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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인협회 인니 지부 [제5회 적도문학상/ 수필부문 장려상] 나의 아저씨, 나의 기사님, 나의 고젝 /양범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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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산책
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900회 작성일 2023-07-10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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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저씨, 나의 기사님, 나의 고젝


양범은


핸드폰의 액정이 8시 39분을 가리킨다. 로비에 대기하고 있던 차를 타며, 구글 지도앱을 켠다. 액정에 나타난 예상시간 48분, 출근시간과 겹친 도로는 마치 붉은 정맥 같은 길을 눈앞에 펼쳐 보여준다. 예상했던 시간과 무려 30여분이나 차이가 난다. 시시각각 변하는 자카르타의 교통체증 때문이다.


‘오늘이 짝수 날이라서 시간이 더 많이 걸리는구나.’ (자카르타는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가장 번잡한 오전과 오후 시간대 각각 4시간 동안, 주요 도로에서 홀짝제를 운영하고 있다.) 뒤늦은 현타와 함께 온 짜증 섞인 탄식을 뒤로하고, 운전기사에게 여기서 대기해 달라는 말을 남기고 차에서 내리며 서둘러 ‘고젝’ 앱을 켠다.


구비구비 돌아 홀수 길을 가느니, 짝수번호 택시를 잡아타고 최단거리로 가는 것이 더 빠를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다. 몇 번의 시도 끝에 자동차 택시를 잡는 것은 포기하고 나의 다음 선택은 바로, 오토바이. 자카르타의 교통상황처럼 포기도 선택도 시시각각 빨라야 한다. 옵션을 오토바이로 바꾸니 예상시간도 확 줄고, 무엇보다 좋은 점은, 선택과 거의 동시에 오토바이가 바로 배정된다는 점이다.


“슬라맛 빠기!”

벌써 도착했다. 그렇다, 배정 받은 후 거의 토르의 묠니르의 속도로 내 앞에 나타는 것 또한 아주 흡족한 점 중의 하나이다. 그래서 ‘급할 땐 남편보다 고젝’이라고 하나보다! 헬멧을 써서 얼굴을 알아볼 수 없는 기사님이 반들반들 윤이 나는 헬멧을 건넨다. 초록색 바탕 위에 하얀색 동심원 모양이 새겨진 헬멧의 산뜻한 디자인과는 상관없이, 이 순간엔 할 수 있다면 착용하기를 거부하고 싶은 물건이다. 그 이유는 수많은 사람들의 머리를 거쳐 갔을, 냄새가 날 것 같고, 비위생적일 것 같은 이 물건을 내 머리에 완전 밀착시켜야하기 때문이다. 이 시점에서 다른 선택지는 없기에, 주저하는 마음을 애써 무시하고 헬멧에 머리를 밀어 넣는다. 뒷자석에 올라탄 후 기사와 일정거리를 유지하면서도 안정적인 자세를 잡기 위해 잠시 엉덩이를 이리저리 꿈틀거린다.


“레디?”

“수다!”

친절한 기사님과 그렇지 못한 도로 사정으로 불쌍한 나의 엉덩이는 연달아 방아를 찧는다. 곧 골목을 빠져나와 큰길 초입에 다다랐다. 더 이상 끼어들 곳이 없을 정도로 빽빽한 오토바이의 틈 사이로 유영하듯 부드럽게 끼어들고, 부딪칠 듯 돌진하지만 어느새 안전거리를 유지하는 용감하고 노련한 나의 기사님. 그 옛날 마자빠힛 제국을 건설한 라덴 위자야 왕의 용맹함과, 이후 제국을 안정시킨 재상 가자마다의 지혜가 깃든 것일까? 손잡이를 잡은 두 손에 나도 모르게 힘이 잔뜩 들어가지만, 이 순간 그는 내가 의지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이므로 그를 믿어야 한다!


운전 실력에 감탄하는 사이, 하나둘 끼어든 오토바이 무리가 벌써 도로의 반을 넘어, 점점 그 영역을 넓혀가고 있었다. 물고기 떼가 무리에 모여들듯 오토바이 무리는 빨간불 신호 아래 모여들고 있었고, 초록불 신호가 떨어지기도 전에 오토바이 무리들은 벌써 부르릉 성난 시동을 걸고 있었다. 틈새에서 준비 태세를 갖추고 있던 나의 ‘라덴 위자야’도 신호가 떨어지기 무섭게, 총탄에서 빠져나온 총알처럼 빠르고 미끄럽게 질주하기 시작했다.


