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인협회 인니 지부 (15) 고양이 에피소드 / 김대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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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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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필산책 15 >
고양이 에피소드
김대일(金大一) /한국문협 인니지부 회원
1년여 전에 고양이 한 마리를 구해 준 적이 있다. 교회에서 새벽기도회를 마치고 집으로 가는 중에 개 짓는 소리가 크게 들려서 가보니 개 두 마리가 새끼 고양이 한 마리를 위협하고 있었다. 새끼 고양이는 급하게 쫓겨 풀숲에 머리를 들이밀고 처분만 기다리고 있었다. 고양이가 불쌍해 보여 개들을 쫓아주고 집으로 가는데 그 새끼 고양이가 졸랑졸랑 따라왔다. 그러다가 개가 다시 쫓아올까봐 겁이 나는지 나를 앞서 가고 있었다. 갈림길에 가면 기다리다가 내가 길을 택하면 따라오다가는 얼른 나를 앞질러 갔다. 집에 이르자 출입문에 몸을 비비며 집으로 들어오려고 용을 썼다. 그러나 고양이를 보면 기겁을 하는 아내를 생각하니 집에 들일 수가 없었다. 접시에 고양이 먹이를 담아 물과 함께 줬더니 허겁지겁 먹고는 집 출입구에 있는 발 먼지 터는 데 사용하는 수건 위에 앉아 집을 지켜주고 있었다. 그런데 날이 밝자 문제가 생겼다. 우리 집 터줏대감인 ‘깜짝이’라는 어른 고양이가 와서 새끼 고양이를 몰아냈다. 그렇게 새끼 고양이는 사라졌다.
‘깜짝이’라는 이름을 가진 우리 집 터줏대감은 우리가 이사온 후 처음 만난 길 고양이다. 이사 온 다음날 배가 고픈지 우리 집 앞에 와서 울고 있길래 상점에 가서 고양이 먹이를 사다 주었더니 삼시 세끼 먹을 때만 되면 우리 집을 찾아왔다. ‘깜짝이’라는 이름은 아내가 지어준 것으로 그 유래는 이렇다.
하루는 외출에서 돌아와 먼저 집으로 들어간 아내가 소스라치게 놀라며 비명을 질렀다. 깜짝 놀라 뒤따라가 보니 이층에 있는 아내가 옷 갈아 입는 방에 큰 짐승이 있다는 것이다. 아내를 안방으로 보내 문을 닫게 하고는 무기가 될 만한 몽둥이 하나를 장만하여 그 방으로 가서 공격자세를 취하고 불을 켰다. ‘야옹’ 하며 급하게 방을 뛰쳐나가는 모습을 보니 배고프면 우리 집을 찾아오는 그 고양이었다. 그 놈을 집 밖으로 쫓아내고 어디로 들어왔는지 수사를 시작했다. 들어올만한 곳을 다 수색한 끝에 드디어 들어온 곳을 발견했다. 1층 현관 출입문 옆에 있는 창문에 설치한 방충망을 힘으로 밀어내고 들어왔던 것이다. 그래서 아예 창문을 닫아 잠그고 지금껏 1층 창문은 열지도 않는다. 그 고양이에게 무단 주거 침입죄를 적용해 먹이를 주지 않았다. 고양이는 먹이를 주지 않아도 매일 찾아오는 게 안타까웠다. 놀라서 쫓겨나가고 먹이도 주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찾아오는 것을 보면 배가 무척 고픈 모양이었다. 그래서 사흘째 되는 날 용서와 동시에 먹이를 주기 시작했다. 그래서 아내가 깜짝 놀라게 했다고 ‘깜짝이’라 부르게 되었다.
새끼 고양이가 사라진 지 한 1년이 지나자 웬 어른 고양이 한 마리가 집을 찾아왔다. 얼굴 모습과 밤송이처럼 생긴 털을 보니 1년전 사라졌던 그 새끼 고양이가 자라서 돌아온 것이다. 나는 반갑기도 해서 얼른 먹이와 물을 주니 내 다리에 몸을 비비며 애교를 부렸다. 터줏대감이 아직 건재한 데 이방 고양이가 나타났으니 고양이 사이의 싸움이 시작되었다.
