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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6) 어머니의 김치 / 이병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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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산책 작성자 편집부 작성일 2021-02-19 12:35 조회 9,872 댓글 0

본문

< 수필산책 146>
 
어머니의 김치
 
이병규 / 한국문협 인니지부 회원
 
오래 전, 첫 직장을 대구로 발령 받고 자취 생활을 하던 시절, 어머니가 해주셨던 추억속의 김치를 떠올려 본다. 어느 날, 남은 김치를 다 털어 김치 찌게를 끓이고 나니 집에 김치가 딱 떨어졌다. 회사에 출근하자마자 어머니께 전화를 드렸다.
 
"어머니 전데요 별고 없으시죠?"
"오냐..근데 무신 일이냐?" "뭐 큰일은 아니고, 그냥 안부나 여쭐려고...."
"그래? 무신 집에 별일이 있겠노. 밥은 잘 챙기 묵나?"
"그럼요..."
 
어머니께 안부 전화 드린지도 꽤 된 거 같았다. 친구들에게는 매일 밤마다 수 십 분씩 전화해도 집에는 일주일에 한 두통 남짓이다. 뭐 별 대화도 없이 '잘 계시죠', '집에 별일은 없구요' 하다가 금방 끊는 게 예사였다. 그런데 김치가 떨어져서 오늘 어머니께 전화를 드린 것이다.
 
“어머니, 오늘 김치가 다 떨어져서..."
"김치가? 하긴 저번에 갖다 준 김치가 아직 있을 리가 없지, 많이 안시더나?”
"아, 조금 신거 같아서 김치 찌게 했어요."
"잘 했다. 그런 거는 빨리 묵아 치아뿌야 된다."
"예, 그래서 김치 좀 가져다 주십사 하구요..."
"알았다. 그런데, 오늘은 내가 바빠서 좀 힘들겠고 내일이나 모레쯤 갖다 주꾸마."
"예. 천천히 갖다 주셔도 돼요"
"자주 올라가서 밥도 해주고 반찬도 만들어 주야 될 낀데... 내가 바빠서 그기 잘 안되네..."
"아니에요. 제가 자주 찾아 뵈야 하는데, 죄송합니다. "
"아이다. 바깥 일 하는 사람이 자꾸 집에 들락거리면 안된데이.니는 고마 회사나 열심히 다니거라."
"예 알겠습니다. 그럼 건강 조심하시고요. 다음 주에나 한번 내려가 뵙겠습니다.“
 
 
집에 가본지도 꽤 된 거 같다. 서울에 있을 때는 그렇다 치더라도, 지금은 집이랑 그리 멀지 않은 지역임에도 내려가는 일이 생각보다 힘이 든다. 다음 주에는 집에 한번 꼭 들러야지 하는 생각을 했다. 하루 일과가 끝나고, 퇴근 무렵, 전화가 왔다.
 
"여보세요!"
"내다. 지금 집에서 반찬 좀 챙겨가 출발 할라 카는데, 뭐 더 필요한 거 없나?"
"예? 지금요? 오늘 바쁘시다더니요?"
"아, 너 아부지하고 밥 묵다가, 니 반찬 없는 게 자꾸 생각나가 지금 갖고 올라 갈라고. 그래서 니 아부지하고 밥 묵다 말고, 짐 챙기고 있다.“
"아이구! 어머니, 그냥 집에 계세요. 갑자기 무슨..."
"아이다. 내 괘안타. 몇 시에 퇴근하노?"
"아, 예. 지금 퇴근 하긴 하는데요...' "
"그래? 알았다. 너거 아부지 하고 지금 올라가꾸마."
 
나는 전화를 끊고 집에 부리나케 달려가서 청소도 하고 빨래도 미리 해 놓았다. 어머니 오시면 분명 빨래 감 쌓인 거 다 빨아놓고 가시려고 할 것이기에. 딩동! 어머니가 환하게 웃으시며, 집안으로 들어오셨다.
 
"내 왔다! 오늘 차가 막히가 너거 아부지가 고생 좀 마이했다.”
그래서 그런지 아버지 표정이 영 심상치 않았다.
"아버지 수고 많으셨네요. 앉아 계세요. 제가 포도 좀 씻어 올게요"
"됐다고마, 우리는 퍼뜩 내려 갈란다. 빨리 김치 꺼내가 주고 가련다."
"아이고 어머니도 뭐가 그래 급한데? 아들 집에 왔으이 천천히 좀 있다가지.”
 
