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회 적도문학상/수필부문 우수상] PANDEMIC 터널을 지나온 우리/ 한지영 > 한국문인협회 인니 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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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인협회 인니 지부 [제5회 적도문학상/수필부문 우수상] PANDEMIC 터널을 지나온 우리/ 한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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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산책
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942회 작성일 2023-07-05 0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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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NDEMIC 터널을 지나온 우리


한지영


지난 3년간 우리는 한 번도 상상해 본적이 없는 감염병의 공포를 실감하며 살아왔습니다. 비단, 저만 느꼈던 것은 아니겠지만, 메르스나 사스가 발생했던 과거 시절에 경험하지 못했던 극한의 공포를 실감했고 일상의 상실을 경험했던 3년간의 팬데믹이었습니다. 

 

처음 우한 폐렴이라는 말을 뉴스에서 들었던 2019년 말, 이전처럼 나와 가깝지 않은 어느 곳에서 일어나는 일로 스쳐 지나갈 것이라고 생각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습니다. 여느 때처럼 한국을 다녀온 후 인도네시아에서 일상을 살아가던 2020년 1월 중순, 뭔가가 큰 일이 생기고 있다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업무를 진행하던 중국 거래 업체들의 작업 일정이 우한 폐렴의 영향으로 변동되기 시작했고, 우한의 봉쇄와 세계 각국에서의 발병 확산으로 위기감 커졌고, 사태는 겉잡을 수없이 악화되기 시작했습니다. 


한국에서도 발병이 확인됐던 2020년 2월, 이때만 해도 우한 폐렴은 더위에 약하기 때문에 열대 기후를 가진 인도네시아는 비교적 안전할 거라는 예측이 있었고, 불안한 안도감 속에 나날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예측은 빗나갔고, 3월 인도네시아에서 첫 확진자가 발생하면서 이곳에서도 빠른 속도로 코로나가 확산되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확산된 코로나-COVID 19은 우리의 일상을, 세상의 흐름을 모두 엉망으로 만들어버렸습니다. 아이들이 학교에 등교할 수 없게 되었고, 모두가 마스크를 의무로 착용해야 했고, 진행하던 오더들이 엉망진창으로 취소가 되거나 연기가 되기 일쑤였습니다. 업무가 되어야 하는 일터에서는 인원 조정을 하면서 사무실 밀집도를 낮추거나 사무실 근무가 필수적이지 않은 곳은 재택근무로 전환해야 했습니다. 


경험해본 적 없는 PANDEMIC의 일격에 우리가 당연하게 누려왔던 일상은 처참하게 망가져 갔습니다. 하루하루 그저 잘 버티어 낼 수 있기를 간절하게 바랄 수밖에 없었습니다. 엄마이지만 직장에서는 직원이었던 저는 등교를 할 수 없어서 생전 해 본적 없는 온라인 수업으로 학업을 계속해야하는 아이들을 집에 둔 채로 일터로 향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저 소독제와 마스크에 의지하면서 닦고 또 닦고, 집에 들어오기 전 눈감고 몸에 소독약을 뿌리며 집에 있는 아이들이 나로 인하여 감염되는 일이 없기를 바라고 또 바랬습니다. 


처음 1년의 PANDEMIC은 모두 당황하여 뒤죽박죽 허둥대며 시간을 보내기에 바빴다면, 2년차 PANDEMIC 즘에는 잃어버린 일상에 어느 정도 적응한 듯, 체념한 듯 살아갔던 것 같습니다. 조금씩 백신과 치료제에 대한 희망이 생기기 시작했고, 병에 대응할 수 있는 힘이 조금씩이나마 생겨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단체 생활을 해야 하는 학교는 쉽게 문을 열수 없는 곳이기에 언제 다시 학교로 아이들이 돌아갈 수 있을지 여전히 예측할 수 없었습니다. 


그 사이 사춘기에 접어들던 둘째 아이는 온라인 수업이 지속 될수록, 외출이 자유롭지 못한 환경이 지속될수록 방 밖으로 나오지 않았습니다. 수업태도, 학업 수행 능력도 점점 더 악화되어 갔습니다. 직장에서 선생님을 통해 받는 아이에 대한 부정적인 피드백이 많아졌습니다. 그로인해 저 역시 아이에게 부정적인 태도를 갖게 됐습니다. 자유로운 외부활동이 되지 않는 환경 속에서 아이들이 느꼈을 심리적인 제약, 답답함과 사춘기가 맞물리면서 아이는 심리적으로 위축되었고 자신을 가두고자 했습니다. 


