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4) 고등어의 눈물 / 최순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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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산책 작성자 편집부 작성일 2020-09-17 14:49 조회 9,348 댓글 0본문
< 수필산책 124>
고등어의 눈물
최순덕 / 수필가
시퍼런 바다가 쏟아진다. 탱글탱글 터질 것 같은 싱싱한 고등어가 배에서 바로 집으로 왔다. 스티로폼 박스에 얼마나 꾹꾹 눌러 담았는지 박스가 미어터진다. 고등어 사이사이에 신문지 뭉치를 쑤셔 넣듯 쿡쿡 박아 넣은 한치는 또 얼마나 많은지, 쏟아놓으니 큰 대야에 가득하다. 제매가 오징어 좋아하는 줄을 어찌 기억하고 있는지 제철 만난 한치를 많이도 보냈다. 맙소사, 작은 오빠가 바다 한 귀퉁이를 툭 때어 보낸 것 같다. 막내 오빠는 고등어 잡이 선단의 운반선 조리장이다. 오빠가 전하는 고등어와의 사투는 각본 없는 드라마다. 남항 부두에서 고등어잡이 선단은 새벽 바다를 빠져나간다. 본선 한 척과 환한 불을 밝히는 등선 두 척과 운반선 세 척이 모여 여섯 척의 배가 선단을 꾸리고 목 좋은 곳을 차지하기 위하여 열심히 달려간다. 백여 명의 선원들이 때로는 목숨까지 위협을 받으며 거친 파도를 뚫고 고등어 등처럼 푸른 바다로 향한다. 각각의 배가 분담한 역할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잘 수행해야만 함께 살 수 있기에 필살의 의지를 펄럭이는 깃발에 매달고 달린다.
뒤따라 날라 온 작은 오빠의 문자 메시지에 가슴이 먹먹해진다. 며칠 잡은 고기를 풀어놓고 바로 돌아서 출항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 손질도 미처 못 했다고 미안하단다. 물을 붓지 말고 삶아서 초장에 찍어 먹으면 달콤하고 쫄깃하니 맛있다고 한치 요리법까지 알려주는 작은 오빠다. 우리 해경이 중국 어선을 막아주니 요즈음에는 고기가 많이 잡힌다고 신바람이 나서 문자도 춤을 춘다. 여동생에게 주고 싶은 생선을 챙기느라 선장의 눈치는 안 봤을까. 이 추운 겨울에 찬바람 맞으며 고깃배를 타고 있는 칠순이 코앞인 작은 오빠를 생각하니 가슴이 시려 온다. 저 생선을 어찌 먹을 수 있으랴. 울컥 솟구치는 짜릿한 기운이 눈물샘을 건드린다. 꽃이 핀 듯 밤바다에 등선의 불이 환하게 켜지면 어로장은 바빠진다. ‘자산어보’에도 낮에는 속도가 빨라 잡기 어렵고 밤에는 불빛을 좋아한다고 기록되어있다. 해저 20~30m까지 불빛이 들어간다니 놀랍다. 불을 보고 찾아 드는 어종이 고등어뿐만이 아니기에 어탐기의 붉은 색의 이동을 주시하는 어로장의 애가 탄다. 바짝 긴장한 책임자의 명령에 따라 투망을 한다. 밧줄이 순식간에 바다로 빨려 들어간다. 본선과 연결된 거대한 그물이 동그랗게 쳐지면 한겨울인데도 입에서 단내가 난다고 한다.
양망을 하면 운반선 세 척이 차례대로 바빠진다. 우리 바다에서 태어났고 우리 바다에서 떠돌았고 우리 바다가 키워 낸 시퍼런 고등어가 펄떡거리며 얼음을 덮어쓴다. 정든 바다를 떠나는 고등어의 푸른 눈물이 밤바다를 적신다. 나의 바다에는 언제나 오빠가 있다. 멍하니 고등어를 보노라니 눈물로 출렁이는 고향 통영의 바다가 어른거린다. 우리에게는 고등어도 귀했던 그 시절에 자신은 중학교 문턱도 못 갔으면서 여동생에게 배움의 길을 터주었던 오빠는 가난과 고통을 모두 보듬고 주기만 하는 바다였다. “덕아 니는 내 선생이나 다름없어. 니가 중학교 다닐 때이니 노트를 보고 오빠는 혼자 공부했단다. 헤밍웨이 전집도 너 때문에 읽었고 영어 단어도 대문자 소문자 모두 네 책보고 알게 되었고 니가 선생님이 되어 첫 발령을 받던 날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단다.” 고등어와 함께 온 오빠의 카톡, 가슴 저 밑에 꼭꼭 밀쳐놓았던 아릿한 슬픔 한 줄기가 고등어의 눈물로 흘러내린다. 고등어가 부산시의 시어市漁인 줄을 미처 몰랐었다. 어느 날 시야에 들어온 서면 지하철 굵은 기둥에 붙은 고등어 그림과 글이 그렇게 많이 지나친 날들을 두고 오빠의 고등어를 받고 난 뒤 눈에 들어왔다. 그 포스터처럼 오빠의 희생을 눈여겨보지 못했던 날들이 왈칵 쏟아져 나온다. 원망과 울분은 눈만 뜨면 마주치는 푸른 바다에 다 쏟아놓고 맨주먹으로 헤쳐 나온 오빠의 삶. 갓 잡아 올린 고등어의 펄떡거리는 몸짓처럼 죽기 살기로 숨 가쁘게 살아왔을 오빠의 삶이 아프게 다가온다.
