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인협회 인니 지부 [제5회 적도문학상/ 단편소설 부문 우수상] 에바, 애바/황영은
페이지 정보
본문
에바, 애바.
황영은
호텔 관리인인 듯한 사내는 호텔을 관통하는 계단을 오르다 보면 산으로 향하는 문이 나온다고 안내해줬다. 하루 식비로 부족하지 않을 뒷돈을 받은 입가에는 만족스러운 미소가 어려 있었다.
몇 주 전, 술자리에서 우연히 만난 선배의 말에 따르면 호텔 관리인에게 수고비 명목으로 돈을 좀 쥐어주면 호텔 입구로 출입할 수 있게 해준다고 했다. 선배의 말을 믿고 자카르타에 도착한 다음 날 블루버드(blue bird)를 타고 곧장 호텔로 들어선 참이었다.
넓고 완만한 계단을 오르자 양쪽으로 객실들이 적당한 간격으로 도열해 있었다. 폐업하고서 방치된 지 오래인 듯 미세한 균열과 이끼들이 스멀스멀 외벽을 잠식하고 있었다. 투숙객들에게 꽤나 인기를 끌었을 것 같은 야외 노천탕에는 탁하고 거뭇하게 빗물이 고여 바람의 움직임을 따라 일렁였다. 물 위에 안착한 썩은 낙엽과 나뭇가지, 시든 꽃잎이 물결을 따라 드문드문 움직이고 있었다.
스산하고 쓸쓸한 기운이 감도는 레스토랑을 지나자 작고 엉성한 철문이 눈에 들어왔다. 문을 열자 길게 뻗은 보행로가 나왔고 길이 끝나는 곳에 험난하고 가파른 돌길이 펼쳐졌다. 키 크고 울창한 나무들로 빼곡히 둘러싸인 곳이었다. 애바가 언급한 작은 호수는 어디에 위치해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어딘가에서 옅은 물비린내가 희미하게 코끝을 자극하는 것으로 봐서 내가 모르는 어딘가에 호수든 냇물이든 뭔가가 있을 거라고 짐작할 뿐이었다.
좁은 돌길에 들어서자 한 줄기 바람이 온몸을 훑고 지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빼곡한 나뭇잎 사이로 한 줄기 빛이 아슬아슬하게 비집고 들어와 뜻하지 않게 호사를 누리게 된 양지에서 작은 새싹들이 수줍게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드문드문 빈 공간을 누비는 바람소리와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소리, 새소리 등 온갖 원시적인 소리에도 불구하고 묘하게 고요해서 거친 숨소리와 발에 밟힌 작은 돌들의 배열이 바뀌는 소리가 도드라졌다.
나는 산을 대할 때마다 편안함을 느꼈다. 쏟아지는 관계 속에서 끓임 없이 타인의 처지와 상황을 고려하는 것은 극도의 피로감을 동반하는 일이었다. 아무런 의지 없이 오롯이 있는 자연을 그냥 바라보기만 해도 된다는 사실에 편안함과 안도를 느꼈다.
관계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그 사실에 안전함을 느꼈다. 수많은 지연과 단절을 동반하는 것이 관계의 속성이니까. 이렇게 산을 대할 때는 그 압도적 존재감에도 불구하고 어떤 상호작용도, 관계 형성도 불허하는 신비로움을 경험하게 되는데 그래서 등반할 땐 혼자인 것이 더 좋았다. 자연을 향한 나의 일 방향의 감정, 일방적인 정서를 섬세하게 느끼고 싶어서……. 쏟아지는 관계, 정보, 의무, 말들로부터 잠시나마 자유로워지려면 그래야 했다. 나는 얼마간 나를 중심으로 얽혀있는 관계들을 잘 풀어내야 한다는 중압감에 시달렸다. 이제는 사람이라면 넌더리가 날 지경이었다.
얼마 전, 그만 둔 보습학원의 원장은 대전교도소의 교도관이었다. 그는 공무원 겸직을 불허하는 법망을 피해가기 위해 아내의 명의를 빌려 학원을 인수했는데 마치 죄수들을 감시하듯 교실 문에 작게 뚫린 유리창을 통해 노골적으로 수업장면을 엿보곤 했다. 그러고는 수업방식에 대해 집요하게 간섭했다.
한번은 그가 학원장으로서 대성해서 국회의원이 되는 게 꿈이라는 원대한 포부를 밝혔을 때, 나도 모르게 피식 웃어버렸는데 그게 못마땅했는지 다른 선생님들이 해야 할 잡무들을 나한테 몰아주곤 했다. 동료 선생들은 나를 편들기보다 자기들 할 일이 줄어서 좋다는 듯 굴었다. 노골적으로 표현하지 않았지만 여유롭게 콧노래를 부르거나 뜻하지 않게 생긴 자투리 시간을 즐기는 모습을 보면 알 수 있었다.
