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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인협회 인니 지부 (211) 장밋빛 기억 /전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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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산책
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16,956회 작성일 2022-05-20 0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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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필산책 211 >
장밋빛 기억
 
전현진 / 한국문협 인니지부 회원
 
 
기억이란 게 참 그렇지. 나 어릴 때, 집 앞에 큰 공원이 있었거든 공원 나무에는 탐스러운 둥지들이 곳곳에 가득했어. 아침에 공원 나무에서부터 우리 집 창문으로 까치 소리가 넘어오면 그렇게 기분이 좋더라. 아무 날도 아닌데 특별한 누가 올 것 같고, 설렜어. 얼마나 큰지 공원이 마치 숲 같았다니까. 꼬마가 걷기엔 늘 새로운 곳이었지. 공원에는 꽃나무가 가득했고 놀이터도 있었고, 운동장도 넓었어. 아, 현충탑도 있어서 유치원에서 소풍을 오기도 했고 근처 학교들의 사생대회, 백일장이 열리기도 했어. 아이들은 은박 돗자리에 앉아 저마다의 작품에 몰두했지. 우리 집 작은 꽃밭엔 늘 무언가가 피고 지고했는데 특히 다홍빛, 분홍빛 봉숭아를 따다가 소꿉놀이 밥상도 차리고 백반 넣고 곱게 찧어 밤새 손톱에 올려 물들이기도 했어. 이불에 꽃물이 물들지 않게 비닐로 감고 실로 칭칭 감아 머리 위에 손 올리고 얌전히 잠을 청했지만 아침이면 꼭 어느 손가락 한 두 개쯤은 비닐 옷을 벗고 있더라고.
 
 
사루비아 꽃을 본 적이 있니? 빨간 꽃잎 속 수술을 꺼내면 그 안에 꿀이 있다는 언니들 얘기를 따라 꽃을 한참 빨고 다녔어. 아주 달콤한 꿀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제법 달짝지근했지. 요새라면 미세먼지며 마스크 때문에 꽃을 입에 갖다 댈 엄두도 내지 않았겠지만 말이야. 붓꽃엔 한약방 소화제 같은 까만 씨가 쪼글쪼글하게 있었는데 동글동글 굴리는 재미가 있었지. 나팔꽃은 또 어떻고? 기다란 나뭇가지를 하나 박아주면 그걸 감아 타고 올라가는데 하룻밤 자고 나면 크는 게 눈에 보이는 거야. 꽃잎이 저녁에 닫혔다가 아침에 열려서 나팔꽃이라고 하잖아? 그래서 그 키 크는 것 하며 꽃잎 여는 걸 보려고 학교 가기 전에 꼭 그 앞에 섰었어. 우리 뒷집에는 커다란 감나무가 있었거든. 가을에 진한 주황색 감이 열리는데 집 뒤쪽이라 그런지 나무가 커서인지 감나무 밑은 캄캄했어. 자주 가진 않았지. 그래도 그때 봤던 기억이 있어선지 다른 건 몰라도 내가 감나무는 알아볼 수 있어 잎이 도톰하게 반짝이거든.
 
어느 겨울에 학교에서 성탄절 장식을 한다고 했을 때 내 키만 한 나무를 베어다가 교실까지 끌고 간 적도 있어. 열 살 남짓한 여자애가 가져가기엔 좀 무거워서 정말 끌고 갔어. 무슨 용기였을까? 아마 우리 집 사철 푸른 나무를 자랑하고 싶었나 봐. 그렇지 않고서야 집에서 학교까지 30분이 넘는 거리를 나무를 끌고 갈 생각을 했으니 말이야.
 
앞니가 흔들거려 거의 빠질 때가 되면 동네에서 제일 큰 현대슈퍼마켓에서 얼굴만 한 갈색 엿을 사서 흔들리는 앞니에 녹여 물었어. 그러다가 갑자기 쩍하고 입을 벌리는 거야. 이가 아직 제자리에 있으면 다시 엿을 물어 이가 엿에 달라붙어 빠져나오도록 몇 번씩 되풀이하곤 했지. 이를 실에 꿰어 빼기가 겁이 났었거든. 학교 가는 길엔 시장이 있었는데 어찌나 넓고 긴지 볼거리가 가득했어. 생선가게에는 투명한 얼음이 보석처럼 반짝였고 늙은 호박이 맨 아랫줄에서 지키고 서 있는 채소가게에는 흙 묻은 대파와 당근과 이름 모를 채소들이 색깔 맞춰 매일 새롭게 자리했어.
 
