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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인협회 인니 지부 제2회 적도문학상(학생 및 청소년부) 최우수상(아세안 대사상)수상작 / 햐신타루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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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산책
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7,351회 작성일 2018-06-05 1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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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회 적도문학상(학생 및 청소년부) 최우수상(아세안 대사상)수상작 / 단편소설
 
난생처음
 
햐신타 루이사( Hyacinta Louisa )
 
아래에서 펼쳐지는 하늘이 서서히 주황색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거의 여섯 시간 동안 창가 쪽 자리에서 꼼짝도 안 하고 앉아 있었다.
옆사람한테 민폐를 끼칠까 봐 화장실도 가지 못하고 처음부터 계속 친절하게 대해 주는 대한항공의 잘 생긴 남성 승무원 때문에 이미지 관리하려고 잠을 한숨도 못 잤다. 아마 그것 때문만은 아니었다. 
기대감 때문에 설렌다고 할까? 이번에는 난생처음으로 해외로 떠났다. 비행기는 몇 번이나 타 봤지만 이렇게 긴 비행은 처음이었다. 어디로 가냐고? 내가 가고 싶었던 나라, 한국으로 가고 있었다. 열심히 노력을 해서 장학금 받고 2016년 가을학기에 대한민국 서울에 있는 대학교에 교환학생으로 공부하러 떠났다. 몇 시간이 지나서 기내 안내방송 소리가 들렸다. 곧 도착한다고. ‘두근두근’너무 설레서 심장이 내려앉을 것 같았다. 생각해 보니까 이번 기회를 통해서 많은 것들도 난생처음으로 경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 잘해보자.
 
“안녕하세요!” 
최대한 밝은 목소리와 방글방글한 얼굴로 대한민국 출입국 관리관에게 인사를 했다. 
 
“오! 안녕하세요! 한국 처음 와 보셨습니까?” 
“네! 저 교환학생으로 왔습니다!” 
“한국어 잘 하시네요!” 
“아, 아니에요! 아직 공부하고 있습니다!”
 
좋은 기분으로 입국심사를 통과하고 짐도 무사히 잘 확보했다. 좋은 시작이었다. 무거운 짐을 질질 끌고 감탄한 표정으로 주위를 살펴보면서 로비로 걸어갔다. 우와! 이 곳 이 바로 인천국제공항이구나. 우리나라 공항이랑 좀 많이 다르네. 드라마에서 많이 본 인천국제공항에서 걸어가고 있다니. 신기하다.
로비에서 교환학생을 도와주는 동아리의 회원인 대학생 친구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어떻게 인사해야 하지? 한국어로 인사할까? 아니면 영어로? 어! 거기 있다! 우리 대학교 플래카드를 들고 있던 학생들, 방글방글 웃으면서 그들에게 향했다. 동아리 회장과 부회장이 나한테 친절하게 영어로 인사를 해서 나도 영어로 최대한 친절하게 인사를 했다. 이야기를 나누다가 나중에 기숙사까지 데려다 주는 회원을 소개하여줬다. 그런데 바로 그때, 나를 데려다 주는 여학생이 나한테 어디에서 왔냐고 물어봐서 나는 인도네시아에서 왔다고 대답을 하자 그 여학생이 대충 대답하고 외면을 했다. 어라? 내가 인도네시아에서 와서 무시당하고 있는건가? 에이, 그렇게 빨리 사람을 판단하지 말자. 그냥 웃자. 
 
스스로 자신에게 좋은 말을 하다가 기숙사로 같이 갈 독일에서 온 학생이 왔다. 역시 그 여학생 반응이 달라졌다. 나는 처음으로 느꼈다. 인도네시아에서 와서 무시당하는 것? 기분이 좀 상했지만 한국 처음으로 왔으니까 그냥 즐기자. 
이 여학생 말고도 친구들 얼마나 많이 있을 건데 신경 쓰지 말자. 기숙사까지는 버스를 타기로 했고 나는 역시 창가 쪽 자리에서 앉았다. 내성적인 사람들이 항상 창가 쪽에서 앉는다고 들었는데 나야 내성적이긴 하지만 단지 풍경을 더 자세히 보고 싶어서 창가 쪽 자리를 선택했다. 그때 아직 여름이어서 하늘이 참 파랗고 구름도 하얀 솜사탕처럼 뭉글뭉글했다. 버스가 달리자 길거리에서 간판이 보였다. 한글로 쓰여있던 간판들을 보니까 진짜로 한국에 도착했다는 게 와 닿았다. 이것은 꿈이 아니고 현실이었다. 나는 자카르타보다 두 시간이 더 빠른 한국에 와 있었다. 