원장은 급기야 급여일을 의도적으로 미루며 안달나게 했고 나는 참다못해 사직서를 써서 원장 얼굴에 패대기를 치고는 그 길로 학원 문을 박차고 나와 버렸다. 다른 직장을 구할 때까지 지속될 부모님의 염려 어린 잔소리가 두려워 충동적으로 비행기 티켓을 구매했는데 행선지가 바로 이 곳 인도네시아였다.
인도네시아를 선택한 것은 학창시절 같은 반이었던 애바에 대한 기억 때문이었다. 애바가 말한 구름이 머무는 호수에 대해 오래도록 생각했다. 아마도 고요라는 말이 생겨나기도 전, 고요의 시초였을, 모든 소리가 소멸된 상태를 최초로 경험했을 사람. 그래서 처음에는 감격보다도 두려움을 느꼈을 사람. (그 당시에는 자연의 소리가 섞인 고요가 흔했을 테니까.)
그가 느꼈을 순결하고 결백한 고요. 그런 고요의 고유한 속성을 그 곳에선 온전히 느낄 수 있을 거라 짐작했다. 그 당시 나의 내면은 세상에 대한 관대함과 관용이 증발되어 가뭄이 덮친 쩍쩍 갈라진 토양처럼 황량하고 건조해져 있었다. 그래서 그 모든 것에서 멀리 떨어져 고요다운 고요를 단 한번이라도 느껴보고 싶었다.
빗방울 하나가 소심하게 이마를 톡 건드리며 주르륵 흘러내렸다. 한껏 무거워진 먹구름이 무성한 우듬지 위로 어둡게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하산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여태 올라온 수고가 아까워 좀 더 가보기로 했다.
작은 공터에 도착해 간편한 빵으로 허기를 채우고 있는데 한두 방울 내리던 비가 순식간에 장대비로 돌변했다. 촘촘하게 내리는 빗방울이 나뭇잎과 돌에 부딪히는 소리는 귀에도 빈틈없이 박혔다. 시각적 촘촘함이 동시에 청각적 농밀함으로 변환되는 신비로움에 압도됐다. 빼곡하고 고요한 숲에서의 비란 이런 것이구나! 밀도 있게 내리는 비는 흙과 만나 순식간에 늪지대와 흡사한 지형을 만들어냈다. 발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무게만큼 진흙이 움푹 패였고, 발을 뗄 때는 절대로 놓아주지 않겠다는 듯 쩍 소리가 선명했다.
경외감은 곧 두려움으로 바뀌었다. 제발 비를 멈춰달라는 외침이 공허한 울림으로 되돌아 왔을 때에야 관계의 부재가 두려움으로 다가왔다. 보행을 방해하는 길게 뻗은 가지가, 줄기에 박힌 뾰족한 잔가시가, 발걸음을 지연시키는 투박한 돌들이, 그 무심함이 편안함에서 두려움으로 바뀌고 있었다.
‘애바’라는 이름은 인도네시아인들이 선호하는 여자이름 Eva에서 왔다고 했다. 성경에 나오는 Eve의 변형된 형태로 인생, 삶, 살아있는 생명을 의미한다고 했다. 본래 ‘에바’로 표기해야 하지만 ‘에’에 상응하는 한자어의 뜻이 죄다 ‘성내다’ 내지는 ‘쓰러지다’, ‘음산하다’처럼 비관과 어두움을 내포하고 있어 할 수 없이 사랑 ‘애’자가 자기 이름의 일부가 된 것이라고. 그 이름 중 ‘바’의 유래 또한 사연이 있었는데 일치하는 한자를 찾을 수 없어서 할머니 ‘파’의 음역자인 ‘바’를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고 애바는 말했다.
굳이 직역을 하자면 ‘할머니를 사랑하다’라는, 이름으로는 도무지 쓰일 것 같지 않은 의미가 억지로 주어진 듯한 이름이었다. ‘살아있는 생명’이라는 본래의 뜻을 상실한 채 작위적이고 부자연스러운 의미를 무겁게 짊어진 부당하고 억울한 이름. 애바는 자기 이름의 뜻을 설명해야 하는 상황에 놓일 때마다 어딘지 모르게 낯빛이 어둡게 변하곤 했는데 그럴 때면 거추장스러운 자기 이름을 무겁게 드리운 채 숙명처럼 질질 끌고 다닌다는 느낌이 강했다.
