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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인협회 인니 지부 (65) 야자수 같은 사람 / 이태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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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산책
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6,871회 작성일 2019-08-01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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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필산책 65 >
 
야자수 같은 사람
 
이태복 / 시인, 한국문협 인니지부 부회장
 
 
 
어디에서든 쓰임새가 있는 사람이 있는데 인도네시아에는 이를 야자수에 비하고 있다. 
Jadilah manusia seperti pohon kelapa / 야자수만한 사람이 되라는 뜻이다.
야자수는 어떤 나무일까? 야자수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버릴 것이 없다. 사람으로 보면 이리봐도 예쁘고 저리 봐도 예쁘고 멀리서 봐도 예쁘고 가까이 봐도 예쁜 것이 야자수다. 무엇보다 내가 야자수를 좋아했던 건 어떤 나무보다 불타는 석양에 잘 어울리기 때문이다. 붉은 석양에 야자수 실루엣, 거기에 등장하는 상상의 로맨스는 사춘기에 서양 영화를 보면서 야자수에 석양을 실루엣으로 배우들이 그려내는 뜨거운 키스 장면 때문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 야자수 둥치에 등을 기대고 황혼에 접어들고 있는 자바의 촌로를 보며 어릴 적 감성적 환상에서 깨어 등 굽은 촌로의 석양 실루엣에서 아름다움을 찾으며 미물의 야자수 속성에서 영험의 교훈을 얻고자 한다.
 
젊은 날 피상적인 아름다운 꿈에서 깨기로 했다. 야자수는 석양뿐 아니라 월색과도 잘 어울린다. 이제는 고요한 달밤의 야자수 실루엣이 좋아졌다. 야자수와 월색의 실루엣에 취해본 적 있는가? 그 그윽함은 블랙홀처럼 사색의 세계로 빠져들게 하는 힘이 있다. 이런 사색을 자바의 산골에서 만끽 할 수 있어 오늘이 감사할 뿐이다.
 
야자수는 종려과(棕櫚科) 혹은 야자과에 속한 식물을 일컫는 말로 외떡잎 식물이고 큰키나무 또는 떨기나무에 속한다. 가지도 없이 긴 뿌리도 없이 외줄기로 자라는 야자수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버릴게 없다. 야자수 새순을 인니어로 자누르(janur)라 하는데 우리네 보릿고개 때 초근목피의 하나로 송구나 찔레 순을 먹듯 흉년 땐 먹기도 하고 자누르를 엮어 끄뚜빳(ketupat)이라는 음식을 만드는데 쓴다. 이는 끄뚜빳의 속의 익은 밥에 향기를 더 할뿐 아니라 밥을 상하지 않게 하기 때문이다. 끄뚜빳은 크리스마스 트리나 산타 할아버지가 성탄절을 상징하듯 인도네시아에서는  자누르로 만든 끄뚜빳이 르바란의 심볼이 되어 있다.
 
 
야자수 잎은 열대지방 서민들의 비를 막아주는 초가지붕으로 쓰이고 있으며 야자 잎 줄기는 쉽게 구할수 있어 서민들의 밥 짓는 땔감이다. 그리고 자누르는 전통 결혼식장의 화려한 데코레이션으로 쓰인다.  야자수 열매를 보자. 익지 않은 열매 속의 물(air kelapa mudah)은 이온음료를 능가하는 효능이 갈증을 해소시키는 음료다. 그리고 야자수가 익으면 속에 하얀 살이 생기는데 이 하얀 살을 암빠스(ampas)라하고 이것을 짜서 나온 물을 산딴(santan)이라 한다. 이 산딴으로 지은 밥을 나시 우둑(nasi uduk)이라 하며 인니 대표적 음식이다.
 
야자수가 열매를 맺기 위해 꽃대를 내밀면 그 꽃대를 잘라 고로쇠 물처럼 받은 이 물로 먹으면 남자들의 정력에 좋고 이 물을 끓이면 설탕이 된다. 이 설탕이 그 유명한 굴라 끌라빠(야자수 설탕)다. 이 물은 주정 원료로 쓰이는데 이것을 발효시키면 열대지방의 대표적 술인 아락이 된다.
 
야자의 익은 속살 암빠스를 볶은 후 기름으로 짠 것이 야자수 오일 인데 야자수 오일 또한 식용으로도 쓰며 먹기도 하고 바르기도 하고 고급 비누를 만든다. 늙은 야자수 껍질은 단추나 각종 장신구로 쓰이며 남은 것을 구으면 고급 숯이 된다. 야자수 속살을 갈아서 짠 산딴은 꼴락을 비롯 국을 끓이는 등 다양한 전통음식 재료로 쓰이고 속살을 튀긴 스룬뎅(serindeng)은 아본처럼 밥 반찬으로 먹기도 한다. 야자나무 둥치를 보자. 나무는 정자 서카래 건축재료는 물론 각종 가구 목으로 쓰인다. 뿌리에는 각종 약효가 있어 뿌리를 다려서 댕기열 가려움증 지사제 복통 혈액 순환제 치질치료제 등 그 쓰임이 다양하다. 야자수의 쓰임새와 효능은 다 열거하기가 어렵다. 야자수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버릴게 없다. 그래서 인도네시아 사람들은 야자수만한 사람이 되라고 했던 것이다. 나는 사람들에게 야자수만 했을까?를 생각하게 한다.
 
내가 자누르 처럼 보잘 것 없을 것이라도 누군가의 배고픔에 도움은 됐을까? 내 밍밍한 말이 누군가에게 해갈이 됐을까? 나의 힘없는 마른 팔이라도 늘어져 누군가의 비바람 더위를 가리는 그늘이 되었는가? 머리부터 발끝까지 누군가에게 쓴 나물과 가시가 되지 않았는지 야자수를 묵상하며 자신을 돌아본다. 내가 무얼 하다가 막히고 실수하면 '사람이기 때문에, 라는 변명하던 기억이 떠오른다. 야자수의 속성에서 배운다. 야자수의 속성은 남에게 유익함에 있었다. 야자수처럼 내 속에 선함 진실함 정직함 순수함 그 어떤 것도 모든 이에게 유익함이 있길 원하며 첫 시집 ‘민들레 적도’의 시 ‘야자수’로 마무리 하고자 한다.
 
야자수
 
멋쟁이 야자수는
한 줄로 자란다
 
오로지 하늘만 보고
야자수는 모두 버린다.
야자수는 주기만 한다
 
팔 없는 레나 마리아가 노래한다
고독해도 주기만 하는
야자수 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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