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인협회 인니 지부 [제5회 적도문학상/ 단편소설 부문 장려상] 기다림의 끝 / Bunga Shafa Aziiza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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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림의 끝
Bunga Shafa Aziizah
그렇게 밖에 신뢰를 못 줬다고?
생각할수록 어이가 없던지 김도권은 귀가하는 내내 핸들을 끊임없이 때렸고 또 때렸다. 자기도 그걸 아는지 불안정한 그의 운전을 멈출 생각으로 도로 한복판에 주의를 보면서 차를 근방 편의점에 세웠다.
새벽 2시 23분. 그는 차에서 내려 편의점에 들어섰다. 그 안에 졸고 있던 알바생이 종소리에 일어나 도권에게 인사를 했다. 그 인사를 들을 리 없는 도권은 계산대를 지나 냉장고 쪽으로 직진했다. 냉장고문을 열어 캔커피 세 개를 집어 계산대에 갔다. 알바생은 김도권을 보며 말없이 캔커피를 계산하기 시작했다.
“캔커피 세 개 3,600원입니다. 봉투 드릴까요?”
“괜찮습니다.”
도권은 알바생을 보지도 않으면서 핸드폰을 꺼내 알바생에게 보여주었다. 손님의 차가운 태도를 인지한 알바생은 관심 없다는 듯 도권의 핸드폰에 있는 바코드를 찍어 예의상 그에게 묵례를 했다. 그것을 무시하고 되돌아선 도권의 등을 심상치 않는 눈빛으로 째려봤을 뿐 도권을 부르지 않았다.
“아우 저걸 그냥 확… 꼭 있다더라! 저런 손님.”
“야! 신경 쓰지 마. 그런 인간 하루 이틀 보는 것도 아니고 이제 익숙해질 법도 한데 너도 그걸 꼭……. 아우 됐어. 그냥 무시하고 잊어버려 다시 볼 일도 없겠다. 화내다가 너만 피곤해 아우~”
“이건 다르잖아! 아니 근데 상식적으로 사람이 고개를 살짝만 끄덕인 게 그렇게 어려워? 그게 어렵냐고? 인성이 저러니까 새벽에 저렇게 혼자 돌아다니고 있지! 혼자!”
“아이고 우리 강희는 속상했겠네. 어이고, 어이고……. 에이, 씨! 야 지금 몇 신데 이런 걸로 전화 하냐? 잠 좀 자자. 너도 퇴근했잖아. 너도 자.”
“아니 내가 박치는데 언니는 내 말을 들어줄 마음이 없어? 위로해주고 그래야 하는 거 아니야? 나 속상하다고!”
“됐어. 이 사랑스러운 동생아, 지금 5시도 안 됐어. 우리 자자. 너도 자야 돼. 언니가 걱정되니까 빨리 쉬고 잊어버려. 원래 다 털고 그냥 지나가게 내버려두는 거야. 알겠어?”
강희는 잠시 머뭇거리다 이내 응수했다.
“응. 그래 언니. 미안해 늦게 연락해서. 나도 모르게 가끔 막 화가 나더라고. 이상해졌나 봐. 아무튼 고마워. 잘 자요. 사랑해.”
“응!”
전화가 뚝 끊겼다. 차강희는 전화를 냅다 침대에 던져놓고 바로 욕실로 들어섰다. 하루를 되짚으면서 샤워하기 시작했다. 그는 그의 예민해진 모습을 생각해 그도 어이없던지 뺨을 몇 번 때려 아프다고 징징거렸다.
차강희는 김도권을 안다. 강희는 이전에 그를 몰래 좋아해 대학을 다니면서 가끔씩 그를 보며 부끄러움을 숨기느라 그와 대화 한 번을 못 했다. 그의 차가운 겉모습이 변함없다는 것을 직접 경험하니 감정을 조절할 수 없을 만큼 서운했다. 무덤덤하게 김도권을 대하는 그의 모습이 자랑스러우면서도 안타까웠다.
