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회 적도문학상/ 수필부문 우수상] 계절의 여왕 /장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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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산책 작성자 편집부 작성일 2023-07-01 23:01 조회 925 댓글 0본문
계절의 여왕, 5월
장소연
이렇게 5월이 오기를 기다렸던 적이 있었을까? 부모님의 결혼기념일과 그 결과로서 세상에 나왔을 나의 생일과 어린이날과 어버이날이 공존하는 아름다운 봄의 계절이 어렸을 적의 나의 생일은 어린이날과 내 생일 하루 전에 있는 큰아버지의 생신 날 사이에 껴있는 덕분에 따로 생일상도 선물도 받지 못했던 기억이 난다.
아마도 어린이 날 선물은 따로 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어린 마음에 일 년에 두세 번(어린이 날, 생일 날, 크리스마스이브)선물 받는 기분을 챙기는 건 중요했다고 본다. 큰아버지의 생신날에는 할머니 댁에서 큰 잔치를 했을 것이다. 고기를 좋아하는 집안답게 불고기도 갈비도 생선도 가득 굽는 그런 날이었을 것이다.
어린 시절로부터 점점 멀어지면서 나이를 먹어가니까, 자꾸 어린 시절 맛있게 먹었던 음식들이 생각난다. 그리고 그 음식을 함께 먹으며 웃고 즐거워했던 친척 언니 오빠들, 지금은 돌아가시고 안 계신 할아버지 할머니, 큰아버지, 그러고 나서는 사이가 소원해져서 더 이상은 만나지 않는 몇 명의 사람들이 생각난다. 혼자서 해외에 나와서 살기를 십여 년째, 한국 음식에 대한 애정과 집착은 사그라지지 않는데 아마 그 음식들을 보면서 곱씹어 보는 어린 날의 기억 때문일 것이라 생각한다.
어디선가 들었는데 나이 서른이 넘으면 그 이전에 먹었던 음식들의 맛을 기억해서 음식을 먹게 된다고 했다. 즉 어린 날에 맛있는 걸 먹었다면 나이가 들어서도 그 기억으로 그 음식을 찾게 된다는 말이다. 어떤 음식들은 기억만으로 포근해지고 위안을 받는 그런 것들이 있다.
나한테는 그런 음식이 ‘짠지 무’다. 요즘에는 잘 볼 수 없는, 겨울 흙에 파묻은 장독 안에서 갓 잡아 올린, 치자 물도 들이지 않고 하얀 색 그대로 잘 절여지고 잘 익은, 달고 짭조름한 짠지 무 한 덩이, 나박썰기해서 가지런히 그릇에 담아 종종 썬 쪽파 조금 올려 시원한 물을 담아내던 할머니의 반찬 생각이 나서 찾아보려 해도 집에서 담근 게 아니면 잘 찾아볼 수 없는 반찬이다.
시간도 정성도 많이 들어가야 해서 그런 것일까? 나이가 들면 들수록 생각이 난다. 입맛이 없을 때, 혼자서 몸이 아플 때, 튀기고 볶은 기름진 동남아 음식을 먹어 속이 더부룩할 때, 그리워지는 음식이다. 어린 나이에 나는 이런 슴슴한 맛을 어떻게 알고 있었을까? 할머니에 대한 애정의 크기가 이 반찬을 좋아하게 만든 이유는 아니었을까?
어릴 때 조용하고 내성적이던 나는 사람들 앞에서 잘 나서지 못했다. 가족들 앞인데도 늘 수줍었고 원하는 걸 잘 이야기하지 못하는 그런 아이였다. 하지만 유일하게 할머니 댁에 가는 매 주말이 되면 나는 정말 아이처럼 신나서 조잘조잘 떠들었다. 내가 무슨 말을 해도 받아 주는 사람이 있다는 안도감은 지금 생각해도 눈물이 날 만큼 감사한 일이니까. 어린 날에는 그런 걸 알 턱이 없었다. 무수한 시간들이 흐르고 나서야 겨우 깨닫게 된 감정들이다. 할머니가 살아 계실 때는 명절 때고 주말이고 늘 친척들이 많이 찾아왔다. 나는 할머니가 시키는 대로 아래 위층으로 음식을 나르고 음료수를 채우고 용돈도 많이 받았으니 신나는 날이 아닐 수 없었다.
