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인협회 인니 지부 (157) 인니어 해프닝 ‘Puyeng puyeng!’ / 함상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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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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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산책 157>
인니어 해프닝 ‘Puyeng puyeng!’
함상욱 / 한국문협 인니지부 회원
“Puyeng puyeng 뿌영뿌영! (머리 아프구만!)” “저기, 이거 맞는 거지?” “이 숫자 틀린 거 아니야?” “MR. PUYENG PUYENG BANGET” (미스터! 머리 아프게 하네, 진짜!) 나하고 업무를 함께 하는 현지 여직원 얼굴이 붉은 사자 마냥 화가 난 얼굴로 총총히 사라진다.
내가 뭘 그리 잘못을 한 걸까? 저렇게 화를 내고 말이야? “뿌영 뿌영” 이라니 무슨 의미지? 옆에 있는 직원들이 나를 보며 너도나도 키득키득 웃는다. 인도네시아 온지 3개월이 지났을 무렵, 내가 아는 인도네시아어 단어라곤 여전히 두 문장뿐이었다. “INI APA (이게 뭐야?), TERIMAH KASIH (감사합니다)” 그날, 퇴근을 하고 숙소로 가는 길에 화를 냈던 여직원의 얼굴이 잊혀지지 않았다. 꼬치 집에서 닭 꼬치를 사서 집으로 향한다. 친구도 없고 아는 사람도 없고 그때는 지금처럼 인터넷이 잘되는 시대도 아니었으니 일을 마치면 맥주에 닭 꼬치 먹는 게 유일한 취미이자 행복이었다.
집에 있는 인니어 사전을 아무리 찾아봐도 ”Puyeng puyeng 뿌영뿌영” 이라는 단어는 보이지 않는다. 내일 다시 그 친구 얼굴을 봐야 하는데 뭐라고 해야 할지, 어떻게 대해야 할지… 난감했다. 숙소의 에어컨은 시도 때도 없이 더운 바람이 나오고 적도의 밤은 습기가 많아 내 몸은 땀띠로 가득하다.
다음 날이라고 해서 다를 것도 없고 인도네시아 생활이 영 재미가 없다. 고국에 계시는 부모님 얼굴이 눈에 아른거리고 두고 온 상미(애완견)가 보고 싶다. 이곳 직원들은 아직도 키득거리는 것 같고 회사가 동물원 같다는 생각이 든다. 어느덧 한 주가 지나고 토요일이 되었다. 갈 곳도 없는데 주말에 뭐하고 지내지… 숙소에 와서 인니어 사전을 파 해치고 있는데 1층에서 나를 찾는 목소리가 들린다.
“MR(미스터)! 놀러 갑시다!” 우리 회사의 현지 직원인 DADAN이 나를 찾아왔다. 주말인데 나를 왜 찾지? 뭐가 또 틀린 거 있나? 아 난 왜 이럴까? 아래층으로 가서 문을 여니 DADAN이 하얀 이빨을 드러내며 웃는다. “미스터! 주말에는 집에만 있지 말고 나하고 놀러 가자!”
놀러 가자니? 놀러 가려면 차도 필요하고 기사도 필요하고 여러 가지 필요한데… 나는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난 지금 놀러 갈 기분이 아니라 한국에 가고 싶은데….”
“미스터! 차 때문에 그런 거면 걱정 마! 여기 내가 다 준비 해 놨어!”
옆에 있는 큰 오토바이가 눈에 들어온다. 평소에 DADAN이 타던 오토바이가 아니었다.
“미스터는 뚱뚱하니 내가 오토바이 새로 하나 구입했어! 할부지만 서도 하하하!”
“빨리 옷 갈아입고 나와, 헬멧도 준비 했으니깐!”
역시 새 오토바이는 내 기분을 바꿔놓았다. 뚱뚱한 나를 태우고도 이렇게 여유 있게 달리다니… 시내를 가로 지르면서 라디오에서 들었던 인도네시아 노래가 마음속으로 다가온다.
“SAYANGKU MAAFKANLAH DIRIKU KU TAHU KU SALAH MENYAKITIMU”
“내 사랑 나를 용서해 줘요. 내가 당신을 아프게 한 거 잘 알아요”
매퀴한 오토바이의 매연도 사람으로 북적이는 거리도 냄새나는 하천도 정겹게 느껴지기는 처음이었다. 인도네시아가 온몸으로 다가옴을 느꼈다. 길거리에 오토바이를 세우고 바닥에 둘이 앉아 시원한 과일 화채를 먹었다. “미스터! 지금 일하고 있는 자리 힘들어서 한국으로 돌아간 사람이 꽤 많아.“ ”여기 살면서 재미난 것도 없고 친구도 없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모두 다 생길거니 걱정마.“ ”매주 나랑 오토바이 타고 이 곳 저 곳 다니다 보면 미스터도 인도네시아가 좋아질거야...!“
현지 직원은 내 기분을 아는지 혼자 신나서 떠들어댔다. “아, 뭐하나 물어볼게?” “Puyeng puyeng 뿌영뿌영” 이게 무슨 말이야” DADAN이 환하게 웃으며 대답해 준다. “아! 그건 머리가 아프다는 말이야. 인도네시아에서 꽤 오래된 속어야.” 아하!, 그렇구나...나는 숙소에 돌아와서 사전에 적어놓았다. “Puyeng puyeng 뿌영뿌영” (머리 아프구만!)
그렇게 한 단어씩 인니어를 배우면서 그때부터 이곳 인도네시아에서의 인연은 시작되었다.
지금도 한번 씩 이곳의 삶이 머리 아프고 피곤해지면 다시 인니어 사전을 들여다보곤 한다.
“Puyeng puyeng 뿌영뿌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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