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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인협회 인니 지부 (226) 네 이름을 적어 보라며 /최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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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산책
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1,076회 작성일 2023-09-08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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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도 문학상〉시상식에서 


네 이름을 적어 보라며


최하진(한국문협 인도네시아지부 회원)


나는 시상식에 간다. 문인들의 곁으로 간다. 로망이었던 신선의 세계를 엿볼 수 있다. 수상 결과가 나온 뒤 두 달여 동안 나는 매일이 설레었다. 설마 그 일이 커피를 마시지 않아도 나의 중추신경계를 이토록 자극하게 될 줄은 나도 예상하지 못한 터였다. 불혹이 넘은 나는 개인적인 삶은 잠시 내려두고 가정에 내 안의 에너지를 쏟고 있었고, 내 이름이 불려진 것은 아득히도 먼 시간이 지난 후였으니까.


엄마라는 이름으로 지낸 나의 시간도, 나의 땀과 사랑과 열정이 녹아있음은 당연하다. 하지만 가끔은 나의 이름을 잊기 전에 누군가에게 불려지고 싶은 때가 있었다. 그런 나의 바람이 가끔은 내 안의 희망의 씨를 틔우는 의미 있는 그 무언가였다. 그러던 중 나는 누군가의 부인이기에 어머니 배에서부터 자리 잡았던 곳을 떠나 무척 따뜻하다는 “적도의 목걸이”에 오게 되었다. 여기에서 나의 코어 안에 깃든 씨에 물을 주기 시작하게 되었다.


이곳에 머무는 한인이라면 거의 매주 방문하게 되는 곳인 ‘무궁화 유통’지점에 식판을 구입하러 간 어느 날이었다. 1+1이던 식판이 세일이 끝나서 허탈하게 계단을 내려오고 있었다. 손을 씻는 개수대를 바라보다가 문득 나의 눈길이 머문 곳. 그곳에 나의 바람이 머물러있었다. 아무도 웃어주지 않은 날이었다. 아이들은 늦었다며 일찍 깨우지 않은 엄마에게 뒤를 돌아보지 않고 나갔고, 남편은 벗은 양말로 집에 머물렀음을 흔적으로 알게 된 날이었다. 


그날 나에게 그 포스터는 히비스커스(Hibiscus)처럼 부담스럽지 않은 웃음을 짓고 있었다. 네 이름을 적어보라며....... 그렇게 시상식에 오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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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문인 적도 문학상 공모전은 인도네시아뿐만 아니라 동남아에 거주하는 한인 및 인도네시아 한국어학과 학생들을 대상으로 시행되었다. 한국 문단을 대표하는 한국문인협회의 정신과 가치를 계승하며 한국문학의 발전과 보급의 일환으로 해외에서 시행되었다. 동남아에 거주하는 많은 한인 문학인들이 참여함으로써 동남아 한국 문단을 주도하는 대표 문학 행사로 자리매김 하게 된 적도 문학상 공모전은 가능성을 보인 신인들에게 따뜻한 품을 열어줘 한 발 더 꽃 피우도록 소망의 계단을 내어주고 있다. 


사람이 밥만으로 살 수 없고, 살아가는 과정이 글이 써 내려가는 그즈음에 녹아있기 때문에, 문학을 가까이한다는 것은 자신의 위치에서 조금 더 윤택한 빛을 보게 되는 것이라고 평소 생각해 왔다. 하지만 그 과정이 아이가 첫걸음을 뗄 때처럼 아슬아슬하기도 하고, 주저앉게 되기도 하며, 완벽한 걸음을 내딛기까지 수없는 연습이 필요하기에 쉽지 않음을 알고 있었다. 더욱이 걸음을 내디뎠을 때 박수 쳐 주는 엄마가 이제는 곁에 있지 않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적도 문학상을 받게 되면서 느낀 것은 이곳에 언니, 삼촌들이 있다는 것이다. 엄마처럼 기뻐해 주고, 힘을 불어넣어 주며, 이끌어 주는 느낌을 받게 되었다. 내가 엄마이기만 했지 누군가가 응원해 주고 애정 어린 조언을 해줄 수 있는 대상들을 성인이 된 이 시점에 만나게 된 것은 신이 주신 축복이다. 든든한 대가족이 갑자기 생긴 기분이다. 손을 잡아 주고, 머리를 쓸어주시듯 언니, 삼촌들의 진심 어린 환대 그리고 새로 얻게 된 문우들로 나는 그날 내내 상기되어 있었다. 눈망울은 촉촉해졌고, 세로토닌이 충만하게 흘렀다. 나는 ‘하진’이라는 이름으로 그 속에 머물 수 있음에 에르메스 백(Herme’s Bag)은 필요 없었다.


