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5) 나시고랭 (GILA) 에피소드 / 함상욱 > 한국문인협회 인니 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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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5) 나시고랭 (GILA) 에피소드 / 함상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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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산책 작성자 편집부 작성일 2021-02-11 19:39 조회 8,52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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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필산책 145 >
 
나시고랭 (GILA) 에피소드
 
함상욱 / 한국문협 인니지부 회원
 
파란색, 빨간색 불꽃이 춤을 춘다. 우리나라의 포장마차 같은 이곳, 인도네시아의 길거리 식당에서 파는 음식인 나시고랭 GILA의 매콤한 향이 나의 뇌를 찌른다. 무슨 이유일까? 음식 이름 뒤에 나시고랭 GILA(미쳤다)라니, 주문해둔 음식이 나오길 기다리며 주변 사람들과 조용히 상황을 주시한다. 오래 사귄 사람들은 아니지만 스치는 인연으로 항상 좋은 시간을 보냈었다. 매퀴한 거리의 냄새는 오늘도 좋은 만남을 확신 시킨다. "캉 캉 쏴" 하는 요리사의 분주한 소리에 조용히 내 차례를 기다린다. 오른쪽에 앉아있는 커플은 조금 전부터 부산하다.

남자친구가 무슨 잘못을 했는지 여자 친구의 투정은 날카롭다.
"내가 6시에 회사 앞에서 기다리라고 하면 맞춰서 와야 할 거 아니야!!“
"내가 회사 앞에서 10분이나 넘게 기다리고 있었는데!" 남자친구는 조용히 사람 좋은 웃음만 연신 짓고 잇다. 여자 친구는 아직 화가 덜 풀렸는지 눈도 마주치지 않는다. 조금 뒤 허공에 등장한 나시고랭 GILA, 두 사람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입과 손을 이용해 어느새 음식과 깊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어떤 마법을 사용한 것일까? 1분도 채 되지 않았는데 나시고랭 GILA를 먹고 난 후, 여자 친구 얼굴은 싱글벙글 이다. "아까 화내서 미안해! 오늘 사무실에서 자료를 틀리게 보고 했거든.“ "그래서 화가 많이 났었어. 미안." 남자친구는 사람 좋은 얼굴로 오토바이 시동을 걸고 여자 친구를 기다린다. 조금 전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여자는 매미처럼 남자친구 등에 착 달라붙어 사랑을 속삭이며 사라진다. 왼쪽에 않아서 음식을 기다리는 또 다른 남자는 장군처럼 이것저것 지시가 많다. "CABE(고추)를 더 많이 넣어주세요. 아니 너무 적잖아요.”  코끝을 스치는 매운 냄새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난다. 주변을 빨갛게 물들인 채로 위풍당당한 숟가락의 바쁜 움직임이 시작된다. 불꽃 아우라가 온몸을 감싸면서 남자는 사우나를 한 것처럼 온몸이 온통 땀으로 가득하다. 아직 입맛에 만족을 못했는지 SAMBAL(고추소스)을 더 뿌려서 한 그릇을 싹싹 비운다.
 
 
”PAK(아저씨) 그렇게 먹으면 위장에 구멍이 나요, 하하하” 주인아저씨의 걱정에 아랑곳없이 “내일 또 올 거니까 CABE(고추)나 준비하시오” 하고 만족한 얼굴로 일어나 자리를 떠난다.
“저걸 매일 먹는다고? 등골에 식은땀이 흐른다.” 갑자기 핸드폰이 울리며 회사에서 전화가 걸려온다. “X주임 수입서류 파일 어디다 둔거야??”
“예, 이사님 책상 위에다 올려놓았어요. 오른쪽 밑에 있으니 다시 한 번 보시면 될 거예요”
“이 밤에 어딜 다니는 거야?? 숙소에도 없던데 여자 친구 생긴 거야? 하하하”
“여자 친구가 있으면 지금 여기 있겠어요?”. ”이사님이 소개시켜 주세요” 하고 전화를 끊는데 앞에 편한 옷을 걸쳐 입은 아가씨가 대뜸 “안녕하세요?” 라고 배시시 웃음 지으며 인사한다.
깜짝 놀라서 “저요?”라고 대답을 하고 멍하니 바라보는데, 아가씨는 뭐가 재미있는지 옆에 친구하고 킥킥대며 웃는다.
 
영어로 “한국 사람이에요? 어디 살아요? 이름이 뭐에요? 무슨 일해요? 등등” 처음 만난 사이인데 면접을 보는 것 같다. 대답을 하는 동안 플라스틱 포장지에 나시고랭 GILA는 담겨 나오고 아가씨들은 음식을 받아 오토바이를 타고 경쾌한 웃음과 함께 유유히 사라진다.
“미스터! 내일 여기 오면 우리 또 만나요!” 한바탕 사람들이 지나가고 드디어 내 차례다.

소시지를 가득 달라고 한 나의 주문에 맞춰 모락모락 연기에 나시고랭 GILA가 드디어 내 앞에 등장했다. 한 입을 듬뿍 뜨는 순간 매콤하고 달달 한 맛이 입안을 감싸고 어느 순간 한 그릇이 쓱싹 비워졌다. 오토바이와 차들의 경적이 시끄러운 밤, 인도네시아 도시의 길거리에 앉아 고향의 부모님 음식이 그리워진다. 아마도 고국의 설 명절이 다가온 까닭도 있으리라.

지금 이곳 인도네시아에서는 나시고랭 GILA가 맛있지만, 내 고향 맛이 나는 떡국과 된장찌개 등, 예전에 먹었던 음식들이 생각난다. 이런 날은 된장찌개 GILA도 맛있을텐데... 나시고랭 GILA에 양념으로 그리움도 듬뿍 담아 먹으며 고향의 음식 맛을 아련히 느껴보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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