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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인협회 인니 지부 (212) MZ 시대의 유교(儒敎) 보이를 응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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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산책
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14,949회 작성일 2022-06-03 09:58

본문

<수필산책 212 >
 
MZ 시대의 유교(儒敎) 보이를 응원하다
 
이병규/ 한국문협 인니지부 회원


우리 사무실에는 A씨라는 한국 사람이 근무하고 있다. 2년 전 쯤 코로나가 막 시작하기 바로 직전에 이 곳 자카르타로 발령 받아서 나온 분인데 나이는 40대 중후반에 딸 둘이 있는 전형적인 중년의 직장인이었다. 본사에서는 아프리카와 동남아 지역을 두루 담당한 영업 전문 인력으로 인도네시아 장사 한번 잘해보라고 보냈다고 한다. 지난 2년간 코로나 상황에도 그럭저럭 잘 버티고 있고, 몇번의 위기가 있었지만 그 때마다 운 좋게 위기를 잘 넘겨 본인 스스로 꽤나 자부심이 높다. A씨는 끝까지 아니라고 주장하는데, 대화를 하다 보면 경상도 억양이 느껴지는 게 경상도 어디쯤이 고향인 것 같은 데 아무튼 본인은 죽어도 서울이 고향 이란다. 그럼에도 경상도 어떤 지역 이야기가 나오면 술술 나오는게 참… 사람들이 의아하게 어찌 서울 사람이 경상도에 대해 그리 잘 아냐고 물으면 친척들이 그 지역에 살아서 그렇다며 어물쩍 넘어갔다.
 
 
그럼에도 롯데 야구에 진심인 서울 사람 A씨가 최근에 한번 이슈가 된 적이 있는데 대충 스토리가 이러하다.
 
르바란이 막 끝난 몇 주 전, 출근한 지 한참 지나 9시가 다 되가도 연휴의 여흥이 가시지 않았는지 직원들이 계속 떠들고 있길래 내가 한마디 할까 했는데, 서울 사람 A씨가 뜬금없이 “Harap tenang aja di kantor! (사무실에서 좀 조용히 해!)” 라고 버럭 한 것이었다.

딱히 조용히만 지낸 사람은 아니었으나 지난 2년간 그렇게 큰 소리를 낸 적이 없던 A씨였는데 현지인들에게 냅다 고성을 내지른 것이었다. 그런데 그 소리를 들은 직원 B의 대응이 가관이었다.

“Pak, Sekrang Kami kerja (우리 지금 일하는건데요)”라며 되바라지게 대꾸를 한 것이다. A씨는 잠시 어리둥절하다가 이내 정신을 차리고, 그 직원(B라고 하자)에 당장 자기 자리로 오라고 또 한번 버럭 했다. 아침부터 르바란 휴무의 후유증으로 심신이 미약한 상태였는데 이런 꿀 잼을 선사받다니. 아주 흥미진진한 마음으로 내 자리에서 돌아가는 상황을 관전키로 했다. 굳이 내가 나서서 말려야할 상황까지는 벌어지지 않을 것이기에.

직원B가 A씨 자리로 꾸물꾸물 갔고 A씨는 다가오는 직원 B에게 어떻게 Boss한테 그런 소리를
하냐고 무슨 업무를 했길래 사무실에서 그렇게 큰 소리로 떠들어야 하는거냐며 시끄럽게 할거면
회의실로 가라고 버럭 했다. 덧붙여서, 본인 앞에서 바지춤에 손 꼽고 있는 꼴을 못보겠으니 당장
빼라고 소리를 한번 더 질러줬다.
 
직원 B는 그 앞에서 당돌하게 A씨도 호주머니에 손 넣고 있는데 왜 나만 뭐라고 하냐며 대들었다. 거기서 더 폭발한 A씨는 직원 B를 데리고 회의실로 들어갔다. 회의실이 떠나 갈 듯 고성이 오갔는데 나와 몇몇 사람들이 도저히 안되겠다 싶어 회의실에 들어가서 둘을 말렸다. 각각 따로 불러서 직원 B는 현지인 Head가 한국인 A씨는 한국인인 내가 따로 달래면서 어떻게 사건은 끝이 났다.

오후에 현지인 Head가 와서 잠깐 이야기 좀 하잔다. 직원 B가 젊어서 그렇고 나이 먹은 우리가 꼰대처럼 굴지 말고 젊은 사람들을 좀 이해하고 존중할 필요가 있다는 게 그의 말이었다.

나는 생각이 동의 할 수 없었다. 이건 젊고 아니고의 문제가 아니라 기본적인 예의의 문제이고 직원 B는 자기보다 한참 높은 직급의 A씨에게 기본적인 예의를 지키지 못한 거다 라고 나는 대답했다. 내가 나이가 들어가서 그런지 이런 식의 꼰대 Frame에 자꾸 가두려는 사람들의 논리가 참 불쾌했다. 직급과 나이에 대한 존중은 있어야 하지 않나? 서로 적정 선에서 “알았다”라고 하고 끝을 보지 못하고 돌아와 자리에 앉는데 본사에서 메일 한통을 받는다.
 