뜨거운 바람이 땀으로 눅눅해진 뺨 위로 훅훅 스쳐간다. 매캐한 매연과, 기사님의 것인지 나의 것인지 모를 땀 냄새는 나의 코를 계속 간질인다. 태양은 오늘도 뜨겁게 작렬하고, 신경질적인 경적음 사이로 누군가의 라디오에서 신나게 울려 퍼지는 당둣 소리, 그리고 자동차와 오토바이의 방귀소리가 귀를 망치질하는, 이곳은 남위 6도의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자동차를 탔을 땐 무심코 지나쳤던 것들이, 철과 유리라는 장막이 없는 오토바이를 타면 비로소 눈에 들어오게 된다. 옆에 탄 오토바이 탑승자와 눈이 마주치면 살짝 미소 짓는 착한 이웃들, 운동장에서 히잡을 휘날리며 공을 차는 여자아이들, 봉지 주스에 빨대 꽂아 마시며 뭐가 좋은지 서로 깔깔거리며 걸어가는 아이들, 미니 수퍼에 주르륵 매달린 형형 색깔의 가루 주스와 커피들, 그 사이로 보이는 라면 광고에는 한국 유명 아이돌의 얼굴이 보이고, 한글로 새겨진 조악하고 광고와 허접한 간판을 지나칠 때면 한국의 위상에 괜히 어깨 뽕이 올라가기도 하고, 조산원이라는 시설이 아직도 있다는 것과 전당포가 지금도 성행 중이라는 사실 등.


눈으로 들어오는 것 외에 코와 피부로도 느끼는 것도 있다. ‘이깐 바까르’를 굽는 하얀 연기 속에서 산신령처럼 나타났다 사라지며 부채질하는 남자, 그걸 보는 순간 내 코를 훅하고 찌르는 비릿하고 고소한 생선과 매운 삼발 내음, 목구멍과 피부에 그대로 느껴지는 메케하고 덥고 습한 매연 입자들. 이 모든 것들이 에어컨 틀어놓은 쾌적한 자동차 실내에서 바라보면, 십 수 년을 보고도 느낄 수 없었던 것들이다. 자동차를 타고 갈 때는 창밖에 시선을 잘 두지 않아서이기도 하지만, 바라보더라도 유리창으로 보는 바깥 풍경은 냄새와 느낌이 차단되어서, 마치 시원한 영화관에서 보는 2차원의 스크린 세상 같기 때문이다.


엄마와 아빠 사이에 끼어 앉아 있는 어린아이의 눈동자를 들여다볼 마음보다는 핸드폰 액정에 보이는 오늘의 핫 이슈에 눈길에 가고, 인형 탈을 뒤집어쓰거나 온몸과 얼굴에 페인트칠을 한 채 돈을 구걸하는 이들을 쉽게 외면할 수 있으며, 뿌연 연기를 내뿜는 ‘이깐 바까르’의 비릿한 탄내쯤은 쉽게 차단할 수 있으니까.


유리창 밖에서 삶의 한가운데에 있는 현지인들의 기쁨, 하루치의 고단함과 길 위에서 이어지는 그들의 작은 삶 따위는 나와 상관없는 먼 나라 일처럼 느껴지니까. 그렇지만 유리창도 단단한 철문도 없는 길 위에서, 나는 날것의 그들의 삶을 만난다.


오토바이에 한 가족 네 사람이나 탄 것에 안타까워하는 마음을 가진 것이 무색하게도, 엄마, 아빠 사이사이에서 함박웃음을 지으며 그것 또한 즐거운 한순간으로 즐기는 아이들, 인형 탈을 벗은 중년 사내의 땀에 젖은 머리칼과 지친 노란 눈빛, 오전 예배가 끝나고 쏟아져 나오는 한 무리의 무슬림들의 평화롭고도 기품 있는 얼굴.


한편 드는 생각 한 조각, 내가 그들과 다른 것은 무엇일까? 그건 얼굴색의 채도가 조금 밝다는 것과 한국에서 태어나서 자랐다는 것, 한국은 경제성장을 이루어서 지금은 인도네시아보다 경제적으로 앞서가는 나라가 되어, 이제는 선진국이라는 위치에 올랐고, 나는 운 좋게도 그 나라의 국민으로 나고 자랐다는 것. 


나와, 저 오토바이 뒷자리에서 아이를 안고 땀을 흘리며 앉아 있는 저 여자는 다를 것이 없지만, 나는 대한민국 국민으로 태어났다는 이유로 저 여자보다 조금 더 풍족하고 안락해 보이는 삶을 살고 있다. 그건 내가 잘해서도 아니고 저 여자가 나보다 능력이 없어서도 아니다.