‘아직 미련 있니? 아는 척을 왜 못해? 어차피 저 선배는 이제 졸업했잖아. 다시 안 볼 사이라고!’ 그의 안에 있는 자아가 그를 원망해 도권과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말을 걸 수 있는 기회를 놓친 셈이다. 아니 근데 말을 왜 걸어야 하는데? 김도권이 뭐라고 나도 자존심 있지. 다른 자아가 그를 자책하기 전에 말렸다. 강희는 내일 오전 수업으로 인해 잠을 포기하기로 했지만 그런 생각과 달리 그의 눈은 쏟아지는 잠을 버텨내지 못해 얼마 가지 않아 잠들고 말았다.
오전 8시 40분.
삐삐삐- 삐삐삐- 삐삐삐- 네 번이나 올린 알람이 드디어 강희를 깨웠다. 시간을 확인하며 망했다는 생각을 해 벌떡 일어나 화장실에 나섰다. 준비를 마친 후 강희는 자취방을 떠나 학교로 급하게 떠났다. 이어폰을 귀에 꽂은 채 누군가에게 전화를 받아 계속해서 움직였다.
“네, 여보세요?”
“너 오늘 안 와? 수업 째냐?”
“아니 가고 있어. 왜? 교수님이 벌써 와 계셔?”
“아니 그게 아니라. 특강을 한다는데?”
“뭐야? 무슨 특강? 어제까지만 해도 그런 소식 없잖아. 뭐야? 나 다시 집에 가?”
“아니 출석은 부른대. 잠깐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그럼 뭐가 중요해? 내가 이 지긋지긋한 오전 교양수업 때문에 얼마나 고생했는데……. 나 이제 빠지면 안 된다고.”
“그러니까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고. 누가 특강할지는 알아?”
“나야 모르지. 들을 생각도 없고. 나 새벽까지 알바 뛴 사람이라고 예민하다. 알려줄 거면 알려주고 아니면 말고, 나, 가고 있어.”
“그게, 김도권이 특강을 한대. 무슨 창업 비법 같은 걸 알려준다나 뭐라나. 네가 알면 덜 충격일 것 같아서 전화했어.”
순간 강희의 걸음걸이가 멈췄다. 그가 환청을 듣는 것 같아 재차 확인했다.
“누가 와?”
“김도권! 그……. 네가 좋아하는 그 선배 말이야.”
“왜?”
상대방에게 하는 말보다 자신에게 묻고 싶었다. 미련 없다면서 반응이 왜 이러냐고. 강희는 자세를 바로 해 다시 걷기 시작했다.
“왜긴? 쟤 요즘 엄청 핫 해! 몰랐어?” “나 걔 안 좋아한다고 이제! 알았으니까 일단 끊어 나 빨리 가야 돼. 자리 맡아줘!”
상대의 말을 지적해 일방적으로 마친 통화를 미련 없이 끊어 버렸다. 강희는 아까보다 더 급해진 마음에 달리기 시작했다.
김도권은 이 상황이 미치도록 싫었다. 그는 아직 녀석과의 대화를 끝내지 못한 상황이면서도 이 거지같은 특강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와야 한다는 이 상황, 파트너가 아닌 친구로서 묻고 싶었다. 학교로 가는 내내 도권은 숨을 쉴 새 없이 내쉬었다. 그는 학교 앞 사거리에 멈춰 신호를 기다리며 다시 생각에 빠졌다. 지나가는 행인을 감흥 없이 보다 급하게 뛰는 여자를 보고 신호를 확인했다. 그는 차를 출발시켜 학교 입구를 들어서며 바로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교수님 부탁이기도 했고 나도 그때 승낙했으니까 참자. 1시간 내로 끝내면 그만이니까.’
도권은 차 문을 닫아 성큼성큼 강당 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반년 만에 방문한 제 모교를 흥미 없이 살펴볼 뿐 옛 추억을 되새길 만한 사건을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잠시 걸음을 멈춰 게시판을 보는 순간 주머니에 은은한 진동이 느꼈다. 아, 교수님. 딴 생각을 하느라 잊혀진 이 특강을 마련한 당사자.
