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3) 불혹에 만나고 싶은 형들/ 하승창 > 한국문인협회 인니 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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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인협회 인니 지부 (143) 불혹에 만나고 싶은 형들/ 하승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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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산책
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15,274회 작성일 2021-01-29 12:03

본문

< 수필산책 143>
불혹에 만나고 싶은 형들
 
하승창 / 한국문협 인니지부회원
 
 
“형, 참말이오?” 공자를 만나서 진심으로 묻고 싶은 말이다. 1981년생인 나는 한국 나이로 작년에, 만으로는 지난주에 불혹의 나이가 되었다. 불혹(不惑)은 논어에서 유래한 단어로 공자가 나이 사십 세에 이르러 ‘세상에 미혹됨이 없고 유혹에 흔들림이 없게 되었다’는 말에서 비롯하였다. 그러나 나는 ‘불혹’이란 것이 과연 인간이라는 존재가 도달 가능한 경지인가 하는 의문을 떨칠 수 없다.
 
‘유혹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것에 굴복하는 것이다.’ 라고 오스카 와일드는 말하지 않았던가? 나이 사십이 되어서도 여전히 숱한 유혹들에 흔들리는 나로서는 공자와 함께 따뜻하게 데운 ‘공부가주’를 마시며 진실게임을 해보고 싶을 뿐이다.
 
그러고 보면 생년을 기준으로 하는 나이 계산법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한국인들만 사용한다. 12월 31일에 태어난 아기가 다음날 두 살이 되어 버리는 등의 불합리를 시정하기 위해 ‘만 나이’를 사용하자는 여론이 많았으나, 아직도 제도적으로 문화적으로 우리는 ‘한국식 나이’를 사용하고 있다. 이는 한국어와 한국문화의 특수성 때문이 아닐까? 존대와 하대가 명확히 구분되는 언어의 특성, 그리고 나이를 따져 한 살이라도 많은 사람을 형, 언니로 서열을 정하는 문화의 특성이 바로 그것이다. 상상해 보자. 최근에 사귀어 말을 놓고 지내기로 한 동갑내기가 오늘 생일을 맞아 나보다 한 살을 더 먹게 된 경우를.
 
 
 
한편 맹자는 나이 사십에 부동심(不動心)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했다.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 경지라니, 이 형과도 진실게임을 해 봐야 하나? 하긴, 나이 사십에 부동심의 극치를 보여 주었던 형이 실제로 있었다. ‘풍림화산’ 전법으로 유명한 ‘다케다 신겐’은, 사십 세가 되던 해에 필생의 라이벌 ‘우에스기 겐신’과 일본 역사에 남는 대 혈전을 벌였다. 이 전투에서, 신겐은 적장 겐신이 직접 본진 막사까지 난입하여 내리치는 칼을 쇠 부채로 막아 내면서도 끝끝내 걸상에서 일어나지 않았다고 한다. 진정 손자병법에 나오는 ‘부동여산(不動如山; 움직이지 않기를 산과 같이 하라)’의 경지를 보여 주었던 것이다.
 
하여 나는 이러한 형들의 부동심을 본받고자 심유신유(心裕身柔)’라는 단어를 만들어 올해의 신조로 삼았다. 즉 ‘마음은 넉넉하게 몸은 부드럽게’ 하자는 뜻으로, 도덕경의 ‘부드러운 것이 굳은 것을 이긴다.’ 는 구절을 참고한 것이다. 그러나 간혹 숙면을 끊임없이 방해하는 모기를 만나거나, 목숨을 내걸고 깜짝쇼를 벌이는 이륜차들에 놀랄 때면, 숫자와 동물이 두서없이 조합된 찰진 욕을 쏟아내고 있는 나를 보며 탄식한다. ‘헛되고 헛되구나.’ 불혹의 신겐 형은 적장의 칼을 막으면서도 태연했는데, 나는 고작 모기 한 마리에 마음을 움직이다니. ‘심유신유’는 커녕 그야말로 ‘견문발검(見蚊拔劍; 모기를 보고 칼을 뽑다)’이 아닌가. 나는 멀어도 아직 한참 멀었다.
 
