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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인협회 인니 지부 (182) 질밥 스카프와 마스크 / 하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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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산책
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16,185회 작성일 2021-10-29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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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산책 182>
 
질밥 스카프와 마스크
 
하연수 / 수필가 (한국문협 인니지부 감사)
 
소리 없는 번개가 멀리 서쪽 하늘에 흔적만 보여주고 사라진다, 하늘 가득한 구름 가장자리에 언뜻언뜻 은빛 테두리가 보인다. 사람들은 곧 코로나 공존시대가 온다고 한다. 이곳 인도네시아 땅그랑 반튼 여인들의 질밥 스카프도 짙고 어두운색에서 밝고 다양한색으로 변화를 시작했다. 코로나로 억눌려있던 욕구가 질밥 스카프와 마스크 변화로 표출 되는 것 같다.
 
한물가는 코로나도 이제 변화의 바람을 어찌할 수 없는 모양이다. 이 년 전만해도 일부 사무실 여직원들만 질밥 스카프를 착용하고 출근했다. 그랬는데 코로나가 시작되자 질밥 스카프 착용이 갑자기 늘었다. 대부분 어둡고 짙은 색상의 질밥 스카프들이었다. 코로나로 우울했던 회사 분위기를 한층 더 어둡게 만들었다.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으면 공장 문을 닫게 한다는 통보가 내려왔다. 시중에 준비되어있던 마스크들이 갑자기 사라져 버리고 없었다.
  
시세차익을 노리는 중국인들의 창고로 순식간에 빨려 들어가 버렸다. 그야말로 마스크 블랙홀이었다. 그 곳으로 한번 빨려 들어간 것들은 마스크 대란으로 가격이 급등할 때까지 나오지 않았다. 실사용처인 생산 공장에서는 마스크를 못 구해서 애를 태우고, 중국계 상인들의 창고에는 마스크들로 가득했다. 찬드라 딴씨도 역시 피는 못 속이는 중국계 상인이었다.
 
사람 좋아보이던 그 사람도 이때만은 마스크 창고 문에 빗장을 걸었다. 가격을 두 배로 올려 주겠다고 해도 안 된다고 했다. 네 배로 오를 것인데 지금 팔면 두 배나 손해란다. 공익개념이 없는 손익계산법이 우리의 그것과는 달랐다. 봉제 가내수공업 했다는 집 하나를 어렵게 찾았다. 이미 오래전 닫은 집이지만 마스크 샘플을 주고 비슷하게 만들어 오라고 했다.
 
며칠 후 샘플 마스크가 도착했다. 도착한 마스크가 만족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입을 가릴 정도는 되었다. 자재 준비할 돈을 미리주고 일차 주문을 했다. 정해 준 날짜에 맞게 마스크가 도착했다. 쩍쩍 갈라진 우리 가슴 바닥을 부드럽게 이어주었다. 잘 만들어진 것은 아니었지만 방역 효과를 따지고 있을 여유가 없었다. 우선 마스크 착용만으로도 검역의 눈을 피할 수 있어서 안심이 되었다. 문제는 두 번째 도착한 마스크였다. 갑자기 사무실이 시끄러웠다.
 
우리 회사 구매 담당자가 첫 번째 납품한 마스크와는 너무 다르다고 소리치고 있었다. 두 가지 색상 천까지 전달해 주었는데 이 총천연색 쓰레기들이 무슨 마스크냐고 하며 흔들고 있었다. 납품업자는 느긋했다. 주문이 넘치고 있다며 싫으면 그냥 반품하라고 배짱을 부렸다. 나중에 알았지만 중국 상인들이 와서 값을 두 배나 쳐주고 우리가 주문해 두었던 마스크들을 모두 거두어 갔단다. 당장 방역위반으로 문을 닫지 않으려면 그 불량 마스크라도 우선 받아야했다.
 
현장직원들은 하루 하나씩 지급받은 마스크를 착용했다. 그러나 사이즈가 자신의 얼굴에 맞지 않고, 고정시킨 끈이 짧아 귀 주변이 헐고, 아프고, 마스크 천도 얇고, 마스크에 재봉 기름 묻은 흔적도 보인다는 불평을 쏟아냈다.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으면 방역지침 위반으로 공장 문을 닫게 될 수도 있다. 종업원들은 별로 개의치 않는 눈치였다.
 
