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회 적도문학상/ 수필부문 장려상] 빈 상자/김형석 > 한국문인협회 인니 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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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인협회 인니 지부 [제5회 적도문학상/ 수필부문 장려상] 빈 상자/김형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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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산책
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789회 작성일 2023-07-15 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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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상자


김형석


우리는 저마다의 삶 속에서 무수히 많은 인연의 연속에서 살아간다. 인연이란 인간관계 말고도 포괄적 의미에서 사물뿐 만이 아니라 그 외에도 매우 다양하다. 그 중에서 언급하려는 것은 살면서 어떠한 물건에 대하여 많은 관심과 애착을 가지며 살아가는 것에 대한 이야기다.


그것들은 각자의 취향이나 기호에 따라 부담 없는 것부터 값이 나가는 것까지 매우 다양하다. 그런데 우리는 그 무수히 많은 물건들 중에서 어떠한 것은 특별한 인연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고르고 또 골라서 기쁜 마음으로 집에 가는 도중에 실수나 부주의로 잃어버리는 경우 또 사용도 한 번 못 해 보고 망가져 버린 허무한 상황. 구입한 옷 중에 한 번 입어보고 옷장 속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옷. 반대로 오래 사용해서 낡고 헤어진 볼품없는 물건에 오랜 기간 특별이 애착이 가는 것들. 그래서 더 값 나가고 아낀다는 물건은 세상 밖 구경도 제대로 못하다 남 주거나 또는 버려지는 이유는 뭘까? 


이와 같거나 비슷한 경험은 모두가 겪어 봤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앞으로도 유사한 일은 반복적으로 생길 것이라 본다. 왜 이와 같이 그저 단순한 물건인데도 친근감이 더 가는 이유에 대하여 궁금했었다. 거기에 나와 그 물건에 대한 무언의 교감일 수 있고 삶의 보조적 역할을 묵묵히 맡아 주는 것에 대한 편안하고 안락함 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 보다 그 물건과의 특별한 사연이 있다면 보다 더 끈끈한 인연으로 발전된다고 생각한다.


오래 전 아내와 함께 누님 댁에 가던 길에 버스에서 지갑을 분실한 걸 뒤 늦게 알고 택시를 타고 버스를 쫓아 30분을 뒤따라 갔다. 아내와 택시 기사 분은 포기하고 신용카드 업체에 빨리 전화하라고 했지만, 난 결국 버스를 쫒아가 내가 앉은 자리로 성큼 다가갔다. 내가 앉았던 자리에는 중년의 남성분이 앉아 있었다. 그 때가 겨울인데 놀라운 건 앉아있는 손님의 롱패딩 밑에 깔려 있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찾기 어려웠던 지갑은 그 후도 오랜 시간을 함께 했다. 


또 한 번은 해외 출장 중 핸드폰을 영국 히드로 공항 내 어느 대기실 의자에 두고 돌아다니다 찾으러 한참 후에 가보니 핸드폰이 흔하지 않던 때에 의자 위에 그대로 있는 것이다. 혼자서 놀란 가슴을 쓸었다. 


최근에 있었던 일은 2021년 우리와 함께 살고 있는 반려견 브라우니와 함께 스마랑에 1박 2일 여행을 다녀왔다. 집에서 약 400KM의 거리를 5시간 이상을 차로 이동해야 하는 거리다. 그런데 다녀온 후에 문제가 생긴 것을 알았다. 브라우니가 특별히 애착을 가지고 있는 강아지 인형 비글을 잃어버린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생각 끝에 혹시 숙박했던 곳에 두고 온 게 아닐까 하는 추측으로 전화를 했고 다행히 버리지 않고 보관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나는 택배로 보내준다는 것을 마다하고 한 달 후에 인형을 찾는다는 명목으로 브라우니와 함께 다시 여행길에 올랐다. 찾으러 다시 갔다 온 비용을 생각하면 훨씬 더 좋은 강아지 인형을 10개 이상 더 사줄 수 있지만 나는 생각이 달랐다. 


지금도 브라우니는 낡은 그 인형을 제일 좋아한다. 그 외에 독일에서 기차여행 중 카메라를 분실하고 결국 분실물 센터에서 다시 돌려받았을 때 카메라 안에 찍혀 있는 기차 청소부 아저씨의 웃는 인증 샷까지 남겨준 일화도 있다. 


