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회 적도문학상/수필부문 장려상] 승리의 도시, 자야카르타 /최하진 > 한국문인협회 인니 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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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회 적도문학상/수필부문 장려상] 승리의 도시, 자야카르타 /최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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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산책 작성자 편집부 작성일 2023-07-21 22:19 조회 955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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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의 도시, 자야카르타


최하진


탁 트인 공터를 둘러싸고 새까만 대포가 눈을 거스른다. 선글라스를 끼고 발걸음이 가벼운 낯선 사람들이 지나쳐간다. 따가운 햇볕은 나의 인내심과 줄다리기를 하고, 체면 따위는 접어두고 더위를 피할 곳을 찾는다. 


털그덕 털그덕 더위에 지친 말이 꼬리를 힘없이 흔든다. 터벅터벅 걷는 것인지 뛰는 것인지 모를 발걸음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흔든다. 갈기의 윤기를 잃은 갈색 말, 목 주위에 달린 종만 정적을 깨는 소리를 낸다. 


화려한 조화를 단 모자를 건네는 상인을 뒤로하고 그늘을 찾아 길을 재촉한다. 광장을 바라보는 코너의 건물이 눈에 띈다. 이마의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넘기며 묵직한 자띠 문을 열었다. 


“Selamat datang. Silakan.”

직원이 반갑게 인사한다. 계단을 에둘러 건물 안을 휘 돌아본다. 익숙하지 않은 건물 내부는 심장 박동을 지핀다. 레드카펫이 나선형으로 깔린 계단을 오른다. 벽에는 훈장 같은 그림들이 전시되어 있다. 17세기 즈음에 바타비아 속으로 들어간다. 거스른 시간을 타고 천정에 오랜 시간을 암시하는 자줏빛의 융 천장 아래 팬이 힘차게 달음박질을 하고 있다. 창가에 늘어선 탁자를 골라 자리를 잡았다. 창문 밖, 광장 속의 아리랑이는 이제 저만치 떨어져 올라간다. 건너편 탁자에 하얗게 서리가 내린 노부부와 가볍게 눈웃음을 주고받는다. 


“Snel werken, anders is er vandaag geen eten.”

약자처럼 보였던 그들은 늑대의 가면을 쓴 악마였다. 탐욕을 감추고 애원하던 그 목소리는 앙칼짐으로 본색을 드러냈다. 단순한 창고만 짓겠다며 손을 비비며 들어온 그들은 왕의 뜰에 대포를 쏘아댔다. 흙빛의 그 대포가 광활한 광장에 서 있는 이유다. 


평화롭다고 여겼던 이 레스토랑의 건너편은 눈물과 핏물의 엉겨 붙은 흔적이 곳곳에 색을 더해갔다. 아무렇지 않게 마차를 탄 그들의 발자국 아래 쇠스랑에 채워진 눈 밑이 어두운 아이들이 묶여 있었다. 누가 정했는지 모를 세금을 내지 못했다고 한쪽 손목이 날아간 뒤다. 뭉개진 손목으로 아이는 돌을 나르고 있었다. 철장 밖의 다부진 체격에 하얀 피부를 가진 그들은 신들의 색을 지닌 괴물이었다. 뱉어진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고, 오만한 행동은 제어력을 잃은 지 오래였다. 


정당화할 수 없는 이유로 시작된 약탈은 300년이 넘게 이어졌다. 같은 슬픔을 지닌 나는 심하게 감정이입이 되었다. 떨리는 몸을 쓰다듬으며 다시 눈을 감는다. 약하면 이렇게 되는 거야. 강한 것이 아름다운 거다. 뺏을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가. 아직도 이 땅엔 눈에 드는 많은 것들이 있다. 