“네, 김도권입니다.”
그는 차분한 어조로 전화를 받았다.
“어, 그래 도권아. 왔니?”
“네, 강당 쪽으로 가고 있습니다.”
“아, 그럼 잠깐 우리 사무실에 와줄래? 내가 소개하고 싶은 학생이 있단다.”
“그럼, 저는 사무실로 가겠습니다.”
“오냐!”
도권은 방향을 틀어 사무실로 걸음을 내디뎠다. 내 시간이 이렇게 낭비를 하다니 다 짜증난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도권은 걸음을 늦추지 않아 교수님의 사무실을 살피기 바빴다. 일렬로 되어있는 교사들의 사무실을 보며 문 옆에 붙어 있는 명패를 훑어보고 중간 쯤에 있는 문을 가볍게 두드렸다. 안에서 허락의 사인이 들리자 그는 문을 열어 안으로 들어섰다.
“어서와, 도권아!”
강희는 그의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의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그야 강당에 있어야 할 사람이 바로 눈앞에서 나타났기 때문이다.
“자, 인사해. 여기는 우리 강의를 듣는 학생이야.”
강희는 재빠르게 일어나 고개를 숙였다.
“경영학과 20학번 차강희입니다.”
그는 애써 감정을 억누르며 상대방을 바라봤다
“김도권입니다.”
내밀어진 손을 보며 잠시 머뭇거리다 그 손을 맞잡았다. 강희는 제 손을 놓은 상대방의 눈치를 보며 옆에 있는 교수님의 말을 기다렸다.
“앉아 일단!”
교수님의 말에 김도권과 차강희는 소파에 앉아 교수님의 다음 말에 귀를 기울였다.
“올해 홍보 제작 대회에 참가하는 학생이야. 네가 해봐서 알겠지만 심사가 워낙 까다롭다 보니 이따 강의 때 슬쩍 언급해주고 좀 가르쳐 보게. 아이디어가 좋아서 말한다.”
“최대한 노력해 보겠습니다.”
김도권은 짧게 대답한 후 슬쩍 이쪽을 응시했다.
“그래. 고맙다. 시간 거의 다 됐다. 이제 가 봐.”
“그럼 가보겠습니다.”
“저도 일어나 보겠습니다.”
도권을 따라 강희도 사무실을 나섰다. 그는 바로 강당으로 향하는 도권의 뒷모습을 보며 반대 방향으로 몸을 틀었다. 뭐, 어때? 이 사람이랑 같이 걷는 것보다야 도는 게 낫지. 숨 막혀 죽을 것 같아. 인사라도 해야 하나? 강희는 고민에 빠져 걸음걸이를 늦춰 다시 걷고 있는 녀석을 봤다. 도권을 보면 뒤돌 기미가 없어 보이니 강희는 재빨리 몸을 돌려 도망쳤다. 혼자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하다.
강당에 도착한 강희는 다행히 도권과 마주칠 필요 없이 바로 제일 뒷줄의 빈자리를 차지했다. 옆에 앉아 있는 친구가 가까이 붙어 속삭였다.
“왜 이렇게 늦어?! 아까 거의 왔다며?”
“아니, 교수님 호출. 나도 여기 앞까지 왔다가 사무실 갔어.”
“왜? 네 제안서에 뭐 문제라도 있어?”
“아니, 그게 아니라 누굴 소개하려고 하셔. 뭐 딱히 소개 안 해도 알 만한 사람이지만.”
“뭐야? 김도권이랑 있었어? 그래서 늦었어?”
“아니… 얘기가 왜 그렇게 돼? 김도권이 맞는데…….”
강희가 말을 끝맺기도 전에 강당 문이 덜컥 열렸다. 안으로 들어선 사람은 다름 아닌
오늘의 특별 강사 김도권이다. 그는 뭔가를 찾는 듯 강당 전체를 훑어봤다. 강희와 눈이 마주치는가 싶더니 거듭 눈을 내리깐 도권은 오늘 특강을 시작했다.