앞서 몇 가지 사연을 얘기한 것은 이와 같이 살다 보면 어떠한 사연을 통해 보다 특별한 의미를 간직하게 된다는 것이다. 2009년 중국 난징이 아닌 난닝에서 아세안 엑스포가 있어 인도네시아 그룹과 합류하여 참가했던 일이 있다. 참가 행사 일정을 모두 마무리하고 일행과 유명한 계림 관광지에 가게 되었다. 관광을 마치고 일행과 선물을 구입하기 위해 전통 차茶를 판매하는 상품점으로 들어갔다. 다들 가족과 지인들에게 선물하기 위해 물건을 고를 때 나도 이것저것 살펴보며 고급스러운 상자에 잘 포장된 명품 茶를 구입했다. 


그리고 다른 곳에서도 몇 가지를 좀 더 구입해서 거주하고 있는 인도네시아로 귀국하게 되었다. 도착해서 여행 가방을 정리하면서 아내에게 전통 차를 보여주기 위해 금장무늬로 장식된 상자 뚜껑을 열었다. 헐!! 상자 속에는 아무 것도 없는 그저 빈 상자인 것이다. 혹시나 해서 여행가방 안을 여러 번 살펴봤지만 아!!! 이럴 수가 점원의 실수일거라 심증은 가지만 어쩔 수 없는 현실에 속상했다. 좀 더 신경 쓰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운 미련이 남았다. 


그래서 빈 상자를 바라보며 한숨이 절로 나왔지만 오히려 그 빈 상자는 나에게 10년이 훨씬 지난 지금도 다른 용도로 잘 사용하고 있다. 맛도 보지 못한 전통차는 나와 인연이 아니었고 오히려 숨은 인연은 내용물(차)을 두고 온 빈 상자가 내게 인연이지 않았나 싶다. 지금까지도 우리 가족의 추억이 담겨있는 소중한 물건을 잘 보관해 주고 있다. 가끔 상자를 열어 볼 때 마다 그 때의 일을 생각하면 나를 미소 짓게 한다. 이제와 생각해보니 뭔가 야릇한 반전이 느껴진다. ‘빈 상자에게 내가 역 선택된 것이 아닐까?’


그 외에도 수 없이 많은 사연이 우리의 삶 속에 추억으로 녹아 쌓이고 때론 잊거나 잃어버린 줄 알고 있던 것 들이 깜짝하고 나타날 때도 있다. 그럴 땐 우리를 놀라게도 하고 감격하게도 한다. 


인연이 아닌 것은 떠나가기 마련이고, 인연이 되고자 하는 것은 멀리하려 해도 곁에 남아 있는 것이라고 말씀하신 혜민스님의 글이 내 맘에 잔잔한 울림을 준다. 


[심사평]

김형석 <빈 상자>는 각기 다른 경험들, 버스에서 지갑, 공항에서 핸드폰, 강아지 인형, 빈 상자 등, 애착과 집착이 어우러져 있는 여러 경험들을 별도 삽화형식으로 구성했다, 문장의 속도감이 좋았다. 여러 가지 경험들을 해석해서 하나의 통일된 의미를 찾는 좋은 글이다. (심사: 서미숙, 하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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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 소감]

한국에 일이 있어 잠시 나와 있는데, 인도네시아에서 희소식을 받고 기쁜 마음과 더불어 이제 인도네시아로 다시 돌아가는 저의 발걸음을 가볍게 해 주었습니다. 졸필 원고를 좋게 봐 주시고 선정까지 해 주신 관계자님들께 먼저 깊은 감사와 경의를 드립니다. 


이번 5회 공모전을 통해 저의 지나온 삶을 뒤 돌아보고 지난 삶 속에서 일어난 소소한 일들을 정리해 보는 나름 뜻있는 기회였다고 생각합니다. 적도문학상을 통해 동남아에 거주하고 있는 보다 많은 한인 동포들이 기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약력]

1995년 ㈜신원 인도네시아 사업부 발령

2002년 PT. HANS CARPET창업

2022년 제12회 <인도네시아 이야기>문학 공모전 특별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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