어머니는 집 구석구석 살피시면서 아들 방에 뭐 해주고 가실 것 없나 살피셨다.
"오늘은 빨래도 없네?"
"아. 빨래 미리 다 해놨어요. 와이셔츠까지 다 다려놨는데요. 뭘, 이제 제가 알아서 다 할건데 어머니는 그냥 쉬다 가세요."
어머니의 아쉬움 뒤로 아버지가
 
"그봐라, 인자 임마도 아, 아이다. 다 키아 놨는데 지가 알아서 하겠지, 와 자꾸 올라가자 케샀노?" 역정이 약간 섞인 말씀을 하셨다. 아버지의 성화에 어머니는 서둘러 싸오신 김치를 냉장고에 넣으시고, 빈 반찬통 몇 개를 챙기셨다.
 
"집에서 정수 물 갖고 왔으니까, 그거 묵고, 수도 물 함부로 먹지 말고, 음식 조심하거래이."
"알았습니다. 물 맨날 끓여 먹는데, 자꾸 정수 물 가져오지 마세요. 무거운데..."
 
어머니는 내가 이곳으로 이사 온 날부터 집에 오실 때마다, 고향집 정수기로 정수된 물을 페트병에 두 세 개씩 담아서 갖고 오셨다. 어디서 들으셨는지 여기 물이라는 게 그리 맑지 않은 거라 말씀을 하시면서.
 
"그라면, 회사 잘 댕기고, 밥 잘 묵고 몸 조심하거라. 우리는 간대이."
어머니는 먼저 내려가시고, 아버지와 같이 주차장으로 가는데,
 
"니 그거 아나?" 아버지가 갑자기 물으셨다. "오늘 너거 엄마 사무실 갔다 오자마자. 배추 사와가 김치 담갔다. 니 갖다 준다고. 저녁 밥 묵을 때까지 갖다 주야 된다 카민서...“
 
어머니는 얼마 전부터 퇴행성 관절염이 심하셔서 계단 오르내리는 것조차 힘들어 하시면서도 살림에 보탬이 될까 보험회사에서 생활 설계사를 하시면서 생활을 이어오시는 어머니 셨다.
 
 
아들이 대학을 졸업하고 어려운 시기에 취직했다고 그렇게 자랑스러워하시던 당신이셨다. 그런 아들의 전화 한 통화에 바쁜 업무를 내치시고 새 김치를 담그셔서 한걸음에 달려오시는 어머니시다. 당신께서는 차에 오르신 후에도, 연신 차창 밖으로 아들을 보고 빨리 집으로 올라가라면서 손짓을 하신다. 나는 어머니가 탄 차가 동네 어귀를 지날 때까지 움직일 수가 없었다. 골목을 꺾어 차가 사라진 후에야 집으로 천천히 올라왔다.
 
30여분 정도 후에 전화가 울렸다. 어머니셨다.
"내가 정신이 없어서 깜빡했는데, 김치 그거 담은 지 얼마 안돼서 맛이 아직 덜 들었을 거다. 그러니까, 오늘 밤에는 냉장고 밖에 꺼내 놔라. 알았제? 꺼내 놓고, 내일 아침에 냉장고 안에 넣어 놔라. 안 그라면, 맛 안 들어서 파이다. 아침에 출근할 때 냉장고에 넣는 거 까먹지 말고."
"예. 그렇게 할게요"
"그라면, 우리는 잘 갈테니, 걱정 말고 잘 자거라! 끊는다."
 
따알, 까...악... 어머니께 몇 마디 말, 몇 마디 당부의 말을 더 하고 싶었지만, 어머니는 그 마저 용납치 않고 전화를 끊으셨다. 
돌이켜 생각해 보니 예전이나 지금이나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은 서울로 유학을 떠나고, 대구에서 첫 직장 생활을 하고, 지금은 또 머나먼 타국인 인도네시아로 발령 나와 직장생활을 하면서 참 오래도 어머니께 걱정을 쌓아드리는 불효막심한 아들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제 어머니는 머리 위로 하얗게 서리가 내린 칠순의 노인네가 되셨다. 멀리 타국 땅에서 오늘따라 어머니가 간절히 그립고, 또 어머니의 김치가 무척 그리운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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