강당에서 빠져나간 도권은 많은 생각을 하면서 주차장을 향해 걸어갔다. 핸드폰에서 진동이 계속 울리지만 그는 그것을 무시한 채 멈추지 않고 발을 내디뎠다. 그는 아침에 마주친 학생을 아주 잘 안다.
차강희! 처음으로 접하게 된 두 사람은 이전에 경쟁 아닌 경쟁에 처했었다. 둘 다 대회에 나와 1, 2등을 차지한 전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 생각을 뒤로하고 도권은 회사로 차를 출발시켰다. 현재는 대회보다 이것이 더 급하다. 이 업계에 파트너가 저지른 비리 사건은 흔한 일이지만 자신이 직접 겪을 줄이야. 도권은 황당하면서도 웃겼다. 개발 중인 제품을 경쟁사에 언질을 주다니, 그는 혀를 찰 수밖에 없었다. 운전에 집중하고 있는 도권은 화면에 뜬 이름을 보고 곧바로 전화를 받았다.
“어떻게 됐어?”
침착한 어투로 물었지만 그는 몹시 짜증이 머리끝까지 솟구쳤다.
“윤 사장은 찾았습니다만 여론 쪽이 아직.”
“뭐야? 왜?”
“대표님이 스캔들이 터지는 바람에 아직 수습 중입니다.”
“내가? 무슨 스캔들? 언제?”
“방금 SNS에 검색 1위를 찍었습니다. 대학생이랑 연애하느라 회사를 내팽개쳤다고.”
“내가?”
“사진까지 찍혀서 저희 쪽에서도 대표님께 먼저 확인받고 반박 기사를 보내드리는 결론을 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연락을 드린 거고요.”
그런 생각에 미치자 도권은 강의 전에 일어났던 일을 되새겼다. 그는 차분하게 대꾸했다.
“그랬다고? 아니니까 반박 기사 내보내. 무슨 이유든 괜찮으니까 부정해. 그리고 꼭 학생 신분을 보호해서 내. 나 지금 회사로 가고 있으니까 일단은 그걸로 해결하고 윤민은?”
“회의실에 기다리고 있습니다.”
“알았어. 또?”
“고객 반응은 아직 왔다 갔다 합니다.”
“그래 그것도 잘 지켜봐.”
그 말을 끝으로 도권은 전화를 끊었다. 그는 분명 차강희와 사무실에서 나갔을 때 사진이 찍혔다고 믿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둘은 강당까지 나란히 가지를 않았다. 어느 순간 차강희가 사라져 한참 동안 그 사실을 모르고 앞서갈 뿐이다. 그러나 인기척을 느끼지 않을 때 쯤 도권은 강당 앞에 도착했다. 강당에 들어서자 도권은 안을 훑어 강희를 찾았다. 그를 발견한 순간 도권은 안도의 숨을 쉬었다.
“지금 상황은 어때?”
“꽤나 진정해졌습니다. 스캔들을 언급한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만 몇몇은 아직 우리 쪽이 경쟁사에게 정보를 흘린다고 믿습니다.”
“그거는 어떻게 좀 할 수 없을까?”
“아직은 저희도 추측만 있다 보니 부정하기에 확증이 부족합니다.”
“기록이 있을 거 아니야?”
“지난번에 조 비서가 경쟁사랑 접촉했을 걸?”
“그걸 어떻게 아셨습니까? 맞습니다. 2주 전에 일식집에 두 분 만났다고 들었습니다.”
“그거로는 부족한가?”
“두 분 다 그냥 동창이라고 주장하셔서 그것대로 믿는 사람이 대부분이고요.”
“주고받은 메시지 기록이 있을 텐데.”
“핸드폰을 저희가 어떻게 할 수가 없어서요.”
“그건 나한테 맡기고 윤민이 여자 문제나 잘 캐. 그걸로 일단 혼란시키고 한 방에 다 내보내.”
“확실하십니까? 그래도 두 분은 꽤…….”
“그렇게만 알아둬. 난 회의실로 가 있을 테니까, 너는 일 봐.”
