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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인협회 인니 지부 (166) 대항해 시대 / 하승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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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산책
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12,316회 작성일 2021-07-09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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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산책 166>
대항해 시대
 
하승창 / 한국문협 인니지부 회원
 
 
“목숨이 아깝거든 돈과 적하를 놓고 썩 꺼져! 안 그러면 뜨끔한 맛을 보게 될걸?”
 
사오십 대의 ‘아재’들 중에는 아마 이 멘트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중학교 3학년 시절, 나의 방과 후 시간을 오롯이 잡아먹었던 한 고전 명작게임이 있었으니 그 이름은 바로 ‘대항해시대 II’ 였다. 동명의 시대를 배경으로 한 이 게임에서, 나는 상인이 되어 해상 무역을 하거나 해군 또는 해적이 되어 전투를 벌이고, 모험가가 되어 보물을 찾아 다녔다. 내 몸은 비록 작은 방 모니터 앞에 앉아 있었지만, 마음만은 온 세계의 바다를 누비며 설렘과 흥분으로 가득했다. 그러나 당시 선원들의 현실은 결코 게임에서처럼 낭만적인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좁은 배 안에서 엄격한 규율에 시달리며 쉴 새 없이 중노동을 해야 했고, 위생이 열악한 환경에서 돌처럼 딱딱한 비스킷과 썩은 물을 마시며 하루하루를 버텨야 했다. 괴혈병과 폭풍우, 해적과의 조우 등으로 목숨을 잃은 선원들도 부지기수였다.
 
 
나는 군함을 타 본 적이 있다. 군 시절 대대 급 상륙훈련 때였는데, 상륙함을 타고 연안을 사흘간 항해하다 상륙 후 기동하는 훈련이었다. 승선 첫날은 행복했다. 과업도 없고 집합도 없는데다, 무엇보다 감동적인 것은 식사 메뉴였다. 윤기가 흐르는 쌀밥, 푸짐한 반찬과 고깃국, 부식으로 나오는 각종 음료와 포도 통조림에 경악한 우리는 ‘상륙군 식사 15분 전’ 구호만 기다리며 하루를 보냈다. 그러나 행복은 오래 가지 않았다. 이틀째가 되자 좀이 쑤시기 시작한 것이다. “뻘 밭에 굴러도 바깥이 낫겠다.” 하는 말이 나올 정도로, 파도에 울렁이는 배 안에서 종일 갑갑함을 견디는 것은 고역이었다. 편하게 지낸 사흘도 이럴진대, 중노동에 시달리며 수개월을 보내야 했던 옛 선원들의 삶이야 말해 무엇하랴.
 
바야흐로 인류 역사상 두 번째의 대항해시대가 열리고 있다. 금과 향신료를 찾아 미지의 바다로 나아갔던 개척자들은, 이제 ‘4차 산업의 비타민’이라 불리는 희토류의 확보와 식민지 개발을 위해 우주로 진출하고 있다. ‘1차 대항해시대’의 결과가 그러했듯 ‘2차 대항해시대’를 주도하는 집단이 향후 세계 패권을 쥘 것이기에, 지금 우주 진출을 위한 경쟁은 더없이 치열하다. 주요국 정부와 기업들은 ‘친환경’과 ‘지속가능성’이라는 테마에 역량을 쏟아 붓고 있다.
 
산소가 없는 공간에서 내연기관이 갖는 한계는 전기차로 극복할 것이고, 도시는 수소와 태양광을 비롯한 재생 에너지와 인공지능 기반의 스마트 시스템으로 운영될 것이다. 우주 사업에 집중하기 위해 최근 아마존의 CEO 에서 물러난 ‘제프 베이조스’는 이달 20일에 최초의 민간 우주여행을 개시한다. 우주여행이 대중화되는 데는 우리의 예상보다 훨씬 짧은 시간이 걸릴지도 모르겠다. 헨리 포드가 처음 만든 자동차는 기차보다 생산단가가 높았고, 초창기 모토로라의 ‘벽돌‘ 핸드폰은 사회 최상류층만의 사치품이 아니었던가. 기술 발전은 가속한다. 불과 5년 전 ‘이세돌’에게 압승하며 세계를 충격에 빠뜨렸던 ‘알파고’는 강화학습형 인공지능의 등장으로 이미 퇴물이 된 지 오래다.
 
