과거에 사업을 크게 했는데, 중국이 저가 공세로 나오면서 사업을 접었다. 신발은 대리점 관리·운영이 잘 안 돼 실패했다."
 
2. 先行: 남보다 먼저 합판·제지 사업 시작
 
코린도는 인도네시아 현지 법·규제를 준수하면서 이를 역으로 활용했다. 새로운 규제가 시작되면 경쟁자들이 어려움을 겪는데, 코린도는 신규 사업을 미리 준비해 놓은 덕분에 위기가 기회가 됐다. 일례로 1985년 인도네시아 정부는 원목 수출 금지를 발표했다. 한국의 원목 회사들이 인도네시아에서 철수할 때 코린도는 1979년에 이미 시작한 합판 사업에 박차를 가했다. 1984년에는 신문 용지 공장을 세워 제지 사업에 진출했고 인도네시아 시장의 70%를 차지하고 있다.
 
―회사의 미래를 위해 어떤 사업을 하고 있나.
 
"팜오일(식물 열매에서 얻은 기름)은 유가가 급등할 때 바이오디젤(미래 에너지)의 원료로 각광받았다. 1t당 가격이 1600달러까지 올랐다. 지금은 유가 하락과 함께 1t당 가격이 60~70달러에 거래된다. 팜오일은 식용 기름으로도 많이 사용된다. 중국·인도만 해도 합치면 30억명에 가까운 시장이라 시장성이 괜찮다. 인도네시아에 필요한 농업 사업도 연구 중이다. 바이오매스 발전소도 많이 하려고 한다."
 
―중국에 이은 차세대 생산 기지로 인도네시아를 꼽는데.
 
"인도네시아도 인건비가 이미 오를 만큼 올랐다. 월 기본급이 250달러이고, 수당 등을 포함하면 450달러까지 줘야 한다. 이제는 부가가치가 있는 아이템을 해야 한다. 공장을 이전하는 순간 인건비가 오르는 걸 많이 봤다. 차라리 지금 있는 곳에서 숙련된 직원들과 경쟁력을 모색하는 게 효과적일 수 있다. 미얀마·라오스·캄보디아·방글라데시로 간 기업들도 있는데 인프라가 없어 사업 여건이 열악하다."
 
3. 先占: 국가 전략인 농업 산업을 선점
 
승 회장은 "국가 정책을 연구하고 인도네시아에 맞는 사업 전략을 수립한 것이 효과를 봤다"고 했다. 코린도는 2015년 인도네시아 정부가 식량 자급자족 정책을 발표하자 곡물 사업을 검토했다. 현재 파푸아에서 1만㏊ 면적(서울시 6분의 1 수준)에서 벼를 재배하고 있다. 1998년에는 인도네시아가 세계 1위 생산 품목으로 육성시킨 팜오일 사업을 시작했다.
 
―개발도상국에서 어떻게 하면 성공할 수 있나.
 
"나는 부친이 하던 사업이 부도가 나서 돈은 한 푼도 없었지만 기반은 있었다. 사업적인 노하우도 있었다. 이제 동남아에서 성공하려면 자본과 기술이 있어야 한다. 과거엔 신용으로 돈을 빌렸지만 지금은 아무것도 없는 곳에 돈을 빌려주는 시대가 지났다. 아프리카처럼 '미지의 땅'에 가서 그 나라에 없는 사업 아이템을 하면 좋을 거 같다. 코린도도 인도네시아에 없지만 꼭 필요한 사업을 해서 성공했다."
 
―동남아 대표 한상으로 기업가 정신을 이야기한다면.
 
"기본적으로 기업가 정신은 '분배'를 기반으로 한다. 기업인이 돈을 벌면 좋은 데 써야 한다. 코린도뿐 아니라 모든 기업이 해야 할 일이다. 어려운 사람을 돕고 지역 사회가 필요로 하는 일에 협조해야 한다. 기업은 사회와 함께 성장해야 한다."
 
승 회장은 코린도 임직원과 함께 찍은 사진을 보여주면서 표정이 밝아졌다. 그는 "'한번 믿은 직원과는 끝까지 간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며 "한국의 대기업은 사업이 어려우면 하루아침에 직원을 내보내는데, 우리에겐 그런 일은 절대 없다"면서 껄껄 웃었다.
 
승 회장은 인도네시아에서 40년 넘게 사업을 하면서 그야말로 산전수전을 다 겪었다. 2001년엔 코린도 직원들이 파푸아 밀림에서 분리 독립운동을 하는 게릴라들에게 인질로 납치됐다. 승 회장은 당시 게릴라군 대장과 직접 대화에 나서 "밀림을 개척해 사업을 계속해야 당신의 가족·친척·친구들이 코린도에 취직해 먹고살 수 있다"고 설득, 직원들을 구했다.
 
―밀림을 개척하는 일은 어렵고 위험하다. 포기하고 싶을 때는 없었나.
 
"사실 코린도가 이만큼 성장한 건 나 개인의 노력이 아니라 오지에서 고생한 임직원의 공이 컸다. 나는 임직원이 활동할 때 어려움이 없도록 지원했고, '할 수 있다'는 신뢰를 줬다. 사업 초기 밀림을 개척할 때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직원 가족들이 모기 때문에 팔이 성한 날이 없었다."
 
―외국인이 운영하는 기업이라 부정적인 인식도 있었을 텐데.
 
"코린도는 설립 초기부터 토착 기업이 되려고 노력을 많이 했다. 그래서 회사명도 (KOREA와 INDONESIA의 합성어인) '코린도(KORINDO)'라고 지었다.
 
1998년 (수하르토 정권이 반정부 시위대에 발포한 것이 화근이 된) 인도네시아 폭동 당시 성난 군중이 중국인 상가에 난입해 방화를 저질렀다. 코린도를 포함한 한국 기업은 철수하지 않고 끝까지 남았다. 코린도는 이제 기업 규모가 커져서 인도네시아를 떠날 수 없다. 경영자가 한국인일 뿐이지 인도네시아 기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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