“네, 알겠습니다. 그럼 저는 기사 자료 준비해 두겠습니다.”
둘은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각자 갈 길을 갔다.
강희는 헤드라인에 뜬 뉴스를 보고 홀린 듯 그 글을 살폈다. 엊그제 SNS에 돌아다닌 사진을 보고 놀라워 핸드폰을 꺼 놓은 상태였다. 그러나 오늘쯤 다 잠잠해졌길 바라면서 핸드폰을 켜니 더 놀라운 소식이 터지고 있다.
‘現 DG그룹 파트너 민그룹 대표이사… ‘ㅁ' 호텔 로비에 발각'. 그 제목을 보며 강희는 제 눈을 의심했다. 자기의 기억이 맞는다면 사진 속 남자는 김도권의 절친이자 비즈니스 파트너이다. 무슨 일이지? 자기 열애설을 이렇게 덮었다고? 친구를 팔아서까지? 강희는 다행이면서도 찝찝했다. 얼마 전 DG그룹 하자 제품 개발사건 때문에 시끄러운 인터넷이 이 기사로 뒤덮은 셈이다.
“너, 뭐 봐?”
“언니, 내가 이틀 만에 핸드폰을 꺼놓거든. 근데 이것 봐봐. 나랑 김도권 사진은 다 사라지고 이 기사만 떠.”
“그러더라고. 아무래도 이건 김도권 짓이겠지 뭐. 저 자식은 원래 그렇잖아. 자기 사생활에 간섭하는 거 싫어. 윤민은 관심 받는 걸 좋아하니까 가만히 있을 거고. 알면서 새삼스럽게 왜 이래?”
“아니, 그게 아니라. 들어 봐 언니. 최근에 DG그룹이 제품 개발사건이 있었잖아. 그게 김도권의 무책임함 때문에 그렇게 된다고 소문이 났고. 근데 그게 헛소문이니까 이걸로 덮은 거지.”
“그래서? 이게 제품 개발 때문이라고?”
“그렇다니까? 안 그럼 설명이 안 되잖아? 타이밍도 이렇게 기가 막히게 딱딱 맞는 걸 보면 모르겠어?”
“그런가?”
“근데 내가 보기엔 조만간 뭐 또 있다.”
“뭐가?”
“그건 우리가 기다려 봐야죠.”
강희의 예상을 증명하듯 다음 날에 인터넷의 새로운 헤드라인 뉴스가 떴다. ‘믿었던 돌에 발부리 채었다. 민그룹과 JOO그룹의 만남'. 기사를 읽은 강희는 알았다는 듯 관심 없이 제목만 읽었다.
“와, 네 말이 맞네. 너 무슨 예언자야?”
“뭐 이런 패턴 이 업계에 한두 번 봤나? 프로가 왜 이러실까? 열애설은 그냥 밑밥이지.”
“역시 너는……. 이상해. 보통 사람은 그렇게 생각 안 하지.”
“언니가 보통 사람이야? 언니 일한 지 이제 3년 넘었어. 김도권 보다도 선배이고. 그것도 모르면서 이때까지 어떻게 살아남았대?”
“어떻게 살아남긴 흐름대로 가는 거지. 김도권이나 너나……. 아무튼 너희들은 비정상이야.”
“에이~ 그렇다고 김도권을 욕하는 거 아니죠.”
“거 봐……. 거 봐……. 너 걔를 아직 좋아한다니까!”
“누가 아니래?!”
“뭘 또 발끈하냐?”
“됐어요. 나 가! 언니 오늘 일찍 자. 아까 머리도 아프다며. 미안해 갑자기 찾아와서.”
“너는 언제든지 와. 너는 항상 환영이야. 명심해!”
“알았어. 나 갈께.”
그는 신발을 신으면서 문손잡이를 잡았다.
“잘 가. 도착하면 연락하고.”
“응, 그럴게.”
