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5) 새끼고양이 집 떠나던 날 / 하연수 > 한국문인협회 인니 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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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5) 새끼고양이 집 떠나던 날 / 하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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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산책 작성자 편집부 작성일 2021-09-10 09:43 조회 14,93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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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산책 175>
 
새끼고양이 집 떠나던 날
 
하연수 / 수필가 (한국문협 인니지부 감사)
 
 
야생 고양이들이나 버려진 고양이들이 우리 집 현관에 와서 밥을 먹고 간다. 가끔 새끼를 밴 고양이들도 찾아온다. 그러다 우리 집 어느 공간에 자리를 만들어주면 새끼를 낳고 산다. 이렇게 태어난 고양이들의 소문을 듣고 사람들이 와서 입양해 간다.
 
무료로 입양해 가면서도 꼭 외모가 좋은 순으로 데려 가려한다. 외모가 떨어지는 새끼고양이 삿(Sat)은 아무도 관심을 주지 않았다. 외모가 떨어지면 인간뿐만 아니라 고양이도 불이익을 받고 살아야 하는 모양이다. 우리부부는 삿의 입양을 거의 포기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녀석을 입양해 가겠다는 사람이 나타났다. 그 중년 여인이 며칠 전 우리 집 앞에서 이 녀석을 보았다고 했다. 그렇다면 이 녀석이 외모가 좀 떨어지는 줄 이미 알고 있다는 뜻이다. 이 사실을 알면서도 일요일 오후에 삿을 입양해 가겠다는 그 사람이 무척 궁금했다.
 
전쟁 후 한국에서 많은 고아들을 입양해 갔다는 서양인들의 마음을 보는 듯하다. 아무나가 아닌, 생명을 사랑하는 성숙한 사람들만 할 수 있는 일이지 싶다. 그날부터 아내는 이 녀석 입양 보낼 준비에 분주했다. 목욕을 시키고, 빗질도 정성스럽게 해 주었다. 이 녀석이 좋아하는 통조림 생선 특식도 만들어 주었다. 그 여인의 심성이 추측만 해도 기분이 좋아졌다. 측은지심으로 삿을 거두어 주는 여인, 잘 익은 포도주 향이 나는 마음을 가진 여인일 것이다. 우리 부부는 있는 말 없는 말 다 동원해서 그 부인을 멋지게 포장해 주었다. 우리의 이런 고민을 알 수 없는 삿은 내 다리에 머리를 박고 스킨십을 퍼 붙는다.
 
 
토요일 늦은 오후, 집 주변에서 놀고 있을 삿을 불렀다. 평상시 겁이 많아 멀리 가지 않는 그 녀석이 보이지 않았다. 날이 어둑해 질 무렵 우리 부부는 그 녀석을 찾아 골목을 돌아 다녔다. 삿을 부르는 소리로 골목골목 어둠의 문을 두드렸다. 시간이 지날수록 머리 위에는 하늘이 눈 비 맞은 솜이불 같이 점점 무겁게 덮이고 있었다. 결국 경비실에 가서 그 녀석을 찾아달라고 부탁을 한 후 집으로 돌아왔다.
 
늦은 밤 경비실로부터 연락을 받고 삼 번가 골목 끝집 차고로 갔다. 파르스름한 가로등 불빛이 하얀 페인트 입힌 철문에 내리고 있었다. 두꺼운 차고 문사이 작은 틈새로 안을 살펴보았다. 그곳에는 불빛도 인기척도 없었다. 혹시나 하고 삿 하고 이름을 부르자 안으로부터 부스럭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낑낑거리는 소리와 함께 차고 문 틈 사이로 도톰한 앞발 두 개가 나와 움직였다. 그것은 마치 여기 삿이 갇혀있어요 라는 구조요청 신호 같아보였다. 차고 문을 열어 주어야 할 그 집 주인이 토요일 외출 나간 후 아직 돌아오지를 않았다. 우리는 두 발을 뒤로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자정 무렵 그 집 주인이 와서 차고 문을 열자 그 녀석이 우리 집으로 달려왔다. 도우미 야니는 한참 모자라는 놈이 가지가지 한다며 손가락으로 삿의 머리를 톡톡 쳐 주었다.
 
사실 삿이 태어나기 훨씬 이전부터 우리 집에는 고양이들이 많이 살았다. 그 중 많이 입양 되어 떠났다. 2층 뒤 베란다에 있었던 그 여섯 마리 새끼 고양이들도 차례로 입양을 떠났다. 삿이 태어나기 열흘 전 쯤 입양 떠난 콧수염 꾸미스가 마지막 새끼고양이였다. 꾸미스를 보내고 우리 부부는 더 이상 고양이들을 들이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우리는 모처럼 찾아 온 여유를 즐기고 있었다. 그런데 우리 팔자에는 그런 여유가 없었던 모양이었다. 난데없이 새끼를 밴 어린 고양이가 현관 앞에 나타났던 것이었다.
 