학교 첫날도 꽤 오래 지났고 나는 이제 슬슬 적응이 되었다. 동아리에 들어와서 한국인 친구들 몇 명이랑 친해졌다. 같은 수업을 듣는 동아리 친구들도 있어서 매일매일 기대가 잔뜩 되고 즐거웠다. 첫날에 당했던 안 좋은 일은 벌써 잊었다.
뭐, 사람이 다 취향이 있어서 서로 존중하는 것도 맞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때 그 여학생은 서향 친구들이 더 좋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 나랑 재미있게 놀아 주는 친구들도 따로 있으니까.
 
“야! 야! 야! 9월에는 대학생들이 왜 강해지는지 알아?”
나보다 나이가 두 살 더 많은 상빈오빠가 갑자기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날 건너다 봤다.
 
“네?”
“개강하니까!!!!”
 
낄낄 웃는 상빈오빠를 의아한 표정으로 내려다 볼 수밖에 없었다. 한참까지도 웃고 있던 상빈오빠는 갑자기 무엇을 생각이 난 것처럼 나한테 말을 물었다.
 
“아 맞다! 주말에 나랑 친한 후배가 서울로 올라 온다는데. 같이 놀래?”
“네? 제가 왜요?”
“그냥 같이 놀자! 시간 있지? 너 금요일 수업 하나밖에 없지 않나?”
“네. 1 교시 수업밖에 없어요.”
“좋아! 그럼 금요일에 수업 끝나고 정문에서 만나자!”
 
나도 모르게 감동을 받았다. 학교에서 만난 친구가 본인의 친구랑 만나려고 했는데 재미있는 아이도 아닌 나한테 같이 놀자는 소리도 들었다니. 뭐랄까? 챙김을 받는 느낌이 났다.
 
금요일 1교시수업.
내가 제일 좋아하는 수업이었다. 한국문화수업을 항상 열심히 들었는데 오늘은 집중이 잘 안 됐다. 상빈 오빠는 대구에서 왔다. 대구에서 미인들이 많다고 들었는데 아마 오늘 나랑 만나는 오빠의 후배도 예쁘겠지. 혹시 내가 방해가 될까 봐 걱정했었다. 잠시 생각에 잠겨 있었다. 한국으로 순수한 마음을 가지고 왔었다. 모든 사람들이랑 즐겁게 놀고 싶어서 연애할 생각도 전혀 없었다. 연애하고 싶어서 왔었으면 아마 남자보면 설레고 이미지 관리를 하다가 재미있게 놀 수 없을 것 같았다. 연애 말고 우정 만들고 싶어서 진짜 나를 보여 주면서 돌아다니고 있었다. 덕분에 이제 남녀노소 모든 사람들이랑 친해질 수 있었다.
 
동아리에 들어간 것도 좋은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다른 교환학생은 물론, 한국인 친구들이랑도 많이 친해졌다. 동아리 활동하면서 MT도 경험해 보고 이제 술이랑은 낯설지 않았다. 한국 오기 전에 탄산음료 따위도 마시지 않은 나는 이제 소주랑 맥주를 비율에 맞게 잔에 따라서 폭탄주까지 만들었다.
 
이제 거의 한 달이나 지났었는데 난생처음으로 경험하는 것들 벌써 많이 쌓여 있었다. 그 중에는 처음으로 식당에서 한국어 잘 해서 서비스 받는 것이었다. 서울에 도착해서 다양한 음식들을 많이 먹어 보았다. 착한 친구들 덕분에 냉면, 숯불고기, 찜닭, 치킨, 떡볶이, 삼겹살, 등등 맛있는 음식들을 먹을 수 있었다. 
 
어느 날에 나보다 한 살 더 어린 친한 한국인 동생 미래가 학교 후문에 위치한 칼국수집으로 데려갔다. 식당 안에서는 테이블이 다섯 개밖에 없어서 점심시간에는 대기하는 사람들이 항상 있다고 들었다. 잠시 기다렸다가 드디어 우리 차례가 왔다. 식당 안에는 작고 아늑했다. 출입문 바로 앞에 있는 자리에서 앉자마자 식당을 운영하신 아주머님이 우리를 반겨 주었다.
 