생령중학교 2학년 3반 학우들 중 애바를 좋아하거나 친하다고 할 만한 친구들은 아무도 없었다. 이따금씩 이라도 일상을 나누는 친구는 오로지 나뿐인 듯 했다. 그마저도 너무 따분하지만 잠도 오지 않을 때이거나 애바의 독특한 부분이 호기심을 자극할 때 뿐이었다.
내가 애바를 처음 알게 된 것은 1학년 초여름, 일주일을 주기로 짝을 바꾸는 날이었다. 1학년 교실들은 작은 복도를 사이에 두고 두 반이 서로 마주 보는 구조였는데 여름에는 복도 쪽으로 난 커다란 창들을 모두 열어놓는 통에 맞은편 반 창가에 앉은 친구들의 옆모습을 부득이하게 훔쳐보게 되거나 갑작스럽게 눈이 마주치기도 했다. 그 날, 나는 지루하고 쓸모없기로 명성을 떨치고 있는 한문 선생님의 단조로운 설명을 배경음처럼 흘려들으며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사랑 ‘애’자의 어원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듯 마음, 지키다, 걱정, 위로 같은 단어들이 드문드문 들려왔다. 아울러 미워하는, 증오라는 말도.
40도에 육박하는 여름의 열기로 고생하는 학생들을 살피는 것보다 비용절감이라는 현실적인 선택을 한 학교 측의 불미스러운 결단으로 그 여름, 에어컨은 가동되지 않았고 우리는 미지근하고 무용한 바람만을 만들어내는 낡은 선풍기에 의지하고 있었다. 허벅지는 땀으로 푹 절어 속치마가 점성을 띤 미역처럼 끈적끈적하게 달라붙었고 정수리에서 시작되어 마땅한 퇴로를 찾아 길게 실루엣을 그리며 흔적을 남긴 땀은 목덜미의 굴곡진 곳에 차곡차곡 고이고 있었다.
땀으로 번들번들해진 목을 훔치려는 찰나, 낯선 시선이 느껴져 고개를 들었다. 동시에 앞자리에 앉은 친구가 쿡쿡 웃으며 어깨를 들썩이고 있었다. 친구는 혼자 보기 아깝다는 듯 몸을 돌리고 내 팔을 툭툭 치며 말했다. 야, 야, 쟤 좀 봐. 크크큭! 겨울에는 얼음장 같은 칼바람 때문에, 여름에는 주저와 고민 없이 쏟아지는 작열하는 태양 때문에 늘상 붉게 상기돼 있는, 깡촌에서 바쁘고 고단한 부모에게 방치된 채 온종일 마을을 들쑤시고 다니는 아이들에게서나 볼 수 있을 법한 양쪽 뺨, 새카만 일자 눈썹, 짙게 쌍꺼풀진 눈, 2차원의 평면에 욱여넣으며 밋밋해진 풍경처럼 입체감을 상실한 납작한 코, 또렷하고 분명한 인상의 눈썹과 쌍꺼풀의 기개와는 달리 소심해 보이는 아담한 입술. 애바에 대한 강한 인상이 뇌리에 박힌 건 무엇보다도 그녀의 기괴한 머리 스타일 때문이었다.
만화에나 등장할 것 같은, 네모난 몸통 위에 얹어진, 빈틈없이 각진 로봇의 머리를 연상시키는 절도 있는 앞머리. 앞머리와 바로 이어지는 옆머리에 어떤 여지도 주지 않는, 지나칠 정도로 정직하게 반듯한 선. 앞머리 끝과 옆머리가 시작하는 부분을 자로 재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90도를 이룰 것 같았다. 논리의 비약, 불신에서 비롯된 고집, 막혀버린 탈출구, 돌이킬 수 없는 결단, 숨 막히는 강압, 동정 없는 위로……. 그 고지식하고 융통성 없어 보이는 머리를 보고 있으면 직관적으로 이런 단어들이 떠올랐다. 4B연필로 그린 듯 테두리가 분명한 눈을 가진 애바는 기대감과 두려움이 동시에 실린, 질문하는 듯한 눈으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애바를 비웃는 일에 동참하지 않았다는 결백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러고는 나도 모르게 간절해졌다. 행여라도 그녀가 오해할까 초조해졌다. 괜한 죄책감으로 잘 알지도 못하는 친구에게 미안한 감정을 느끼고 싶지 않았으니까.
해를 넘겨 2학년 교실이 있는 2층으로 교실을 옮겨 새 사물함을 정리하는데 아는 얼굴과 새로운 얼굴들이 일렁이는 가운데 애바의 얼굴을 발견했다. 그녀는 나의 눈을 피하려다 결심한 듯 나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여전히 그녀 특유의 기괴한 머리 모양을 고수한 채였다.
