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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 박 씨를 문 강남제비 / 엄재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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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산책 작성자 편집부 작성일 2019-08-21 10:49 조회 7,674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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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필산책 68 >
 
박 씨를 문 강남제비
 
엄재석 / 한국문협 인니지부 부회장
 
 
강남제비 원래 뜻은 순수했다. 추운 가을을 나기 위해 따뜻한 중국의 양자강 강남으로 날라 가는 제비를 뜻한다. 어쩌다가 신흥 부자가 많은 강남의 유한부인을 유혹하는 제비족을 지칭하는 용어로 변질되었을 뿐이다. 흥부전에서 흥부가 다리를 고쳐준 제비가 강남에서 박 씨를 물고 왔다. 그 박 씨가 자라고 박을 켜니 보물이 나와서 흥부는 부자가 되고 심술궂은 형 놀부는 거지가 되는 권선징악의 이야기다. 보통 3월에 와서 9월에 남쪽 나라로 날아가는 작은 철새로서 농작물에 해충을 잡아먹는다. 초가집 처마 밑에 둥지를 틀어 새끼를 낳고 키우다 겨울이 가까이 오면 떠난다. 이처럼 제비는 우리의 삶에 친숙한 새이자 길조이다.
 
 
제비의 이동경로에 새로운 발견이 있었다. 강남제비가 양자강 이남에서 겨울을 나는 것이 아니라는 이곳 신문의 기사이다. “조류 학자들이 밀양에서 10마리 제비 등에 지오로케이터라는 항법장치를 부착했다. 기기는 0.45g 정도로 작은 제비가 이동하는 데 지장을 주지 않는다. 일 년 후 장치를 부착한 제비 10마리 중 1마리를 밀양에서 다시 발견하고 기기를 회수했다. 기기에 기록된 정보를 분석한 결과 해당 제비는 밀양에서 제주, 일본 오키나와, 필리핀을 거쳐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섬까지 갔다가 돌아온 것으로 나타났다. 1년 가까이 이동한 총 거리는 1만4천㎞가량으로 파악했다”. 놀랍게도 그 작은 날개로 내가 사는 인도네시아를 일 년에 한번 씩 다녀가다니……
 
어쩌면 이곳 인도네시아 교민들의 삶도 강남 제비와 비슷하다. 한인들은 이곳에서 대부분이 경제활동을 하거나 은퇴생활을 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보통 두 집 살림을 많이 한다. 장성한 자식들은 고국에서 학업 중이거나 직장에 다니고 부모들만 인도네시아에서 떨어져 사는 경우가 많이 있다. 그렇다고 자주 찾아갈 거리도 아니라 일 년에 한두 번 정도 고국을 찾아 자식들을 챙긴다. 그 외에도 건강진단을 하고 연로하신 부모님을 뵙거나 형제들을 만난다.
주로 인도네시아 최대의 명절인 르바란 휴가를 이용하여 고국을 찾는다. 한 달간의 금식이 끝나고 온 나라가 의무적으로 공장과 사업장 문을 닫고 보통 2주 정도의 축제를 즐기는 기간이다. 이때가 되면 고국으로 가는 비행기 표를 구하기 힘들고 가격도 천정부지다. 마치 따뜻한 인도네시아에서 겨울을 보낸 제비들처럼 동시에 교민들은 떼로 이동한다.
 
 
해마다 부부가 한국엘 같이 갔는데 금년은 달랐다. 업무상 자리를 비우기 곤란한 나로서는 함께 가지 못하고 인니에 남아야 했다. 아내는 흥부전 제비처럼 인도네시아를 한 밤중에 제비처럼 떠났다, 일 년 동안 만나지 못했던 아이들에게 엄마는 흥부에게 박 씨 만큼이나 큰 선물이리라. 떨어져 있던 엄마와 해후하고 정을 나누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으리라. 사랑하는 엄마와 추억을 더 남기고자 세 모녀는 동유럽으로 갔다. 크로아티아에서 시작하여 오스트리아와 헝가리를 걸쳐서 체코에서 프라하의 여인들이 되었다. 그 여정을, 나는 카톡으로 보내오는 유럽의 아름다운 풍경과 역사적인 건축물을 사진들로 만족해야 했다. 나만 빠진 멋진 알프스 호수를 배경으로 한 가족사진에 안타까움은 더 했다. 게다가 맛있게 보이는 유럽식당의 전통요리 사진은 나의 현실과 크게 대조되었다.
 
