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인협회 인니 지부 (224) 친구 ‘랄’할아버지/Sahabat Pak l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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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랄’할아버지/Sahabat Pak lal
이태복(시인, 사산자바문화연구원장)
자카르타에서 내려놓고 살라띠가에 살러 왔다. 내려놓은 사람은 걱정과 두려움이 없다. 내려놓음은 종착역으로 오해하기 쉬운 비움이 아니라 바른 목적지가 정해진 노선 위에 기관차를 올려놓은 출발일 뿐이다.
나흘 전, 연구원에 이민국 직원이 들이 닥쳤다. 내겐 아직 뭔가 두려움과 당황함이 있었다. 나의 내려놓음은 그저 비움 정도였기 때문이다. 나는 묵상 결과 비움만으로 매너리즘에 빠져 있다고 자가 진단을 했다.
‘귀신이 나온 방에 돌아가 보니 집이 비고 청소되고 수리되었거늘 이에 가서 저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서 거하니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욱 심하게 되느니라’ 라는 성경 말씀이 있다. 비움에서 그친 결과다. 목적지에 가기 위해서 노선 위에 올려놓은 기관차의 동력에 불을 붙여야 하건만, 나는 내려놓음에 자위하고 그것이 전부인 냥 자신을 방치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에 대한 해법은 나도 모른다.
어젯밤 랄 할아버지가 내 마음의 화통에 불을 붙이는 해법이 되는 일이 있었다. 지난 두 달간 대상포진으로 죽고 싶을 만큼 아픈 고통 앞에서 나는 진정 내려 놓았는지만 재확인하고 깨끗함에 대한 자신에 신의 가호를 빌었고, 아직 병마가 위협하는 몸을 일으켜 추모비 기공식을 마쳤다.
지난 6년간 독립열사들의 역사와 조선소녀위안부들의 애환을 알리겠다는 사명이 있었기에 힘들었지만 잘 달려 왔고 칭찬과 격려까지 있었기에 힘든 줄 몰랐었다. 그건 젊음의 환상으로 달려 온 시간이었을 것이다.
크게 아프고 나서 세월을 못 속인다는 말이 뜻하는 늙음을 실감했다. 추모비 건립은 모국어로 새기는 비문이라 비석을 한국에서 수입해 오면 좋겠지만 예산이 부족해 인니에서 하기로 했고 현지인 조각사가 한글을 수작업으로 해야 하기에 혼신의 힘을 다해 점하나 신경 써야 하는 일이 남았다. 어쩜 지금부터 시작인데 몸이 늙으니 마음마저 힘들어 진다.
기공식이 끝나고 막일을 하는 노동자가 막걸리 한잔 하는 휴식시간을 기다린 듯 기공식 후 하루만이라도 제대로 쉴 계획에 연구원으로 돌아가려는데 전화가 왔다. 이민국 직원 4명이 근무지 불법 이탈이라며 단속을 왔단다.
나의 활동을 감지한 이민국, 자카르타 끼땁을 갖고 살라띠가에 체류하면서 불법 이득을 취한 것으로 추정한 모양이다. 이곳에 온건 먹고 살만한 업무 터전을 버리고 비움으로 왔기에 당당했었는데 이민국의 출두 통지서가 왠지 두렵다. 번거롭고 피곤하다. 안일하게 살고 싶은 간사한 인간의 본능일까? 한량 같은 나는 일단 피하고 보자는 듯 발길은 오지 산골 친구 집으로 향했다. 그리고 하룻밤을 죽은 듯 잤다.
그런 후 다음날 금요일, 점식 식사 후 돌아가려는데 또 와서 출두 명령서를 놓고 갔단다. 늘 나의 안식이 됐던 머르바부 산의 넉넉한 품에 하루를 더 쉬고 나니 오기가 발동했다. 오기는 누군가를 이겨야하는 소모전, 오기는 해법이 아닌걸 알면서도 대책 없이 월요일 이민국 출두를 자결한 후 연구원으로 돌아 왔다.
연구원에는 허전함이 느껴졌다. 그 동안 살아왔던 열정은 어디가고 발동한 오기의 몇 시간에 벌써 기마저 소모 됐는지 모든 것이 귀찮다. 거기다 스트레스도가 원인의 한 몫을 한다는 대상포진이 재발 되려는 듯 통증이 또 시작 되어 밥을 챙겨 먹고 약도 먹어야 하는데 왜 이 짓을 하나 하는 후회까지 들면서 끼니고 뭐고 그냥 누워 자려고 잠자리를 펴는데 랄 할아버지가 두리안을 내민다.
