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8) 진시황이 되다 / 이태복 > 한국문인협회 인니 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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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8) 진시황이 되다 / 이태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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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산책 작성자 편집부 작성일 2021-07-23 10:01 조회 10,597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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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산책 168>
진시황이 되다
 
이태복 / 시인 (한국문협 인니지부 회원)
 
무슨 꿈인지 요란했지만 깨어보니 기억도 안 나는 꿈을 꾸다가 불편한 잠자리를 옮기려 팬티 바람에 2층 조글로에 갔다. 새벽녘 어스름에 쏟아질듯 빛나는 하늘의 무수한 별들이 걸음을 멈추게 해 테라스 의자에 앉아 주제 없는 시를 쓰고 싶은 충동을 일으킨다. 꿈에서처럼 내가 무슨 진시황이라도 되는 양 요사이 하룻밤에 세 번씩 잠이 깨어 방을 옮겨 다니는 버릇이 생겼다. 새벽 4시에 세 번 째 잠자리를 옮기다가 별들을 발견했다. 어제도 있었고 그제도 있었던 별들이건만 앞 만보고 살다가 앞길이 막히니 한숨으로 땅만 꺼지게 했기에 밤하늘의 별들은 새로움의 환희였다.
 
좀스러운 생각으로 고개 숙였던 하루하루가 부끄럽다. 눈을 들어 하늘을 보니 위안이 느껴지는 희망의 빛들에서 오는 것임을 깨닫는다. 쭈그린 가슴을 펴고 하늘로 부터 오는 소망에서 기쁨을 찾자. 코로나로 모든 것을 홀딱 벗긴 근황처럼 전라나 다름없이 목 의자에 앉아 별을 보자니 희망의 시를 쓰고 싶은 충동이 뜨겁다. 하지만 적도의 7월은 태양이 북반구로 가버려 고산지대의 날씨는 마치 겨울 같다. 시를 쓰고픈 가슴은 뜨겁고 팔짱을 껴도 오돌오돌 떨리는 날씨에 시고 뭐고 후다닥 방으로 들어가 옥돌 전기장판을 켰더니 전기장판 조절기 온도계가 영상 6도를 가리킨다. 체감온도는 영하다.
 
 
삼류시인이 새벽 밤의 별 시를 즐긴다고 고상한척 하다가 적도의 추위를 가볍게 본 자신이 우스웠다. 겉멋이 아닌 마음의 별을 노래한다. 지난 한 달 날씨도 추운데 마음은 더 떨리고 움츠려 들었다. 악마 같은 인도 발 델타변이 코로나의 마수가 이곳 오지까지 뻗쳤기 때문이다. 기가 쇠할 줄도 모르는 질긴 놈이다. 델타변이는 동맥 같은 도시를 지나 산간마을, 실핏줄같이 작고 꼬불꼬불한 산길을 헤집고 산머리까지 올라 왔다. 담장도 없는 마을을 배회하며 독사처럼 혀를 날름거리고 뚫린 구멍이 있나 눈에 불을 켜고 있다. 담장 없이 사는 마을, 대문도 없고 방문도 없는 리마산(전통가옥)의 그나마 문이라고 하나있는 현관문에 빗장을 걸게 했다.
 
사람들이 “농끄롱 농끄롱” 정을 나누며 모이던 밤마실도 멈추니 적막강산이다. 세상이 떨떠름 할 때 찾아가 힐링을 하던 곳이 그리워 마스크를 쓰고 리마산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하늘아래 첫 동네 아두만 마을을 찾았다. 코로나인지도 모르겠다. 한 달 전부터 열이 38도까지 오르고 오한이 들어 코로나 일까, 내심 두려웠다. 병원가기가 꺼림찍 해서 평소 주치의처럼 주기적으로 오는 의사를 불렀더니 ‘드맘 부르다라(뎅기열 일종)’라니 안심하란다. 시절이 하 수상해 의사말도 못 미더워 코로나 아닌 것이 확실하냐고 다시 물었더니 "Tenang tenang aja,맘 편히 생각해" 하길래 아무렴 4년 내 몸을 지켜온 주치의인데 의사의 말처럼 편하게 생각하기로 했다.
 
 
자신에게 묻는다. '못 믿어? 그럼 코로나라면 어쩔 건데? 코로나면 약이 있어?'라며 되묻는다. 열 때문에 주사는 안 되고 약만 주었다. 이튿날 아침 체크해보니 열이 정상으로 돌아왔다. 이틀 동안 링거를 맞았다. 혹시 몰라 링거에 비타민도 쏟아 붓고 관련이 있는 약들을 다 쓰라 했더니 역시 "Tenang tenang~의사가 다시 웃는다.
 
