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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인협회 인니 지부 (215) 사랑의 짧은 언어 /이태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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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산책
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6,975회 작성일 2022-10-08 2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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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짧은 언어
 
이태복(시인, 사산자바문화연구원장)
 
 
작은 수의 언어로 사는 게 동물이다. 고양이의 언어는 보통 쓰는 ‘야옹’이라고 내는 소리 외에 위협할 때 내는 ‘쎄에’하는 소리, 끙끙거리는 소리, 사랑의 바디 랭귀지인 발톱으로 긁기와 꾹꾹이 등, 내가 문자로 옮길 수 있는 언어는 많지 않다.
 
사람이 사용하는 한 단어를 문자로 표현하고 그 소리를 어떻게 내느냐에 따라 뜻이 달라지는데 이것이 발달한 언어가 중국어의 4성이란다.
 
어제 이른 아침 우리 집 고양이 행복이가 첫 새끼를 낳았다. 출산 전인 그젯밤 11시에 행복이가 나를 애타게 불러 잠을 깨웠다. 그 부르는 소리는 야옹이었지만 평소 성조와 달랐다. 성조는 몰라도 내게 들리는 필은 간절함이었다. 뭐가 불편한가 싶어 우리에 가까이 갔다. 
 
“야옹 야옹!” 
평소보다 소리를 더 자주 냈다.
“왜 그래?”
 
우기가 시작되려는지 나흘 전부터 밤마다 비가 왔었다. 그제 밤도 하늘에 먹구름이 잔뜩 끼어 있었다.
“이 정도 추위가지고 뭐 그래?”
 
추워서 그런가 보다, 일방적으로 이해하고 판자를 우리 주위에 덧대어 주고 나는 오히려 바람이 없는 아래층 방으로 잠자리를 옮겨 단잠을 잤다.
 
다음날 5시 반, 일어나 보니 행복이가 새끼를 다섯 마리나 낳았다. 태어난 지 10~20분이나 됐을까? 새끼들은 탯줄이 달린 채 물에 빠진 생쥐처럼 양수도 마르지 않았고 어미는 피투성이가 되어 있었다.
 
어미는 산고의 고통도 뒤로 한 채 탯줄이 덜 정리된 출산 부위를 핥느라 정신이 없었고, 새끼들은 밤에 온 비에 젖은 축축한 모래위에 다섯 마리가 탯줄까지 서로 엉킨 채 체온을 유지하며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
 
 
 
어젯밤 행복이가 생각났다. 아뿔싸! 산통이었구나 생각해 보니 어젯밤 행복이는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못하고 호소했던 것이었다.
“미안해! 미안해! 정말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용서해!”
 
나의 미안함을 인간들이 사용하는 복잡한 언어로 행복이에게 표현했지만 행복이도 나처럼 못 알아 들을 수 있다. 길게 중얼거릴 새도 없이 일단 둥지부터 새 카톤 박스에 헝겊을 깔고 새끼와 어미를 옮겼다. 다행히 새끼 모두가 무사했다.
 
해가 뜨자 햇살을 쬐도록 박스를 양지로 옮겨 주었다. 새끼들의 생존 본능이 대단했다. 눈도 못 뜨고 털이 질척한 채로 어미 품에 파고 들고 있었다. 젖을 먹기 위해서다. 두 놈이 멍하니 있기에 만지면 죽을 것 같은 두 놈의 목덜미를 잡아 젖 가까이 놓았다. 젖 냄새를 맡더니 젖 빨던 힘까지 다한다는 뜻이 무엇인지 보여주겠다는 듯 사정없이 품을 파고 들고 있었다.
 
다섯 시간이 지나자 언제 그랬냐는 듯 보통의 새끼들처럼 털이 뽀송뽀송한 귀염둥이들로 변신해 있었고 부쩍 커 있었다. 행복이에게 어젯밤 미안함을 만져 주고 쓰다듬어 주는 스킨십으로 표현하기로 했다.
 
자바어를 접하면서 한국말처럼 아랫말, 평어, 경어에 더불어 궁중 언어까지 복잡한 언어를 이해하려는 어려움을 겪었었다. 적은 언어를 쓰는 동물들과 불통하는 것이 이상할 것도 없다. 내가 복잡한 자바어에도 당황하지 않았던 것은 관심과 사랑이었다. 행복이와 소통도 언어보다 관심과 사랑일 것이다. 앞으로도 스킨십으로 사랑을 대신할 것이다. 사랑의 언어가 소통되지 않은 세상은 없다. 사랑의 언어는 길지 않다.
 
“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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