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초록색 반지의 인연 / 엄재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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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산책 작성자 편집부 작성일 2018-06-28 13:31 조회 6,478 댓글 0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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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색 반지의 인연
엄재석 / 한국문협 인니지부 회원
내 인생에서 가장 잘 한 선택 중 하나를 뽑으라면 ROTC 도 그 중 하나다. ROTC는 대학 3학년부터 군사 훈련과 학업을 병행하다가 졸업 후에 육군 소위로 복무하는 학군단 제도이다. 학교 내에서 제복을 입고 자유로운 대학의 분위기와 달리 단체 행동을 하기에 ‘바보TC’ 라는 별칭도 갖고 있다. 방학 중에는 군사학교에 입교하여 훈련을 받고 졸업과 동시에 임관되어 전,후방으로 배치된다. 육사가 장기 직업군인을 양성한다면 ROTC는 보통 2년간 초급 장교로 복무하고 사회로 진출한다. 임관할 때는 모두 같은 디자인의 반지를 끼는데 육사는 빨간색 보석이고 ROTC는 초록색 반지를 낀다. 술을 좋아하는 일부 동기들은 술값 대신에 반지를 술집에 저당잡히기도 하였다. 20만명의 선후배 동문들이 제대 후에도 반지를 많이 착용하고 있다. 금년이 나의 임관 40주년이다. 혈기 왕성한 20대 초반에 카키색 군복을 입고 임관한지 벌써 그렿게 세월이 지났다니 격세지감을 느낀다.
인도네시아 ROTC 모임에서 최선배를 처음 만난 건 5년 전이다. 내가 인생 2막으로 시작한 찌깜백 수방 고속도로 건설공사 현장에서 일할 때였다. 현장 사무실로 처음 보는 한국인 기술자가 찾아 왔다. 모설계사 인니 지사장인데 신규 고속도로의 타당성 조사차 지역을 답사하던 중에 사무실을 찾아 왔다고 했다.
첫인상이 남성적인 외모로부터 건설인의 분위기를 확 느끼게 하였다. 차를 마시던 중 가만히 보니 왼손 약지에 초록색 반지가 빛나고 있었다. 바로 ROTC라는 증거였다. 참지 못하고 다짜고짜 “몇 기시죠?” 물으니 “14기입니다” 속으로 따져보니 나보다 2년이나 선배시네 “충성 16기입니다. 선배님을 몰라 뵈었습니다” “헌데 제대한지 30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반지를 끼고 계시다니 대단합니다”.
30년 전에 벽산건설의 고속도로 현장 소장으로 부임하였다가 공사가 끝난 후에 인도네시아에 남으셨다고 했다. 이렇게 우리의 ROTC의 초록색 반지의 인연은 시작되었다.
내가 임관할 때에는 반지를 끼지 못하였다. 반지 제작을 둘러싼 비리에 분개하여 반지를 포기하고 말았다. 군대에서 다른 동기들이 차고 있는 반지를 볼 때마다 부러움을 가슴 속에 감추어야 했다. 제대를 하고 바쁜 사회 초년 시절을 보내는 나에게 반지는 잊혀진 사치품이었다. 그러다 사회생활 20년이 지나서야 ROTC반지를 만들었다. 영업 담당 부서에 배치되어 전국을 돌아 다닐 때 새로운 사람을 만나서 인맥을 만드는 일이 무엇보다 힘들었다. 지연도 혈연도 학연도 한계가 있었다.
헌데 ROTC라는 폭 넓고 끈끈한 군대라는 또 다른 인연이 있었다. 선,후배 중에서 학계나 공공기관 그리고 지방이나 중앙 정부에서 일하는 동문들이 많이 있었다. 이들과 처음 만나서 쉽게 대화를 트기 위하여 반지가 필요했다. 그래서 반지를 만들어 끼고 다니니 상대방이 스스로 자백한다. “ROTC 몇 기시죠?” “16기 입니다” “선배님 저는 00기수 입니다 충성” 하거나 아니면 “후배네, 난 00기야 반가운데” 하면서 선배에게는 존칭을, 후배에게는 하대를 하고 동기면 바로 친구가 된다. 어려운 영업을 하러 찾아간 사무실에서 새 초록색 반지가 얼마나 나를 도와 주었던가?
처음부터 ROTC를 소재로 대화를 시작하면 다른 본론들은 술술 풀려갔다. 이렇게 학군단의 인연은 군대에서 끝나지 않고 사회에서도 지속될 줄이야 누가 알았으랴.
최 선배를 다시 새 일터에서 만났다. 나의 인도네시아 3번째 현장인 보고르 수카부미 고속도로 건설공사에서 일할 때이다. 인접 공구에 현장 소장으로 다른 분이 아닌 최 선배가 부임하였다. 참으로 묘한 인연이었다. 아무리 같은 토목 전공이라 하여도 이럴 수가 있을까? 일하면서 서로 경쟁하는 관계지만 아쉬울 때는 장비, 자재를 서로 형님, 아우하며 주고 받았다. 안타깝게도 지속되는 강우로 현장의 공정은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선배와는 가끔씩 만나서 식사도 하면서 동병상련하였다. 그렇게 일년을 지내다 비슷한 시기에 현장을 떠나야 했다.
현장을 떠난 후에도 선배는 쉬지 않고 사회활동에 열심이셨다. 본업인 토목관련 일을 계속 하시며 자카르타 한바패의 주축맴버로 인니의 한류 관련 행사에서 전통 사물놀이를 공연한다.우리나라의 전통문화를 인도네시아에 알리는 홍보대사였다. 매주 한인문화회관에서 진행되는 공연 연습에도 부부가 빠지지 않는다. 최근에는 인니 청소년들에게 사물놀이를 가르치는 봉사활동도 한다. 어쩌다 회식 자리에서 색소폰 연주도 할 정도로 음악에 조예가 있었다. 성품이 자상한 선배는 지금도 가끔씩 나의 사무실을 찾고 후배의 안부도 챙긴다. ROTC 인니지부 모임에 회장까지 역임하였고 정기모임에 빠지지 않는 영원한 ROTC인이다.
ROTC는 전국적인 중앙회 조직에 지역별로 지부가 있는데 인도네시아 지부도 열심히 활동 중이다. 이는 인니 주재 기업의 주재원이나 이곳에 상주하여 기업을 하는 ROTC 출신들이 주요 회원이다. 여기에는 최고 고참인 1기 선배부터 52기 막내까지 나오니 50년이란 세월의 차이가 있다. 할아버지와 손자 같지만 모임에서는 선배와 후배일 뿐이다. 그 중에는 지금도 초록색 반지를 끼고 다닐 정도로 ROTC에 대한 자긍심이 크다. 처음 인도네시아에 와서 모두가 낯설었지만 모임에서 자주 보니 이제는 형님 아우가 되었다. 동문들 중에는 청년 장교로 국토 방위를 하고 퇴역 후에는 이국 땅 인도네시아에서 경제 활동으로 평생을 보낸 분들도 많이 있다. 깔리만탄 밀림 속에서 자원개발을, 수마트라의 북단에서 발전소 건설을, 중부 자바에서 공장을 경영하는 자랑스런 애국자들이다.
내인생의 소중한 선택이었던‘ROTC ! 나의 초록색 반지여 영원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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