애바는 조용한 아이였다. 수업시간에는 멍하니 창밖을 보는 일이 잦았고 조는 일이 많았지만 미세하게 끄덕이는 정도여서 크게 지적받는 일은 없었다. 쉬는 시간에는 화장실에 가는 일 외에는 자리를 지키고 앉아있는 일이 많았다. 제법 따뜻한 봄바람이 불어오는데도 의자에는 늘상 두꺼운 코트가 걸려 있었다. 코트는 롱코트라 하기에도 너무 길어 바닥에 닿을 듯 말 듯 아슬아슬했고 불가피하게 허리를 숙일 때면 바닥에 끌려 새카만 먼지를 한껏 머금곤 했다. 의자에 걸려 있는 코트 끝자락에 위태롭게 매달려있는 먼지 뭉치가 미지근한 봄바람을 따라 한껏 허리를 꺾었다가 속절없이 제자리로 돌아오는 모습을 나는 멍하니 바라보곤 했다.
친구들은 엄마 코트 좀 그만 입고 오라며 놀려댔지만 애바는 무심한 건지 무시하는 건지 모를 표정으로 일관했다. 책상에는 도서실에서 빌려온 듯한 낡고 손때 묻은 책이 어김없이 놓여 있었다. 주의 깊게 읽는 일은 드물었고 수록된 삽화를 보거나 그 밑에 덧붙인 간단한 설명 글을 읽는 게 전부였다. 우연히도 애바 뒷자리에 앉게 된 나는 그렇게 애바의 ‘생활’을 남몰래 엿보고 있었다.
어느 날은 ‘글렌 굴드, 피아노 솔로’라는 책을 만지작거리고 있는 애바를 향해 짓궂은 말을 던졌다.
-너, 그거 안 읽었지? 아니, 안 읽을거지?
-응.
-넌 읽지도 않는 책을 그렇게 줄기차게 빌리냐?
난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샐쭉거렸다. 그러다가 글렌 굴드가 누구인지 궁금하기도 하고, 애바의 지식을 평가해보고 싶은 마음도 커서 약간은 공손한 태도가 되어 물었다.
-근데 글렌 굴드가 누구냐? 피아니스트?
-응. 캐나다의 피아니스트야.
그러더니 틈을 주지 않고 덧붙였다.
-좀 독특한 사람이야. 예전에 TV에서 봤는데 피아노를 치면서 계속 입으로 뭔가를 끓임 없이 중얼거리더라. 누가 그러는데 아스퍼거 증후군을 앓고 있었을 수도 있대.
-넌, 책도 안 읽으면서 참 많이도 안다.
나도 모르게 거친 마음이 돼서 빈정거렸다. 그러다가 이것만은 알아야 된다는 듯 참을성 있게 물었다.
-안 읽을 건데 책은 왜 빌리냐?
-그냥……. 이 사람이 좋아서. 그냥 이해가 돼서. 이 사람에 대한 책을 갖고 있는 것만으로도 좋아서. 그래서 그래.
글렌 굴드의 어떤 것이 이해가 된다는 건지 궁금했지만 묻지 않았다. 그러고는 글렌 굴드라는 사람이 과연 애바의 각진 머리만큼이나 독특한 사람일까 궁금했다.
여름방학을 일주일 앞둔 날, 우리는 제국주의에 대한 마지막 단원을 공부하고 있었다. 네덜란드령 동인도가 식민지가 된 내력에 대해 판서하는 도중, 선생님이 이제 생각났다는 듯이 애바에게 적극적인 고갯짓을 하며 말씀하셨다.
-아, 그러고 보니 애바 어머니가 인도네시아인 이시지?
애바는 순간 창백한 낯빛이 되어 뭔가 사연 있는 듯한 표정이 되었지만 단념한 듯 힘없이 말했다.
-네, 맞아요.
우리보다 한 톤 낮은 피부색과 유난히 큰 눈이 일반적이지는 않다고 생각했지만 애바가 혼혈일 거라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던 터라 우리 모두는 놀란 얼굴이 되어 일제히 애바를 쳐다보았다. 애바는 이런 식으로 이목을 끄는 것을 거부하는 듯 몸을 한껏 웅크렸다. 툭 건드리면 작은 콩알처럼 말아 세상의 관심에 저항하는 공벌레 처럼. 누군가가 발로 쳐서 사라지게 해도 미련 없다는 듯이 그렇게.