 
‘나이 사십이 되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한다’는 말이 있다. 잘 생기고 못 생기고의 잣대로 사람을 평가하려는 것이 아니라, 얼굴에서 그 사람의 인생을 읽을 수가 있다는 뜻일 터이다. 찌푸려 생긴 주름과 미소 지어 생긴 주름이 다르기에, 사십 년간 쌓인 인상에서 그 사람의 품성과 행적을 가늠할 수 있기 때문이리라. 세상에 난 지 사십 년이 되던 날, 나는 거울 속의 얼굴을 평소보다 좀 더 오래 바라보았다. 팽팽하던 눈꺼풀의 탄력이 빠져 자연스레 쌍꺼풀이 생긴 탓인지, 아니면 풍파에 단련된 혈기가 안으로 갈무리된 때문인지, 거울 속의 나는 청년 시절의 나에 비해 한층 온화한 인상으로 변한 것 같다. 턱과 구레나룻에 부쩍 늘어난 흰 수염 가닥들을 보며 내가 중년에 접어들었음을 실감하지만, 무엇보다 큰 변화를 느끼는 것은 해를 거듭할수록 넓어지고 있는 이마를 볼 때다. 고대 그리스의 중장보병 ‘팔랑크스 밀집 방진’처럼 빽빽하고 가지런하던 일직선의 전열이, 시나브로 좌우의 양익부터 무너지며 슬금슬금 후퇴하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삼각형 모양으로 돌출된 ‘어린진(魚鱗陣)’으로 변하고 있다. 이른바 ‘M자형 탈모’의 진행이다. 사령관의 명령도 없이 멋대로 대열을 바꾸다니, 중벌에 처함이 마땅치 아니한가? 당장 군법을 시행하고 싶지만 어찌하랴, 세월이라는 이름의 적군을 막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사실 직선 대형의 붕괴는 이미 삼십 대 초반부터 조짐을 보였다. M자형 탈모의 원인은 남성 호르몬의 분비 때문이라서, 불혹과 비슷한 발음의 ‘그곳’을 제거하는 것 외에는 해결 방법이 없다는 말에 좌절한 적도 있었다. 아직도 머리숱이 풍성한 아버지를 보며 설마 하다가도 대머리는 모계 격세유전(세대를 뛰어넘어 이루어지는 유전)이라는 말에 문득 돌아가신 외조부의 모습이 아롱아롱 떠오르며 핑 도는 눈물을 삼키기도 했다. 덧붙이자면 나의 외조부는 배우 ‘브루스 윌리스’처럼 멋진 헤어스타일 이셨고, 나의 눈물은 그저 그를 향한 그리움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물론 위의 말들은 다소 과장이 포함된 것이고, 탈모의 원인에는 환경적, 유전적, 확률적으로 다양한 변수들이 존재한다. ‘데일 카네기’는, 걱정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데에서 출발한다고 하였다. 소모적인 걱정은 사태를 더 악화시킬 뿐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나는 비로소 마음을 편히 가지기로 했고, '모발이식 기술이 점점 발전하고 있으니, 나중에 상황이 더 심각해지면 그냥 수술하면 되겠지’ 하고 생각하기 시작했더니 신기하게도 그 후로
탈모에 대한 스트레스는 상당 부분 사라졌다.
 
 
고대 로마 역사상 최고의 영웅으로 꼽히는 ‘율리우스 카이사르’에게도 탈모는 심각한 콤플렉스였다. 오죽하면 ‘카이사르가 갖지 못했던 유일한 것은 바로 머리카락 이었다’는 농담이 있을 정도일까. 그의 개선식 퍼레이드에서 군단 병들이 외친 구호는 이러했다. “시민들이여, 마누라를 숨겨라! 대머리 난봉꾼이 나가신다!” 이런 익살스러운 구호는 ‘개선장군이 교만해지면 신들의 질투를 사서 다음 전투에 패배 한다’는 로마인들의 믿음이 만든, 개선식의 재미있는 전통이었다. 그러나 행사가 끝난 후, 장교들이 모인 자리에서 카이사르는 이렇게 불평했다고 한다.
 
“난봉꾼까지는 괜찮은데, 대머리는 좀 심했지 않나?” 맹자는 부동심의 경지에 이르기 위한 두 가지 방법으로 ‘지언(知言)’, 즉 타인의 말을 잘 파악하는 것이 첫째라 하였고, 둘째는 ‘호연지기(浩然之氣)’라고 하였다. 호연지기란 무엇인가? 국어사전에는 ‘넓고 큰 기개’ 혹은 ‘크고 올곧은 기운’이라 나온다. 소프트뱅크의 ‘손정의’ 회장은, 머리카락의 후퇴가 심해 보인다는 한 트위터 리안의 지적에 대해 역사에 남을 명언으로 답했다. “머리카락이 후퇴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전진하고 있는 것이다.” 역시 손형 답다. 카이사르를 만나 이렇게 말해 주고 싶다. “어이 브라더, 봤수? 이게 바로 호연지기라는 것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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