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 나의 운수 좋은 날 / 강인수 > 한국문인협회 인니 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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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인협회 인니 지부 (180) 나의 운수 좋은 날 / 강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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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산책
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11,549회 작성일 2021-10-15 10:38

본문

<수필산책 180>
 
나의 운수 좋은 날
 
강인수 / 한국문협 인니지부 회원
 
현진건의 소설 ‘운수 좋은 날’은 제목과 다른 반전에 반어로 지금까지 많은 이야기로 패러디 화 되었다. 그만큼 이야기 거리를 만들기에 참 좋은 작품이다. 그러나 내가 겪은 나의 운수 좋은 날은 비극적 반전이라기보다는 그냥 재미있는 콩트에 해당되어 같은 제목 아래 가벼운 소재로 이렇게 몇 글자 적어 보려 한다.
 
작년에 한국에 장기간 머물 때 일이다. 약속이 있어 급하게 뛰어가는 길에 남들이 잘 안 다니는 뒷길을 가로질러 가는데 누가 아주 예쁘게 똥을 누었는지 똥 똬리가 떡 하니 길에 앉아 있었다. 더구나 파리가 손을 비비며 똥 위에 앉아 식사 준비를 하듯 열심히 일을 하고 있었다. 평소 같았으면 아주 기분 나빴을 텐데 이상하게도 그날은 “뭐야”이러면서 대수롭지 않게 지나쳤다.
 
그런데 그날 낮에 교통수단도 때맞춰 잘 오고 연락 없던 돈 받을 소식도 들려오고 이상하게 운수 좋은 날 이란 느낌을 받았다. 오후 늦게 집에 돌아와 보니 어머니와 친구 분께서 담소를 나누며 앉아계셔서 “저 똥 봤어요! 그랬더니 운수가 좋아요” 라고 툭 말을 던졌다. 어머니 친구 분이 “얘! 오천원 줄 테니 로또 사와라” 그러시며 돈을 주셨다. “아, 맞네! 로또라도 사러 가야겠다. 혹시큰 상금을 탈지 몰라!” 라고 외치며 옷도 갈아입지 않고 집 앞 슈퍼로 향했다.
 
 
‘천만 원 당첨 되면 뭐하지? 아냐, 오천만 원이 나올 수도 있어’
나는 종종걸음으로 내려가는 길이 지루하지도 않았다. 눈을 감고 상상의 나래를 펴느라 콧노래도 불렀다. 로또를 파는 가게 앞에 가니 1등 당첨 3번 2등 당첨 1번 이런 식의 홍보 성 간판이 걸려 있었다. 그런데 ‘로또를 어떻게 사는 거야?’ 하고 두리번거리는데 가게는 이미 7시라 문을 닫아서 컴컴했다. 초저녁에 일찍 문을 닫다니 너무 아 쉬어서 발길을 돌리기 싫었다. 코로나 시대라 주인이 일찍 문을 닫고 들어간 모양이다.
 
도저히 포기할 수가 없어서 길 건너 편의점을 향해 신호등 앞에 섰는데 문득 당첨금이 걸리면 도대체 뭘 해야 할까 고민이 되었다. 시댁에 꾼 돈이 있는데 좀 천천히 갚으라 했건만 그걸 갚아버릴까? 눈 딱 감고 마구 돈을 써볼까? 친정집에 김치 냉장고를 바꿔주고 나도 뭐 필요한 전자제품을 살까?, 신호등 앞은 길고 지루했다. 드디어 편의점에 가서 로또 주세요, 했더니 바로 그 자리에서 긁는 것을 추천하는 주인 분의 말에 그럼, 그거 주세요, 하며 주머니를 뒤졌더니 ‘어! 돈이 없다.’ 아뿔싸 돈을 어디 흘렸는지 나는 너무 괴로운 표정을 지으며 신용카드를 내밀었다.
 