‘에바’가 ‘애바’가 된 이력에 대해 알게 된 건 그 무렵이었다. 애바는 자기 이름의 변천 과정에 대해 상세히 설명하다가 난데없이 꿈꾸는 듯한 황홀한 표정이 되어 말했다.
-우리 엄마는 정말 좋은 사람이야. 책도 많이 읽고 글도 잘 쓴다. 나중에 분명 작가가 될 거야. 아는 것도 많아서 모르는 게 있으면 친절하게 가르쳐주고 음식도 잘해. 너네 엄마는 어때?
그런 완벽한 엄마의 로봇 머리의 우스꽝스러운 딸이라니. 내가 그런 흠결 없는 엄마라면 딸의 머리 모양부터 바로잡아줄 것 같았다. 세상의 관심을 거부하지만 환영받지 못하는 독특함 때문에 오히려 세상의 이목을 끌고 있는 그녀의 사정을 엄마는 알고나 있는지 의심스러웠다. 게다가 세상의 엄마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평범한 결함들을 일부러 들추기 위해 고안한 듯한 애바의 의도적인 질문이 신경을 건드렸다. 나는 일부러 더 신랄한 어투로 쏟아내듯 말했다.
-야,야, 우리 엄마는 너네 엄마랑 완전 반대라고 생각하면 돼. 책은 고사하고 큼지막한 글씨로 써 있는 광고지 하나도 안 읽으려고 한다. 문장 읽는 것도 귀찮다고 단어만 읽어. 한번은 광고지에 ‘성적’이라는 단어가 있길래 과외 광고인 줄 알고 전화했다가 끈적끈적한 신음 소리만 들려오길래 광고지를 다시 읽어봤더니 그 ‘성’이 학교 성적 할 때 ‘성’이 아니라 남녀 간의 ‘성’적인 뭐, 그런 거였던 거지. 내가 우리 엄마 때문에 아주 돌아버려.
그러고는 조심스럽고 간곡하게 말했다.
-야, 너네 집에 놀러가도 돼? 우리 집이랑 가깝던데.
주저하는 듯한 애바를 보고는 다급하게 마음에도 없는 말들을 쏟아냈다.
-야, 너처럼 책을 좋아하는 애들 방은 어떤지 보고 싶다. 미래의 작가가 될 엄마도 보고 싶고. 내 주변에는 그렇게 고상한 사람이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거든. 네가 유일해. 아우야, 제발, 제발…….
나는 응석 부리는 아이처럼 있지도 않은 애교를 실어 간지럽게 말했다. 애바가 말하는 그녀의 ‘생활’이 진짜인지 확인하고 싶었다. 아니, 그녀의 말이 거짓임을 밝히고 싶은 마음이 컸다. 애바는 잠시 생각하는 듯한 표정으로 머뭇대더니 결심한 듯 시원스럽게 말했다.
-그래, 좋아. 내일 토요일이니까 내일 와.
그러면서 노트 귀퉁이를 찢어 집 전화번호와 주소를 적어주었다. 정성스럽고 신중하게 적어 내려간 필체가 단정했다.
토요일 아침, 애바와 약속을 다시 확인하려 쪽지에 적힌 번호로 전화를 돌렸다. 그녀의 엄마가 응답할 것에 대비해 예의 바르고 공손한 말들을 연습한 후였다. 책을 읽고 글을 쓸 줄 아는 사람에게는 응당 그래야 한다는 듯. 엄마에 대한 애바의 묘사가 사실이라면 말이다. 기대감과 두려움을 동시에 느끼며 조심스럽게 번호를 눌렀다. 신호음이 지나치게 또렷하게 들린 나머지 신호음 뒤에 규칙적으로 찾아오는 적막이 서늘했다. 한참을 지나도 응답이 없어 끓으려는 찰나 건너편에서 ‘여보세요’ 하는 말이 들려왔다. 다급하면서도 성가신 어투였다. 뭔가 몸 쓰는 일을 하다 받은 듯, 날숨이 고단한 듯 거칠었다.
-안녕하세요, 거기 애바네 집이죠? 저는 애바 친구 지영인데요, 애바 있으면 바꿔 주시겠어요?
나는 숨이 넘어갈 듯 한달음에 연습한 문장을 읊었다. 바로 앞에 사람이 있는 듯 저도 모르게 입을 가리고 몸을 한껏 숙이고서였다. 건너편에서 들려온 응답은 책을 읽는 고매하고 지적인 여성으로부터 나온 것이라고는 믿어지지 않는 저속하고 상스러운 것이었다.
-뭐? 친구? 아씨. 바빠 죽겠는데. 걔는 없다.
