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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작은 빈틈 / 이영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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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산책 작성자 편집부 작성일 2018-11-14 18:11 조회 7,89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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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필산책 29 >
 
작은 빈틈
 
  이영미 / 수필가 (한국문협 인니지부회원)
 
 
 
 
얼마 전 모 일간지에서 나방의 놀라운 재능에 관한 칼럼을 흥미롭게 읽었다. 브리스톨 대학의 연구팀에서 캐비지 트리 황제 나방(Cabbage Tree Emperor moth, Bunaea alcinoe)의 몸을 둘러싼 미세한 털이 박쥐가 내보내는 초음파를 흡수한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아직 대기 오염이 한국처럼 심하지 않은 인도네시아는 밤하늘을 날아다니는 박쥐를 종종 볼 수 있다. 어둑해지는 저녁, 딸아이와 산책을 하다 보면 머리 위로 파닥거리는 날갯짓하는 소리가 들린다. 어두운 곳에 대롱대롱 매달려 암흑의 시간을 기다렸으리라. 파우스트 박사와 계약을 맺어 그의 혼을 빼앗았다고 알려진 악마, 메피스토를 연상시키는 외모에 내 목도 움츠러든다. 하물며 저를 잡아먹으려 달려드는 박쥐를 보는 나방은 어떻겠는가. 초음파를 쏘며 먹이를 찾는 이 야행성의 사냥꾼들에게 쉽게 발각될 만큼 거대한 몸집을 지닌 캐비지 트리 황제 나방, 어른의 쫙 편 손바닥만 한 이 나방의 우월한 외형은 자칫 종족의 멸종을 이끌 수도 있는 치명타인 것이다. 자연은 미약한 곤충들에게도 선정을 베푼다. 효과적으로 음파를 흡수할 수 있는 작은 빈틈을 가진 다공성 구조의 털로 그의 날개와 몸통을 덮어준 것이다. 
 
어떤 것은 박쥐의 초음파 신호를 방해하거나 교란하기도 한다. 청각이 발달하지 않아 천적의 접근에 자칫 무방비한 나방이 살아남는 법이다. 기사문은 나방이 층간 소음을 해결할 구원투수가 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하며 마무리 되었다. 주로 다세대 주택이나 아파트에서 발생하는 소음 공해는 이웃 간의 갈등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가전제품 소리, 악기 연주 소리, 화장실 물 내리는 소리부터 대화 소리까지 줄이게 된다. 바닥을 걸을 때는 차라리 공중부양을 꿈꾸게 한다. 못생긴 손발을 감추기 위해 장갑이나 양말을 즐겨 착용하거나, 미용실에서 망친 머리를 모자로 가리는 것과는 다른 문제다.
 
얼마 전까지 ‘자기 피아르의 시대’라며 타인의 관심을 끌기 위해 자신을 알리라더니 이제는 나를 살금살금 내려놓으라 한다. 적극적으로 자신을 홍보하라고 했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튀지 말고 조용히 살라고 요구하는 사회, 우리는 디지털 상품과 제품을 능숙하게 사용할 수 있는 ‘디지털 세대’를 살고 있다. 젊은이와 중년, 장년의 경계도 무너졌다. 유럽에서는 빠른 퇴임 후 진짜 내 인생을 살자는 운동이 성황을 이루고 있고 한국에서는 은퇴 연령을 5년 늦추려는 움직임이다. 
 
디지털 기기의 사용이 젊은 세대에게 더 익숙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외출하지 않고 방 안에서 의식주를 모두 해결할 수도 있다. 예로부터 우리 민족을 지칭하던 배달민족(倍達民族)과는 다른 의미의 ‘배달의 민족’이란 수식어가 붙을 정도로 치킨, 보쌈, 자장면 등의 배달 음식을 자주 시켜 먹는다. 세금도 휴대전화에 설치된 앱을 간단히 클릭하는 것만으로 납부 가능하다. 거대한 자금력으로 온갖 오프라인 상점을 들어앉힌 온라인 상점에서 고객의 지갑은 쉽게 열린다. 마케팅 전문가들이 구상한 화려한 전략에 몰려드는 고객들은 부나방 같기도 하다. 이런 물질적⦁정신적 풍요 속에서 풍요 속 빈곤을 느낀다니 아이러니한 일이다. 
 
사람은 점점 고독한 존재가 되어간다. 물론 디지털 세계에서의 ‘고독’은 아날로그 세계의 그것과 사뭇 다르다. 후자가 ‘세상에 홀로 떨어져 있는 듯이 매우 외롭고 쓸쓸하다’는 사전적 의미를 지녔다면 전자는 복잡하고 정신없는 세상에서 스스로를 고립시킨다는 의미도 내포한다. 
자발적인 고립이다. 이는 생존을 위해 자구적 대안으로 제 몸을 은닉하는 나방의 모습과 또 닮았다. IMF 이후 경기 불황으로 정리해고가 늘며 억지웃음을 짓는 ‘스마일 마스크 증후군’에 시달리는 직장인들이 늘고 있다. 
 
