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인협회 인니 지부 (181) 존재하지 않는 가치에 대한 매료 /이병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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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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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산책 181>
존재하지 않는 가치에 대한 매료
이병규 / 한국문협 인니지부 회원
이병규 / 한국문협 인니지부 회원
튤립이라는 꽃을 모르시는 분은 없으리라 믿는다. 튤립은 오랜 동안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다 년생 화초로 아름다운 꽃을 가진 식물이다. 오늘 갑자기 튤립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은 인간이 특정 대상에 대한 매혹이 불러오는 사회 현상에 대해 잠깐 이야기해보고 싶어서다.
우선 튤립에 대해 좀 더 이야기 해 보자. 튤립은 놀랍게도 네덜란드가 원산지가 아니다. 중앙아시아 파미르 고원 지역이 튤립의 진짜 고향이다. 더 넓은 황무지 평야에서 알록달록 피어있는 튤립은 이 지역 사람들을 충분히 매료시키고 남았을 것이다. 이 아름다운 꽃은 이후 오스만 제국의 부흥과 함께 지금의 터키 지역으로 옮겨졌고 거기서 술탄들의 사랑을 받으며 다양한 품종 개량을 거쳐 가장 대중적이며 아름다운 꽃으로 자리를 잡게 된다.
이렇게 터키 중심으로 사랑받던 튤립은 해상 무역이 중세 유럽 중심으로 활발하게 이뤄지던 시기에 유럽의 상인들을 통해 드디어 유럽으로 진출하게 되고, 16세기 한 식물학자가 튤립 보급에 앞장서면서 만든 네덜란드의 식물원에서 대박이 나면서 네덜란드를 상징하는 꽃이 되었다.
튤립에 대한 설명으로 서론이 너무 길었다. 그래서 뭐 어쩌라고 하시는 분이 계시겠지만 이제부터가 본론이니 끝까지 읽어주시기 바란다. 이렇게 건너간 아름다운 꽃 튤립이 네덜란드 경제를 뒤집어 놓는 사건이 발생하게 되는데 이 사건이 그 유명한 “튤립 투기” 사건이다.
17세기 접어들면서 식물 애호가들이나 해상 무역으로 부자가 된 몇몇 부호들 사이에서 튤립을 경쟁적으로 모으기 시작했고 이에 따라 서서히 튤립의 가격도 상승하게 되었다. 1634년 즈음에 여러분의 예상대로 투기 세력들과 개미들까지 합세해서 근 3~4년 가까이 튤립 가격을 수 백 배 수 천배 상승시키게 된다. (뭐 당시 대저택 한 채 값까지 오고 갔다고 할 정도였으니 얼마나 심하게 가치가 부풀려 졌는지 상상이 되지 않는가)
초기에 뛰어든 몇몇의 사람들은 엄청난 부를 모았고, 이 소식은 일반 사람들을 부추겨 더욱 더 튤립 광풍에 부채질하는 결과를 낳게 되었다. 위에 벌어진 일련의 사건들, 여러분에 굉장히 낯이 익은 스토리로 진행되고 있지 않은가? 이 이야기는 1637년에 예상하는 바와 같이 비극적으로 마무리된다.
어느 날 갑자기 거래가 뚝 끊기는 사태가 벌어진다. 수많은 사람들이 투매를 시작하게 되고 가격은 벼랑을 만난 듯 급락하기 시작하면서 수많은 사람들은 자신들의 손에 시들어버린 튤립만 남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최근 화두가 되고 있는 가상 화폐도 같은 결말을 맞을 거라는 이야기는 하지 않겠다. 아니 할 수도 없다. 전문가도 아니고 학부 시절 경제학 원론 조금 들여다 본 것 말고는 지식도 전무한 작자가 뭐라 할 수는 없는 노릇이기에. 다만, 실질적인 가치가 반영되지 않은 상황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가즈아아”를 외치며 분에 넘치는 금액의 대출금으로 뛰어들고 있는 이 상황이 너무 불안해서 한마디 거들고 싶을 뿐이다.
가상화폐가 분명 세금 문제나 계좌 추적 문제에서 자유로운 만큼 어떤 측면에서는 그 활용도가 높을 것이고, 그들만의 세계에서 국가들의 공식 화폐를 대체하는 수단으로 그 지위를 공고히 할 것이라는 부분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다만, 이 화폐가 튤립 광풍 시절의 튤립들 마냥 투기의 대상으로 삼는 순간 비극은 단순한 비극으로 끝나지 않을 것임이 자명하다. 분명 초기에 돈벼락을 맞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고, 이 모습에 배가 아파서 덩달아 뛰어드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결국 마지막 단계에서 상투 잡는 사람들도 나타날 것이다. 문제는 상투 잡는 순간 내 손에 남는 것이 시들어버린 튤립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인데, 지금 가상화폐는 분명 투기이고 도박이다. 실체가 없는 가치에 투자를 해서 결국 남는 것은 무엇이 될 것인가?
결국 시든 꽃마저도 내 손에 남지 않는 처참한 상황이 될 수도 있지 않은가? 지금 가상화폐 광풍은 이제 겨우 초기단계일 수도 상투 잡는 막바지 일수도 있다. 이 기회에 서민 탈출을 할 수도 아예 은행의 노예가 될 수도 있다. 이 모든 것은 오늘의 그 결정을 한 당신들의 몫인 만큼 깊은 고민을 해보길 바란다. 이 모든 것의 원리는 이미 학창시절 정치경제 시간에 배운 적이 있지 않은가? 떼돈을 벌어서 금고로 “가즈아아!” 해야지, 한강으로 “가즈아아!”는 좀 많이 곤란하지 않겠나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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