할머니는 마당에 대추나무를 기르셨고, 장독대에 김치를 보관하셨고, 또 주중에는 당신의 남편 사업을 도와 열심히 일하셨다. 할머니의 인생은 아마 집에서도 가게에서도 일만 하시는 것에 가까웠을 것이다. 명절 전날이 되면 할머니는 머리 수건을 두르시고 전을 여러 개 부치셨다. 마루 가득 휴대용 가스레인지와 재료들을 달력 뒷장을 받쳐 펴 두고는 전을 지졌다. 크게 부친 녹두 빈대떡도, 꼬치도, 내가 제일 좋아했던 육원전도 있었다. 비교적 손이 작았던 아이에게 할머니는 육원전을 동그랗게 굴려 만들라고 하셨다.
나는 할머니를 위해 뭐 한 가지라도 할 수 있는 게 기뻤다. 어린 아이는 부모나 조부모에게 존재만으로 기쁨이 될 수 있는 걸 지금은 알지만, 그때의 나는 무엇인가 예쁜 짓을 해야만 예쁨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아이였으니까. 그런 행복한 시간들이 조금만 길었으면 좋았을 걸, 내 기억으로는 4년이 채 안 되는 것 같다.
할머니는 그 집에 사시면서 암 말기인 걸 알게 되셨고, 큰 병원에서도 별로 이렇다 할 처치를 할 것이 없어, 집 안에서 산소통을 놓고 연명하시다가 돌아가셨다. 아파서 서서히 죽음으로 향하시던 할머니를 생각하면 지금도 마음이 먹먹하다. 나는 돌아가시기 전에 할머니가 주셨던 ‘그분이 한 번도 차지 않으신’ 손목시계를 리폼해서, 지금도 가지고 있다. 기억으로만 가지고 있기에는 아름다웠던 시간들이 어느 날 송두리째 그분의 죽음과 함께 사라져 버린 걸 받아들일 수 없었던 어린 아이는 지금도 집 안에 차려진 그분의 영정 앞에서 목 놓아 울지 못한 걸 후회하고 있는 줄도 모른다.
누구도 가르쳐 주지 않은 삶과 죽음 사이에서 그저 할머니의 존재를 믿고 따르고 사랑했던 어린 나의 모습을 위로 받지 못하고 스스로 떠나보내지 못한 삼십 여 년 전의 기억들 속에서 돌고 돌아 다시 오는 계절 속에서 다시금 그 분을 떠올려 본다. 어떤 매개체보다도 강력하게 그분을 떠 올리는 음식 하나를 두고, 계절의 여왕인 5월에 나는 다시 그분을 추억해 본다.
[수상 소감]
어린 시절에 관한 기억들에 관한 수필 두 편을 써봤습니다. 글을 쓰면서 추억 속으로 들어갔다 나온 기분입니다. 해외에 살면서 느끼는 건 과거의 기억이 내가 어디에 있든 지금 현재와도 연결된다는 것입니다. 내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든 나의 뿌리에 대해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그럼으로써 오늘의 내가 훨씬 더 충만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감사합니다.
[약력]
고려대학교 사회문화심리학과 대학원 졸업,
홍콩과 일본을 거쳐 싱가포르까지 총 14년차 디아스포라이자, 다국적 기업 회사원
싱가포르 한인회가 발간하는 한누리지에 2015년부터 총 7년간 영화 칼럼을 연재
2023년부터는 한국문인협회 싱가포르 지부 회원으로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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