교수의 지정으로 인해 강희는 현재 DG그룹 회사 로비에 김도권을 기다리고 있다. 교수의 말로는 너는 선배한테 배우면서 선배의 이미지 회복에 도움이 되면 서로에게 윈윈 상황이라고 하셨다. 강희는 그의 도움을 거절하기엔 너무 실례일 거라 느껴 마지못해 응하기로 했다. 교수님도 김도권에게 연락을 했는지 얼마 지나지 않아 김도권에게 문자가 와 있었다.
-김도권입니다. 교수님께 연락 받고 문자 남깁니다.제가 7시 이후에만 시간이 가능할 것 같습니다. 저의 회사에 오실 수 있을까요? 김도권-
그러한 문자를 받고 잠시 망설였다가 결국 알겠다고 나중에 보자고로 답했다. 2시간 전의 상황을 재차 생각하지만 역시 자기도 왜 이런 선택을 하게 됐는지가 의아했다. 안내 데스크에게 자신의 존재를 알린 지 20분 정도 지난 후에야 직원이 그를 안으로 들여보냈다. 직원의 설명을 따라 23층 회의실에 도착한 후 빈 회의실을 보며 머뭇거렸다. 잠시 문 앞을 서성거리자 얼마 지나지 않아 어떤 직원이 쟁반을 들고 문을 열어 강희에게 들어가서 기다리라고 권했다.
"아, 제가 좀 늦었습니다.”
문이 열리며 회의실을 구경하고 있는 강희는 순간 놀라 입을 다물어 이내 답했다.
“아닙니다. 워낙 바쁘신 분이니 저라도 일찍 와야죠.”
며칠 만에 만난 상대에게 편하게 대하자 도권도 서슴없이 본론을 말했다.
“교수님께 대강 들었습니다. 차강희 씨가 홍보 제작 대회에 나간다고 제게서 조언이 필요할 것이다 뭐 이런 거 맞나요?”
도권은 차분하게 핵심을 집어 강희의 눈을 맞췄다.
“네, 맞습니다.”
“차강희 씨가 저의 지원으로 우승하게 된다면 제 회사 이미지를 살릴 수 있다, 뭐 이런 말씀입니까?”
“아무래도 그렇죠. 어차피 기획안이 거의 마무리 되 가고 있어서 브랜드만 필요한 상황이거든요. 마침 교수님께 저를 도우려 선배님께 연락을 한 거고요.”
“그럴 수 있죠. 그래서 지금까지 쓴 기획안은 가져왔나요?”
강희는 가방에서 서류철을 꺼내 도권에게 건네줬다.
“여기 보시면 제가 계획한 홍보 방식은 영상 위주로 할 거고요. 원래 홍보할 때 단기간 소비자나 평가 늘리려면 사은품을 많이 드려요. 그리고 또 그 시기에 유명세를 타고 있는 연예인이나 인플루언서를 홍보대사로 섭외할 거고요. 그런데 그것만 해도 비용이 어마어마하죠. 그래서 저는 클래식으로 다시 돌아가려고 이런 제안을 작성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그 대안이 저를 광고에 투입시킨다 이 말입니까?”
“그렇죠. 산배님도 인지도가 꽤 높으시고 나름의 전략적인 판단력도 있지 않습니까? 선배가 직접 홍보하면 고객들이 더 믿음직하다고 생각하지 않겠습니까?”
“제가 굳이 왜 그래야 하는데요?”
“당연히 이미지 메이킹이죠. 선배도 지난 사건 때문에 비난을 좀 받았을 거고 주가도 떨어졌을 거 아닙니까? 그럼 안 할 이유가 없죠. 이걸로 더 훌륭한 오너 이미지를 만들어서 DG가 다른 경영회사랑 다르다는 걸 보여줘야죠.”
강희의 논리적인 발언에 도권은 잠시 고민에 빠졌다. 그에게 큰 이득이 되는 제안이긴 했다. 강희의 실력 상 그녀는 문제없이 우승할 수 있다. 그러나 자신이 그 우승에 도움이 될 수 있느냐가 의문이다. 자신을 광고 모델로 세우다니 참으로 말이 안 되는 발언이었다. 잡지에 많이 나온다 해도 본인이 직접 화보나 촬영을 해본 전적이 없다. 모든 사진이 인터뷰할 때나 따온 사진들 뿐 포즈하거나 지령 받고 찍은 적이 없었다.
