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물구나무 선 김치냉장고/ 전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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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산책 작성자 편집부 작성일 2022-03-11 10:49 조회 15,018 댓글 0본문
<수필산책 201>
물구나무 선 김치냉장고
전현진 / 한국문협 인니지부 회원
인도네시아에서 이사를 하기로 했다. 이삿짐 견적을 위해 담당자가 집을 다녀간 다음 날 연락이 왔다. “견적 나왔습니다. 이사는 이틀 동안 진행됩니다.” “네? 이틀이요? 왜요?” “차가 막히면 짐이 그날에 다 들어갈 수가 없거든요.” ‘빨리빨리’의 왕국에선 생각해보지 않은 일이 아무렇지 않게 튀어나왔다.
50km 남짓을 이동하는데 우리는 이틀을 소비해야 했다. 이고 지고 온 짐이 많으냐 물으니, 그건 아니란다. 그럼 몇 명이 작업하느냐 물으니 아홉이나 열 명이 움직일 것이란다. 아저씨 3명에 아줌마 1명으로 구성된 한국의 포장이사를 떠올리니 헛웃음이 나올 뿐이었다. 그러나 아파트에서 이삿짐이 이동할 수 있는 시간이 정해져 있어 어쩔 수 없다는 말에 내가 딱히 내놓을 대꾸도 없었다. 세계에서 손꼽는 이곳의 교통 체증이 더해지면 짐은 길 위에서 마냥 늘어질 것이었다. 우기철이라 중간에 스콜이 쏟아지기라도 한다면 시간은 더욱 지체될 것이었다. ‘아, 그런데 짐을 다 빼고 나면, 우리는 어디서 자나요?’라는 혼잣말 같은 질문에 상대는 어색한 웃음을 흘리며 전화를 닫았다.
이사는 9시부터 시작되었다. 뚜껑 달린 트럭이 집 앞에 묵직하게 들어섰다. 뒤이어 칸막이가 높이 솟은 트럭들도 자리를 잡았다. 하나, 둘, 셋, 넷... 열 명인지 더 많은지 모를 장정들이 방과 거실, 부엌으로 나뉘었다. 우리의 세간살이들이 비닐랩에 말리고, 완충재로 감싸이고, 상자에 넣어졌다. 크기가 들쑥날쑥한 것들은 바로 종이로 집이 만들어졌고, 가득 찬 상자는 번호와 이름표를 앞세워 트럭으로 갈 차림을 했다.
자리를 들썩인 책장은 뒤에 시꺼먼 곰팡이를 감추고 있다가 호되게 벅벅 닦이고서야 트럭 앞에 설 수 있었다. 며칠 전부터 양식을 다 내어주고 한껏 풀이 죽었던, 냉기를 잃은 냉장고도 길 떠날 채비를 마쳤다. 배추김치, 총각김치, 깍두기와 쌀, 멸치, 진미채 등 최애 건어물들이 담긴 김치냉장고는 안의 것들을 모두 끌어안고 그대로 이동하기로 했다. 큰 가구나 기기들은 랩으로 칭칭 감고, 뽁뽁이로 중무장한 후에 트럭으로 입장했다. 정성껏 포장하는 인부들의 모습에 이틀 치 인건비가 아깝지만은 않았다.
휴게 시간 동안 점심을 먹고 오후 작업이 시작되었다. 하나씩 비워진 자리에 추억들이 몽글몽글 떠올랐다. 인도네시아 집주인의 취향대로 고풍스럽게 꾸며졌던 인테리어를 손으로 쓸며 덕분에 따뜻했노라 감사했다. 한국에서 달마다 손님들이 올 거라 여기고 이름 붙였던 손님방은 근 2년 동안 사흘인지, 나흘인지 딱 한 번 객을 맞았었다. 어린 아들 둘을 데리고 인도네시아에 첫발을 들이던 딸이 염려되어 함께 오셨던 친정엄마셨다.
우리는 그 방을 ‘할머니 방’이라 불렀다. 코로나로 비자에 빗장이 걸리며 손님이 올 수 없었던 손님방에서 나는 엄마 냄새를 맡았다. 닷새가 채 되지 않는 시간이었지만, 아이들의 ‘할머니 방’에 엄마 냄새가 있어 나는 그리움을 달랠 수 있었다.
