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인협회 인니 지부 (160) 코코넛 빗자루의 교훈 / 문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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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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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필산책 160 >
코코넛 빗자루의 교훈
문인기 / 시인 (한국문협 인니지부 회원)
열대 각 곳에 서식하여 남국의 정취를 더욱 아름답게 만들어주는 야자수에 얽인 추억도 많고 매력도 다양하다. 야자수는 우리 인간에게 주는 유익함도 수없이 많다. 한마디로 야자수로부터는 어느 것 하나도 버릴 것이 없이 다 쓰임 받는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야자수는 전적인 헌신을 인간에게 하는 아낌없이 주는 나무다. 야자수에서 얻는 것 중에 잎줄기에서 얻는 빗자루는 인간 삶의 주변을 청소할 때 필요한 소박하고 전통적인 도구다. 사람의 손에 들려 더러운 쓰레기를 쓸어버리는 도구이기에 가장 낮고 천하고 더러운 것을 감당한다고 할 수 있다.
코코넛 잎으로 빗자루 하나를 만들려면 큰 잎 두어 개면 족하다. 갈비뼈처럼 잎을 지탱하는 줄기들이 열을 지어 하나의 큰 잎을 형성하는데 그 작은 잎 하나하나를 훑어 줄기 뼈대만을 취하여 모아 철사로 두어 군데 묶으면 마당을 쓸 수 있는 싸리비처럼 되는 것이다.
날마다 마을을 한 바퀴 도는 아침 산책길에서 만나는 이웃 사람들 중에 ‘수띠니’라는 이름의 아주머니가 있다. 남편은 줄담배 골초로 50대인데도 숨쉬기가 어려울 정도가 되어 일도 못 나가고병원 약으로 지탱한다. 늘 담배를 물고 다니는 그를 만날 때 마다 “당신의 건강을 위해 그 담배 좀 줄이시오”라고 충고하는 좀 거북한 외국인이 바로 나이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이 맛 좋은 담배를 내가 왜 끊어!” 하는 표정을 나에게 지어 보였었지만 얼마 전 입원을 며칠 하고 나서는 의사로부터 무슨 말을 들었는지 그의 손에서 담배가 사라졌다.
어제 아침에 만났을 때 “담배는 어디 갔소?” 하니까 손사래를 친다. 갑자기 호주가 아파 일을 못하고 있기 때문에 수띠니 아주머니는 큰 근심도 되지만 한편으로는 담배를 끊어 전보다 건강해 질 소망에 안도하는 듯 더 밝아진 얼굴로 나에게 인사한다. 내가 한국에서 상비약으로 가져온 약들은 대개 이웃들이 사용한다. 주로 아침 산책 할 때 이웃들을 만나는데 서로가 얼굴을 보며 인사 할 때 나는 습관적으로 그들의 건강상태를 본다. 기침하면 기침약, 몸자세가 안 좋아 물어봐 허리가 아프다면 파스, 열이 난다면 해열제, 종기가 났다면 소염제와 쑥 뜸 등등… 마을 공동묘지 옆에 사는 이웃 몇 가정은 마치 나의 아침산책을 기다렸다가 내가 지나가면 약을 원하여 자기들의 아픈 증세를 내 보이는 듯하다.
잠깐이라도 환자를 위해 기도하고 약을 주는데 약을 잘 안 먹던 사람들이라 그런지 아니면 그보다 영혼을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의 지극하고 하해와 같은 사랑으로 치료효과가 빠른 게 틀림없다. 며칠 전에는 수띠니 아주머니가 아침 일찍부터 코코넛 빗자루 5-6개 들고 골목을 다니며 이웃집을 기웃거리는 것을 보고 멈추었다. 뭐냐 물을 것도 없이 이는 필시 뭐라도 만들어 팔아야 하는 절박한 형편을 말하는 것이고 또한 평소 부지런한 그의 삶의 자세에서 나온 발로인 것이 틀림없다고 여겼다. 얼마냐고 묻고는 한 개를 손에 들었다. 1만 루피아 라고 하여 내일 꼭 지불하겠다고 말하고 집으로 가지고 왔다.