 
갑갑한 시절이다. 코로나로 더욱 강화된 ‘거리두기’로 인해 집에만 머물러야 하는 고역은 마치 상륙함에 탔던 때를 떠오르게 한다. 하긴 1년이 넘게 집 안에서만 생활하고 있는 친구들도 있단다. 미팅은 화상으로, 친구는 메신저로, 공부는 유튜브로, 여가는 넷플릭스로. 이런 사람들은 몸이 지구에 있건 화성에 있건 별 차이가 없지 않을까? 물론 행성 간 인터넷이 짱짱하게 터져 줘야 하겠지만. 재활용 로켓을 ‘조자룡 헌 창 쓰듯’ 쏘아 올리며 우주 인터넷망을 구축하고 있는 ‘일론 머스크’는 2050년까지 백만 명을 화성으로 이주시키겠다고 공언했다. 가는 데만 6개월 이상 걸리는 화성을 마치 해외여행 다니듯 오갈 날을 상상하기는 힘들 것이다. 마치 백년 전 사람들이 지구 반대편을 하루 안에 갈 수 있는 시대를 상상할 수 없었듯이. 궁금하다. 2050년도의 나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
 
 
‘삐-삐-삐-‘ 경보음이 울린다. “섹터 11 에 해적 출현! 11 에 적 출현! 교전하겠음!” 스피커를 타고 나오는 외침. “모기 같은 놈들, 역시 11 로 왔군.” 나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경비대장을 쳐다본다. 화성과 지구를 오가며 부동산을 개발하는 나는 최근 신도시 건설이 시작된 화성 북반구 택지의 일부, 11번에서 20번까지의 구역을 할당받아 주택 단지와 인공 하천을 조성하고 있다. 모기가 없어 쾌적한 이곳에도 성가신 존재들이 있으니, 바로 ‘우주 해적’이라 불리는 무법자들이다. 이들은 작은 우주선을 타고 다니며 수송선의 화물을 털어 먹고사는데, 신도시 건설 붐이 일자 수시로 개발 지역에 출몰해서 건축 자재를 강탈해 가고 있다. 지구에서 일을 보고 있던 나는 우리 구역의 조경공사에 쓸 진귀한 나무들이 통째로 탈취 당했다는 소식에 급히 화성으로 돌아왔다. 한 일주일 걸렸나? 우주선 안에서 업무 지시는 끝내 놓았다. 어제 도착한 고가의 3D 프린팅 건설장비가 11 구역에 배치된다는 정보를 흘리게 한 것이다. 그러나 거기에 장비는 없다. 중무장한 경비대 최정예 병력이 매복해 있을 뿐.
 
치안이 안정된 구도심에 비해 여기는 아직 방위군의 증원이 늦어서, 개발업자들은 사설 경비대를 고용해 지역의 치안을 보강했다. 경비본부에서 대기 중인 나는 이제 적들을 일망타진했다는 소식만 기다리면 된다. “어?” 모니터를 보던 경비대장의 얼굴이 굳는다. “18 구역에 함선이 하나 접근 중입니다.” 나는 벌떡 몸을 일으킨다. 장비는 18 구역에 있다. ‘설마, 11 구역을 친 것은 미끼였나?’ 차가운 손이 얼굴을 거꾸로 쓸어 올린 느낌이다.
 
“섹터 18 에 다수의 적병 출현! 지원바람! 섹터 18 지원바람!” 경보음과 함께 귀를 때리는 다급한 목소리. ‘아뿔싸!’ 호통치는 경비대장, 무장하는 대원들, 본부는 벌집을 쑤신 듯 분주하다. 불현듯 이십 대 시절에 자주 했던 ‘스타크래프트’ 라는 게임이 생각난다. ‘예전에 임요환이 이런 전술을 자주 썼는데.’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그래, 이래야 재미가 있지.’ 일흔 먹은 몸에 다시 피가 끓고, 전신의 세포는 약동하기 시작한다. “어이, 나도 총 하나 줘!” 방탄복 버클을 채우다가 고개를 갸웃한다. ‘가만, 그런데 18 구역에 장비가 있다는 걸 놈들이 어떻게 알았지?’ 내부에 쥐새끼가 있음에 틀림없다. ‘이런, 개...’ 터져 나오려는 욕을 삼킨다. 부동심의 경지를 위해 얼마나 오랜 세월을 연마해 왔던가. “18! 18 구역이다! 가자!” 대원들에게 소리치며 헬멧을 눌러쓰고, 총을 받아들고 뛰어 나가는 노병의 귀에 ‘스타크래프트’의 함성이 아련히 들려온다.
 
“You wanna piece of me, boy? Go Go 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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