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 기억 속의 산책-같은 이름, 다른 친구 조수미 / 하연수 > 한국문인협회 인니 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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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인협회 인니 지부 (34) 기억 속의 산책-같은 이름, 다른 친구 조수미 / 하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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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산책
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6,788회 작성일 2018-12-19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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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산책 34 >
 
기억 속의 산책-같은이름, 다른친구 조수미
 
하연수 / 한국문협인니지부 감사
 
 
며칠 전,아침시간에 문협단체 방에 올라온 ‘기차는 8시에 떠나네’ 소프라노 조수미 노래를 듣다가 불현듯 아주 오래 전의 기억 속으로 빠져들었다. 아마도 국민(초등)학교 6학년 때였을 것이다. 옆자리에서 공부했던 같은 이름의 다른 소녀 조수미를 떠올려 본다.
 
졸업식 날, 새벽부터 내리던 눈이 온 해동 천지를 하얗고 부드러운 이불로 덮어주고 있었고, 눈 내리는 이른 아침 학교 가는 길 따라 홀로 내려온 소년이 교문을 들어섰다. 흰 눈이 가득한 운동장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오늘로 지난 1년간 대동 아이들의 따돌림과 폭력의 세월은 끝이 난다!” 운동장에 곱게 내려 있는 하얀 눈에 남겨지는 소년의 발자국을 흰 꽃잎 되어 내리는 눈이 발자국을 따라오며 사르르 덮어주고 있었다. 소년이 교실 안으로 들어서자 밤새 머물고 있던 차가운 기운들이 바닥으로부터 발 바닥을 타고 올라와 온 몸을 얼어붙게 만드는 듯했다. 소년이 복도쪽 창가로 가서 '졸업생 대표 답사” 읽기 연습을 계속하고 있었다.
 
 
갑자기 톡톡 유리창 두드리는 소리에 놀란 소년의 시선이  복도 너머 유리창에 멈추었다. 유리창에 에스키모 모자를 쓴 하얀 소녀의 얼굴이 미소 짓고 있었다. 6학년 1학기 초 서울에서 전학 온 소녀 조수미다. 털 장갑 손가락을 흔들고 고양이 발톱처럼 오글오글 움직이며 보내는 조수미의 신호에 소년이 이끌리듯 급한 발걸음으로 복도를 나와 본관 뒤로 갔다. 소년이 다음 날 아침 서울로 떠나기 전에 해 줄 말이 있어서 이른 아침에 왔다고 말 하는 조수미의 입술이 파랗게 얼어 있었다. 중학교 선생님인 자기 어머니께서 전해주라는 말씀의 내용은 이러했다.
 
’’네가 가려는 곳이 아무리 명문(시골 사람들의 눈에는 명문이라는 의미) 중학교라 해도 부모 곁을 떠나서 다녀야 하는 학교라면 가지 말라.’는 것이다. ‘중학교까지는 어떤 일이 있어도 부모 곁에서 보호를 받고 살아야 정신, 육체 그리고 바른 생활 공부 습관 등이 바로 형성되고 그것이 너의 미래 삶의 토대가 된다.’ 대강 이런 뜻이었다.
 
소년이 답답하다는 듯 대답했다. '내가 이 6학년을 따돌림과 폭력에 얼마나 저항하며 살아왔는지 너는 모를 것이다. 친구들과 가족들이 깊이 관련된 나쁜 마을 재판 비밀을 목격하고 적은 내 일기를 담임선생님이 아이들 앞에서 읽어 버리는 바람에 나는 친했던 대동 마을 아이들의 적이 되어버렸고 6학년 1년을 따돌림과 폭력의 지옥 속에 지내 왔다. 오늘 졸업생 대표 답사도 공부 이야기가 아닌 북적암 낯선 아저씨가 가르쳐 준 폭력에 저항하라는 내용이다.  
조수미가 말했다. ‘이제 화해도 했으니 우리 시골 학교 다녀도 되잖아.’ 소년이 대답했다. 화해는 했지만 그들에게 계속 신경을 쓰며 살아야 한다. 도시 학교로 가서 신경쓰지 않고 내 일에 열중하며 사는 편이 좋다. 이것이 바로 내가 도시 중학교로 가는 이유다.  
 
졸업식장 여기 저기에 먼저 온 사람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소년은 조수미와 이야기를 끌고 갈 수가 없어서 졸업식장으로 돌아와야 했다. 졸업식은 순서에 따라 잘 진행되고 있었지만 소년의 머리 속은 온통 조수미의 말로 혼란스러웠다.  재학생 대표 송사 후 졸업생 대표 답사 차례가 왔다.  담당선생님이 단상에서 소년의 이름을 두 번이나 불렀는데도 나오지 않자 다른 선생님이 급히 다가와서 불렀다
 