“어서오세요! 어머 다른 친구 데려왔네! 어쩜 둘 다 이렇게 예쁘게 생겼어?”
“어머~~ 이모님! 그럼요! 이 언니는 제 인도네시아 언니예요! 바지락칼국수 2인분 주세요!”
 
이 집에서 많이 먹는 미래가 친절하게 아주머님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알았어요. 일단 보리밥 먼저 먹어요.”
 
두 그릇 보리밥과 나물 그리고 김치와 고추장과 참기름을 식탁 위에 올려 놓으셨다. 칼국수 나오기 전에 항상 보리밥을 먼저 나오는 것이었다. 이렇게 해서 보리밥과 바지락 칼국수를 너무나 착한 가격 5500원으로 먹을 수 있었다. 근데 그날에 보리밥을 처음 먹어 본 것이다. 

“이게 어떻게 먹으면 맛있어요?” 궁금한 표정으로 아주머님을 올려다 봤다. 
“어머! 한국어 왜 이렇게 잘해요?” 
“아하하 아니에요!” 
“겸손하기는! 자, 일단 나물을 이렇게 밥에다가 올리고 그 다음에 참기름과 고추장을 뿌려서 비비면 돼요! 먹을 때 김치를 딱 올려서 먹으면 더 맛있어요!” 
“아아! 네, 감사합니다! 잘 먹겠습니다!” 

아주머님의 설명을 듣고 바로 똑같이 따라 했다. 보리밥 맛있게 먹는 중에 아주머니는 세숫대야 사이즈의 그릇을 식탁 위에 올려 놓았다. 그릇에 있는 어마어마한 양의 바지락 칼국수를 발견한 다음에 미래는 아주머님께 여쭈어 보았다.
 
“이모님, 양이 왜 이렇게 많아요? 평소에 둘이서만 오면 이 만큼 안 나왔는데요? 이거는 셋이 올 때 나오는 양이잖아요!”
 
“어! 서비스야 서비스! 친구들이랑 여기서 자주 먹어서 고맙고 오늘은 이렇게 한국어를 잘하는 우리 예쁜 아가씨도 와서 많이 먹으라고!”
아주머님은 날 내려다보면서 웃으셨다. 그렇게 나도 제일 환한 미소를 지으면서 감사한 마음을 전해줬다. 
 
“너무 감사합니다! 잘 먹겠습니다!”
칼국수를 앞접시로 떠서 호로록 먹었다. 따뜻한 국물과 쫄깃쫄깃한 국수의 조합이 최고였다. 그 외에 신선한 바지락과 애호박 덕분에 시원한 느낌도 많이 들었다. 그날에 또 다른 한국의 매력을 느꼈다. 따뜻한 음식과 따뜻한 사람들 덕분에 내 마음도 따뜻해졌다. 맛있는 칼국수를 상상하고 침을 삼켰다가 수업이 끝났다. 책과 펜을 빨리 가방 속에 넣고 후다닥 강의실 밖으로 나갔다. 갑자기 후드티 주머니에 있는 휴대전화가 잠깐 떨렸다. 문자가 왔나 봐? 액정화면에 뜨고 있는 문자의 발신자는 바로 상빈 오빠였다.
 
[나 정문에 와 있어! 빨리와!]
 
문자를 보고 걸음속도를 높였다. 한 5분 후에 정문에 도착하고 상빈 오빠는 혼자 기다리고 있었다. 후배한테는 신촌 빨간 잠망경에 만나자고 했다고 해서 둘이서 걷기 시작했다. 어느새 나뭇잎들이 노란색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이야! 처음이네. 가을', 
신촌 빨간 잠망경이 더 가까워지면서 상빈 오빠는 손을 들고 흔들면서 더 빨리 걸었다. 나도 짧은 다리로 살짝 뛰었다. 어디에 있을까? 미인이 안보이는데? 

바로 그때. 커다란 빨간 잠망경 밑에 누군가가 손을 흔들고 있었다. 미인이 아니고 평범하게 생긴 남자가 상빈 오빠에게 달려와 있었다. 크고 조금 통통한 덩치에 바가지 머리와 하얀 피부, 참 귀엽게 생겼다. 두 남자는 친절하게 어깨동무를 하면서 서로 인사를 나누었다.
 
