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4) 가난의 풍경 /이병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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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산책 작성자 편집부 작성일 2022-10-02 00:02 조회 7,367 댓글 0본문
가난의 풍경
이병규(한국문협 인니지부 회원)
짝수 날의 출근길은
자카르타 뿌삿(Pusat)의 좁디좁은 골목길로 길고 긴 항해다
암초 같은 오토바이들을 지나고 거친 와룽들의 파도를 넘는 길은
온갖 삶의 풍경들로 꽉 채운 삶의 현장이다
빈틈도 없을 것 같은 풍경 사이로 작은 그림자 하나가 삐쳐 나왔다
멈춰선 차들의 그림자를 밝고 선 차창 너머의 작은 그림자
삶이란 무게 딱 그만큼 휘어진 허리로
지푸라기 망태기를 걸친 엄마와 제멋대로 반대로 넘어가 가까스로 매달린 아이
깊은 삶이란 늪에서 살려달라고, 살려달라고
빠져나올 희망이라고는 없어 보이는 공허한 눈빛으로 창을 두드린다
어느새 가난은 삶이 되었고
짧게 내 뱉는 기도로는 절대 벗어나지 못할 깊은 구렁텅이 속에서
낯선 이의 한 푼 도움 말고는 기댈 곳이 없는 엄마의 손은
힘없이 힘없이 창을 두드린다
짧은 정체가 풀리면서 기사는 기계적으로 차량을 앞으로 들이밀고
급하게 몇 푼, 그들의 손에 떨궈준 나는
그 몇 푼의 도움에도 여전히 남아 있는 가난의 풍경을 돌아본다
짧은 순간, 그들에게 한 끼의 삶을 이어준
구원자와 같았던 나였을 터
하지만, 내가 그들에게 주었던 것은 무엇인가
단순한 한 푼의 동전인지
가난의 굴레를 또 한 번 잇게 하는 저렴한 동정이었던 것인지
나의 구원에도 그 허리는 그대로 구부러져 있고 넘어간 아이는 되돌아오지 않는다
그들의 하루는 어제만큼이나 힘들 것이다
자카르타 도심의 가난의 풍경을 뒤로, 나는 일상으로 스며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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