2년차 PANDEMIC을 지내오던 이때가 잃어버린 일상에 대한 그리움도 가장 크게 다가온 때였던 것 같습니다. 나아질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이 되레 그 그리움을 더 크게 만드는 이유가 되기도 했습니다. 돌이켜 보면 희망 고문이 가득했던 PANDEMIC 2년차였습니다. 


방 안으로 숨어버린 둘째 아이를 보면서, 무언가 결심을 해야 했습니다. 저 아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내가 뭘 어떻게 해줘야 하는지……. 이 고비를 넘길 결단을 내려야할 때라고 생각했고, 고민 끝에 저는 십 수 년을 지속해온 직장생활을 그만두기로 결정했습니다. 일을 통해 제 자신의 존재 가치를 확인해 오던 저에게는 중대한 결심이었지만, 앞으로 살아가야 할 날이 많은 아이를 위해서 당시 저는 반드시 아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아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바쁘게 직장생활을 하는 중에는 집에 와서도 집안일과 아이들 챙기는 일에 바빴기 때문에 아이들의 이야기를 집중해서 들어주기 어려웠습니다. 집에 머물면서 아이와 직접 부딪히기 보다는 객관적인 시각을 가진 심리상담 선생님을 통해서 아이의 진솔한 이야기를 꺼내고자 노력했습니다. 그리고 그 노력을 통해서 아이는 많은 이야기를 저에게 전했습니다. 저 역시 아이의 말과 생각을 존중해주고, 아이와 교감 나누는 연습에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의 코로나 3년차는 답답하고 막혀 있었던 사춘기 딸과의 벽을 허물고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는 방법을 배워가는 시간이었습니다. 


딸과 제가 우리 가족의 PANDEMIC이라는 깜깜한 터널의 끝을 향해 나오는 그 즈음 우리에게는 백신과 치료제가 생겼습니다. 끊임없이 생겨나는 변이들이 가끔씩 우리를 당황케 했지만, 그에 대응할 수 있도록 백신도 업그레이드되고, 치료제도 개발되었습니다. 이제 정말 일상 회복이라는 꿈에 가까워져 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끝이 없을 것 같기만 했던 PANDEMIC은 그렇게 점차 힘을 잃어갔고, 사람들은 이전의 일상을 회복해 갔습니다. 마스크를 쓰고, 코로나 검사를 해야 했지만 아이들은 학교에서 친구들, 선생님과 함께 수업하며 함께하는 것을 다시 시작할 수 있었고 도시의 몰에는 사람들의 발길이 늘어났습니다. WHO의 공식 ENDEMIC이 선언되면 우리는 이제 PANDEMIC과 진짜 안녕을 고할 것입니다. 


PANDEMIC은 많은 생명을 빼앗아 가기도 했고, 우리가 상상하지 못한 경험들을 하게끔 했습니다. 그것들 대부분은 부정적이고, 기쁨보다는 아픔과 좌절을 우리에게 남겼습니다. 하지만 저에게, 그리고 저희 가족에게는 ‘우리’를 견고하게 만들어주는 시간이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제껏 가져보지 못했던 마음의 여유를 가질 수 있었고 그 여유를 통해서 서로를 인정하고 함께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아주 다행스럽게도 우리의 PANDEMIC은 조금이나마 아름다울 수 있음에 감사하며 이글을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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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 소감]

안녕하세요. 기쁜 소식 전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기대도 하지 않았는데, 기대 이상의 좋은 결과로 큰 기쁨을 느꼈습니다. 

많은 분들이 동감하시겠지만, 가족과 함께 걸어가는 길이 항상 즐거운 것만도, 항상 힘들 것만도 아닙니다. 저희 가족의 진솔한 삶의 이야기를 나누고 그 이야기를 통해 수상까지 하게 되니, 가족과 함께 걸어온 모든 길이 더더욱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약력] 

1980년 2월 전주 출생

2004년 8월 전북대학교 사회학과 학사 졸업 

2004년 11월 원단 해외영업 사원으로 취업

2005년 10월 결혼 후 첫 아이 출산 

2008년 3월 워킹맘으로 직장생활 시작, 2016년 6월까지 한국에서 직장생활을 계속함 

2016년 7월 가족 모두 인도네시아로 장기 이주하여 재외국민 생활시작

2018년~ 2021년까지 인도네시아에서 직장생활 후 퇴직하여 현재 전업주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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