여섯 마리 새끼들 뒤치다꺼리한다고 혼이 났던 야니에게 새로운 고양이가 나타난 것이 반가울리 없었다. 그래서 야니는 이 야생 고양이를 쫓아버렸다. 그렇게 쫓겨났던 고양이가 다음 날 오전 현관 앞에 다시 나타났다. 야니는 빗자루를 휘두르고 소리를 질러 고양이를 쫓았다. 놀란 고양이는 무거운 배에 짓눌리는 가느다란 다리를 뒤뚱거리며 화단 아래로 물러갔다. 그런 야니의 모습을 보고 나는 잘한다고 말없는 박수를 보내고 있었다. 아직 남아 있는 거실 터줏대감 비마가 깔아놓은 오줌 지뢰를 자주 밟는 나로서는 당연한 응원이다.
 
그렇게 쫓겨났던 야생 고양이가 끈질기게도 그날 늦은 오후 현관 앞에 다시 보였다. 아마 새끼 낳을 장소로 찾아 놓은 장소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다시 돌아왔던 모양이었다. 이 짐승이 자신을 우습게 여기느냐며 빗자루를 들고 나서는 야니를 아내가 보고 나무랐다. 비가 이렇게 쏟아지는데 새끼 낳을 장소도 찾지 못한 것 같으니 쫓지 말고 그냥 두라고 했다.
 
다음 날 이른 아침, 야니의 숨넘어가는 소리에 벌떡 일어났다. 현관으로 내려가서 문을 열었다. 먼저 내려 온 아내가 아이빈 잎 아래를 이리저리 유심히 살펴보고 있었다. 어미 고양이가 새끼 일곱을 낳았다. 마지막으로 나온 녀석이 바로 삿이다. 이틀 후 바닥이 축축한 것 같아서 판자를 깔고 지붕도 수리해 주었다. 이틀 후 아침에 보니 어미 고양이 스와띠는 새끼들을 데리고 이사를 가 버리고 없었다. 이것이 스와띠의 의심 병에 불을 붙이게 된 것일까? 아니면 새끼 낳은 고양이를 새 장소로 옮겨가는 고양이의 본성 때문이었을까? 스와띠는 자신을 돌봐 준 사람의 노력을 배반으로 돌려주었다. 그러나 이 배반으로 우리는 그렇게 바랐던 여유를 찾게 되었다는 생각도 들었다.
 
야니가 고양이 새끼들이 있다고 알려 준 곳으로 가 보았다. 옮겨 놓은 곳이 바로 일 번가 끝 공터 건축자재 더미 아래였다. 내가 힘들게 만들어 준 좋은 집은 놔두고 새끼들을 데리고 비까지 새는 이런 장소로 이사를 했다. 환경이 더 나쁜 곳으로 옮기는 그 고양이의 어리석음이 가슴에 찡하게 밀려왔다.
 
이 배은망덕한 녀석 고생 좀 하라고 돌아서 왔다. 며칠 후 스와띠가 새끼들을 데리고 현관 앞 원래 자리로 다시 돌아왔다. 그런데 새끼가 일곱 마리가 아니고 여섯 마리뿐이었다. 어디서 한 마리를 잃어버리고 온 모양이었다. 새끼들이 일곱 마리에서 여섯 마리로 줄어들었다. 그래서 막내 새끼 이름을 여섯 의미의 삿(Sat)으로 붙여주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미 고양이 스와띠가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혹시 중성화 수술하는 동물의료 시설로 잡혀 간 것은 아닐까 생각도 들었지만 알 수가 없었다. 스와띠 새끼들을 화단 집에 그냥 둘 수 없어 차고 안으로 모두 옮겼다. 반년이 지나면서 입양이 시작되어 떠나고 경쟁력이 떨어지는 삿만 오래 남게 되었다.
 
일요일 오후, 꽃무늬 원피스를 입은 중년 여인이 왔다. 아내는 삿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외모는 이래도 정이 많아서 사람을 좋아하고, 밥을 주면 고맙다는 스킨십도 잘 하고, 말도 잘 듣는다고 자랑을 늘어놓았다. 중년 여인은 웃으며 “까짓 외모 부족정도는 몇 가지 장점만으로도 가려지지요.” 라며 삿의 머리를 긁어 주었다. 아내는 녀석을 여인이 들고 온 베이지 색 케이지에 넣고 오토바이 안장 뒤에 올려주었다. 여인은 까만 플라스틱 줄로 고정시키고는 오토바이 시동을 걸었다. 오토바이가 천천히 멀어져갔다. 자신이 못난 줄 몰라서 행복한 삿이 집을 떠났다. 아내는 오토바이가 사라져간 길을 향해 한참동안 손을 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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