온몸의 저림과 오한은 가셨지만 체력이 바닥나 핸드폰 밧데리처럼 방전되어 의욕이 없고 전화 받을 기력도 없다. 마음은 나락에 떨어져 세상 귀찮아 죽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죽을힘도 없다. 헬퍼 아줌마 이브나니와 연구원 집사 빠 핸디가 새끼제비 주둥이에 먹이 넣듯 무언가 부지런히 입에 넣어 주었다. 새삼 이웃의 고마움을 깨닫는다. 연구원에 오고가는 사람들이 귀찮다. 아니 세상이 그렇게 만들었다.
 
세상만사 부질없어 별세계를 찾기로 했다. 세상이 싫을 때 종종 찾아가는 머르바부 산 하늘아래 첫 동네 아두만 마을을 찾았다. 어떤 날은 마을 아래 운해가 펼쳐지는 마을이다. 예전 같으면 아무집이나 쑥쑥 들어가 민박을 하기도 했지만 시절이 시절 인만큼 멀찌감치 바람이니 쐬고 오려고 마스크를 쓰고 마을 입구에 내렸더니 "코로나 왔다~" 하면서 아이들이 도망을 한다. 그네들은 마스크도 안 썼으면서 우주인처럼 마스크에 중무장한 나를 보고 외계인이 나타난 듯 우루루 달아났다.
 
'아이쿠 잘못 왔구나' 차를 돌렸다. 사실 연구원도 손님 방문을 거절한지 한 달째, 나 홀로 집에 혼 밥이다. 어젯밤도 초저녁부터 꽤 쌀쌀해서 오후에 반죽해 놓은 빵도 구울 겸 이글루 화덕에 불을 지폈더니 땀이나고 나른해서 조글로의 바띡 방이라 이름붙인 방에서 마무리중인 소설을 끄적거리자니 추위를 견딜 수 없어 단열이 잘된 별관 드위치 판넬 건물로 가서 곤히 잠이 들었다. 새벽 3시 반 머스짓 아잔 소리에 잠이 깼다. 아잔 소리는 내게 예배당 종소리처럼 깨워 주어 새벽 기도를 하게한다. 아직 이른 새벽이다. 다시 누워도 잠이 오지 않는다.
 
 
샌드위치로 지은 별관의 방은 단열은 잘 되지만 밤낮 구분이 눈을 뜨면 조글로 이동 한다. 아침을 맞는 방은 2층 조글로의 입구에 있는 밤 부름이다. 밤 부름은 동향이라 창문으로 내다보이는 풍경이 온통 숲이다. 이른 새벽 검은 숲의 가중 나무. 만디, 낭까, 대나무 등 잡목이 검비취색 하늘과 실루엣이 되어 신비롭다. 서서히 떠오르는 찬란한 태양은 무수히 빛나는 밤하늘의 별을 지우며 드디어 적도의 화려한 빛깔로 찬란한 아침 풍경을 그려간다. 내가 방을 바꾸는 이유다. 오늘 따라 어젯밤 별관 방으로 옮기면서 조글로 등을 모두 껐더니 무수한 별들이 향연을 벌였다. 수많은 LED등으로 조글로 까페의 로맨틱한 부위기를 자신스스로 연출했던 조명에 취해 하나님이 창조한 수 만 배 아름다운 밤하늘의 자연 LED를 못보고 살았다. 하나님의 별빛은 화려하지는 않지만 마음에 밝혀져 반짝이고 있다.
 
오늘따라 한동안 어두웠던 마음에 희망의 별빛이 반짝이고 있다. 불이 꺼지고 어둠이 짙어야 별빛이 반짝이듯 세상욕심의 불이 꺼져야 마음에 천국의 빛이 반짝인다. 돌아보면 부족한 게 없었다. 힘들었다면 욕심으로 저지른 고통의 열매가 쓰디썼고 높아진 마음만큼 세상 것이 높이에 따라와 주지 못해 불만이었다. 이아침 별빛 반짝이는 하늘을 품에 안으니 세상을 다가진 듯 행복하다.
 
진시황보다 내가 부자다. 무수한 적들 때문에 방을 옮겨 다니지 않아도 되고 나의 장수를 위해 불로초 대신 사람들의 마음에 별이 되는 시를 찾아 그 시가 사람들 마음속에 장수를 기원하니 하나님은 초라한 시인에게 진시황의 불로초로 장수하는 귀한 시를 짓게 하신다. 지금은 약방의 감초 같은 시를 쓰나 내게는 사람들의 마음을 젊게 하고 새롭게 하는 보약 같은 시를 주시리라는 희망을 가져본다.
 
세상이 모두 힘든 시기다. 숙인 고개로 내쉬는 한숨에 땅이 꺼질듯하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 코로나로 어두워진 세상, 앞만 보고 달리다가 장애물에 너무 오래 멈추어 있다. 갇혀있던 내 자신의 방도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하늘을 보자. 나는 잠깐이지만 불로초를 구하는 진시황이 되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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