“아형! 진짜 오랜만이다!”
“와 진짜 오랜만에 보니까 좋네! 아! 여기는우리 학교에서 교환 학생으로 공부하러 온 루이사야, 너보다한 살 더 어리다. 맞지?”
상빈 오빠의 머리가 휙 돌려서 날 내려다 봤다. 나는 어쩔지 몰라 약간 어색하게 웃으면서 꾸벅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오 반가워요! 저는 노대환이라고 해요. 한 살 차이니까 그냥 친구할까요?”
 
잠깐 주저하다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야 빨리 가자! 배고파!”
 
상빈 오빠가 먼저 걸으면서 앞장 섰다.
“오늘 형이 사 주는거지? 맞지?”
“맞아, 맞아! 남자 둘이서만 같이 먹으면 찝찝할까봐 루이사도 같이 놀자고 했어! 오늘 맛있는거 사 줄게!”
 
걷다 보니까 어느 고깃집에 와 있었다. 무한리필에 8900원이라니? 역시 학교 근처에 있는 식당이 최고라니까.  우리는 역시 이 식당 오늘의 첫 손님이었다. 두 남자는 나란히 앉자 나는 그들의 반대편에 앉았다. 
 
“아 맞다! 너희 둘이 명탐정 코난 엄청 좋아해서 만나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어!” 
물 잔에 물을 따르고 있는 나를 건너다 보는 상빈 오빠는 신나는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저번에 나랑 중고서점 갔을 때 루이사 너 코난 샀잖아! 한글로 돼 있는것!”
“네맞아요.”
“와! 루이사 코난 좋아해? 나도 코난 많이 보는데!”
“맞아! 얘는 티비에 코난 나올 때마다 놓친 적이 없는 것 같다!”
 
코난 덕분에 이야기가 슬슬 나왔다. 그렇지만 원래 나는 조금 소심하고 그 사람도 아마 똑같아서 틈이 뜨문뜨문 느꼈다. 노대환이 고기를 굽자 말이 제일 많은 상빈 오빠는 수다를 떨면서 분위기를 업 시켰다.
 
“와 너희 둘 소심한 걸 내가 잊어 먹었다! 나 없으면 어쩔 뻔 했어!”
“형! 먹을 때는 수다 많이 떨면 안돼! 그렇지, 루이사?”
고기를 자르고 있는 노대환은 따뜻한 눈빛으로 날 건너다 봤다.
“아, 응….”
 
배가 부르고 더 이상 움직일 수 없을 때쯤 우리는 식당에서 나가 아이스크림 가게로 향했다. 그전에 소화할 겸 오락실에 먼저 들렀다. 화려한 불빛과 신나는 기계 소리에 잠깐 빠지고 있었다. 사람도 별로 없는오락실에 두 남자가 열정적으로 사격 게임을 하고 나는 그냥 돌아다녔다. 신기한 표정으로 처음으로 가 본 한국 오락실을 살펴보았다. 두루두루 오락실을 둘러보면서 생각에 다시 잠겼다. 생각해 보니 이런 경험도 처음이었다. 하다 하다 남자들이랑 오락실 가는 것도 경험해 봤네. 고개를 획 돌리자 두 남자는 사격 게임 기계 앞에서 사라졌는데 어딘가에서 목소리가 아직 들렸다. 그들은 열심히 표준어로 말하기 노력했는데 이렇게 신나면 사투리가 자동적으로 나왔다. 상빈 오빠의 큰소리에 나는 화들짝 놀랐다.
 
“루이사! 안 놀거야?”
“저는 됐어요!”
 
두 남자가 어디에 있는지도 잘 몰라서 그냥 똑같이 큰소리로 대답을 했다. 갑자기 그들이 낄낄 웃으면서구석에서 나타났다.
 
“자.”
노대환은 작은 갈색곰 인형을 내 손에 밀어 넣었다. 눈을 동그랗게 뜨는 나를 보는 노대환은 살짝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
“아까 인형뽑기에서 뽑았어! 나는 집에서 남동생밖에 없어서 줄 사람이 없어. 선물이야!”
 
나는 부드러운 곰인형을 만지작거리면서 수줍게 웃었다.
“고마워.”
 