마치 애바에겐 친구가 가당찮다는 말투였다. 애바를 이름으로 부르지 않고 ‘걔’로 지칭하는 것에서 돌이킬 수 없는 거리감이 느껴졌다. 애바와의 통화를 단념한 나는 이틀 전에 약속한 2시 즈음이라는 애매한 시간을 믿어보기로 했다. 익숙하면서도 낯선 골목길들을 더듬더듬 헤맨 끝에 애바의 집에 당도했다.
오랫동안 방치된 듯 군데군데 칠이 벗겨진 파란색 철 대문은 제법 쌀쌀해진 가을바람을 참을성 있게 견디고 있었다. 아마도 처음 집이 세워진 이후로 관심에서 멀어진 듯한 대문은 퀴퀴하고 습한 지하실 냄새와 오랫동안 먼지와 풍파에 견딘 문 특유의 오래된 쇠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대문 옆 콘크리트 벽에 몰개성하게 붙어있는 동그랗고 하얀 초인종을 조심성 있게 꾹 눌렀다. 내부에서 시끄럽게 울려 퍼지는, 모양만큼이나 특징 없는 벨 소리가 바깥으로 새어 나왔다.
대문 안쪽에선 한참 동안 아무런 기척이 없었다. 참을성 있게 기다리자 계단에서 누군가가 내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이윽고 문을 빼꼼히 여는 애바의 얼굴이 나타났다. 녹슨 경첩에서 나는 요란하고 건조한 소리가 귓가를 파고들었다. 애바는 누구에게 들키면 큰일 나기라도 할 듯 낮게 깔린 음성으로 속삭였다.
-들어와. 발소리 내지 말고.
나는 애바를 따라 2층으로 통하는 좁고 가파른 시멘트 계단을 올랐다. 성의 없이 날림으로 지은 듯 난간 없는 계단이었다. 이런 위태로운 계단을 눈이 수북이 쌓인 겨울에 오르는 상상을 하니 아찔했다. 좁디좁은 옥상에 을씨년스럽게 자리한 가건물의 철제문을 밀고 들어갔다. 거칠고 날카로운 바람을 한껏 맞고 실내에 들어왔을 때 나는 특유의 비릿한 냄새가 방 안 가득 고여 있었다.
단출한 세간 가운데 눈에 들어오는 건 낡은 책상 위에 놓인 ‘인도네시아의 산’이라는 제목의 책이었다. 애바는 어색한 웃음을 지은 채 방석을 건네며 앉으라고 권했다. 기대와 수치가 동시에 어린 얼굴을 하고 남루한 방 한가운데 서 있는 애바는 전보다 더 고립되고 외로워 보였다. 마주 앉은 우리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미세한 홈 마다 묵은 때가 까맣게 껴있는 나무 결 무늬의 장판을 응시하며 마땅한 말을 찾고 있는데 애바가 먼저 입을 열었다.
-엄마가 어젯밤 잠을 못 잤거든. 그래서 신경이 좀 날카로워.
변명인 걸 알고 있었지만 나는 아무려면 어떠냐는 듯 태연하게 굴었다. 퉁명스럽고 메마른 애바 엄마의 목소리가 떠올랐지만 애써 표정을 감췄다. 의식하지 않는 척 하는 나를 의식하는 애바의 시선이 느껴졌다.
나는 평소의 친근하고 장난기 어린 어투로 되돌아와 물었다.
-야, 네 방에는 책이 엄청 많을 줄 알았는데 어떻게 달랑 한 권 있냐? 아, 엄마랑 서점도 간다며. 서점에서 산 책은 다 어딨냐?
애바는 준비된 듯한 말투로 말했다.
-엄마 방에 있어. 그 방에는 책이 빼곡해. 책을 꽂을 자리도 없어서 탑처럼 쌓아놓기도 해.
짐작건대 책이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순간 이 아이는 왜 하는 말마다 거짓말인가. 허언증 환자인가 싶었다. 나는 조금은 벌주고 싶은 마음이 되어 말했다.
-야, 그럼 내려가서 그 방 좀 구경시켜줘. 너네 엄마한테 인사도 하고.
애바는 난처하고 거북한 얼굴이 되어 말을 고르고 있는 듯했다. 그러더니 뜬금없이 책상 위의 책을 집으며 말했다.
-이 책 말이야. 우리 엄마가 준 거야. 인도네시아는 땅이 진짜 넓잖아. 그래서 그런지 산도 많더라.
인도네시아의 산 같은 건 나의 관심을 끌지 못했지만 초대받은 손님의 예의를 지키기로 결심한 나는 애바 엄마에 대한 궁금증은 잠시 접어둔 채 물었다.