“따돌림과 폭력이 싫지요? 나는 1년동안 그런 시간 속에 살았고 그것을 이겨내고 오늘 이 자리에 섰습니다. 폭력은 이겨낼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내게 이겨내는 방법을 가르쳐 주신 북적암 아저씨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폭력에는 도망을 해라. 도망하다 맞아 몸에 난 상처는 나는 폭력에 저항을 하는 사람이라는 영광의 상처다. 그리고 몸에 난 상처는 곧 아물고, 아물고 난 뒤에는 다시 아프지 않다. 무릎 꿇고 맞아서 마음에 난 상처는 오래 지워지지 않고 아문 듯해도 다시 생각하면 아픔이 다시 살아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무릎 꿇고 맞지 말고 도망을 가라고 했습니다. 반년만 도망 다니다 보면 그것이 훈련이 되어 누구든 도망 순간 포착 능력이 엄청 좋아져서 폭력 하려는 아이들보다 반 박자 이상 빨리 움직이게 된답니다. 까마귀는 총에 맞지 않는다고 하네요. 나뭇가지에 가만히 앉아있던 까마귀가 방아쇠를 당기는 순간을 귀신같이 포착하고 날아 버리기 때문에 도저히 잡을 수가 없다고 해요. 폭력에 시달리는 동생들은 까마귀처럼 도망하는 순간, 포착 능력이 뛰어난 달인이 되세요. 그러면 폭력의 고통으로부터 벗어나는 겁니다. 감사합니다.”
 
답사를 끝내고 넘어질 듯 단상을 내려와서 본관 뒤편으로 급히 나가 보니 멀리 조수미가 하얀 눈을 쓰고 줄지어 서 있는 수양 버드나무들 따라 천천히 발자국을 남기며 가고 있었다. 그 모습이 나에게 남아있는 조수미의 마지막 모습이 되었다. 졸업 후 7년 정도 세월이 흘렀다.

시골 중학으로 갔던 동기 셋은 원하던 대학에서 떨어지는 아픔을 맛보고 후기 대학에서 입학 년도는 서로 달랐지만 다시 만났다. 동기 중 한 친구가 한 해 뒤에 같은 대학 신입생으로 온 나를 환영해 주며 한 말이 아직도 생생했다. 선진국 많은 회사들이 대학 순위, 전공을 보지 않고 선발하는 블라인드( Blind) 방식으로 채용하는 방식으로 가고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점점 더 대학 순위로 취직의 기회가 주어지는 풍토로 가고 있다.’고 했다. 이런 나라에서 일류가 아닌 학교 출신들의 신분 상승의 길은 고시뿐이다. 너도 아까운 한 해를 또 일류대학 재도전에 낭비하느니 아예 이 학교 고시원에 들어와서 하루라도 더 고시에 투자해라.'고 했고 나는 "우리집에는 고시 1차만 두 번 합격한 고시 낭인 (폐인) 한 사람이 가족들의 찬밥이 되어 존재한다. 그런 짐은 한 가정에 하나로 족하다."는 말로 그 친구의 제안을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우리 고향 친구 셋이 만난 2년 후, 그 친구는 행정고시, 나는 논산 훈련소 입소했다. 제대하고 돌아온 그 해 동기 중에 한 명이 사법 고시에 합격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들을 시골 따라지 중학교 출신이라고 눈 아래로 깔고 보며 오만 방자하게 굴었던 나는 처음으로 충격을 받게 되었다. 나는 그때서야 조수미의, 아니 조수미 어머니의 충고에 대한 의미를 생각했다. 내가 후회한 것은 고시공부하지 못한 것이 아니었다. 젊은 날 아까운 시간들을 고시든 뭐든 저 친구들만큼 뚜렷한 목표에 온 몸을 던져보지 못했음을 후회할 뿐이다. 그래 후회는 결코 앞서 오지 않는다라는 말을 공감한다. 내가 어린 나이에 관리해 주는 사람 없이 방황하는 동안 이 친구들은 부모님 해주는 밥 먹고 보호 속에서 바른 생활 공부와 습관 등 미래의 토대를 쌓고 있었던 것이 확실했음을 알 수가 있었다. 이것이 오래 전 조수미 어머니께서 나에게 해 주고 싶어했던 말씀이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친구들이 내게 준 충격이 늦었지만 나에게는 큰 선물이 되었고 나는 그들에게 감사한다.  그들이 바로 나로 하여금 빨리 내게 적당한 길을 찾아 열심히 내 길을 갈 수 있었던 계기를 만들어 준 것이다. 그 후 우리는 다시 만나지도 만나려고 하지도 않았다. 가끔 고향가면 간접적으로 소식 듣는 것이 전부다.     

오늘 아침 소프라노 조수미의 ‘기차는 8시에 떠나네’ 의 고운 음률을 타고 떠오른 기억 속에 남아있는 조수미, 이제 할머니가 되어있을 또 다른 소녀 조수미를 떠올려 보았다. 다시 볼 수 없겠지만 내 기억 속에 평생 남을 소중한 말을 전해준 오래 남는 좋은 인연이었구나 라는 생각을 해 보는 아침이다.
 
2018년, 한 해가 서서히 저물고 있다. 하루하루 주어진 삶에 충실하면서 먼 훗날 다시 돌아보아도 후회되지 않는 오늘을 살아갈 수 있기를 간절히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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