이것도 처음이었다. 남자한테 인형선물을 받는 것.
오락실에서 나가자 아이스크림 가게에 가서 아이스크림 한 통을 뚝딱 해 치웠다. 코난을 좋아하는 동생두 명을 데리고 있는 상빈 오빠는 만화방으로 가자고 했다. 신촌에서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 에 나온 만화방이 있었다. 한 건물 출입문에 지하로 향한 계단을 내려가서 만화방 출입문이 보였다. 유리문을 밀어서 3시간 요금을 내는 다음에 자리를 잡았다. 
 
나랑 노대환은 코난 만화책으로 가득 찬 책장으로 향하고 상빈 오빠는 원피스를 찾으러 갔다. 코난 책장 앞에 둘이서서 갑자기 노대환은 바지 주머니에서 휴대전화를 꺼내자 나한테 말을 걸었다.
 
“루이사, 나랑 카톡 친구하자.”
“아, 그래.”
 
내 아이디를 적어서 휴대전화를 다시 돌려 줬다. 휴대전화를 다시 주머니 속으로 넣자 노대환은 따스한눈빛으로 날 내려다 봤다.
 
“다시 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친하게 지내자, 우리.”
“응? 아. 응!”
 
만화방에서 3시간을 보내고 내가 좋아하는 찜닭을 저녁으로 먹고 소화할 겸 코인 노래방에서 한 시간을보낸 다음에 어느 새 밤이 더욱 더 깊어졌다. 하늘이 더 새까맣게 되기 전에 두 남자는 기숙사 앞까지 날데려다 주었다.
 
“오늘 진짜 즐거웠어요!”
피곤하지만 방글방글 웃으면서 진짜 즐거웠다는 표정으로 인사를 했다.
 
“응, 우리도 즐거웠어! 얼른 들어가!”
“곰인형 버리지 마, 루이사! 자주 연락해!”
 
곰인형을 내려다 보자 다시 훈훈한 웃음을 지은 노대환은 손을 흔들었다.
 
2016년 11월 26일. 오전 10시.
오늘은 동아리 친구들이랑 실내 스케이트장에 가는 날이었다. 노대환이랑 만난 날 이후에 매일 연락하면서 지내고 있었다. 가끔 전화도 하고 화상통화도 했다. 전화할 때마다 둘 다 소심해서 말이 별로 없어서 부담스럽지 않았다. 말은 안해도 통한다고 할까?
 
“루이사! 니트진짜예쁘다!”
동아리에서 나랑 친하고 강남에서 사는 유진이 부러운 표정으로 내 니트를 만지작거렸다.
 
“아하! 이거는 얼마 전에 이대에서 싸게 샀어!”
“진짜? 너무 예쁜데! 나는 옷을 강남역 지하상가에서 자주 사는데 다음에 같이 이대로 가자!”
“응! 좋아!”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머리 위에 차디찬 무언가가 떨어지는 것 같았다.
“어? 비 오는 건가?”
 
고개를 들고 하늘로 올려 보다가 코에 무언가가 묻었다. 눈이었다.
2016년 겨울의 첫눈이자 내 인생의 첫 눈이었다. 손을 내밀어 내리는 눈을 만지기 시작했다. 진짜 황홀한기분이었다. 태어날 때부터 계속 우기와 건기만 가진 열대국가인 인도네시아에서 살다가 드디어 눈을 봤다. 한국은 진짜로 나에게 너무나 신비하고 항상 나를 놀라게 하는 나라였다. 정신을 차리고 휴대전화를꺼내서 영상을 찍었다. 이거는 바로 감성 넘치는 글과 같이 페북에 올려야겠다. 기숙사에 돌아와 빨리 씻고 쉬려고 했는데 책상에 있는 휴대전화가 갑자기 떨리기 시작했다. 전화를 건 사람은 노대환이었다.
 
“여보세요?”
- 루이사! 뭐해?
“방금 씻고 나왔어. 왜?”
- 아. 아니다! 그냥 목소리 듣고 싶어서 전화했지.
“그렇구나!”
- 오늘 여기서 첫눈이 내렸는데!
“오늘도 여기서 첫눈이 내렸어!”
- 진짜? 그럼 루이사 인생의 첫 눈이었겠네?
“응! 맞아!”
- 축하해! 어땠어?
“좋았어! 너무 예뻤어.”
 
몇 분 동안 이것 저것 수다를 떨며 잠깐 조용해졌다. 우물쭈물하다가 드디어 그쪽에서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룸메는 왔어?
“아니. 오늘 본가 간대.”
- 아그래? 그럼 화상통화로 할까? 나 할말이 있는데.
“응? 그래.”
 
