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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인협회 인니 지부 (42) 90세 아버지의 자카르타 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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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산책
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7,267회 작성일 2019-02-13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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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필산책 42 >
 
90세 아버지의 자카르타 방문
 
엄재석 /한국문협 인니지부 부회장
 
 
수카르노하따 공항의 1층 입국장 문이 열리자 아버지가 나오신다. 90세 아버지가 7시간이란 긴 여행 끝에 인도네시아 땅을 처음으로 밟는 순간이다. 장시간의 여독에도 불구하고 건강하신 아버지의 모습에 껴안고 춤이라도 추고 싶었다. 아니 주위에 사람이 없다면 땅바닥에 넙죽 엎드려 절이라도 했을 것이다. 이국 땅에서 연로하신 아버지를 뵙다니 이게 현실인지 구분이 안 된다.
아버지와 함께 오신 형님과도 진한 포옹을 나누었다. 자카르타 시내로 들어오는 차 안에서 아버지께서는 나의 손을 놓지 않으신다. 숙소에 도착하여 절을 올리고 아버지를 품어보니 더 왜소해진 느낌에 눈물이 난다. 늦게까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아버지와 같이 밤을 보냈다.
 
둘째 날에는오전에 내가 일하는 모습을 보여 드리자고 아버지를 회사로 초대하였다. 아버지를 맞이하는 사무실 직원들이 모두들 놀라는 눈치다. 아니 그 연세에 인도네시아에 오신 것에 모두 놀라워하는 눈치다. 회사의 현황과 나의 과거 현장들을 설명하니 매우 만족해하신다. 회사를 나와서 첫 관광지인 따만 미니를 찾았다. 우리나라의 민속촌과 비슷한 관광지이다. 거기서 케이블카를 타기도 하고 깔리만탄관을 찾아 전통 가옥을 관람하셨다, 시내 몰에서 인니 전통복장인 바틱 옷을 사드렸다. 형님은 감색으로 아버지는 황색 옷을 입으시니 인도네시아 정서와 잘 어울린다.
저녁에는 생선요리 집에서 회사 사장님이 마련한 환영연에 한국에서 가져 온 소주를 곁들여 즐거운 회식자리가 되었다.
 
 
셋째 날 오전에는 인도네시아의 전통 맛사지를 받고 위자야 센터에 있는 중국집에서 점심을 드셨다. 오후에는 자카르타 시내 중심부에 있는 독립기념탑 모나스 광장을 찾았다. 광장에 도착하여 미니 열차를 타고 타워를 향하며 인도네시아의 역사에 대하여 간단히 설명을 드렸다.
타워의 꼭대기까지 오르고 싶었으나 티켓이 매진되어 지하 광장 관람에 만족하여야 했다. 거기에는 인도네시아의 역사를 사진과 조형물로 감상하도록 만들어 놓았다. 내부를 한번 돌고 나니 아버지께서 갑자기 피로를 느끼셔서 다른 일정을 취소하고 숙소로 돌아와야 했다.
 
넷째 날에는 오전에 출발하여 뿐짝에 있는 따만 사파리를 방문하였다. 차량지체로 악명이 높은 관광지라 일찍이 출발하였으나 자고라위 고속도로가 끝나는 곳부터 밀리기 시작하더니 동물원 입구까지 서행과 지체가 반복된다. 동물원 입구에서 먹이 감으로 당근을 사서 여러 길가에 여러 동물들에게 직접 먹이를 주니 아버님은 무척이나 신기해 하신다. 특히나 흰색 호랑이가 어슬렁거리는 곳을 차를 타고 지날 때는 어린애처럼 놀라신다. 한국에서는 볼 수 없는 다양한 동물들을 가까이서 보는 재미가 아버지를 동심으로 돌아가게 만들었나 보다. 동물원 관광 후 사파리 식당에서 중식을 마치고 하산하여 귀경길에 올랐다. 시간이 부족해 보고르식물원을 가지 못한 아쉬움을 자카르타 중심부 일식 집에서 생선회로 달랬다.
 
 
다섯째 날 아침에는 자카르타 국립박물관을 방문하여 인니의 역사를 살펴보았고 오후에는 시원한 자바 해를 보여 드리고자 안쫄 해변을 찾았다. 먼저 수족관에 들러 동굴 속을 다니며 다양한 열대어들의 향연을 보았고 짧은 시간이나마 돌고래 쇼도 감상할 수 있었다. 씨 월드 관람을 마치고 노을이 지기 시작하는 안쫄 해변을 거닐었다. 바다 위 부교를 건너가 해상 찻집에서 형님과 둘이서 차를 마시며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간 형제 간에 있었던 오해와 불신을 모두 자바 해에 던져 버리고 새 출발을 약속하는 시간이 되었다. 저녁식사로 인기있는 해물 요리 집 반다라에서 생선구이에 얼큰한 삼발을 바른 요리를 아버지와 형님께서는 맛있게 드셨다.
 
 
여섯째 날에는회사의 건설현장들을 보여주는 날이다. 오전에는 꾸닝안에서 진행되는 아파트 건축현장으로 거기에서 우리 회사는 습식공사를 수행하고 있다. 58층의 고층빌딩이지만 지금은 지상 8층이 올라가고 있는데 안전 때문에 외부에서만 현장을 둘러보았다. 오후에는 찌까랑 자바베카 공단 내에 건설 중인 짐모아 물류창고 건설현장을 찾았다. 이곳은 몸담고 있는 회사에서 내가 처음으로 영업에 성공하여 개설한 현장이다. 2층 철골 구조로 지어지는 현장을 보신 아버지는 아들을 다시 보는 눈빛이다. 이국에서도 인생 2막으로 쉬지 않고 일하는 아들이 퍽이나 대견스러웠나 보다. 아버지께서는 현장에서 일하는 일꾼들에게 일일이 고생이 많다며 악수를 나누신다.
 
