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인협회 인니 지부 (222) 마르고 커피와 대릉원 명당 /하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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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고 커피와 대릉원 명당
하연수 (한국문협 인도네시아지부 감사)
족자(족자카르타)로 여행을 떠났던 친구를 다시 만났다. 프람바난이나 보로부두르를 본 느낌을 물어보았다. 프람바난 등 유적 이야기는 하는 둥 마는 둥하고, 불타는 숯을 넣은 마르고 거리의 블랙커피, 말리오보로 거리, 전통시장 등 유적지 주변 이야기들만 신이 나서 한다.
족자여행 주인공이 되어야 할 프람바난, 보로부두르가 배경 정도로 밀려난다. 친구는 이번 여행 목적이 미국 살면서 소진해 버린 에너지 충전을 하는 여행이라고 말한다.
인도네시아로 오기 전 휴식과 에너지를 얻으려고 남해, 호남 여행을 하고 왔다고 한다. 세계적인 문화유산 경주도 다녀왔느냐는 내 말에 아니란다. 재미없는 여행 기억 때문에 경주는 이번 여행 일정에서 뺐다고 했다.
단체여행 일정은 유적 현장을 보고 가이드가 유적에 대해 설명하고, 다음 유적지로 이동해서 또 현장을 보고 가이드가 다시 설명하는 것의 반복이었다고 한다.
유적지 울타리 앞에서 버스를 타고 다음 유적지 울타리로 이동하는 여행이라서 개인적 시간은 없고, 유적지 밖에서 커피 한 잔 할 기회도 없는 군인들의 행군 같은 여행이었고, 수업의 연장인 수학여행 같았다 한다. 고고학자, 역사학자들이나 좋아할 여행이더라고 한다. 여유롭게 쉬고, 놀며 에너지 충전 목적으로 온 사람들에게 자신이 경험한 단체 경주여행은 재미없는 곳이라고 한다.
여유를 즐기고 쉴 곳이 별로 없는 경주이긴 하지만, 찾지 못해서 그렇지 나름 즐길 만한 곳들이 더러 있다고 귀띔해 주었다. 그 중 하나인 대릉원, 천마총을 즐길 수 있는 명당 이야기를 해 주었다.
천마총 울타리 맞은 편 옛 시청 근처에는 여행객들이 쉴 만한 커피 집 하나도 없는 곳이다. 그래서 외국에서 온 여행객들뿐만 아니라, 국내 여행객들도 거의 가지 않는 곳이다. 그런데 아마추어 사진작가이기도 했던 미국인 S는 천마총 맞은 편 그곳으로 가 보자고 했다. 그곳은 쉴 곳도 없고, 여행객들도 가지 않는 곳이라고 했다.
그래도 S는 굳이 그곳으로 가 보자며 발길을 돌리고 있었다. 하는 수 없이 대릉원 천마총과 옛 시청을 가르고 있는 도로를 건너 그곳으로 갔다. S가 찾고 있는 것은 쉴 곳이 아닌 대능원 전체를 카메라에 가장 잘 담을 수 있는 위치를 찾고 있었다.
쉴 곳이 없어 여행객들이 가지 않는 옛 시청 앞, 미국인 S는 그곳을 대릉원, 천마총을 가장 즐길 수 있는 명당이라고 했다. 가을 햇살에 매끄러운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갈색 대릉원 고분은 살찐 가을 말 등이고, 고분 아래 여행객들의 알록달록한 옷들은 온타리오 호수에 내린 단풍이라고 했다.
나는 그곳을 수도 없이 지나다녔던 사람이다. 한 번도 그곳에 서서 대릉원, 천마총을 유심히 본 적이 없었다. 회사 손님으로 왔던 미국인 손님 S에게 천마총 설명을 해 주고 있었는데, 사진작가이기도 했던 S의 시선은 쉴 곳도 없고 여행객도 보이지 않는 시청 앞에 가 있었다. 손님이 원하니 해 주어야지 하고 도로를 건너 옛 시청 앞으로 갔다.
두리번거리며 몇 번 자리를 옮겨 다니던 S가 이곳이라며 활짝 웃었다. 고분 정상 각도 사십오도 미만, 정상에서 외곽 풍경까지 모두 한 눈에 담을 수 있다며 좋아했다. S는 쉴 곳 하나 없는 곳이고 여행객들이 보이지 않는 곳이지만, 그곳을 대능원 천마총을 즐길 수 있는 최고의 명당이라고 했다.
이제 나도 여유를 즐기고 에너지를 채우는 여행을 떠나 보아야겠다. 바이어 S처럼 천마총 맞은편에 가서 대능원 천마총의 가을을 느껴보고, 친구처럼 뜨거운 숯을 넣은 마르고 블랙커피 마시러 떠나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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