둘 사이의 싸움은 한 보름간이나 계속됐다. 처음에는 터줏대감이 자리를 지키기 위해 죽을 힘을 다해 공격을 가해 이기는 듯 했으나 나이 차이 때문인지 점차 밀리기 시작했다. 마침내 이방 고양이가 터줏대감을 몰아내고 그 자리를 차지한 것이다. 아내가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뺀다’고 무척 서운해하였다. 그런데 반전이 일어났다.
어느 날 새벽, 아내가 교회로 기도회에 가는데 새로 터줏대감이 된 그 고양이가 1킬로미터가 넘는 길을 졸랑졸랑 따라가서는 기도회 시간에는 교회 앞에서 기다리다가 돌아오는 길에 또 아내를 따라 집으로 돌아오는 길을 에스코트해주며 아내의 호감을 산 것이다. 그래서 ‘구원이’라는 귀한 이름도 얻게 되었다. 처음 만났을 때 내가 ‘구원이’를 구해주었고 구원을 얻는 교회로 가는 길을 안내했다고 해서 아내가 구원이라는 이름을 선사한 것이다.
그일 이후로 나는 ‘깜짝이’에게 먹이를 주고 아내는 ‘구원이’를 챙긴다. 그런데 난 은근히 ‘깜짝이’가 터줏대감에서 밀려난 게 좀 서운했다. 그래서 아내가 없을 때 ‘구원이’를 밀어내고 ‘깜짝이’를 그 자리에 앉히려고 여러가지 시도를 해보았으나 좀처럼 이루어지지가 않았다. 사람이나 짐승이나 나이는 속일 수가 없나보다는 생각이 들었다. ‘깜짝이’가 터줏대감에서 밀려난 것을 서운해 했던 아내가 ‘구원이’가 단 하루 교회에 따라갔다 왔다고 더 좋아하는 것도 내게는 탐탁치 않게 보였다. 그렇지만 이제는 쿠데타로 ‘깜짝이’가 다시 우리 집 터줏대감 자리를 차지하는 것은 포기하고 먹이통과 물통도 따로 따로 준비해서 둘이서 사이 좋게 지내는 쪽으로 유도하고 있다.
내가 ‘깜짝이’를‘구원이’보다 더 좋아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깜짝이’는 감사할 줄 아는데 ‘구원이’는 아직도 무슨 일이든 감사할 줄을 모른다는 것 때문이다. 계속 딱딱한 먹이만 주다가 한 번은 고양이 먹이용 생선 통조림을 사서 ‘깜짝이’에게 준 적이 있었다. 정말 맛있게 먹고 갔다. 그런데 다음날 아침에 나가보니 집 앞에 큰 쥐 한 마리가 죽어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옆에 ‘깜짝이’가 있었다. 그래서 매일 먹이만 얻어 먹고는 미안하니까 밥값을 했나보다 여겼다. 그리고 고양이를 무척 좋아하는 딸에게 쥐를 잡아다 놓은 의미를 물어봤다. 고양이들은 고마운 마음이 들면 쥐를 잡아다 물어다 놓고 감사의 마음을 나타낸다는 것이었다. 참 기특했다. 그 후로도 ‘깜짝이’는 지금까지 세 마리의 쥐를 더 물어다 놓았다. ‘구원이’도 언젠가는 쥐를 물어다 놓을 날이 있겠지하고 기대해 본다.
‘깜짝이’와 ‘구원이’, 두 마리의 고양이에게 먹이를 주면서 고양이에게 관심이 많은 딸과 공통의 화제거리가 생긴 것에 감사한다. 딸은 독일 뮌헨에 있는 공동주택에 살고 있는데 고양이를 무척 키우고 싶어하지만 공동주택 규정에 의해 키울 수가 없으니 우리 집에 오는 고양이의 사진과 이야기로 대리만족을 하고 있다. 언젠가 딸애가 단독주택을 마련하면 예쁜 고양이 한 마리를 선물하고 싶다.
두 마리의 고양이를 보면서 우리 삶의 섭리도 돌아보게 되었다. 우리가 어느 높은 위치나 어떤 명예로운 자리에 있다해도 그 자리를 물러나야 할 때는타인에 의해 떠밀려서 내려오는 것이 아니라 적당한 때에 스스로 그 자리에서 물러나는 것이 아름답고 현명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리고 일상을 살아가면서 조그마한 일에도 감사의 마음을 잘 표현하는 것이 주위에서 존경을 받는 참 좋은 길임을 우리는 두 고양이를 통해서 배우게 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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