“아니! 이 귀한 것을 할아버지께서 드시지!”
빠 사산, 기운 회복하라고 어제부터 준비해 놓고 기다렸단다. 내가 부담스러워 할까봐 자기도 하나 먹었다는 묻지 않은 자백까지 한다. 이민국에서 다녀가고 나의 기가 빠진 것을 아는 노인네, 용기 내어 살라는 뜻이다. 그래서 늙으면 여우라 하는 것이 부정적 표현만은 아니었다.
랄 할아버지의 두리안! 지난주에 이어 두 번째다.
'아! 할아버지가 친구였구나.'
고마움과 함께 할아버지에 대해 제대로 몰랐던 마음이 부끄러워졌다. 그러고 보니 다음 달이 랄 할아버지와 내가 함께 한지 벌써 1년이 되는 달이다. 랄 할아버지가 연구원에 오게 된 동기는 내가 외로워 함께 살 친구가 필요하다고 부원장 수나르에게 툭 던진 한마디 때문이었다. 아침 8시부터 오후 4시까지 낮에는 연구원에 사람이 있지만 이튿날 아침까지 18시간은 혼자였다.
글을 쓰려고 조용한 살라띠가를 택했지만 쓰는 글에도 재료가 필요했기에 기계 돌리듯 24시간 연속 가동하는 것이 아니어서 찾은 친구였었는데, 랄 할아버지는 전에 한 번 소개 했듯 오갈 때 없는 너무 늙어 버린 노인이었다. 내 기준의 친구로 부적합 했지만 값싼 동정심에 그저 불쌍한 노인 하나 구제 한다는 마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랄 할아버지가 준 두리안! 주먹만은 할까? 실로 작고 깜찍한 크기에 매력을 느꼈다. 인도네시아에서는 두리안을 먹을 수 있는 집에 시집가는 것을 부잣집에 시집가는 것이라 한다. 그런 두리안을 살 형편이 못되는 랄 할아버지라 꼬치꼬치 물었더니 빠 사산이 두리안 좋아 하는걸 알지만 가격이 20만 루피 이상이라 엄두도 못 냈는데, 시장에 팔 크기가 안 되는 조그만 두리안을 이웃 동네 할머니가 연고가 있는 이 동네에 팔러 왔더란다.
지난번에 3만 5천 루피아에 두개를 사서 나에게 하나 주었더니 너무 잘 먹기에 또 샀단다. 랄 할아버지는 내가 잘 먹는 것이 기쁜지 동네방네 자랑을 하고 다녔었다. 죽 3천 루피아 짜리로 한 끼를 때우는 랄 할아버지, 이 작은 두리안은 열 두 끼 식대에 해당하는 거금인데 오늘 나를 위해 또 기쁘게 썼다.
세상 사람들이 네피림에만 관심을 가지는 것과 달리 천국에서 관심을 가진다는 천국사람에게서 내가 큰 사랑을 받고 있었다. 행복한 자신이란 걸 깨닫는다. 랄 할아버지가 진정한 나의 친구이며 이웃이었다. 싱콩을 갖다 주는 옆집 할아버지, 내가 꽃을 좋아한다는 걸 알고 야생화를 꺾어다 주는 동네 아이들, 내 체류하는데 문제는 없나 챙겨주는 경찰 친구, 월요일 출두에도 함께 가서 변호까지 하겠다는걸 조심스레 거절했다.
시상이 떠올라 좋다는 내 말에 언제든 마구간 옆방을 내 주는 산간 마을 사람들, 그곳에 다녀와서 벼룩이 올라 고생하는 것을 보고 연구원에 알루미늄과 통유리로 깨끗한 방을 짓고 천정도 신소재를 써서 외국인인 나를 편하게 살도록 해 준 통 큰 친구, 그 외 다 언급 못한 친구들이 내 이웃에 천지다.
랄 할아버지의 두리안이 나의 마음 더 깊은 곳을 비워 내고 자리 잡았다.랄 할아버지는 비운 마음의 기관차 화통에 연료를 부어 넣어 새로운 출발을 하게했다. 내 이 이웃들을 위해 살 것이다. 허무한 세상, 내가 건강히 오래 살고 잘 되어야 할 이유는 오직 이것뿐이다. 나는 행복한 사람이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도와준다 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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