그렇게 잘 살다 간다고, 오후 4시, 모든 짐이 트럭에 실려 떠나갈 때, 나는 다시 한번 고마웠노라 인사했다. 이튿날, 짐 풀기가 시작됐다. 우리는 전날 새집에 들어와 하루를 먼저 시작했다. 침대 없는 임시 잠자리는 어깨뼈와 허리뼈가 어디까지 아플 수 있는지 내기라도 한 듯 불편했다. 어서 짐이 들어와 제자리를 찾아야 오늘 밤 편히 잘 수 있겠다는 의지가 불타올랐다.
현관에 모였던 상자가 표시된 순서대로 퍼져나갔다. 이것은 이쪽에, 저것은 저쪽에, 그것은 그쪽에. 그러다가 엉키기 시작했다. 이것이 그쪽으로, 저것이 이쪽으로, 그것이 저쪽으로 가더니 엉거주춤 앉는 것이었다. ‘그래, 어차피 내가 한 번 싹 정리해야지. 방에만 갖다 놓아도 그게 어디야. 이 정도면 됐어.’ 나는 긍정의 마음으로 늘어지는 시간을 잡고 있었다. “어? 어! 어?” 그때 대인 같은 마음에 찬물 한 바가지가 끼얹어졌다. 포장으로 한껏 갑옷을 해 입은 김치냉장고가 물구나무를 선 채 들어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니, 왜?’ 순간 말문이 막혔다. ‘인도네시아 말로 뒤집혔다는 게 뭐였더라? 아이고, 기껏 잘 포장해놓고 왜 뒤집어서 들고 들어오는 거야?’ 인부가 매고 들어오는 김치냉장고를 보고 옆에 있던 팀장이 나보다 더 놀랐다.
한국 사람을 많이 상대해 본 터라, 팀장은 알았던 것이다. 그러면 안된다고. 팀장이 휴지를 얼른 들어 질금질금 흘러나오는 주황 물을 황급히 닦아냈다. 언제부터였을까, 김치냉장고 네가 물구나무를 섰던 것은. 네 안의 김치들과 건어물들이 바닥이 아닌 뚜껑에 닿아 있던 시간은 언제부터였던 거니? 김치냉장고, 너는 괜찮니? 나의 간장 종지 같은 소인배 마음에 김칫국물이 들어 전날 밤 딱딱한 바닥에 눌렸던 허리뼈까지 들고 일어났다. 일단 기다렸다가 김치냉장고 상태가 영 나아지지 않는다면, 나의 거센 폭풍을 받아들여야 할 것이었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고, 전원을 켰다. 씩씩대던 나와는 달리 얌전히 불이 들어왔다. 위이잉하는 방금 깨어난 전자제품의 기지개 소리가 났다. 앙칼지게 올라갔던 내 입꼬리가 다소 진정이 되었다가 한 귀퉁이 남은 주황 물 자국에 다시 그르렁거렸다. 며칠 지켜보고 문제가 있으면 다시 연락하기로 하고, 해가 지기 전, 이틀 동안의 이사가 마무리되었다.
며칠 지나 중요 물품을 따로 챙겨두었던 가방을 풀었다. 십여 년 넘게 나를 따라다니던 뭉텅이 약봉지가 둘둘 감겨 나왔다. 약이 손 가까이 없으면 세상 뒤집힐 것처럼 불안했던 게 얼마 전인데 까맣게 잊고 있었다. 벌벌 떨었던 것이 무색하게 새 침대에선 그저 잠이 꿀처럼 달았다.
툭, 약봉지를 서랍에 넣고 부엌으로 나왔다. 어느새 햇살이 창을 넘어 집 안 깊숙이 들어와 있었다. 뭉그적거리던 물건들이 각자의 자리를 찾아 반짝였다. 윙-. 김치냉장고도 새 자리에서 햇살과 속살거리고 있었다. 아마도 물구나무섰던 제 무용담을 얘기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사연 많던 이사가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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