저기 봉지 주스를 빨고 깔깔거리며 하교하는 여자아이들이 나의 딸과 다른 점은 무엇인가. 똑같이 인도네시아에서 태어나 유년시절을 보내고 있지만, 앞으로 저 아이들이 인생에서 만날 수 있는 기회와 나의 아이들이 만날 수 있는 기회는, 양과 질 모두 크게 다를 것이다. 이변이 없다면, 우리 아이들이 더 좋고 더 많은 기회를 가질 확률이 확연히 높을 것이다. 그건 우리아이가 잘나서도 저 아이가 못나서도 아니란 것을 모두가 알고 있다.


우월감에 젖을 필요도, 괜스레 미안한 마음 가질 필요도 없다. 경제적 풍요가 곧 행복이라는 등식이 성립하는 건 아니니까. 돈이 행복의 필요충분조건은 아니니, 누가 더 행복할지는 알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행복하다는 것은 어떤 상태를 말하는 걸까?

누군가의 삶을 다른 누군가가 평가하고 정의할 수 있을까?

사람의 현재의 삶의 질과 미래의 모습을 결정짓는 가장 큰 요소는 무엇일까?


멍하니 의식의 흐름대로 생각에 빠져있는 사이, 신나는 당둣소리는 어느새 요즘 뜨는 걸 그룹인 ‘뉴진스’의 ‘어텐션’으로 바뀌어 울리고 있었고, 오토바이는 목적지인 한국대사관 앞에 다가가고 있었다. 


“뜨리마까씨”

헬멧을 벗으며 기사님께 감사함을 표한다. 


“사마사마. 감사함미다!” 

기사님이 서툰 한국어로 대답한다. 세상에서 가장 용맹하고 지혜로운 나의 기사님은 이제 또 다른 콜을 받고 막힌 길을 시원하게 뚫어주시겠지? 그들의 짜증 섞인 탄식을 지금의 나처럼 안도의 미소로 바꿔주겠지?


또 만나요, 나의 아저씨, 나의 기사님, 나의 고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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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소감]

청명한 한국의 하늘 아래에 막 발을 딛고 부모님의 따뜻한 환대를 받으며 막 우렁쌈밥을 먹으려 할 때 이었습니다. 좀처럼 연락이 없던 지인에게서 카톡이 왔습니다. 적도문학상 수상을 축하드린다는……. 우렁쌈을 향해 벌려있던 입은 놀라움과 환호의 입 벌림이 되었고, 따뜻한 환호는 열렬한 환호로 바뀌었습니다. 


장을 보고 나오던 중, 슈퍼 현관유리에 붙어있던 공모전을 보았었습니다. 글쓰기는 좋아했지만 평가받는 건 싫었기에(공부하는 건 좋아하지만 시험이 싫은 것처럼 말이죠) 나의 글들은 나만의 비밀블로그에 일상과 단상들을 털어 넣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공모전 소식을 본 이상 그냥 지나칠 수는 없었습니다.

작가는 글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매료시키는 사람, 쳐다보는 즉시 사람의 시선과 마음을 붙잡아놓는 매체들의 시대에 글이라는 고전적이고 단조로운 수단으로 그 어떤 화려한 영상 보다 더 큰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들, 소설 속의 세계를 창조하는 창조주, 응축된 단어와 여백 속에 감정을 담아내는 시인들, 일상의 단상에 때로 돋보기를, 때로 특별한 필터를 끼우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합니다.


문학상 한 번 받았다고 그런 사람이 되었다고 생각하는 건 절대로, 절대로 아니지만, 어쩌면 나도 그런 사람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설렘이 생겼습니다. 동경하는 그분들이 하는 ‘수상소감’이란 것도 써 보다니, 나에게 이런 일이 정말로 일어났습니다!


사실 다른 사람들이 나의 글을 보는 것이 어떤 기분이냐면, 내가 발가벗겨진 채로 길거리에 서 있는 것 같으면서, 한편으로는 나의 바닥이 다 발각되어 더 이상 포장할 것도 숨길 것도 없게 된 것 같아 마음이 편합니다.


기쁩니다. 

기뻐하렵니다 당분간은.

이제는 혼자만의 글쓰기에서 탈피해서 사람들에게 평가받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글쟁이가 되어보는 게 어떨지 스스로를 설득해 보려 합니다. 내 안에 있는 '어른 나' 가, 대개의 경우 게으르고 무서워하고 도망가려는 '어린 나'를 다독이고 설득해서, 이상적인 나'를 만들어 가는 것이 성장의 여정인 것 같습니다. 그 여정의 시작을 맞이한 것 같은 좋은 느낌이 듭니다. 이런 기회주신 심사위원분들과 글을 읽어주신 분들께, 마음을 담아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약력]

아이들을 키우며 사는 평범한 주부, 자카르타 거주 

요가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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