옆집 사람이 이를 보고 “빗자루 사셨네요, 얼마 주고 샀어요?” 묻는다. 금액을 말하니 5천 루피아면 충분한데 비싸게 샀다는 것이다. 가격은 나도 짐작했던 사실이라 놀랄 일이나 기분 나빠 할 일도 아니었다. 기분 나쁘게 생각을 할라치면 평소에 거의 매일 만나는 이웃인데도 왜 나에게는 비싸게 부른단 말인가 하고 서운하게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오히려 그가 나에게 극히 적은 것으로나마 명분 있는 나눔을 실천할 기회를 준 것이라 생각하였다. 좀 더 여유가 있는 측에서 부족한 쪽으로 흘러가는 것이 순리이고 당연하다 생각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런 기회가 아니면 자기애로 굳어져가는 현대의 삶에서 평소 남의 형편에 관심을 두고 살피다가 최적기에 돕기란 쉽거나 흔히 불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더구나 악조건 가운데서 힘들여 재료를 모아 손이 부르트도록 손수 만든 빗자루의 값을 일반 시장가격과 단순 비교하여 비싸다 하는 것은 너무 냉랭하다 생각한다.
내가 “빗자루 하나주세요” 했을 때 그녀는 이사람 친한 외국인은 꼭 필요해서 라기 보다는 자기를 어떻게든 도와주려는 목적에서라는 것을 이해했을 것이기에 이 정도의 가격을 낸다 하여도 절대 큰 부담이 안 될 것이라고까지 생각 했을 것으로 추측한다. 만약 가격의 규모가 큰 물건이라면 결코 그렇게 요구 할 리 없었을 것이다. 가령 100만 루피아 하는 물건을 200만 루피아를 내라고 할 턱은 없는 것이다. 비록 거칠고 허술한 솜씨로 만든 물건이지만 바람에 떨어진 야자 잎줄기들을 돌아다니며 모아 빗자루를 만들면서 삶을 위하여 내 손으로 무언가 보탬이 될 것을 찾아 만드는 보람과 기쁨으로 부지런히 땀을 흘렸을 것이 틀림없다.
아침산책 길에서 만났기에 주머니에 돈이 없어 대금은 내일 주마하고 그 다음 날 그 집 앞을 지나가며 마침 집 앞을 쓸고 있는 수띠니 부인에게 빗자루 값을 건넸다. 그런데 이번에는 한사코 관두라고 한다. 안 주어도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사양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잘 아는 나로서는 한사코 돈을 손에 쥐어주고는 집으로 왔다. 하루 동안 이 아주머니도 극히 값싸고 하찮은 빗자루 하나를 나에게 팔고 나서 얼마나 이 생각 저 생각을 하였을까를 짐작해 본다. “내가 넘 비싸게 불렀나?” “아니 나는 미스터 문이 값을 깎을 줄 알았지” “그 정도는 평소 미스터 문의 형편에서 아무것도 아닐거야” 그렇게 말이다.
경제적으로 힘든 사람들을 돕는다는 것도 지혜로워야 한다는 것을 경험을 통하여 이해하게 되었다. 어렵다고 하여 몇 번 정도는 필요한 물건이나 식품으로 도움을 줄 수도 있겠지만 계속 그렇게 도운다면 원치 않는 결과가 나오기 십중팔구다. 계속 도움 받을 기대로 스스로 어려움을 타계해 나가고자 하는 노력을 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장기적으로 도움이라기보다는 한 인생을 도움만 받고 사는데 익숙하게 만들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수띠니 아주머니처럼 주변에서 취할 수 있는 재료로 무엇이든 만들어 들고 나온다면 이웃들은 여러 가지 측면을 헤아려 기꺼이 사주리라 믿는다. 나 역시 앞으로 스스로 돕는 이웃으로부터는 값을 좀 더 쳐주더라도 구입을 하여 작은 부분이나마 그들의 소망과 가능성과 땀 흘려 일하여 버는 기쁨을 누리는데 일조 할 생각이다. 야자수에서 나오는 것에서는 무엇 하나 버릴 것이 없듯이 인생 노정에서 무엇 하나 버릴 것이 없고 헛되지 않게 살아가야겠다는 삶의 목표를 다시 한 번 되새겨 본다. 이번 일을 계기로 얻은 새로운 교훈이요 결실이라는 생각에 감사하다.
이미 갖고 있는 재능을 사용하는 지혜를 보게 된 것이다. 작은 것 하나라도 내 손으로 만들어 이를 통해 값진 땀의 대가를 거두어 감사하며 살아가는 수띠니 아주머니의 삶에는 진정한 행복이 올 수밖에 없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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