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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인협회 인니 지부 (223) 저기, 저 이별이 우리에게도 온다! /강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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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산책
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1,149회 작성일 2023-03-14 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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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저 이별이 우리에게도 온다!


강인수(한국문협 인니지부 재무국장)


한국에서부터 만리타국 떨어진 미국도 아닌, 그저 그 반의 거리에 사는 나는 근래에 많은 이별을 겪었다. 너무 오래 밖에 있었다는 느낌이 들 무렵 나의 사람들이 떠나갔다. 인간은 영원히 살지 못한다는 사실, 그것을 알면서도 나에게는 닥치지 말아야 하고 급히 오지 않을 것이라는 죽음에 대한 망각의 버스는 시속 오 킬로의 속도로 천천히 오고 있다. 


삼 년 전, 나는 부산에서 시어머니의 은빛 머리칼을 검게 염색을 해드리고 핀잔을 들었었다. “니는 와 이리 대충하노?” 어머니는 옆머리가 마음에 안 드셨는지 빗질을 하시며 손이 여물지 못한 나를 당혹스럽게 하셨다. 


몸이 아프신 탓에 미용실 외출이 어려운 상황인지라 비뚤어진 머리도 좀 가위로 다듬어 드렸다. 예쁘게 잘린 머리카락이 마음에 드셨는지 가볍다고 좋아하셨는데, 그날이 내게는 어머니와의 한국에서의 마지막 만남이었다. 가족들이 모를 만큼 조용히 잠들다 가셨다고 했는데 세상과의 이별은 그렇게도 짧고 단순했다. 


그리고 다시 아버님이 몇 달 전 아흔을 조금 넘기신 나이에 우리와 고별을 했다. 돌아가시기 전, 크리스마스 그날 전화를 받았었더라면 이렇게 아쉽지 않았을 텐데 아쉬움은 겨우내 찬바람에 엉켜서 속앓이를 하게 한다. 


의학과 의료기의 발달로 인간의 수명이 길어져서 백세를 꿈꾸는 세상이 왔다는데 병이 들었을 때 나는 삶을 연장하려는 애씀을 할 것인가, 존귀한 죽음을 위해 연명치료를 하지 않고 담담히 준비할 것인가 한 번쯤 고민해야 할 것 같다. 


어제 만난 지인이 이어령 선생님의 죽음을 상세히 들려주는데 다시 한 번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순간이었다. 그 분의 선한 마지막을 상상하니 죽음에 대한 위안이 대지에 젖는 비처럼 가슴에 스며든다. 


선생님 돌아가시기 이 주 전, 그녀가 댁에 찾아 뵈었을 때 카랑카랑했던 목소리는 여전히 제자를 만나는 그 순간에도 힘이 있고 눈빛이 강렬하게 빛났다고 한다. 


대장암으로 투병하시면서도 연명치료를 선택하지 않고 끌고 온 투병 생활은 지적 거장의 마지막 가는 길을 고통스럽게 괴롭히지 않았으리라 생각되었다. 가족들이 보는 앞에서 아주 편안히 의식의 꺼짐을 천천히 느끼며 평화롭고 존귀한 죽음이라 여겨질 만큼 세상과 이별을 고하셨다고 한다. 


살면서 죽음의 형태를 부러워 해 본 적 있는가. 나는 있다. 잘 죽는 그 부러움은 젊은 시절부터 신문이나 잡지를 보며 오려서 스크랩북에 모아 둔 적이 있다. 죽음은 호흡이 멈추고 심장이 멈추고 뇌 활동이 멈추는 것이다, 나를 구성하는 세포들이 이제 할 일을 다 하고 잠들 때 비로소 누리는 편안한 내려놓음, 그것이 죽음이다. 


그런데 준비를 못 하고 급하게 떠난 사람들은 얼마나 억울할까 싶다가도 시한부를 선고 받은 사람들의 남은 삶에 대한 우울함은 또 얼마나 힘들까 생각해 보면 쉬운 문제는 아닌 것 같다. 


그렇지만 용서하고 화해할 시간이 남았다는 건 우리에게 선물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제는 마른 나뭇잎 덤불 사이에서 콩콩 뛰는 까치를 보며 저 가벼운 몸이 뭐라도 먹겠다고 땅을 콕콕 찍는 모습에 새삼 경이로웠다. 


이제 ‘이 겨울이 지나가는 구나’라고 생각이 든다. 곧 다시 올 봄은 치렁치렁 꽃 치마를 입고 세상을 아름답게 흠뻑 젖힐 것이다. 봄은 헌 사람을 보내고 새사람을 받아 낼 준비를 할 것이다. 나는 헌 사람에 속해 가고 있는 중이므로 이 지구상에서 생물학적 소멸을 맞보게 될 또 하나의 노인이 될 것이다. 


우리 아버님과 어머님 이어령 선생님 그분 들 모두 자신의 집에서 돌아가신 걸 보면서 75%의 환자가 아직도 병원에서 죽는 현실은 안타까운 사실이다. 어느 날 비싼 주사를 소개받았다고 우울해하던 후배는 폐 섬유화로 고생 중이다. 의사는 무덤덤하게 한 대에 오백만 원이나 하는 신약을 추천했다고 해서 고민하고 있다. 


“언니, 너무 비싸! 한 대에 오백만 원이라니!” 


나는 소고기나 실컷 먹고 쉬고 자고 웃고 하라고 말하고 싶었다. 언제까지 살지 모르겠다고 담담히 웃는 그에게 힘내라는 한마디 밖에 못하지만 삶은 지극히 개인의 것이므로 그저 위로만 할 뿐이다.

 

삶이 미치도록 기쁜 일이 있어도 너무 기뻐하지 말 것은 어쩌면 너무 빨리 저기 저 이별이 우리에게 올 수도 있기에 겸손히 삶을 살아야겠다. 넘치는 활력과 건강을 뽐내고 싶어도 스스로 자만하지 말아야 한다. 내일이라도 우리를 싣고 떠날 꽃마차가 코앞에서 대기하고 있을지 모르니까 말이다. 


중요한 사실은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과 나에게도 저기 저 이별의 버스가 시속 3킬로 또는 시속5킬로의 속도로 천천히 오고 있는 중이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우울하고 슬퍼할 일만은 아니다. 들풀 한포기 한 줌 햇살도 세상에 와서 누군가에게 행복을 주고 살아가는 이유를 누리므로 우리도 오늘이 즐거울 땐 충분히 즐겨야 하지 않을까. 모두가 꿈꾸는 웰 다잉을 맞이하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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