요약하자면, 우리 회사는 올해부터 사내 상호 존중 문화 정착을 위해 그 동안의 회사 내 직급을 모두 없애고 이름 뒤에 “~님”을 붙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이제 나는 “XX 직급님”이 아니라 “XX 님”으로 불리게 된다는 이야기다.

여러 회사들이 몇 년 전부터 직장 내 호칭과 관련된 변화를 여러 번 시도를 했는데 번번이 좋은 성과를 내지 못했다. 영어 이름으로 부른다거나 이름 뒤에 “XX 프로님”으로 부른다거나 호칭이나 직급으로 인해 사내에서 벌어지는 상하 직급 간의 충돌을 피하고자 한 시도였으나 딱히 그리 정착되지 못하고 흐지부지 끝났었다. 회사에 외국인 비중이 점점 늘어나고, 사내 상하 직급의 충돌이 이슈가 되다 보니 궁여지책을 마련한 제도 같은데 MZ 세대들의 사회 진출이 늘어나면서 이들의 요구가 수용이 된 건지 이번에도 유사한 종류의 정책을 또 시행한다고 한다. A씨가 내려가서 커피 한 잔 하자며 내 자리로 왔다. 뭐 결국에는 아침에 있었던 이야기에 대한 울분을 토한 것인데, 아침 사건 이후 받은 본사의 메일도 화두가 되었는데 A씨의 말은 이랬다.

“내가 진정 남에 대한 존중의 마음 없이 어떤 사람을 대할 때 그게 진심이 아니라면 진짜 존중이 생기는 걸까? 호칭만 바꿔 부른다고 정말 평등한 사회가 될까? 주변에 이런 이야기를 하면 우리가 늙어서 그렇다고 한다. 그렇다고 한다면 난 소위 말하는 꼰대가 될 것이다. 젊은 세대들은 흔히 이런 고리타분한 이야기를 하는 사람을 보면서 꼰대라고 비하하는데, 물론 상식 선을 벗어나는 몰지각한 사람들이 있지만 그건 나이가 문제가 아니라 그 사람의 인성이 문제인 것이다. 엄연히 분리되어 이야기되어야 할 것이 자꾸 엮여서 나이 들면 예의가 없는 무례한 사람으로 취급을 한다. 솔직히 이야기를 해보자. 예의로 따지자면 나이 든 사람들이 더 따지지 요즘 젊은 사람들 부모들 밑에서 뽀시랍게 자라서 예의는 오히려 자기들이 더 없는 것 같은데 말이지. 젊다 세련됐다 라는 허울에 덮여 우리는 오히려 윗 사람이 아래 사람을 챙겨주고, 아랫 사람이 윗 사람을 공경하여 위와 아래가 서로 도와주며 살던 그 시절의 정겨움을 생짜로 무시하고 사는 건 아닌가? 왜 우리더러 꼰대라고 경우 없는 사람들로 비하하는 건지 모르겠다.

아침 사건이 직원 B가 젊고 내가 나이가 있는 게 무슨 상관이 있는 것인지 그저 본인은 사무실에서 웃고 떠들고 있는 직원을 바로잡고자 한 것이고 윗 사람과 이야기 하는데 버릇 없이 호주머니에 손을 꼽고 있는 것을 고쳐 주려 한 것뿐인데 다 싸잡아서 꼰대로 취급 받는 게 불쾌하다“ 딱히 틀린 이야기가 없는 것 같아 고개를 끄덕이며 호응을 해줬다.

돌이켜 보면, 나도 본사 담당자한테 내 직급으로 부르라고 한다. 나이 차이가 띠 동갑보다도 더 나는 녀석이 지난번에 “XX 님”이라고 하길래 잔소리를 한 바가지 해줬더니 그 다음부터는 꼬박 꼬박 직급을 붙여서 이야기한다. 그리고 간혹 예의에 어긋나는 일이 있으면 잔소리를 하는 편이고, 그렇다고 내가 그를 아래 사람 취급하거나 무시하는 일은 없다. 내가 회사 선배니 그 대접을 받는 것이고, 후배는 선배를 대우하는 만큼 가르침을 받고 또 사랑과 이해를 얻어 가는 것이다.

우리는 꼰대인가? 그가 마지막으로 나에게 물어봤다. 꼰대라는 말이 썩 어감이 좋지는 않지만 그게 윗 사람으로서 존중으로 받고 그 만큼 아래 사람에게 나의 경험과 삶의 지혜를 공유하는 그런 사람이라면 나도 당당히 꼰대가 될 것이다. 오늘부터 나는 21세기에 아직도 장유유서의 유교 철학을 벗어나지 못한 유교 보이 A씨를 응원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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