멸치육수 진하게 우려 김 가루 올린 국숫집 한쪽에는 무청 시래기가 줄에 엮여 걸려있었고 어른들은 시장에서 뭘 살 때 흥정을 해야 했지. 시장 입구 빵집에서는 초록색, 주황색 무늬 사이에 하얀 크림을 넣은 롤 케이크를 아치형 장식이 있는 종이 상자에 넣어주었어. 그 옆 약국은 어마어마하게 커서 없는 약이 없었지. 대단했어.
 
몇 년을 살았던가? 한 4~5년 정도였던가? 이미 강산이 두 번 반 지날 만큼의 시간이 지나서 잊고 지내던 그 동네가 그립더라. 열 살의 풍경에 늘 있던 동네가 동화 속 이야기 같아서 다시 거닐고 싶었어. 그래서 일부러 찾아갔지. 숲 같던 공원이 없어졌더라. 그 자리엔 관공서와 주차장이 들어섰고, 우리 집과 꽃밭 너머 옆집 감나무 뒷집에는 대리석 벽으로 된 빌라가 나란히 섰어. 시멘트 위에는 봉숭아, 사루비아, 붓꽃, 나팔꽃, 감나무 대신에 손목만 한 나무가 삐죽이 담장 역할을 하고 있었어. 동네에서 제일 컸던 현대슈퍼마켓엔 이제 엿은 없고 예전 젊은 사장님이 희끗희끗한 머리로 돋보기를 쓰고 계산대에 앉아계셨어. 과자가 전시된 진열장에 손이 안 닿는 곳도 많았었는데 천장이 낮아졌더라. 초등학교에도 갔지. 그런데 참 이상하지? 분명 산처럼 높은 곳에 있었던 학교가 야트막한 언덕에 있는 거야.
 
 
집으로 오는 길에 사람 많던 시장은 조용히 하다못해 적막했어. 다니는 사람이 적고 가게들도 문을 닫았더라고. 학교 준비물은 물론 각종 장난감이 가득했던 문방구는 없어졌고 생선가게 얼음도 더는 반짝이지 않았지. 드넓던 시장은 사실 어른 서너 명이 함께 지나기 벅찬 넓이였고 세상에나 시장 입구로 들어서니 시장 끄트머리가 보이는 게 아니겠어? 부지런히 걸으면 금세 시장을 지나겠더라고. 아니, 눈에 담을 것들이 별로 없어서 부지런히 움직이지 않아도 시장 길이 끝났어. 왜 이렇게 짧아졌는지 어리둥절해 하다가 유리창이 깨끗하게 닦인 김밥 집에 들어섰어. 웬걸. 국수도 팔고 있더라. 국수를 주문하고 작은 자리에 앉아 벽을 둘러보는데 호돌이, 꿈돌이 같은 작은 장식물이 먼지 없이 늠름했어. 언제부터 모으신 거예요? 첫 말이 어떻게 나왔더라? 내가 한창 이 길을 오갈 때부터였더라고. 사장님이 시장에서 일하기 시작했을 때 말이야. 그땐 요 옆 옆집에서 생선가게를 했는데 북적북적 사람도 많고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대. 갓 시작한 생선 장사로 부지런히 일하고 모아서 아이들 공부시키고 시집·장가까지 보내고 나니, 무릎이며 어디며 안 아픈 데가 없어 가게를 정리하고 이렇게 분식집을 열었다고 하시더라.
 
뽀얀 김이 올라오는 국수를 건네주시면서 많이 먹으라고 하셨어. 근처에 큰 마트들이 생기고 신도시가 올라서기 위해 한참 공사를 하면서 시장을 찾는 사람들이 줄어들고 새로 오는 가게도 없이 문 닫는 곳만 늘었대. 저물어가는 곳이 된 거야. 그래서 서운했냐고? 아니, 우리 동네는 진짜 살아있는걸 어린아이의 눈 속 그대로 멈춰있지 않고 쉬지 않고 살아있던걸. 아마 지금 열 살 아이의 눈에 그 동네는 여전히 크고 하루하루는 새롭고 신기할 거야. 한참이 흐른 후에 다시 가서 보고 싶을 만큼 그리운 곳이 되겠지. 예전 열 살 아이의 눈에 담겼던 우리 동네가 아름다웠던 것처럼 말이야. 장미인 줄 몰랐어도 기억이란 게 마음에 장밋빛을 만들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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