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2)‘습관’에 대한 명상 /서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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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산책 작성자 편집부 작성일 2021-06-11 19:05 조회 14,602 댓글 0본문
< 수필산책 162 >
‘습관’에 대한 명상
서미숙 / 수필가, 시인 (한국문협 인니지부 회장)
내방의 커다란 창가에 포근한 아침 햇살이 방안 깊숙이 들어온다. 새롭게 하루를 맞는 기분이 신선하고 새롭다. 특히 베란다를 통해 올려다보는 높고 푸른 하늘은 온 사방과 마음까지 싱그럽게 한다. 맑고 찬란한 아침시간을 온전히 즐기고 싶어 야행성인 내가 어느 날부터 아침 일찍 일어나게 되었다. 그러나 수 년 동안 묵은 습관이 어떻게 하루아침에 바뀌겠는가. 아무리 마음을 단단히 먹어도 잘 안 되는 것들도 있어서 처음에는 알람시계를 요란하게 맞춰놓고 5분 간격으로 소리가 울리게 해야 겨우 일어났다. 그것도 모자라 컴퓨터 음악을 아침 6시에 자동으로 켜지도록 했다. 일부러 볼륨을 높여놓아서 켜지는 즉시 끄지 않으면 귀가 시끄러워서 저절로 잠이 깨었다. 무엇보다도 사람은 수면이 모자라면 아침 일찍 일어나기 싫은 법이다. 그래서 늦어도 새벽 1시전에는 잠자리에 들려고 노력했다. ‘시간의 아침은 오늘을 밝히지만 마음의 아침은 내일을 밝힌다.’ 는 어느 명사의 말이 아니더라도 맑은 마음으로 아침을 맞이하고픈 염원은 누구나 같을 것이다. 몇 년 전부터 한국 문학지에 수필 연재를 시작하고서부터 밤늦게까지 쓰고 늦게 일어나는 올빼미 생활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싱그러운 아침햇살이 나의 새벽을 깨우기를 몇 달째, 지금은 어느 정도 몸에 베어가고 있다. 덕분에 한 달에 서너 매체 연재를 하려면 밥 먹듯이 밤을 새우던 예전과는 달리 최근에는 밤을 새우는 일은 되도록 자제하는 편이다. 참 이상한 일은 어쩌다 바쁜 원고로 간혹 늦게 자게 되는 날도 아침 일찍 일어나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걸 보면 근래에 내가 일찍 일어나는 것은 ‘몸의 습관’이 아니라 아침햇살과 나와의 ‘관계의 습관’이 새롭게 형성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어떤 일이든 맨 처음을 어떻게 시작했느냐에 따라 설정되는 관계의 틀과 거기서 파생되는 타성내지는 습관이 그런 것이다. 내가 컴퓨터 앞에서 잘못된 자세인지도 모르고 오랜 기간 앉아있었던 습관도 그렇다. 내 책상에서 사용하는 노트북과 내 눈과의 위치가 정면이 아닌 아래로 내려다보는 거북 목 자세였던 것이다. 그러니 나도 모르게 어깨가 구부러진 채로 글을 쓰고 무리한 작업을 병행했으니 결국은 ‘목 디스크’ 라는 사단이 났던 것이다. 몸으로 잘못된 습관은 신체적인 이상을 가져와 수술 또는 재활치료로 엄청난 대가를 치르게 된다는 것을 지독한 통증으로 병원을 다니면서 몸소 체험했다.
또 다른 나의 고질적 습관은 아침식사 습관이다. 젊어서부터 원래 아침을 굶는 편이었는데 최근 약을 먹기 위해서 조금이라도 아침을 먹어야 하는 일은 나에게 여간 고역스러운 일이 아니다. 이렇게 개별적으로 무심히 형성된 ‘관계의 습관’이라는 것이 신기하다. 어떻게 보면 세 살 적 버릇이 여든까지 간다는 우리속담이 딱 맞는 것 같다. 어떤 사람의 뿌리 깊은 버릇도 상황과 사람 사이에 설정한 관계에 의해 완전히 다르게 변할 수는 있다. 하지만 몸의 버릇이든 관계의 버릇이든 그 버릇 역시 세 살 적 초기부터 바로잡지 않으면 무의식중에 평생 습관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러니 무엇이든 처음 시작할 때가 중요하다. 지금껏 살면서 ‘난 이런 거 안 해’ ‘ 난 그런 거는 못해’ 생각했던 것도 전혀 다른 환경이 주어지면 아주 새롭게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요즘은 나에게 새로운 희망이 생겼다. 오랫동안 내 건강의 적신호였던 불치병, 적어도 난치병이라고 스스로 여겼던 불면증(수면장애)이 이제는 약의 도움 없이도 아침햇살과 만나는 초기관계 재설정으로 서서히 고쳐지고 있으니 말이다. 습관이란 것이 참으로 중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밤에 일찍 잠이 오고 아침마다 벌떡 깨어지는 것이 신기하기 짝이 없다.
또 하나는 시도 때도 없이 컴퓨터 앞에서 먹을 것을 찾는 고질적인 습관이다. 밤에 글을 쓰면서 간식을 그렇게 즐겼으니 예년보다 살이 찌는 건 당연한 이치 아니었을까. 이런 식으로 하나씩 나쁜 습관도 고칠 수 있다는 희망의 싹을 볼 수 있어서 즐겁기도 하다. 어떤 일이든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 좋은 틀을 짠다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어디 일뿐이겠는가. 새로운 만남, 새로운 장소, 새로운 여행, 새로운 취미, 그 어떤 것이라도 처음 시작할 때 우리에게 새로운 관계를 맺을 기회를 준다. 그리고 그 관계 속에서 우리는 어쩌면 전혀 다른 사람으로 새롭게 설정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컴퓨터 포맷을 새로 한 것처럼 기분이 좋아진다. 중요한 파일을 날려버리지 않았다는 안도감 같은 다행스러운 기분이랄까. 오늘도 나는 좋은 습관 형성을 위하여 글을 쓰면서 클래식 명곡을 틀어 놓는다. 다소 혼란스럽고 감성 집중도 잘 안 되기는 하지만 일단 그런들 어떻고 저런들 어떠랴. 귀가 즐거우니 마음에서 흥이 절로 생기는 현재를 즐길 뿐이다.
우리의 삶 속에서 일상을 돌아보면 때로는 잘못된 습관을 갖기도 하고 그로 인해 실수도 하게 된다. 하지만 존재의 차원에서 보면 당시로서는 그것이 최선의 선택이었고 앞으로 나가기 위한 발돋음 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스스로 긍정의 자아를 형성하는 습관도 중요할 것 같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만약에, 내가 그때 그랬더라면, 내가 좀 더 잘했더라면, 하는 후회의 과정은 또 다른 부정을 낳고 자존감을 상실하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 곁으로 또 다시 새로운 순환의 계절이 찾아온다. ‘코로나 19’ 로 힘들었고 우울한 시간들을 뒤로하고 백신의 공급으로 희망의 시대를 평온한 마음으로 맞이하고 싶다. 마음으로 느껴도 좋고 육안으로 바라봐도 좋을 찬란한 계절의 의미를 더하고 싶다. 새롭게 느껴지는 바람소리, 새소리, 새롭게 떠오르는 태양! 이처럼 우리에게는 자연이 주는 무한한 혜택으로 자신의 습관을 좋은 방향으로 바꿀 수 있는 날들이 아직도 많이 남아있다는 사실, 이 또한 얼마나 기쁘고 행복한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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