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인협회 인니 지부 (231) 펜을 들자, 새로운 세계가 열렸다./최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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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을 들자, 새로운 세계가 열렸다.
최하진(한국문협 인니지부 회원)
설마 글을 읽고 쓰는 일이 커피를 마시지 않아도 나의 중추신경계를 이토록 자극하게 될 줄은 나도 예상하지 못한 터였다. 불혹이 넘은 나는 개인적인 삶은 잠시 내려두고 가정에 내 안의 에너지를 쏟고 있었고, 내 이름이 불린 것은 아득히도 먼 시간이 지난 후였으니까.
엄마라는 이름으로 지낸 나의 시간도, 나의 땀과 사랑과 열정이 녹아있음은 당연하다. 하지만 가끔은 나의 이름을 잊기 전에 누군가에게 불리고 싶은 때가 있었다. 그런 나의 바람이 가끔은 내 안 희망의 씨를 틔우는 의미 있는 그 무언가였다. 그러던 중 나는 누군가의 부인이기에 어머니 배에서부터 자리 잡았던 곳을 떠나 무척 따뜻하다는 “적도의 목걸이”에 오게 되었다. 여기에서 나의 코어 안에 깃든 씨에 물을 주기 시작하게 되었다.
이곳에 머무는 한인이라면 거의 매주 방문하게 되는 곳인 ‘무궁화 유통’ 지점에 식판을 구입하러 간 어느 날이었다. 1+1이던 식판이 세일이 끝나서 허탈하게 계단을 내려오고 있었다. 손을 씻는 개수대를 바라보다가 문득 나의 눈길이 머문 포스터 한 장. 그곳에 나의 바람이 머물러있었다.
아무도 웃어주지 않은 날이었다. 아이들은 늦었다며 일찍 깨우지 않은 엄마에게 뒤를 돌아보지 않고 나갔고, 남편은 벗은 양말로 집에 머물렀음을 흔적으로 알게 된 날이었다. 그날 나에게 그 포스터는 히비스커스(Hibiscus)처럼 부담스럽지 않은 웃음을 짓고 있었다. 네 이름을 적어보라며….
사람이 밥만으로 살 수 없고, 살아가는 과정이 글이 써 내려가는 그즈음에 녹아있기 때문에, 문학을 가까이한다는 것은 자신의 위치에서 조금 더 윤택한 빛을 보게 되는 것이라고 평소 생각해 왔다. 하지만 그 과정이 아이가 첫걸음을 뗄 때처럼 아슬아슬하기도 하고, 주저앉게 되기도 하며, 완벽한 걸음을 내딛기까지 수없는 연습이 필요하기에 쉽지 않음을 알고 있었다. 더욱이 걸음을 내디뎠을 때 박수 쳐 주는 엄마가 이제는 곁에 있지 않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문인협회에서 느낀 것은 이곳에 같은 곳을 바로 보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수상자가 있으면 기뻐해 주고, 힘을 불어넣어 주며, 이끌어 주는 느낌을 받게 되었다. 내가 엄마이기만 했지, 누군가가 응원해 주고 애정 어린 조언을 해줄 수 있는 대상들을 성인이 된 이 시점에 만나게 된 것은 신이 주신 축복이다. 든든한 친척이 갑자기 생긴 기분이다. 손을 잡아 주고, 머리를 쓸어주시듯 진심 어린 환대 그리고 새로 얻게 된 문우들로 나는 그날 내내 상기되어 있었다. 눈망울은 촉촉해졌고, 세로토닌이 충만하게 흘렀다. 나는 ‘하진’이라는 이름으로 그 속에 머물 수 있음에 에르메스 백(Herme’s Bag)은 필요 없었다.
많은 분을 뵙게 되었고, 한 분 한 분 나눈 이야기가 첫아이를 만났을 때처럼 벅찼다. 글쓰기의 긴 터널에, 든든한 문우가 되어주신다고 말씀해 주시는 선배님들, 네 이름을 적어보라며 눈을 이끌었던 그 글귀처럼 오늘의 인연이 내 안의 씨를 싹 틔우는 계기가 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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