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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9) 춘향에게 / 송명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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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산책 작성자 편집부 작성일 2020-10-22 18:33 조회 15,69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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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산책: 한국문단 특별기획>
 
춘향에게
 
송명화 / 수필가
                                                                                         
춘향! ‘탈선’은 매력적인 낱말이거든, 만약 연극 제목이 「춘향전」이나 「열녀 춘향」이었다면 나는 표를 사지 않았을 테지. 「탈선 춘향전」이란 제목에 끌렸었거든. 아름다운 네 모습이 빛나는 영화를 보면서도, 손에서 놓기 싫을 정도로 재미있게 네 이야기를 읽으면서도, 심지어는 남원을 찾아 광한루를 거닐면서도 2% 부족하던 이유가 아마도 그것이 아니었나 싶어. 여성의 남성 의존적인 삶의 모습을 아무런 비판 없이 받아들이는 듯한 분위기가 부담스러웠어. 선을 그어놓고 그대로 살아가는 것은 안전하긴 하지만 세뇌당하지 않은 자유로운 심성으로는 받아들이기 힘든 일이지.
 
(“꼴값하고 자빠졌네, 엇다 대구 말대가리를 흔들어 싸, (어사또 관을 벗겨 때리며) 너 같은 놈은 광화문 문짝에 네놈 거시기를 뽑아 매달아 놓고 ‘천하대잡놈’이라고 방을 써 붙여야 써! 엇다 대가리를 흔들어, 이 쌍녀르 자석아! 니 여편네 하나 제대로 간수 못하는 놈이 남자냐, 남자야! -탈선 춘향전 대사중에서-)
 
 
 
마패를 치켜들고 자랑스럽게 어사출도를 외치는 이몽룡에게 내지르는 너의 말에 속이 시원하였다. 눈꼬리를 치켜 올리고 쉴 새 없이 욕지거리를 해대는 너를 보며 나도 덩달아 신이 났어. 뒤이어 신나게 발길을 날리는 너의 날렵함 또한 얼씨구나 하고 박수를 받아 마땅하였지. “아이고, 경사났네. 서방니임.”하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거나 달려가 포옥 안기는 것이 ‘춘향전’의 전형적인 설정이 아니었더냐. 그것이 늘 의아하였다. 정말 그럴 수 있을까. 아무리 오매불망 그리던 낭군이라 해도 소식 한 자 없이 잊었던 소치가 얼마나 원망스러울까. 적어도 눈이라도 흘기고 패악을 부려보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싶었다. 좋은 게 좋다며 받아들이기에는 시대적 배경에게 참으로 많이 양보하여야만 하는 처사라고 투덜거렸지.
 
탈선脫線이라고? 누가 그은 선이지? 춘향이, 네가 그은 선은 아니지 않으냐. 권력을 가진 자가 교묘하게 계급을 정하고, 힘 있는 자가 자신의 삶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법도를 정해 놓고 오랜 세월 굵게 덧칠해온 선을 사람들은 받아들여 왔다. 가부장제라는 무거운 지붕을 밀쳐내기에는 방자나 향단이나, 너나 네 어머니나 아무런 힘이 없었지. 변학도나 이몽룡에게 정곡을 찌르는 욕을 퍼붓는 너의 용기를 그들은 탈선이라 부르고 우리는 편의상 받아들여. 하지만 그 선線은 조선의 여성이나 하층 민중들의 의지가 합해져 인정받은 결정이 아닐 것이기에 나는 옳은 표현으로 받아들일 수가 없다. 우리가 탈선이라 부르는 것은 인습적 고리를 인정하는 것이 될 터이니 말이지. 그럼, 벗어나기 전의 선線이란 뭘까?
 
 
선의 본질은 나누는 것이야. 나눔으로 인해 끌어당기는 포용성과 밀어내는 배타성이 생기게 되지.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편 가르기, 남성중심성을 옹호하는 봉건적 가치관을 품은 세력과 그것에 저항하는 자유의지를 가진 자들을 따로 묶기, 역할에 따라 정해진 인물의 퍼소나를 고수하는 쪽을 보듬고 새로운 개성을 들이미는 쪽을 폄하하기 등 모든 것이 선에 의해 유발되는 투쟁이라는 생각이 든다. 많은 이들이 선의 안쪽에서 안전하게 받아들여지길 원하였다.
 