-그래? 어떤 산이 제일 멋있냐? 거기 화산 많지 않냐? 아, 맞다. 거기 환태평양 조산대 아냐?
조금은 우쭐한 기분이 되어 대견한 표정을 하고있는 내게 애바는 꿈같은 얼굴이 되어 말했다.
-까와 라뚜(kawah ratu)라는 화산이 있거든. 브로모(Beromo)나 메라피(Merapi) 보다는 작은 화산인데 난 거기 한번 가보고 싶더라. 우리 엄마 고향이 그 동네이기도 하고.
애바는 속삭이듯 말했다.
-분화구나 뭐 그런거 보다도 화산 초입에 작은 호수가 보고 싶어. 엄마가 그러는데 그 호수에는 구름이 자주 지나간대. 엄마는 어릴 때 그게 안개인 줄 알았는데 구름이었대. 구름이 지나갈 때면 하늘에 붕 떠 있는 기분이 들면서 구름에 속한 기분이 든다고…….
서너 살 무렵 하늘에 별처럼 박혀있다고 생각했던 구름이 조금씩 움직이는 걸 감지했을 때 구름에게도 어떤 의지가 있을까, 어떤 목적지를 향해 움직이려는 방향성을 갖고 있는 것일까 궁금했더랬다. 초등 고학년 과학 시간에 바람의 방향은 공기의 움직임에 좌우된다는 걸 실험을 통해 깨칠 때까지 그 꿈같은 생각은 지속됐다. 속절없는 복종에 기반한 대자연의 실체가 드러나자 그 거대한 질서와 위력에 경외와 두려움을 느꼈다. 문득 구름에 속해있는 기분은 어떨까 궁금했다.
해질 녘, 애바와 경사진 계단을 아슬아슬하게 내려오는데 현관문 앞에서 한 중년여성이 불만이 가득한 얼굴로 마른 고추를 소쿠리에 담고 있었다. 툭 건드리면 금방이라도 폭발해버릴 것 같은 위태로운 분위기에 나는 조금 위축됐다. 그럼에도 그녀가 애바의 엄마라고 확신하고는 두려움과 조바심이 동시에 서린 목소리로 ‘안녕하세요’하고 인사를 했다. 여자는 성가시다는 듯 계단 쪽으로 고개를 잠깐 들고는 힐난하는 눈짓을 애바에게 보낸 뒤 씹던 껌을 내뱉듯 말했다.
-친구는 무슨 얼어죽을. 바빠 죽겠는데. 꼴배기 싫어.
여자는 놀랍게도 전형적인 한국인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대문 앞에서 헤어지기 전 나는 머뭇대다 물었다.
-너네 엄마, 한국인이야? 인도네시아인 아니었어?
애바는 그늘진 눈이 되어 나를 지그시 쳐다보고는 말없이 대문을 닫고 들어가 버렸다. 오래된 철문의 요란한 소리가 유난히 힘겹고 버거웠다. 불과 몇 시간 전보다 더 나이 먹은 듯한 소리였다.
다음날, 나는 학교에 이미 애바에 대한 소문이 퍼져있었다는 걸 알았다. 인도네시아인인 애바의 엄마는 도망간 건지 죽은 건지 사라진 지 오래고 표독스럽고 인정 없는 새엄마의 구박 아래 하루하루를 연명하고 있는 애바의 사정을. 기말고사를 치르고 겨울방학을 앞두고 있을 무렵 애바는 더 이상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 제주도에 있는 고모 댁으로 거처를 옮긴다는 소문이 돌았지만 소문일 뿐, 사정의 세부에 대해 아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애바가 등교하지 않은 지 이틀째 되는 날 나는 우편함에서 연보라색 편지 봉투를 발견했다. 애바였다. 보내는 사람 아래에는 주소 없이 ‘애바’라는 글자만 정갈하게 적혀 있었다. 나는 두려움인지 기대감인지 모를 복잡한 마음이 되어 편지지를 펼쳤다. 애바 특유의 담백한 필체가 눈에 들어왔다.
「지영아, 사실 나는 글렌 굴드의 전기를 닳도록 읽었다. 네가 짐작한 것처럼 빌려놓고 그림만 본 건 아니라는 거지. 굴드는 느리게 웃고 느리게 감동하고 느리게 박수치길 원했어. 거대한 구름이 장애물을 만났을 때 아주 느린 속도로 통과하듯이 어딘가에 머물러 있는 그 순간을 귀하게 여긴 것 같아. 그래서 가장 빛나는 순간에 칩거를 감행한 건지도 몰라. 나는 너무 느려서, 느리게 반응하는 사람이라 매번 외로웠던 것 같아. 사람들은 기다려주지 않으니까. 그런데 나는 어쩐지 이 외로움이 소중하다. 다시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 잘 지내. 안녕.」
새로이 머물게 될 집 주소는 생략한 것으로 판단하건대 ‘다시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말은 나에게 보내는 일종의 마지막 예의 같은 것이었다. ‘밥 한번 먹자’, ‘차 한잔 해요’처럼 친밀한 듯 하면서 묘하게 선을 긋는. 가까운 미래를 기약하지만 실은 정중한 단절을 선언하는. 나는 그것이, 애바가 다시는 보지 않기로 결심한 나에게 보내는 마지막 인사라고 혼자서 결론지었다.