마음이 급한 그들은 채찍을 시도 때도 없이 휘둘렀다. 그들의 언어를 모르는 자들에게 지장을 찍게 하고, 동의하지 않은 문구를 들이밀며 착취를 약속 이행이라며 사기꾼으로 치부했다. 누가 범법자인가? 해석이 모호해진 시대의 흐름은 판단력이 흐려졌다. 지식은 억압하는 데 쓰였으며, 아름다움을 그리던 재능은 도둑질한 물건을 지키고 나르는 데 빛을 발했다. 자유로움과 다양함을 이야기하는 지금의 그들의 뿌리에는 추악한 과거가 깔려 있었다. 반성하는가? 반주하며 그때의 번영을 이야기하는가? 부흥을 꿈꾸는가? 다시는 없을 거라 다짐하는가? 


숨통이 트인 사람들의 억울함을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해소에 큰 도움이 된다. 듣는 도중의 낯부끄러움은 잘못을 한 자들의 당연한 몫이다. 차지한 그때 문명을 전해주었다는 검은 속내를 치장한 그런 미화 말고, 안위하며 지내던 그들을 방해한 그 죄를 인정해야 한다. 그래야 그 실마리가 마음의 응어리가 녹아내리는 거다. 들을 때 얼굴이 달아오를 것이다. 또는 다른 해석을 하고 싶어 입술이 옴직옴직 할 것이다. 하지만 참아야 한다. 과거를 참회하는 자들이라면 응당 그래야 한다. 한적함을 짓밟았으니. 그들의 역사에 상처를 내었으니. 그 정도는 인내해야 한다.


‘바타비아’ 원래 이름은 ‘자야카르타’, 자바어의 산스크리트어로 ‘이루어진 승리’라는 뜻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루어진 승리의 도시’가 약탈당하여 바타비아로 불렸다. 승리의 도시를 정복하고 붙인 타국의 이름이다. 다른 나라의 도시에 자국의 마을 이름을 붙여 욕심을 내었다. 약함이 강함에 지는 것이 아니라, 강자가 약자를 배려하는 방향으로……. 


욕심이 난다고 거짓으로 빼앗는 것이 아니라 정당한 값을 치르고 거래를 하는 것으로 말이다. 이 시대에 또 다른 제국주의가 자리 잡지 않도록, 우리는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교육해야 할 의무가 있다. 이 낯선 땅이 친근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그 의무가 내게도 사무치기 때문이다. 


국제 학교에 적응하기 위해서 영어 과외를 한 시간이라도 더 붙여서 가르쳐야 한다는 커피숍의 이야기들은 목적지가 어디인지 길을 잃은 배의 깃발 같다. 이 땅을 도구로 이해하며, 생활하는 이들의 또 다른 침략이 조용히 이뤄지고 있다. 왜인지 나는 마음이 불편하다. 그러면 안 될 것 같다. 

이 땅에 왔으니 이들의 억울함을 들어보고 싶다. 이들과 꿈을 나눠보고 싶다. 그게 우리의 하소연과 닮아있을 것 같다. 그래서 부드러움이 강함을 둘러싸고 안아 굵디굵은 그 쇠스랑의 자물쇠가 철커덕하고 풀어지길 나도 모르게 기도하고 있다. 나시고렝의 부드러운 코코넛 향이 차가운 숟가락을 감싸듯 말이다. 


영어 한 시간의 과외가 아니라 그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는 이야기 한 조각을 아이들의 머리에 뿌려주는 것이 더 의미 있게 여겨진다. 이렇게 큰 나라에 수많은 섬 사이에 숨겨진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을 아라비안나이트의 하루 넘김처럼 알려주고 싶다. 그것이 내가 이 나라를 이해하는 방식이다. 이슬람 교인이 80퍼센트가 넘지만, 국교가 이슬람이 아닌 한쪽 문을 열어둔 인도네시아는 열강의 짓밟힘 속에서 짬뿌르(섞임)를 만들고 있는 모습이다. 어울려서 더 맛있게 되었음을 보여주는 특유의 낙천적인 성격을 보여주듯이…….


“Ibu mau apa lagi?” 

갓 로스팅된 커피를 주문한다. 로부스타 커피의 진한 보디감을 감은 커피의 향이 더위를 뚫고 부르르 떨림을 준다. 마스크를 낀 하얀 눈동자의 큰 눈이 나의 지시를 기다리듯 옆에 선다. 그럴 필요 없다는 듯이 


“Kopi ini sangat bagus! makasih!”