아내 잔소리로부터 해방의 기쁨도 잠깐, 나는 홀로 서기를 해야 했다. 남자가 더 살림을 잘 한다지만 나랑은 별개다. 천성적으로 반복되는 일은 성격에 맞지 않아서 집안가사는 멀리 했었다. 그러다 보니 결혼 후 구식 남편으로 눈총을 받다가 요즘에야 설거지와 집안 청소할 정도가 되었다. 아내가 떠난 후 일주일에 한번 정도 쌀을 씻어 밥을 하고 집안 청소도 스스로 해야 했다. 반찬은 아내가 정성껏 만들어 냉장고에 넣어 둔 걸 하나씩 꺼내서 비웠다. 남들은 쁨반뚜라는 가사도우미가 있다지만 우리네는 예외였다. 부부만 사는 집이라 크지도 않고 타인의 존재가 불편하기에 모든 걸 스스로 해결해야 했다. 그러니 아내가 없는 동안에 살림은 온전히 나의 몫이다. 살림 중에서 가장 못하는 일이 옷 다리기였다. 쉽지도 않고 생각대로 줄도 잡히지 않아서 한 줄로 날을 세워야 하는데 두 세 줄로 잡힌다. 한두 번 하다가 결국 옷 다리기는 포기하고 말았다. 식사는 아침이야 과일과 빵, 우유로 간단히 해결하고 점심은 회사에서 직장 동료들과 같이 외식을 하니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저녁은 달랐다. 집에 가서 밥상을 차리고 밥을 먹고 설거지도 해야 한다. 저녁 밥상 차리기가 귀찮아지니 은근히 저녁에 만나자는 약속이 기다려진다. 밥 한번 같이 먹자고 전화하던 지인들이 궁금해진다. 그러나 이럴 때는 무슨 일로 바쁜지 연락도 없다. 그렇다고 내가 먼저 청하자니 속이 들여다보여서 결국은 혼밥이 되곤 한다. 식사 후에 아내랑 담소를 나누며 걷던 아파트 내 호수 주위도 홀로 돌아야 했다. 마치 혼자 도는 팔랑개비처럼……
 
 
이번 주 토요일은 아내가 돌아오는 날이다. 그 동안 혼자만의 삶이 얼마나 무미건조했던가? 성경에도 “아담과 이브와 함께 하니 하나님 보시기가 좋았다”라는 구절까지 있다. 과부는 쌀이 세말이요 홀아비 집은 이가 세말이라더니 하나도 틀리지 않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집안은 윤기를 잃어갔고 퇴근하면서 불 꺼진 아파트를 열 때 외로움은 더해 갔다. 아무리 인생은 홀로 서기의 과정이라지만 혼자 사는 생활에 이제 진이 다했다. 냉장고 안에 반찬도 이제는 얼마 남지 않았고 아침에 늦잠을 자다 부랴부랴 나가는 날도 생기듯이 아내의 빈자리는 커졌다. 이런 고난의 대 행군(?)을 끝낼 때가 이제야 왔다. 아내는 짧은 고국생활을 마치고 다시 7천km를 날아서, 고국의 박 씨를 입에 물고 강남 제비처럼 날아서 인도네시아로 올 것이다.
그 박 씨를 키워서 박을 켜리라! 그리고 나누리라, 풍성한 사랑의 보물을……

댓글목록 1

벽암님의 댓글

벽암 작성일

엄선생님도 외로움을 타시는군요. 
제목에 강남제비라는 말이 들어가 잠깐 다른 생각을 한 자신이 부끄럽습니다.
한국에 계신 사모님에 대한  사미인곡을 이렇게 맛깔나게 쓰신걸 보고 아마 무척이나 놀라고 기뻐하셔서 인니에 오시는 발걸음이 빨라지실 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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