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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8) 아름다운 섬나라 / 한하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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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산책 작성자 편집부 작성일 2020-10-15 19:08 조회 13,456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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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필산책 128 >
 
아름다운 섬나라
 
한하은 / 제4회 적도문학상 수필부문 수상자
 
낯선 곳이 내게 다가왔다. 수 만개의 섬을 보유하고 있는 동남아시아에 위치한 나라, 인도네시아였다. 그 곳에 가야하는 이유도 모른 채 내 나이 3살 무렵 비행기에 오르게 되었다. 너무 어렸기에 어릴 적 한국 생활조차 기억이 제대로 나진 않지만 당시 할머니, 할아버지를 떠나 멀리 가야 한다는 말에 두려움을 느꼈던 것만은 기억난다.
 
처음 보는 비행기를 타는 것부터 낯설게 느껴졌다. 심지어 비행기엔 한국 사람보다 인도네시아 사람이 더 많았기에 이미 다른 나라에 도착했단 생각도 들었다. 두둥실 떠오르는 비행기도 무서웠지만 잘 모르는 인도네시아어까지 들려 어지러움이 배가 되었다.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느낄 수 있었던 것은 습하고 후덥지근한 여름밤이었다. 내가 떠난 한국은 당시 겨울이었는데 4계절 내내 여름인 인도네시아는 여름을 좋아하는 내게 조금은 호기롭게 다가왔다.
 
 
인도네시아에서의 내 첫 생활은 찌까랑(cikarang)에서 시작됐다. 피아노 뒤에서 갑자기 등장한 도마뱀을 보며 언니는 놀라 울먹였지만 나는 2층집이라는 사실만으로 흥을 주체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 흥을 주체하지 못한 나머지 나는 결국 발을 헛디뎌 넘어지기까지 했다. 그 순간 아픔도 아픔이었지만 내게 ‘무슨 소리야?’라고 외치던 엄마에게 혼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더 컸던 나머지 아픔을 꾹 참고 ‘책 떨어지는 소리야’라고 거짓말을 했다.
 
계단에서 발을 헛디뎌 넘어진 것은 내 인생 처음이었는데 마치 인도네시아에 온 신고식과도 같았다. 인도네시아에서 온 것도 서러운데 이 마음도 표현하지 못하고, 넘어져 아픈 것도 숨긴 것은 모든 게 낯선 곳에 와서 그런 게 아닐까 싶었다. 당시 점점 소극적인 성격이 된 나는 낯선 곳에 살아서 소극적이고, 낯가리게 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넘어져도 다시 일어서서 새로운 경험을 해봐야지 인도네시아에 적응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적응이란 나에겐 새로운 도전과도 같았다.
 
걸어 다니는 사람을 보면 잠깐 무섭기도 했지만 그 뿐이었다. 엄마의 심부름에 언니와 함께 자전거를 타고 마트를 향해 달려갔다. 익숙하지 않은 언어, 사람들의 시선이 따가웠지만 소통을 하면서 따가운 시선을 부드럽게 보이는 시선으로 바꾸는 나의 능력도 생긴 것 같다. 이렇게 그들의 시선을 바꾼 것은 ‘소통’이었다. 인도네시아 사람들과 꾸준히 소통을 하면서 적응할 수 있었다. 마치 적응도 공부를 하는 것처럼 단계가 있는 것 같았다. 0단계부터 몇 단계까지 있을지 모르지만 어린 나이에 나는 열심히 소통을 하며 살아왔다. 점점 이런 생활이 익숙해지고 몇 년이 지난 후 시내 쪽으로 이사를 하게 됐다. 한국으로 비교하자면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가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곳은 겨우 적응한 찌까랑을 떠나 새롭게 다가온 낯선 곳일 뿐이었다. 또다시 낯선 환경에 적응해야 한다는 생각에 막막하기도 했지만 여러 친구들을 사귀며 새로운 기사 아저씨, 집을 구하다 보니 어느새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시작했다. 주위에는 백화점, 식당 등 찌까랑보다 다양한 편의시설이 많았기에 다 돌아보는 것도 적응하는데 도움이 되었던 것 같다. 다양한 건물들이 많이 있었다. 이곳은 나에게 도움을 주는 환경이라고 생각했다.
 