“너무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 없어요. 어차피 선배는 제가 제시한 금액에 지원하기만 하면 되니까요. 뭐, 봉사삼아 광고도 찍는 거죠. 뭐가 그렇게 고민이 되세요?”
“경험이 없잖습니까.”
“아니 누가 처음부터 잘했대요? 아니잖아요. 선배도 사실 제 제안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서 이러시는 거죠? 막말로 이게 별로였으면 고민조차 안 할 거잖아요. 여러모로 좋은 아이디어구나 싶어서 이렇게 염두에 두잖습니까?”
강희의 말은 옳았다. 애초에 눈에 들어가지 않은 제안이라면 도권은 망설임 없이 거절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이렇게까지 고뇌하는 사실은 이 제안이 솔깃하다는 뜻이다. 그녀의 말은 설득력이 있다. 고민 끝에 도권은 그녀에게 갖고 온 기획안을 모레 안에 완성하라고 지시한 뒤 회의실을 나왔다.
수월하게 진행된 광고제작 및 공식 기획안 발표 끝에 드디어 우승자 발표 날이 다가왔다. 게시물에 우승자들에게 개별통보 후 시상식에 참가해야 한다는 주의가 쓰여 있다. 차강희는 그 글을 읽고 다짐했다. 이제 마지막이니까 해야 돼. 대상을 못 받아도 괜찮으니까 아무 상이나 받았으면 좋겠다.
그의 소원을 이루기라도 한 듯 강희의 메일함에 메일이 들어왔다. 그것을 꼼꼼하게 읽고 또 읽었다. 그의 눈이 잘못 읽지 않았다면 그는 이번 대회에 최우수상을 받았다는 통보였다. 그의 눈을 의심해 메일의 출처를 다시 확인했다. 메일 주소를 본 강희는 그가 읽은 글이 잘못 보낸 메일이 아닌 것을 증명한다. 심지어 그의 이름이 적혀 있었음에도 그는 믿을 수가 없었다. 실감이 나지 않았다. 그가 우승을 많이 한다 해도 이렇게 큰 상을 받는다는 것이 처음이다.
“너 최우수상이야! 와, 대박! 와……. 말도 안 돼. 김도권 광고가 먹힌단 말이야? 헐.”
옆에 주절거리는 친구가 그녀의 어깨를 잡아 꽉 끌어안았다.
며칠 후 강희는 시상식에 참석해 김도권을 봤다. 기분이 좋은지 그는 시상식 내내 웃고 있었다. 강희의 차례가 온 것을 기다리기라도 한 양, 도권은 박수를 하며 흐뭇한 미소로 그녀의 수상소감을 경청했다.
“마지막으로 이 모든 것을 이루게 해주신 DG 그룹 대표 김도권 선배께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선배 없었으면 못 했을 겁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사랑해요.”
드디어!
[수상소감문]
우선 저희 글을 예쁘게 봐주셔서 정말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저는 사실 제 글이 이러한 관심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그러나 심사위원 분들 포함한 한국문인협회 여러분께 감사의 말씀 다시 한 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저의 의견을 말할 것 같으면, 이 글은 사실 단편으로 쓰기 애매한 주제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어떻게 생략을 해야 하나 많이 고민했었는데 너무 아쉽게 마무리 짓는 것 같아 미련이 남습니다. 부족함 많은 이 글을 통해 저도 많은 것을 깨닫게 되어 기쁘고 또 이러한 주제로 글을 처음 작성하다 보니 아주 재미있던 경험이었습니다.
그러니 다시한번 이 상을 감사히 잘 받겠습니다. 이것 또한 제 동기 부여가 되어 앞으로도 좋은 글을 쓸 수 있는 붕아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약력]
2023년 Universitas Indonesia 졸업, 한국학 전공 (Cum Laude)
2020년 제4회 적도문학상 장려상 (단편소설 부문)
2021년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문화강좌 한글 보람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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