화면을 켜자 그의 이목구비가 보였다. 오른쪽 눈썹에 있는 짙은 흉터 밑에 작은 두 눈이 날 바라보고 있었다. 하얀 두 볼에 살짝 분홍빛 색깔이 보여서 호빵맨처럼 귀엽게 생겼다.
 
- 루이사. 사실은…….
말을 하다 못해 그는 동공지진하기 시작했다.
“왜? 무슨 일이 있어?”
- 아니….사실….나 너 좋아해.
“응??”
- 처음 만난 그 순간부터 진짜 첫 눈에 반했어. 너무 착하고 귀여워서. 계속 연락하다 보니까 진짜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해서 드디어 용기를 내서 내 마음을 전할 수 있어.
 
뭐라고 대답해야할 지 몰라 나는 그의 시선을 피하기 시작했다.
- 지금 대답을 듣고 싶어서 하는 게 아니고 그냥 내 마음을 알려 주고 싶은 것뿐이야. 부담을 줘서미안해,지금 당장 대답 할 필요없어, 진짜로!
 
“음….사실 나 여기로 와서 연애할 생각이 별로 없어. 어차피 나도 곧 귀국할 거고 연애는 처음이다 보니까 하자마자 장거리 연애하는 것도 힘들 것 같다.”
 
- 이해해. 잘 알고있어. 나도 요즘 알바하느라 바빠서 서울 못 올라가고 너도 여기로 올 수 없으니까 다시만날 기회가 더 이상 없을 것 같아서 진짜 아쉽지만 그래도 오늘 첫 눈이라서 고백하고 싶었어.
 
살짝 마음이 흔들렸다.
“아! 고마워, 고마운데 나는 아직 잘 모르겠어….”
 
- 괜찮아! 괜찮아! 부담갖지마! 이대로 계속 연락하면서 지내면 돼! 친하게 지내자고! 아하하! 미안해! 놀랐지? 놀랬겠지….근데 진짜 계속 친하게 지내고싶어!
“알았어.”
- 응! 고마워! 그럼 이제 쉬어! 잘자! 끊어~!
 
 
*** 에필로그
한국에서 돌아 온 지 두 달이 되었다. 그동안 매일 꼬박꼬박 그에게 문자와 전화를 받고 있었다. 나랑 잘맞는 그 사람. 말을 많이 안 하지만 항상 따뜻한 눈빛으로 날 바라보는 그사람. 매일 빠짐없이 그가 하는말은 하나 있었다.
‘날 기다려줘. 나도 널 기다릴테니까.’
한국에 보내는 동안 좋은 경험과 좋은 인연을 얻었다. 이제 한국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은 이유가 생겼다.
물론 다시 돌아가고 싶게 만드는 것들이 많지만 제일 큰 이유는 그대를 다시 만나러 가야 되는 것이다.
 
 
*** 수상소감  
 
안녕하세요. 저는 올해 한국 나이로 24살 햐신타 루이사라고 합니다. 이렇게 큰 상을 받을 수 있어서 너무 영광입니다. 우선 좋은 기회를 만들어 주신 한국문인협회 인도네시아 지부에게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이 공모전에 대해 알려 주신 저희 회사 김해수 사장님, 그리고 제가 쓴 소설에 가명으로 등장하고 제 한국 생활을 빛나게 해주신 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말씀 꼭 전해 드리고 싶습니다.
 
2016년에 제가 한국으로 혼자 떠났습니다. 한국은 낯선 나라였지만 따뜻한 사람들 덕분에 낯설지 않은 나라이고 저에게 두 번째 집 같은 나라가 되었습니다. 한국에서 난생 처음으로 경험해 본 것들이 무척 많았고 주변에서 저를 챙겨주신 분들 덕분에 좋은 추억들을 많이 만들었습니다. 이제는 거의 1년 반 정도 지났지만 한국에 있는 추억들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한국 너무나 그립습니다.
 
작년 9월에 대학교 졸업했고 이제 회사를 열심히 다니고 있습니다. 다시 한번 기회가 된다면 한국으로 또 가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저는 한국어학과 학생이 아니었고요 2015년에 독학으로 한국어를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아직은 많이 부족하지만 이 뜻깊은 상을 받아서 한국어를 더 열심히 공부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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