마스크를 쓴 채, 나를 감추고 싶던 적이 있었다. 인도네시아에 적응하기 전의 일이다. 
아이 둘을 키우며 여러 가지 이유로 학교에 들르게 되었다. 사회성이 좋아 한국 학부모의 정기 모임을 주최하던 분이 한국으로 귀국한 후, 한 달에 한 번 있던 학부모 모임이 흐지부지되었다. 이국땅에서 육아와 교육에 관한 이야기를 공유할 수 있는 흔치 않은 자리였지만 아쉽지 않았다. 젖먹이를 데리고 한 시간이 넘는 거리를 오가는 게 힘들기도 했고, 흔전거리며 사는 학부형이 부러웠을 수도 있다. 그때의 나는 스스로를 고립시켰다.
 
어느 날 톨게이트 노동자들의 파업으로 집에서 아이 학교로 가는 길이 모두 막혔다. 아이를 데리러 가려는데 차는 요금소를 빠져나가지도 못했다. 다른 학생들이 집으로 간 후 홀로 남겨질 아이가 느끼는 공포와 불안감이 쓰나미처럼 밀려왔다. 손이 바들바들 떨렸다. 오토바이라도 구해 데리러 가야겠다고 결심한 순간,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차분한 목소리로 나를 안심시키며 자신을 소개했다. 
마침 당신이 학교 근처에 사시니 딸아이를 하루 재워주신다는 내용이었다. 혼자 고립된 아이의 소식에 생판 모르는 분이 전화를 주시다니. 심지어는 학교도 달랐다. 전화를 받는 내내 허공에 대고 연신 고맙다며 허리를 숙였다.
 
그 일이 계기가 되어 학교 근처로 이사를 한 지 이 년이 다 되어간다. 그때의 고마움을 생각하며 먼 곳에서 통학하는 지인의 아이를 이틀 데리고 지낸 지도 일 년이 넘었다. 어떤 이들은 친이모도 아닌데 오지랖이 넓어 미주알고주알 나서서 도와주냐며 비난을 하기도 한다. 
내가 그날 얻은 사랑과 깨달음은 그런 가시 품은 억측을 넉넉히 덮어주고도 남는다. 그날 이후 나는 스스로 친 고립의 울타리를 걷어냈다. 한국인 엄마들뿐 아니라 현지인 엄마들과도 잘 지낸다. 사춘기를 지나는 첫애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들을 얘기하다 보면 다들 비슷한 일을 겪고 있다. 느긋한 성격으로 한 발 뒤로 물러나 지켜보라는 조언도 얻는다. 국적은 달라도 우스개로 남편 흉보는 것도 비슷하다. 그동안 마음속에 친 울타리 너머의 것을 보지 못했다. 
 
 
담장을 허물었더니 큰 고을 영주가 되었다는 시인도 있지 않은가. 나는 어떤 재능을 타고났을까? 해외 이주와 출산, 육아로 십여 년 동안 단절된 경력에도 새로운 일을 찾아 할 수 있게 되었는데 더 무얼 바라랴. 오후에 일이 몰려 있어 오전에 아이들 저녁을 준비한다. 

어제는 일이 끝난 뒤 늦은 저녁을 먹으려 자리에 앉았는데 초저녁에 먹은 삼계탕이 벌써 소화된 아이들이 간식을 주문한다. 몸은 피곤하지만 소중한 이들을 위해 음식을 만든다는 것은 더없는 축복이다. 담근 지 일주일이 되어 코코넛 설탕이 맞춤하게 녹은 레몬청으로 만든 레모네이드와 빨간 떡꼬치를 만들었다. 학교 숙제에 치여 간식시간에야 읽고 싶은 책을 꺼내는 딸아이와 지인의 아이. 이제는 정이 붙어 친조카 같은 아이에게 입맛에 맞는지 물으니 맛있다며 웃는다. 처음에는 제 엄마가 만들어주는 음식과 달라 숟가락을 내려놓기도 했는데.
 
인생은 나에게 다른 이들의 어려움에 눈을 돌리는 ‘작은 빈틈’을 주었다. 그 여유를 내기위해 심신이 조금 더 힘들 때도 있다. 하지만 이렇게 행복을 느끼는 작은 여유, 나만의 빈틈이라도 있어서 다행이다. 우듬지에 아슬아슬 달린 새 둥지를 구경하는 여유가 있다. 딸아이와 망고에 종이를 씌우다가 대롱 사탕 빨 듯 망고 즙을 음미하는 손톱만 한 나방도 구경한다. 

어쩌면 빈틈이 없고 각박한 사람은 보기 힘든 것들인지도 모른다. 흘레구름이 몰려온다. 
곧 소나기가 시원하게 퍼붓겠다. 오늘은 띠앗 좋은 형제들처럼 나뭇가지에 다락다락 매달릴 빗방울들을 구경하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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