시상식을 다녀왔다. 한국문인협회의 신망 높은 단체로 당당히 자리를 잡도록 애쓰신 선배 문인들의 노력으로, 신인 작가의 등용문이라고 명명할 정도 높아진 위상에 나도 모르게 어깨가 펴진다. 


현 김준규 회장님께서 “역량 있는 신인 작가들이 탄생하여 고무적이고, 문인으로서 소통하고 공감할 수 있기를 바란다.”라며 수상자들의 당선 자부심을 돋아주시는 동시에 선배 문인들과의 장을 이어주신 단호하고 미래지향적인 소회를 열어주셔서 더욱 와 닿았다. 


시상식이 있기 전부터 이메일이라는 창구를 통해 무엇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한국문협 인도네시아지부가 얼마나 사람이 사는 향기가 나는 곳인지 보여주신 분이 계시다. 바로 김주명 사무국장님이시다. 롬복 시인이라 불리시는 김 선생님께서는 시장에 한 무더기 쌓여 있는 토마토에서 한 개 더 골라 내 손에 쥐여주던 헨디(PAK Hendi)씨를 닮았다. 신인들의 역량을 키워주시려고 마담뚜의 역할을 개의치 않으신다. 


시상식 사진을 보니 죄송할 정도로 허리를 굽혀 시상해 주신 이영미 작가님. 적도 문학상 제2회에서 배출한 인기 작가이신데, 늘 낮은 자세로 의자를 빼주시는 모습에서 글 쓰는 자세를 배운다. 뒤풀이 때 동화 쪽에 관심을 보이는 나를 이끌어 주시겠다며 벌떡 일어서 주셨다. 감사해서 눈물이 날 뻔했다.


강인수 시인님은 제3회 적도 문학상에서 수상하여 현재 문인협회 재무국장을 맡고 계신 분인데, 직접 뵈었을 때 연꽃 같은 느낌이었다. 늦은 시간까지 신인들을 위한 자리에 끝까지 함께 하시며 지지와 응원을 마다하지 않으셨다. 먼 땅에서도 대한 독립운동이 있었으며, 쉽게 잊혀서는 안되는 위안부 이야기를 세상에 알리신 「암바라와」 장편 소설의 작가 이태복 선생님을 뵙게 된 것도 긴 시간을 한 작품에 30여 차례 고쳐 쓰셨다는 그 끈기. 풍기는 아우라로 감히 느낄 수 있었다. 


많은 분들을 뵙게 되었고, 한분 한분 나눈 이야기가 첫 아이를 산부인과에서 만났을 때처럼 벅찼다. 글쓰기의 긴 터널에, 든든한 문우가 되어주신다고 말씀해 주시는 선배님들. 살짝 엉덩이를 붙였다가 돌아가는 그 여느 시상식과는 다른 신인들의 자리였음을 느끼는 자리였다. 네 이름을 적어보라며 눈을 이끌었던 그 글귀처럼 오늘의 인연이 내 안의 씨를 싹틔우는 계기가 되기를 소망한다.


*글쓴이 최하진은 제5회 적도문학상 수필부문에서 「승리의 도시 자야카르타」로 장려상을 수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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