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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인협회 인니 지부 (208) 고구마 사건 / 문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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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산책
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22,851회 작성일 2022-04-29 09:33

본문

<수필산책 208>
 
고구마 사건
 
문인기 / 시인 (한국문협 인니지부 회원)
 
 
어제는, 파라볼라로 시청하는 CGN TV를 통해 다큐멘터리 영상을 보고 눈물을 진하게 흘렸다. 캄보디아에서 봉사하다 갑자기 세상을 떠난 한국인 청년의 생전 사역지를 두루 비춰주는 영상이었다. 이미 떠나고 없지만 그곳에서의 짧은 삶의 모습을 자료화면과 돌아가신 분을 회상하는 캄보디아인들의 인터뷰 멘트로 진솔하게 편집하여 감동을 주는 특집이었다. 잔잔한 애도 분위기 속에서 이어지는 영상은 채널을 바꾸지 못하게 끌어당기는 흡인력이 있었다. 홀로 남은 아내가 눈물로 남편의 유골을 안고 한국으로 갔다가 캄보디아로 돌아와 눈물을 닦고 남편이 다하지 못한 섬김을 다시 이어가고자 하는 결의를 잘 담은 다큐였다.
 
부부가 함께 캄보디아를 섬기다가 먼저 떠나버린 남편으로 인해 감당하기 힘든 슬픔과 빈자리의 지쳐 있던 몸과 마음을 추스르고 용기를 내어 그곳을 다시 찾을 때 제작진이 동행한 것이다. 자녀가 없는 것을 보니 결혼한지 오래되지 않은 젊은 부부 같은데 신혼이 한창일 때에 부인만 혼자 남겨진 것이다. 그런 그녀에게 설상가상 난치병까지 덮친 것이다. 이 부부가 슬픔을 겪기 전까지 섬겨오던 사람들과 재회하는 모습에서 나는 왜 눈물을 흘렸던 것일까?
 
그들을 지켜봐 온 한국교민들의 술회에 의하면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그 젊은 일꾼은 한마디로 말해 자신의 전부를 캄보디아 인들에게 주고 갔다는 것이다. 마른 수건을 비틀어 짜듯 자기의 사랑 모두를 나누었다고 말한다. 이 대목에서 또 눈물이 났다. 내가 그렇게 살고 있어 공감이 가서도 아니고, 그렇게 못살고 있는 것으로 인해 가책이 되어 눈물이 난 것도 아닌데 자꾸 눈물이 흘렀다. 다만 나도 저렇게 세상을 떠나게 된다면 그 후에 주위의 지인들이 나를 어떻게 회상하며 평가할까 문득 상상하는데 울컥 눈물이 났던 것이다. 이런 눈물을 최근 자주 경험하는 것은 나도 이제 정든 이곳을 머지않아 떠나야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그런 것 같다.
 
16년간 이 곳에서의 삶이 얄팍하나마 내 마음으로 사랑에 젖은 이웃과 물건들, 산책길에서 매일 바라본 풍경, 내가심은 나무 한 그루와 야생초 화분까지도 바라보노라면 전에는 못 느꼈던 복 바치는 감회를 주체할 수가 없다. 눈물이 흔해진 것을 종심(從心)의 나이를 넘기고 나서 더욱 자주 경험하게 되었다. 영상이나 드라마에서 조금만 나의 삶과 오버랩 되는 부분이 있어도 눈물이 솟는다.
 
이곳 인도네시아로 오기 전 나는 9년을 서울 6개 대형 병원 병동을 매일 번갈아 가며 고정적으로 섬겼던 적이 있다. 당시 중풍이나 난치병으로 오래 누워 계시는 연세 드신 분들은 하나같이 내가 다가가면 바로 어깨를 들썩이며 울음을 터뜨리는 모습을 자주 보았다. 그분들을 보며 “저분들의 눈물의 의미는 무엇일까? 왜 저렇게 갑자기 우시는 걸까?”를 생각해 본적이 있다. 그 당시에는 오랜 병상생활로 자유롭지 못해서 변해버린 자신의 모습을 남에게 보일 때 연민에 빠져 우시는가 보다 생각하였다.
 