고등어는 계절 회유성이 높은 어종이다. 여름에는 북으로 겨울에는 남으로 무리 지어 움직이는 고등어다. 어린 나이에 고향을 떠나 살아내기 위해 동분서주로 퍼덕거리며 세파에 떠밀려 다녔을 고등어 같은 작은 오빠다. 고등어는 태평양은 물론 인도양, 대서양, 온대와 아열대의 모든 바다에서 널리 분포되어 살아가는 서민의 생선이다. 배운 것도 가진 것도 없이 세상의 풍파를 맨몸으로 맞서서 원양어선에 올랐을 오빠의 삶의 무대도 그랬다. 천신만고 끝에 자리 잡아 가던 사업이 부도를 맞고 어려워지자 주저앉아 울 틈도 없이 거친 바다로 뛰어들어 치열하게 살아온 오빠가 아닌가. 싱싱한 고등어에 작은 오빠의 눈물이 겹쳐지는 이유다. 고등어는 ‘바다의 보리’라 했다. 쌀이 귀했던 시절, 서민의 배를 채웠던 보리처럼 비린내는 나지만 영양가는 좋고 값이 싸서 가난한 서민이 즐겨 먹었으니까. 찌개나 구이, 조림 등 어떤 형태로든 김치, 시래기, 무, 호박 어떤 재료와도 잘 섞이고 친밀한 생선이다. 바다와 먼 산골에도 소금을 덮어쓰고 찾아가는 고등어니까. 작은 오빠도 그렇다. 집안의 해결사로 부모님과 동생들을 챙기는 일은 언제나 작은 오빠의 몫이었으니까. 아무리 헤엄쳐도 벗어날 수 없는 무지와 가난의 바다에서 그래도 최선을 다해
지느러미를 흔들어야만 했던 오빠였다. 습관처럼 몸에 밴 살기 위한 몸부림이 아직도 싱싱한 고등어 같은 작은 오빠의 삶이다.
등 푸른 생선의 좋은 점이 부각 되면서 더욱 사랑받게 된 고등어다. 흔해서 귀한 대접도 못 받던 고등어였는데 환경 변화와 어획량 감소로 몸값이 예전 같지 않다. 새로운 가치로 돌아온 고등어처럼 그렇게 오빠가 돌아왔다. 학력이나 재력 어느 쪽으로도 내세울 것 없는 오빠들이 늘 어려운 친정과 함께 어두운 그림자였다. 많이 배우고 영향력 있는 오빠를 가진 친구가 부럽기도 했었다. 오빠들을 대신해서 공부를 더 한 만큼 친정을 돌봐야 하는 것이 바윗돌처럼 무거웠다. 어긋난 기대만큼 갈등만 깊어지고 화합과 우애는 남의 얘기가 되었다. 가진 것 없어도, 법 없이도 살 사람이라던 아버지의 피가 흐르는 형제들이었는데 팍팍한 삶이 앗아간 흔적이었다. 세월의 강물을 건너면서 서러움도 갈등도 모두 흘려보낸 요즈음이 오히려 좋다.
고등어가 고맙다. 푸른 바다를 닮은 고등어가 무리 지어 다니며 씩씩하게 살아주듯 칠순을 코앞에 둔 오빠에게 일할 기회를 주고 풋풋한 꿈을 키울 수 있게 해주니까. 바다가 푸른 이유는 고등어 같은 등 푸른 생선이 활기차게 쏘다니기 때문이리라. 언제까지나 싱싱한 푸름을 간직한 고등어이고 푸른 바다라면 좋겠다. 오빠의 눈물을 나누어 먹은 고등어의 눈물로 바다는 더욱 푸르다. 고등어의 눈물이 오빠의 희망이 되어 푸른 바다의 사연으로 출렁인다.
< 최순덕 작가 프로필 >
* 경남 통영 출신 / 2004년 <문예시대>로 등단
* 2005년 에세이문예 작가상 수상
* 한국문인협회 회원
* 부산여류문인협회 회장, 부산 가톨릭문인협회 부회장 역임
* 한국 본격문학가협회 부회장
* 풀꽃수필문학상, 한국해양문학상 수상
* 수필집 <껍질 벗는 나무> <사라예보의 붉은 강물>, <잃어버린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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