안락하고 수월한 길이라는 생각이었겠지. ‘에리히 프롬’은 이런 걸 고착의 욕구라고 한 것 같네. 하지만 힘들고 오래 걸리더라도 역사는 선의 바깥쪽에서 선을 부수려고 선을 향해 돌진하는 사람들에 의해 변화되고 발전되는 것이 아니겠니. 비록 골치 아픈 사람이라고 찍히기 일쑤지만 말이야. 하지만 끊임없이 선을 허물고자 하는 너의 노력이 언젠가는 빛을 보리라 믿는다. 배우자를 정하기란 어려운 일이지. 경제력을 첫 손에 꼽는 풍토 덕분에 요즘 결혼상담소에서 내놓는 좋은 배우자의 조건이 참으로 희한하더라. 거기에 비해 일 순위로 사랑을 바탕에 깔고, 올바른 가치관을 두 번째로 꼽는 너의 바람이 기특하구나. 벙어리 삼 년, 귀머거리 삼 년, 봉사 삼 년이란 말이 득세하던 시대에 너는 살았지. 아직도 여자라는 이유로 눈 아래로 두거나 밀쳐지는 슬픔이 사회 곳곳에 존재한단다. 하지만 백년가약을 맺는 자리, 걱정이나 안락한 장밋빛 미래에 대한 환상보다는 부부의 동등한 인간적 성장을 논하는 너의 처세는 한 마리 학과 같다. 한 치의 꿀림도 없는 다부진 네 성정에 오히려 이 도령이 풀이 죽었구나.
 
부부가 되면 벼슬을 구해 당상 높이 백성을 호령하겠다는 이몽룡을 낭군 될 자격이 없다고 하는 장면은 마치 스승이 제자를 꾸짖는 듯하였다. 벼슬이 되거들랑 백성의 수족이 되어야 한다는 준엄한 질책은 서릿발 같았지. 결혼하면 너를 귀부인으로 만들어 노상 자신의 곁에서 떠나지 않게 해 주겠다고 꾀는 말에 ‘그럼 나는 아무 생명 없는 나무 둥치가 되어서 연장처럼 시키는 대로만 해야 되겠냐’고 응수하는 모습은 그 시대 모든 여인의 인간적인 비애를 대변하는 것처럼 느껴져 가슴이 짠하였다. 올바른 도리는 양반, 상놈에 있는 것이 아니고 사람에 있는 것이란 것을 이 도령은 뼈저리게 느꼈지 싶다. 사심 없고 뜻이 곧은 네가 두려울 게 뭐겠니? 비록 양반댁 자제라도 고루한 생각은 고쳐주어야 하고 기생의 딸이라 하나 자신의 삶조차 네 뜻대로 못하면서 귀부인으로 처세한들 뭐하겠니. 곱게 자라 똑똑하지만 생각의 깊이가 부족한 이몽룡을 맘에 둔 것은 너의 결정이었어. 혹독하게 일깨워주는 것 또한 속 깊은 너의 결정이었으리라 믿는다. 그래서 극 내내 너는 더욱 당당하였고 21세기에 성공적으로 새롭게 살아나올 수 있었구나.
 
 
할 말이 많다. 해야 할 말도 많다. 그러나 여자이기에 하지 못하는 말들이 대부분이었다. 꾹꾹 눌러 담는 것은 보리밥뿐만 아니라 한탄과 눈물이기도 하였지 않으냐. 아픔을 가진 이에게 배려하는 마음으로 말을 아끼는 경우가 아닌데도 입을 닫고 눈을 감아버려야 하는 맘은 핏빛이었지 싶구나. 당당하게 너처럼 아니면 아니라고, 변 사또에게도 불한당이라고 소리칠 수 있는 너의 용기가 부럽다. 너의 똑 부러지는 대사가 객석을 울릴 때마다 움츠렸던 여성들은 하나씩 응어리를 풀어내며 처진 어깨를 바로잡았지. 네 덕에 핏속을 숨죽여 흐르던 자존이란 유전자가 산소방울 하나씩을 더 매달 수 있었던 것 같아. 자신의 삶에 제 목소리를 내는 여성들이 오늘의 너에게서 ‘탈선’이란 수식어를 지워버릴 거야. 그러나 너에게서 지우는 탈선이란 굳은 인습의 굴레를 벗는다는 뜻이지, 요즘 드라마 속에서 자주 보는 그런 노란 색 용어는 아니란다. 너는 전사처럼 당당하였다. 무소의 뿔처럼 과감하게 책 속 인물의 상투적 성격에서 탈선해버린 너의 뒤집기에 한바탕 웃음을 보낸다. 네가 시선을 우리들의 가슴에 꽂은 순간 우리가 네게 보낸 갈채를 기억하여라. 혁명이란 썩은 문짝을 차는 것과 같다고 하지. 시도하지 않은 이에게 이루어지는 일은 없는 법, 곧게 서서 객석을 두루 돌아보던 너의 빛나던 눈빛을 기억하마. 춘향아!
 

송명화 작가 약력

* 수필가, 문학평론가, 문학언어치료학박사
* 전남일보 신춘문예 당선
* 국제PEN한국본부 부산지회 부회장, 부산수필문학협회 회장, 계간<에세이문예>주간
* 김만중문학상, 연암박지원문학상 외 수상 다수
* 수필집 <순장소녀>외 2권, 창작이론서 <본격수필 창작이론과 적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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