그러나 지금 내가 병상에 누워있는 것도 아니건만 그와 같은 눈물, 즉 어깨를 들썩이며 울음을 터뜨리는 상황에서 그 눈물의 의미에 근접한 연유를 이해하게 되는 공감을 느끼게 된 것이다. 무어라 그 의미나 이유를 한마디로 명확하게 표현할 수는 없지만 심중에 이해가 되는 그런 공감이다.
 
이슬람의 라마단 금식기간 중 올해는 함께 금식을 하게 되었다. 내 나이 17세 때 나의 선친은 세상을 떠나셨다. 선친께서는 환갑을 넘기자 별세하신 것이다. 장기 금식을 하신 후 조리를 잘 못하시어 세상을 떠나셨다. 그래서 금식이라는 단어를 대할 때면 아버지가 생각나며 그분이 그립다. 매번은 아니지만 라마단 금식 때 무슬림이 아닐지라도 나는 선친을 생각하며 금식에 동참할 때도 있어 나름의 기도제목을 갖고 기도한 적이 있다. 올해는 마음을 단단히 먹고 금식을 같이하는 중에 실천해야 할 좋은 일을 생각하고 행동으로 옮기며, 행하지 말아야 할 죄악 된 생각이나 행동을 버리려는 의도적 몸부림을 이어가고 있다.
 
사실 무슬림의 금식도 이슬람 율법에 의하여 일 년에 한 달을 금식으로 지키지만, 이 금식을 통하여 절약한 식품 비 정도 이상을 금식이후 소외된 이웃을 위하여 ‘자카트’라는 명칭으로 자선을 베푼다고 들었다. 참 좋은 목적과 실천의 이유를 가진 금식이라 생각한다. 그런 진리 안에서 진정한 사랑의 은혜를 받았다 믿고 있는 나도 금식의 바람직한 목적을 갖게 되었다. 이웃을 생각하고 경제적으로 더 어려운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하며 실천하는 금식이 되도록 묵상하며 금식을 하고 있는 것이다. 자선의 실천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를 묵상하며 금식이 단순히 인내의 훈련처럼 굶는‘금식’이 안 되도록 마음을 가다듬게 된다. 선친께서 돌아가시기 전 금식하셨을 고통을 헤아려 보는 일석이조 금식이 되었으면 의미가 더욱 있겠다는 생각도 해본다.
 
 
농부로서 하늘에 감사하는 일이 금식 중에 있었다. 작년 말 밭에 심은 한국종자 고구마 농사가 풍성한 수확을 거두었다. 고국에서 고구마 줄기 150개정도를 가져와서 1년 반 만에 이곳 열대 기후에 잘 적응하는 고구마로 체질을 만들어 성공적 결실을 이룬 것이다. 작년에 이어 두 번째로 큰 수확을 거두었는데 이번에 캔 고구마는 모양과 색이 제 모습을 이루었고 맛도 무척 달았다. 수확한 것의 10%인 200kg은 이웃과 나누기로 마음먹었기에 금식기간 중이지만 일차로 캔 것 중에서 100kg을 이곳에 와서 여러 분야에서 섬기며 수고하는 일부 교민 가정과 함께 나누었다.
 
“이번 시즌 한국 고구마 '달수'의 경작이 풍년이라 여기와 수고하시는 존귀하신 분들 가정에 조금씩 나누어 맛보시게 할까합니다. 그렇게 단톡방에 공지하고 집 주소를 보내었다. 나는 부지런히 시내에 가서 플라스틱 봉지 50매를 사서 담기 시작하였다. 한 가정에 삼킬로그램이 적당한 것 같았다. 대상이 삼십가정 정도가 될 것이라 짐작하고 삼 십 봉지를 골고루 섞어서 정성껏 담았다. 피치 못할 일정으로 아침에 외출을 하면서 집에서 일을 돕는 인니 자매에게 “오늘은 바쁜 하루가 될 것이니 대문을 두드리는 사람이 있나 귀를 기울이고, 한국어로 이름을 적은 메모를 들고 오는 사람마다 고구마 한 봉지씩 전하면 된다.”고 당부를 하였다.
 