그러던 중 근처 공장하나가 방역지침 위반으로 당분간 문을 닫게 되었다. 그 회사 종업원들이 집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이 모습을 본 종업원들은 그때야 입만 겨우 가리는 마스크를 착용하고 일을 했다. 그 불량 마스크라도 착용하고 일을 해 주는 것이 고마워서 눈물이 날 지경이다. 코로나 봉쇄와 조업중단으로 인해 파산을 맞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가슴에 다가왔다. 이런 시급한 판국이라지만 불량 마스크를 반 강제로라도 착용시켜야하니 마음이 편할 수는 없었다.
 
기침과 발열로 결근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코로나 증세가 많이 보인다고 당국에 신고가 들어가면 그대로 문을 닫게 된다. 그래서 증세가 나면 종업원들이 알아서 독감이라고 보고를 한다. 회사에서도 독감으로 분류해서 유급휴가로 집에서 쉬게 했다. 그러니 입단속은 저절로 되는 셈이다. 그야말로 관리자와 종업원들 간 선의의 거짓 행동이다. 괜히 소문나서 공장 문을 닫으면 직원과 가족들의 생계 문제뿐만 아니다. 잘못되면 평생을 부도사장이라는 검은 글이 새겨진 심장을 달고 살아가야한다.
 
중소업체를 운영하다보면 발생하는 문제들이 많다. 그것을 꼭 상도의를 따지며 내 길만을 고집하다 낭떠러지 끝까지 갔던 적이 있다. 가끔 꿈속에서 그 기억의 파편들이 모이고 흩어진다. 이 파편들이 모여 나를 주인공으로 한 편의 영화를 만든다. 꿈속인 줄 모르고 어느 낭떠러지에서 떨어지다 깨기도 한다. 잠이 깨고 나서도 나는 내가 어디에 있는지를 몰라서 멍하게 있다. 뜨거워진 내 머리에서 수증기 같은 쉰내를 맡게 된다. 그때서야 꿈이었음을 알고 긴 한 숨을 쉰다. 오랫동안 나를 괴롭히는 악몽이다. 그래서 깨고 날 때마다 꿈이었음을 알고 긴 한 숨을 쉬곤 했다. 이제 손톱만한 새 가슴이 되어 흐르는 강물에 어우러져 흘러가고 있다.
 
 
마스크 불평으로 침울한 시간들이 반복되고 있던 어느 날 아침, 한 여직원이 그때까지 볼 수 없었던 초록색 마스크를 착용하고 나타났다. 우리 사무실에 와 있던 한국인 방문자가 웬 초록색이냐고 궁금해 했다. 무슬림들이 초록색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몰라서 하는 소리다. 여직원들이 모여서 그 초록색 마스크를 보면서 품평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 다음 날부터 한 사람 두 사람씩 다양한 마스크를 구입 또는 만들어 착용하고 왔다. 그것은 작은 변화의 시작일 뿐이었다. 그 변화의 바람은 마스크에 그치지 않고 질밥 스카프로 불이 옮겨 붙었다. 어두운 질밥 스카프를 착용하고 다녔던 한 여직원이 베이지색 질밥 스카프를 착용하고 등장한 것이다.
 
그날 이후 질밥 스카프 색은 자두, 분홍, 포도색 등 다양한 색상으로 변화를 거듭하고 있다. 물론 코로나 이전 자카르타 등에서는 가끔 볼 수 있었던 질밥 색상이었다. 그러나 전통적으로 엄격한 무슬림 지역인 이곳 땅그랑 반튼 지역에 질밥 스카프 색상변화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질밥 스카프와 마스크의 색상, 형태 변화는 현재도 이어지고 있다.
 
사방의 벽에 금이 가고 틈새로 변화의 바람이 들어온다. 사람들은 온 몸으로 은밀한 변화의 바람을 마신다. 그 바람은 세포 속에 침투해 있던 검은 구름을 걷어주고 있다. 직원들의 모습이 밝아지고, 웃고 떠든다. 오랜만에 보는 코로나 이전 일상의 모습이다. 더 이상 코로나를 두려워하지는 않는 그야말로 코로나와 함께 공존하는 위드 코로나 시대가 온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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