길거리를 지나가다 보면 구걸하는 사람들이 내 눈에 보였다. 빈곤층들은 내게 아픔을 느끼게 해주었다. 따라서 빈곤층을 살아가는 삶에 좀 더 공감하고자 조금이나마 도움을 주기 위해 노력했다. 이때 봉사활동을 시작했다. 고아원 봉사활동을 할 때 우리가 아이들과 놀아주고, 사랑을 주면 아이들의 행복감이 얼마나 높아질지 궁금했다. 아직 교육을 받지 못한 아이들에게 여러 가지를 교육하며 시간 가는 줄도 모른 채 놀았다. 이런 활동을 하면서 나는 벌써 몇 년을 인도네시아에서 산 사람처럼 변해갔다. 과연 나는 벌써 인도네시아에서 적응한 사람이 된 걸까? 라는 생각에 잠겨도 보았다. 몇 년이 지난 후 나는 알게 되었다. 나는 인도네시아에 오기 전에 분명 한국인이었지만 오고 나서 잠시 혼란을 일으키게 되었다. 인도네시아에서 오래 살다 보니 언어, 소통 등 인도네시아의 문화였다.
 
 
인도네시아에서 소통을 하면서 어려움이 생길 때도 있었다. 황당한 일을 넘어서 충격적인 일도 있었다. 난생 처음으로 겪어보는 ‘소매치기’까지 겪게 된 것이다. 어이없게도 처음 간 백화점에서 소매치기를 당했다. 너무 황당해서 몰 직원에게 말을 했지만 무섭고 떨려서 말이 제대로 안 나왔었다. 그때 인도네시아어가 좀 부족했었다는 걸 느꼈고, 앞으로 그런 일을 당하지 않도록 언제 어디서든지 조심히 다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인도네시아 문화로 생활한지 오래된 나는 인도네시아 문화에 대해서 더 구체적으로 알고 싶었다. 평소에 관심 있는 의류에 대해 알아보다가 인도네시아의 전통 옷은 무엇인지 알고 싶었다. 그것은 바로 바틱(batik)이였다. 학교생활을 할 때 금요일 마다 실천했던 바틱데이 행사가 있었다. 매주 금요일 마다 바틱을 입고 학교에 오는 것이다. 바틱을 입으면 나도 모르게 기분이 좋아졌다. 바틱데이가 생기고 나서부터는 우리가 바틱에 대해 더 관심을 가질 수 있게 되었고, 학생들도 편하게 바틱을 즐겨 입었다. 바틱을 입을 때 마다 인도네시아에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바틱을 착용함으로써 인도네시아 사람들과도 친근감 있게 다가갈 수도 있었다.
 
인도네시아 문화의 특색이 다양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처음에 아무것도 몰랐던 나는 인도네시아의 문화를 낮게 바라보았지만, 문화에 대해 함부로 평가하는 것이 나의 잘못이라는 걸 깨달았다. 왜 인도네시아의 문화를 낮게 바라보았는지, 단지 주위의 환경 탓으로만 바라보고 편견을 내세웠다. 따라서 인도네시아는 나의 경각심을 깨워주는 나라였다. 나의 첫 해외인 나라가 경각심을 깨워준 건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것 같다. 해외생활에서 나를 느끼게 해주는 건 사진이었다. 사진을 여러 장 찍는 것을 좋아하게 된 계기도 바로 이곳이 있었기 때문이다. 인도네시아의 풍경을 담다보면 나에게 얻어지는 행복도 높아지고 이 나라만의 매력에 빠져든다. 이 나라의 모습이 풍경에서 느껴지는 건가 싶기도 했다. 많은 사람들이 인도네시아의 매력을 아직 못 찾았다면 내가 찍은 사진을 보고 매력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언니와 함께 인도네시아 음식을 먹으러 식당을 갔었다. 향신료의 냄새가 나는 음식들을 통해 나는 사진을 찍었다. 사진 상으로는 음식이 맛있게 보였다. 하지만 냄새를 맡아보면 그다지 내키지 않았다. 빠당(padang) 맛을 본 언니의 표정을 보고 의아스러웠다. 맛볼 땐 얼굴을 찌푸리더니 연신 맛있게 먹는 것이다.
 