 
일곱째 날에는 토요일로 특별한 이벤트를 보여 드리고 싶었기에 인도네시아에서 많은 한인들이 즐기는 운동인 골프장을 찾는다. 그렇다고 아버님 형님과 같이 골프를 치시는 건 아니고 겔러리로서 참석하신 것이다. 평소에 자주 찾던 뽄독짜베 골프장에 같이 운동할 지인도 합류하였다.
골프장에서 간단히 점심 요기를 드시고 필드로 나간다. 연로하신 아버지와 형님을 위해 별도로 카트를 준비하였다. 아버지 앞에서 그간에 갈고 닦은 실력을 보여 드렸지만 아버지에겐 난생 처음으로 밟아 보는 골프장 그린이 더 경이로웠나 보다. 마지막 18번 홀에서 멋진 버디가 나왔는데 그 버디는 홀인원에 버금가는 기쁨이었다. 기념으로 사진도 남기고 아버지께 퍼팅을 해보실 기회도 드렸다. 막상 해보니 뜻대로 되지 않는다며 그래도 기쁘신지 파안대소 하신다.
 
여덟째 날에는 오늘은 일요일이라 예배를 보기 위해 교회에 가는 날이다, 아버님과 형님은 불신자로서 두 분에 대한 전도가 오랜 나의 기도 제목이었다. 참빛교회로 모시어 목사님과 교우들에게 인사를 시키니 모두들 반갑게 맞이한다. 목사님께서는 예배시간에 두 분을 소개를 하면서 교회 창립 이후 최고령자가 오셨다며 환영기도를 드리신다. 예배시간 내내 옆자리의 아버님 형님을 보니 울컥하는 심정을 억제할 수 없었다. 이대로 쭉 주님을 영접하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오늘 함께 예배 드린 것만도 감사하기만 하다. 예배 후에는 교회에서 제공하는 점심식사를 드시고 인니에서 마지막 관광지인 찌아트르 온천으로 향한다. 3~4시간의 여행 끝에 사전에 예약한 콘도에 도착하니 어느새 해가 지고 온천의 밤이 시작된다. 서늘한 밤 기온이라 노천온천에 형님과 둘이서만 몸을 담근다.
 
아홉째 날에는오늘은 반둥이 자랑하는 관광지인 해발 3300m 활화산 땅꾸반 정상에 오르는 날이다. 새벽 콘도의 오솔길에서 그간에 시아버지와 시숙님을 잘 모신 것이 고마워 아내의 손을 꼭 잡아 준다. 아침 식사를 뷔페로 마치고 식당을 나오니 조랑말들이 손님들을 기다린다. 아버지를 태우고 좌우에서 두 아들이 붙잡고 숙소를 향하니 아버지는 왕이라도 되신 기분이다.
이어서 땅꾸반 화산의 정상을 향하는데 연휴 탓인지 차량들이 꼬리를 이어 오른다. 배를 뒤집어 놓은 듯한 화산의 분화구와 화산에서 나오는 하얀 증기가 퍽이나 신기하신지 연신 감탄하신다. 관광도 잠시 조금 지나자 갑자기 구름이 몰려오면서 비가 오기 시작한다. 정상 아래 계란 삶는 계곡에는 못 가고 반둥 시내에 가서 전통 요리로 중식을 드시고 콘도로 되돌아온다.
 
 
 
오후에는 아버지와 뜨거운 온천수에 들어가 3부자가 함께 온천욕을 즐겼다. 목욕 후 인니의 마지막 밤을 아쉬워하며 한잔 술을 나누는 자리를 가졌다. 아버지께 인니 여행에서 가장 추억에 남는 관광지로 남았다. 열흘째 되는 날은 인니의 마지막 날이자 귀국하시는 날이다. 일찍이 체크 아웃을 하고 찌아뜨르를 출발하여 자카르타로 향한다. 인도네시아를 떠나시는 것이 아쉬운지 귀경길에 아버지께서는 별로 말씀이 없으시다. 아파트로 돌아와서 아내가 준비한 점심을 먹고 오후에는 휴식을 취하셨다. 인니에 계신 동안 신세를 진 게스트 하우스에도 찾아가 잘 지내고 간다며 인사를 나누었다. 시간이 되자 겨울 내복을 입으시는 아버지의 야위신 다리를 보니 마음이 아프기만 하다. 따뜻한 나라에 그냥 계시면 좋을 텐데 돌아가셔야만 하는 상황이다.

공항으로 출발 전에 아버지에게 큰 절을 올리니 아버지의 두 눈에 눈물이 살짝 비친다. 공항으로 가는 차 안에서 부디 건강하시고 또 오시라고 위로해 드리며 아버지를 껴안아 드렸다.
좀 더 잘 모시지 못하고 더 많은 시간 함께 하지 못하여 죄송합니다. 시간이 부족하여 멋진 관광지 발리도 가보지 못한 것이 또 아쉽네요, 적도의 나라 인도네시아에서 살며 일하는 모습을 보여 드리고 잠시나마 추운 고국을 떠나서 아버지를 따스하게 모시고 싶었습니다. 또한 아버님과 병상의 어머님을 모시느라 고생하는 형님도 함께 오시니 감사합니다. 지금도 해외를 방문하실 정도로 건강하신 부친이 계시고 이곳으로 모실 수 있는 것이 저의 복이지요. 아버지 부디 조심해서 가세요! 아버지의 삶에 마지막 소원이던 인도네시아 둘째 아들네 방문은 이렇게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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