하며 웃음을 지어준다. 안도의 숨을 내쉬며 총총히 사라지는 직원을 보며 빙그레 웃음을 지어 보인다. 그 웃음은 왠지 슬프다. 나는 이곳의 역사를 보고 또 듣고 말았기 때문이다. 알게 된다는 것은 기쁨과 동시에 죄책감을 느끼게 한다. 거기에 멈추면 또 다른 잘못된 역사가 신이 보시기에 슬픈 일이 또 벌어질지 모른다. 그래서 나는 다짐해 본다. 미래의 거울을 닦는 것은 과거를 잘 이해하는 데 있기에, 우리는 후손들에게 전해줄 좋은 방법과 이야기를 기록해 두어야 한다. 그것이 슬픈 미소를 또다시 짓지 않게 되는 길이기 때문이다. 


곱슬곱슬한 흰머리를 쓸어올리는 노부부가 만족스러운 미소를 띠며 연신 사진을 찍어댄다. 찰칵찰칵. 그 모습에 몸이 부르르 떨렸다. 저 찰칵 소리가 영광이나 그리움의 흔적이 아니기를, 다짐과 반성의 의미이기를.


바타비아! 아니 자야카르타! 너의 과거의 영광이 잿빛의 영화가 아니라 미래 세대의 희망을 부르는 미래의 지도이기를 바란다. 땀인지 슬픔인지, 안도인지, 기대인지 모를 울림이 퍼져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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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 소감] 

글을 쓴 지가 너무 오래되었다. 공모 포스터를 보고 가슴이 뛰었지만, 엄두가 나지 않았다. 내 안에 쓰고 싶은 이야기들이 맴돌았지만, 정리가 되지 않아서 빈칸을 두고 시간을 보냈다. 부끄러워서 썼다가 지웠다가를 반복했다. 고통이었다. 매일 하는 말이고 내가 아는 한글인데 왜 이리 한 글자 적어내기가 어려울까? 그러다가 마지막 날, 신기하게도 하루에 2개의 글을 한꺼번에 쓰게 되었다. 


내가 디디고 있는 땅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와 포용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인도네시아에 왔으니 인도네시아의 역사를 알고 싶어졌고, 박물관과 헤리티지 수업을 들락거렸다. 알고 나니 더 친근하게 느껴지며 그들의 삶의 자취가 이해되기 시작하였다. 그 앎을 글로 전할 수 있다는 것은 큰 매력이고 축복이다. 내게는 글이 아름다운 음악처럼 마음을 적셔주는 수단이기 때문이다. 때로는 아프게, 때로는 기쁘게 더 없는 충만한 감정의 선물을 선사해 준다.


그래서 처음 낯선 땅에 왔을 때, 아이들을 위한 동요나 동화를 출판하고 싶다고 나도 모르게 말해버렸다. 그 말을 뱉은 이후로 나는 늘 거짓말을 한 것처럼 마음에 찔렸다. 나는 쓰는 데는 병아리이지만 좋은 글을 읽으면 감동을 잘 받는다. 그 감동이 어린아이들에게도 잘 전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 발판을 주신 것 같다. 


*부족한 글을 읽어주시고, 귀한 상을 주시고 문인협회 회원의 기회를 주신 한국문인협회 인도네시아 지부에 깊은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 내가 글을 썼으면 좋겠다고 짜리몽땅한 내 손에 어울리지 않는 다이아가 박힌 볼펜을 쥐어주며 응원한 사랑하는 남편과 엄마의 수상을 진심으로 축하해준 서준, 서호 두 아들, 늘 우리 가족을 응원 해 주는 양가 가족들에게 깊은 사랑의 말을 함께 전합니다.


[약력]

*현직 초등교사

*전직 과학원 영재 강사

*전직 교육청 온라인 스쿨 홍보 대사 및 현장 지원 교사

*전직 정보과학원 (전주, 군산, 고창, 부산, 제주도 등) 강사

*현직 인도네시아 국립박물관 도슨트 7기

*현직 윈드 오케스트라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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