강한 향신료의 맛을 본 나는 이후로 계속 인도네시아의 전통음식의 맛에 매료되었다. 사진을 요리조리 찍었지만 카메라에 사진이 다 담기지 않을 정도로 음식이 생각보다 푸짐했다. 가격도 저렴했다. 이렇게 지내다보니 부정적인 생각보다 긍정적인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다. 새로운 것들을 찾아다니며 새로운 장소에서 좋은 추억을 하나 둘씩 쌓게 되었다. 이런 추억이 쌓이다 보니 가족과의 화목한 시간이 많이 생겼다. 아무리 외국의 낯선 곳에 살지라도 단점을 찾는 것 보단 장점을 찾아내는 것이 빠르다고 느껴졌다.
 
이렇게 몇 년을 살다 보니 낯선 환경이 익숙한 환경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이제 인도네시아는 나의 제2의 고향이 되었고 내 성장에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터전이 되었다. 어렸을 때부터 적응했던 어린 나는 울고 떼쓰는 나를 다시 되돌아봤을 때 그때의 상황이 이해가 되었다. 내가 성장해온 것처럼 인도네시아도 성장을 했던 것이다. 현재 많이 보이는 편리한 시설들이 그때는 없었기 때문이다. 외국 사람들을 위해서 인도네시아 사람들이 친절하게 대해주었으며 여러 나라들이 인도네시아를 성장하게 도와주었다.
 
차근차근 인도네시아에 대한 관점을 새롭게 바라보았다. 한국에서 경험하지 못한 것들을 인도네시아에서 먼저 경험을 해봐서 놀라울 따름이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패션에 대한 관심이 높았다. 밖에 나갈 때 마다 옷을 뭐 입을지 항상 고민했던 나는 현재까지도 지속 중이다. 엄마가 골라준 옷들이 마음에 안들 때 항상 투정 부린 게 기억이 난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과연 여기가 한국이 아니라서 옷이 없는 걸까? 라고도 생각해 보기도 했었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옷은 있지만 내가 입지 않은 것이다. 엄마는 항상 ‘새로운 옷 좀 입어’라고 내게 말하셨다. ‘내가 왜 새로운 옷을 입지 않은 것이 왜일까?’ 그것은 바로 적응이기 때문이다. 여러 번 옷을 입었던 것은 적응을 하였지만 한 번도 입지 않은 옷을 입으라고 하면 적응을 못해서 안 입게 되었다. 그래서 새로운 옷을 입어보고자 패션쇼의 관람을 했다. 모델들은 나와 옷이 바뀔 때 마다 패션디자인의 옷에 대한 열정은 태양만큼 강렬했다. 패션쇼를 본 후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마음이 용솟음쳤다. 처음으로 다시 되돌아간다면 잘 적응할 수 있겠고, 다시 한 번 경험해 보고 싶기도 하다.
 
앞으로의 인도네시아에서 남은 시간들을 최대한 행복하게 지내고 싶다. 인도네시아를 떠나고 난 후 나의 추억이 초기화 될 까봐 걱정을 하고 있는 상상 속의 나를 바라보니 마음이 쾅 하고 내려앉는다. 하지만 내가 살았던 삶의 일부분인 인도네시아는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인도네시아 친구들을 만나서 많은 배움을 얻었다. 다시는 오지 않을 이 의미 있는 시간들이 더욱 따뜻한 삶이되기를 바라며 나아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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