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인협회 인니 지부 (197)사불삼거(四不三拒) /이병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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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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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산책 197>
사불삼거(四不三拒)
이병규 / 한국문협 인니지부 회원
30년도 더 전이었다. 그 조용하고 작은 시골 동네가 한동안 버스터미널 이전 문제로 시끌벅적 한 적이 있었다. 시외버스 터미널이 오래되고 협소해서 여러 번의 민원 끝에 마침내 새로운 장소를 찾았고 더 크고 모던한 터미널로 바뀌어 이전하게 된 것이었다. 새로 지어지는 터미널 부지는 원래 무성하게 잡풀만 자랐던 황무지로 어릴 적 그 곳은 건설장비나 공사 자재들과 케이블을 감아 놓던 나무로 된 큰 원형 널빤지들만 널부러져 있던 그런 곳이었다.
어린 우리에게는 더 할 나위 없이 좋은 놀이 공간이었지만, 어른들에게 있어서 그곳은 낮에는 아무 짝에 쓸모없이 황량한 공간이고 밤에는 몰래 담배 피러 오는 불량 청소년들이나 찾는 그런 곳이었다. 한마디로 쓸모없기 짝이 없는 곳이란 말이다. 그런 쓸모없는 땅이 새로운 버스 터미널로 지명되자 개발을 맞은 주변의 땅들은 부르는 게 값이 되었고, 두 배 세배 아니라 스무 배 서른 배로 가격이 뛰었다. 원래 살던 지역 사람들은 구경도 못해본 돈뭉치를 들고, 주변의 큰 도시 부자들이 주변 땅들을 사겠다고 연일 드나들기도 했다.
조상 때부터 있던 땅이고 워낙에 쓸모없는 땅이라 팔지 못하고 텃밭이나 가꾸며 농사나 짓던 그런 곳이었는데 마지못해 그 땅을 갖고 있던 사람들은 졸지에 돈벼락을 맞았고, 동네는 왜 일찌감치 싼 값에 그 땅을 미리 사지 않았냐는 한탄들이 오고 갔다. 땅 없던 사람들만 아니었다. 비싼 땅 값에 한 몫 잡았던 사람들도 뒤늦게 나타난 연락 없던 막내아들의 배분 요구와 시집가서 한번 연락도 없던 딸들의 안방 버티기로 몹시나 어수선 했다. 아무튼 여러모로 작은 시골 분위기는 냉랭해졌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자 얼마간의 사람들 입에서는 미리 어디선가 개발 정보를 미리 알고 싼값에 그 황무지를 구매한 읍사무소 공무원들의 이야기가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개발 정보를 관에서는 미리 알고 있었을 것이고 이 정보를 이용해 자신의 부를 불린 공무원이 있었던 것이다. 재미있는 건 그 공무원들이 비난을 하는 게 아니라 모두 부러워했다. 이야기의 끝은 “나도 공무원을 할 걸...”이라는 탄식이었다.
당시 아버지는 그 지역 읍사무소의 지역 경제 계장으로 계셨고 그 땅의 개발 계획도 알고 계셨는데 친구 분들이나 지인들이 몰래몰래 그 땅들을 구입할 동안 아버지는 정말 놀랍게도 단 한 평의 땅도 사지 않으셨다. 나중에 그 사실을 안 어머니가 두고두고 아버지 원망을 하셨는데 어릴 적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머리가 굵어지고 돈에 대한 생각이 정립 되는 시점이 되자 나도 의구심이 들었고, 가끔 원망 어린 말들도 섞어 냈다. 그럴 때 마다 아버지는 “작은 것에 욕심내면 큰 것을 잃는다.” 고만 말씀하시고는 더 이상 얘기를 하지 않으셨다.
무엇이 옳은 것일까? 조선에서는 관료들이 지켜야할 규칙으로 ‘사불삼거(四不三拒)’ 라는 것이 있었다. 공무 중에 하지 말아야 할 네 가지와 거절해야 할 세 가지라는 것인데 그 내용은 아래와 같다.
네 가지 하지 말아야 할 것은, 첫째, 겸/부업을 하지 말 것이며, 둘째 토지를 사서 재물을 늘리지 말아야 하고, 세 째 자택을 확장하지 말며 끝으로 임지의 명산물을 먹는 것을 금해야한다는 것이다. 이는 백성을 보살펴야 할 공무원이 다른 생각 없이 올 곧게 백성에 대한 업무에 집중하고 업무 중 취득한 정보를 이용해 부를 얻거나 사사로운 이득을 위해 백성에 피해가 감이 없게 하라는 의미에서 관료들 사이에 불문율로 지켜지던 것이었다.
더불어 거절해야 할 세 가지는, 첫째가 옳지 못한 윗사람의 청탁, 둘째가 청탁에 대한 답례 그리고, 마지막이 경사와 조사에 대한 과한 부조이다. 사불의 항목이 업무를 통해 얻는 정보로 치부를 금지하는 것이라면, 삼거의 항목은 직위를 남용한 치부를 금지하는 것이라 하겠다.
아버지에 대한 무한 존경심이 있는 나였지만, 정의의 관점에서 봤을 때 누구보다 올바른 처신을 하신 것이지만, 현실의 눈으로 보면 참 답답하기도 하고 복잡 미묘한 감정을 숨기기 어렵다. 그 때 그 땅덩어리 조금만 모른척하고 구입하셨다면 모르긴 몰라도 당신 아들이 이렇게 회사에서 이리저리 치이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말이다.
월요일 아침, 본사와의 회의 때문에 이른 시간 출근한 자리에서 매주 찾아오는 월요병을 견뎌내기 위해 커피한잔 내리면서 이런저런 잡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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