오후 늦게 집으로 돌아오니 자매가 퇴근을 하면서 말하기를 다녀간 사람은 세 사람 뿐이라 하는 것이다. “에게! 그게 정말이여?”말하였더니 “많이 올 것이라 하시더니 사람들이 안 오던데요.”하였다. 나는 조금 당황한 얼굴로 “한국이 가난했던 시절 하도 고구마를 자주 먹어서인지 사람들이 고구마를 반가와 하지 않나 보다.”라고 대답은 하였지만 은근히 서운한 마음도 들었다. 한편으로는 내가 괜한 짓으로 사람들에게 부담을 드렸나 하는 자책도 되었다.
 
왜냐하면 작년 말 있었던 일로 나는 작은 트라우마를 갖고 있어서다. 한 분 어려움에 처한 교민에게 쌀과 식용유, 설탕, 홍차, 마스크, 손세정제, 치약 칫솔 등 일용품을 넣은 한 자루를 전했다가 서운한 감정의 직설적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나름 생각하기를 쌀도 내가 평소 먹고 있는 좋은 품질의 쌀이고, 다른 물건도 좋은 품질의 상표로, 생필품도 내가 쓰는 종류의 생필품으로 준비하여 전하니 아마 잘 쓰시겠지 했다가 큰 실례를 범한 것이다. “우리 가정을 어떻게 본거야!”라고 느낄 정도로 자존심에 상처를 안긴 결과가 되었다. 그 후 그분을 찾아가 사과를 하고 용서를 구했지만 다시 안 만나기를 원한다는 말만 듣고 돌아온 일이 있었기에 이번 경우도 내가 고구마를 괜히 드려 자존심을 상하게 했구나 생각하니 얼굴이 붉어지며 부끄러웠다. 더 깊이 생각 않고 행동한 것이 단체 카톡방에서 ‘나오기’를 누르고 탈출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을 보내어 고구마를 받아 가신 세 가정의 가장들에게 개별로 정중한 메시지를 보냈다. 별것도 아닌 것을 받아가 주셔서 대단히 감사하다며 혹시 기분을 상하게 해드리지는 않았는지 모르겠다는 문자를 보냈다. 유독 건강에 관심이 많아 고구마가 몸에 좋다는 기사를 읽고는 그대로 믿고 즐겨 먹는 나에게는 맛있고 유익한 식품이 되겠지만 다른 사람도 그렇게 반기는 것은 아닐 수 있다는 것이다.
 
인도네시아 고구마도 한국 고구마 이상으로 달고 맛있는데 무슨 대단한 고구마라도 되는 양 와서 받아가라 하였으니 선뜻 받아 가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하니 한숨이 나왔다. 집집이 배달을 하는 것이 선물을 주는 측의 도리인데 그러지 못했던 것도 원인의 하나이리라. 삼십여 가정의 위치를 내가 일일이 다 모른다는 것이 이유가 될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이번에도 베푸는 실천에 있어 안이하게 생각하였던 것이 틀림없다. 그렇게 보면 베풀고 나누는 일이란 쉬운 것이 아니며 주는 측으로서 상대를 배려하는 지혜가 꼭 필요하다는 것을 다시금 뼈저리게 깨닫고 배우는 계기가 되었다.
 
이 글쓰기를 마쳐가는 중에, 매일 두 차례 화상통화를 하는 인디아에 있는 아홉 살 손자가 저녁인사로
“할부지! 저녁진지 잘 드셨어요?”하길래 “그래, 착한 우리 손자, 이 할애비는 조금 전 저녁을 배불이 잘 먹었다. 보고잡구나!”하고 대답하는데 울컥 이유 없이 눈물이 또 솟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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