무섭게 내리는 비를 온몸으로 받아내며 호텔로 이어진 철문에 당도했을 때는 성난 것처럼 맹렬하던 빗줄기가 보슬비로 바뀌어 있었다. 허탈한 기분으로 왔던 길을 되돌아가려는데 호텔로 향하는 길옆으로 잔디로 덮인 널따란 공터가 눈에 들어왔다. 희미한 물비린내가 코끝으로 느릿느릿 스며들었다. 기대감이 실린 두려움을 안고 공터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길이 시작되는 곳에서부터 안개인지 구름인지 모를 하얀 연기 같은 것이 구석구석 스며들고 있었다. 피부에 와 닿는 촉촉하고 차가운 감촉, 화산으로 가는 길목과 공터로 가는 길 사이에 분명하고 선명한 선을 그어 놓은 듯 확연히 다른 그 압도적인 풍경은 그것이 구름의 일부임을 짐작게 했다. 편평한 땅이 끝나는 지점에 다다르자 완만한 경사를 이루고 있는 내리막이 보였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뿌연 대기 속에서 나는 무성한 수풀을 헤치듯 팔을 한껏 앞으로 뻗으며 더듬더듬 앞으로 나아갔다. 느닷없이 신발에 물이 닿을 때 나는 ‘찰방’ 하는 낭랑한 소리가 허공을 뚫고 지나갔다. 난데없는 소리에 그제야 고여 있는 물에서 나는 특유의 비릿한 냄새가 코를 자극했다.
여기가 그 호수인가. 경사의 시작과 끝을 가늠해 봤을 때 호수라기보다는 큰 연못 같은 곳이었다. 구름으로 완벽하게 점령당한 그 곳은 비밀을 간직한 듯 완벽한 고요를 이루고 있었다. 나의 일정한 호흡과 미세한 움직임의 소리가 그 적막을 훼손하고 있는 듯 했다. 저도 모르게 숙연해지는 신비함을 품고 있는 고요였다. 세계가 시작될 때도, 인류가 부끄러움도 모른 채 벌거벗고 들판을 뛰어다니던 시절에도, 무질서에 형식이 부여돼 가까스로 문명과 풍속을 이루며 비로소 사람다워 지던 시점에도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을, 원시의 광활함과 유구함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나는 조용한 대기에 어떤 흠집도 내지 않도록 조심하며 바로 앞에 솟아있는 바위에 걸터앉았다. 그리고는 소리를 보태지 않으려 노력하며 연못이 위치해 있는 쪽을 가만히 응시했다. 그러자 애바의 엄마가 느꼈던 것처럼 정말로 구름에 속해있는 듯한 감각이 온몸을 감쌌다.
구름은 오래도록 머물러 있었다.
[수상 소감]
세상의 자극은 처음에는 아무런 의미를 지니고 있지 않다. 거기에 의미와 가치를 부여해주는 것은 ‘기억’이다. 세상은 말한다. 기억을 붙잡고 있는 것, 과거에 머물러 있는 건 어리석은 일이라고.
세상의 방향과 거꾸로 가는 존재에 대해 오래도록 생각해왔다. 엄마의 기억 속에 머물러 있는, 순간 속에 오래도록 머무는 글렌 굴드를 선망하는 애바 같은 외로운 존재에 대해서……. 그리고 그런 존재를 바라보는 시선에 대해서도…….
바람의 흐름에 몸을 맡긴 채 신중하고 고요하게 허공을 오래도록 떠도는 가느다란 홀씨를 시선에 담아본다. 설익고 부족한 나의 글을 읽어 주시고 귀한 상까지 허락해주신 심사위원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약력]
뽄독인다 거주, 자카르타
주부
- 이전글[제5회 적도문학상/ 수필부문 장려상] 나의 아저씨, 나의 기사님, 나의 고젝 /양범은 23.07.10
- 다음글[제5회 적도문학상/수필부문 우수상] PANDEMIC 터널을 지나온 우리/ 한지영 23.07.05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