‘카드 안 받아요’ 로또는 현금으로만 살 수 있다고 했다. 크게 실망하고 문을 열고 나오는데 다시 집에 다녀오기에는 너무 멀었다. ‘로또 사야 하는데.. 오늘을 넘기면 안 되는데..’ 혼잣말을 하며 버스정거장 앞에 서 있었다.
 
초저녁 어두움이 점점 짙어갈 즈음 젊은 여자 한 명이 ATM기계 앞에서 현금을 뽑길래 용기를 내어 “저 제가 현금이 없어서 지금 바로 핸드폰에서 송금해 드릴 테니 만 원만 빼주시면 안 될까요?” 여자는 나를 찬찬히 살피더니 사기꾼이나 이상한 사람으로 보이진 않았는지 잠시 생각한 후 흔쾌히 허락을 했다. 나는 속으로 꼭 이렇게까지 해서 로또를 사야하나? 라고 생각하고 자존감이 확 떨어졌다. 그러나 만 원을 송금해주고 바로 돈을 받아들자 이제 로또 맞을 일 밖에 없다 생각하니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다.
 
“만 원어치 다 주세요” 를 외치고 몇 장 종이를 재빠르게 가슴에 품고는 헐레벌떡 뛰어왔다. “ 어~~엄마! 여~어기” 나는 숨넘어가겠다는 핀잔을 들으며 몇 장의 긁기 식 복권을 바닥에 내려놓고 “긁어봅시다” 라고 외쳤다. 어머니 친구 분도 “이거 당첨 되면 나눠 갖냐?” 라며 즐겁게 웃으셨다. 동전을 가져다 긁는데 정말 아무것도 안 나왔다.
 
“뭐야! 하나도 안 맞았어. 어찌 이리 하나도 안 맞아?” 방에 있던 모두는 멋쩍게 깔깔 웃고 종이를 버렸지만 나는 그 어렵게 얻은 만 원이 무척 아쉬운 밤이었다. 인생에 공짜는 없다는 명언을 누가 했던가. 그래도 인생에 한번쯤 공짜가 와 주는 사람도 있던데. 정말 거금 만 원을 투자해서 날린 기분은 영 언짢고 오전에 본 똥이 그 운을 다했다고 생각하니 헛웃음이 나왔다.
 
 
그런데 요즘 드는 생각은 돈이 많으면 좋겠지만 넘치도록 많아도 또 인생이 허무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우연히 넷플릭스의 오징어 게임을 보게 되었다. 주인공 이정재가 만 원을 빌리고 만 원으로 무엇을 사고 통장 잔고 수백억에서 만 원만 빼고 이러한 장면들이 무슨 의미 일까. 돈의 가치를 상징적으로 말하는 것일까? 만 원의 가치를 통해서 인생의 의미를 곱씹어 보는 시간이기도 했다. 어쨌든 나도 모르는 사람에게서 만 원을 어렵게 얻어 냈으니 말이다. 그리고 허무하게 날리고 깔깔 웃고 있었지만 또 허탈한 마음을 지금까지 기억하고 있는 것을 보면 돈이란 무엇인가 생각하게 하는 일이다.
 
솔로몬은 전도서에서 이런 글을 남겼다. 눈이 원하는 것을 금하지 않고 마음이 즐거워하는 것을 막지 아니하였다고 그리고 결국은 깨달음의 끝을 이렇게 적고 있다. 내 손으로 한 모든 일과 수고한 모든 수고가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며 해 아래서 무익한 것이로다. 부와 명예를 누렸던 솔로몬도 결국 헛되고 헛되다 하지 않던가. 잠시 헛된 꿈을 꾸어보는 게 큰 잘못은 아니지만 현실로 돌아와 보니 인생에 큰 공짜를 받았더라면 그 만큼의 불행이 평등하게 올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걱정도 컸으리라 생각이 든다.

눈부시게 부러운 물건들과 눈부시게 아름다워 보이는 삶들도 결국 헛되지 않던가. 혹독한 가난만 아니 온다면, 일평생 큰 병만 없다면, 웃을 때가 있고 평화로울 때가 있는 삶이 지극히 행복한 것이라고 자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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