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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인협회 인니 지부 (183)연탄 집 복실이 /이재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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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산책
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14,989회 작성일 2021-11-05 10:59

본문

<수필산책 183>
연탄 집 복실이
 
이재민 / 한국문협 인니지부 회원
 
나의 유년 시절, 살갗 따가운 바람 한 점이 휙 불기 시작하면, 변두리 우리 동네 사람들은 월동 준비로 분주했다. 아줌마들은 이집 저집을 차례로 돌며 김장 김치를 함께 담갔다. 간혹 200포기 300포기를 담그는 집이 있으면 모두가 그 집이 잘 산다고 생각했다. 더욱이 창고에 연탄 수백 장을 들여놓으면 그 집이야말로 정말 부잣집이라고 생각했다. 연탄트럭을 대어놓고 좁은 골목길을 삥 돌아가며 사람의 띠를 따라서 연탄이 옮겨지는 장면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한 장씩 사람 손에 옮겨지는 연탄에는 여름에 돌아가신 장 씨 아저씨의 서러운 이야기와 고시에서 또 떨어졌다는 쌀집 첫째 아들의 이야기와 곗돈 들고 도망갔다가 터미널에서 빚쟁이들에게 머리채가 잡혔다는 미장원 박 씨 아줌마의 이야기와 데모하다가 감옥 가고 패가망신 했다는 철물점 윤 씨 둘째 딸의 이야기가 끊임없이 이어졌다.
 
 
우리 동네 연탄은 연탄회사 부장인 아버지 덕에 충북연탄에서 대주었다. 어머니 손을 잡고 처음 국민학교에 입학한 후로 매년 새 학년이 시작될 때마다 가정환경조사서를 써야 했다. 가족 관계를 빼곡히 적어야 했고, 자가인지 전세인지 월세인지를 적어야 했고, TV나 자동차가 있는지도 적어야 했다. 부모님 학력과 아버지 직업도 꼭 적어야 했다.
 
그런데 사실 이때마다 나를 가장 곤혹스럽게 만든 것은 아버지의 직업을 적는 일이었다. 우리 집은 서울 변두리의 시장 옆에서 연탄 가게를 하고 있었는데, 내가 아버지 직업란에 자영업이라고 쓰면 담임 선생님께서 꼭 따로 불러 무슨 일을 하시냐고 되묻곤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연탄가게 하시는데요. 시장 옆에 있는 충북 연탄이요. 말해야 했고, 공부를 못했던 나는 선생님들께 아버지 그렇게 고생하시는데 너는 왜 그 모양이냐며 난데없는 꾸중을 들어야 했다. 교무실을 나올 때 선생님들이 내 뒤에 되고, 겨울은 춥지 않겠다 하는 뒷말이 늘 가슴에 바늘처럼 따가웠다. 결국 그 소리가 듣기 싫어 국민학교 5학년이 되고서는 다른 방법을 생각해 냈다. 평소 가게에 놀러오는 시장 아저씨들이 아버지를 이 부장! 이 부장! 하고 불렀기에 아버지께서 써 주신 자영업이라는 직업명을 지우고 연탄 회사부장이라고 고쳐 적었다. 담임 선생님은 별 의심 없이 연탄 회사부장이라는 직함을 그대로 믿었다. 하물며 삼천리 맞지? 하며 다정한 표정을 짓기도 했다.
 
나는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아버지가 술만 먹으면 대학원을 나오고, 김동리 밑에서 글을 쓰고 원고 교정을 도왔다는 말을 왜 반복해서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시절을 잘못 만나서 이 꼴이 됐다는 아버지 말은 더욱 알 수 없었다. 나는 가끔, 이른 아침 가게 문을 열고, 맥심 커피를 호르륵 들이키고, 프랭크 시나트라의 마이웨이를 틀어놓고, 알아들을 수 없는 애드가 앨런 포우의 시를 읊조리는 아버지의 모습을 볼 때면 연탄과 참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그래봤자 내 아버지는 구루마에 연탄을 가득 싣고 눈이 오고 바람이 부는 우리 동네 골목골목을 누비는 연탄장수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겨울이 점점 표독스럽게 변하던 무렵이었다. 담임 선생님께서 외교관 아버지를 둔 우리 반 반장 아이와 나를 불러 강아지 한 마리씩을 나누어 주었다. 소중한 생명이니 잘 키우라며 부모님께는 보답을 안 하셔도 된다고 몇 번을 강조했다. 나는 선생님께 특별한 학생이 되어 난데없는 선물을 받았다는 사실이 여간 기쁘지 않았다. 까만 털이 복실 복실한 녀석을 집에 안고 돌아오니 어머니가 어디서 난 거냐며 다그쳤다. 아버지는 생명을 함부로 들이는 게 아니라며, 먹이고 재우는 일은 니가 맡아서 하라며 혀를 끌끌 찼다. 고등학교 3학년 자식부터 초등학교 5학년까지 촘촘히 늘어선 5남매 자식을 키우는 것도 버거운 마당에 생명이 하나 더 늘었으니 걱정이 되었던 것이다. 선생님께서 우리 반 반장 아이와 나만 따로 불러 주신 거예요. 라고 말했더니 어머니는 연탄에 검게 얼룩진 검은 얼굴을 씻으며 그거 강아지 줄 테니 돈 가져오라는 소리야. 라고 혼잣말을 했다.
 
연탄 가게 하는 거 뻔히 아실 텐데 왜 너를 불러 강아지를 주었는지 모르겠다며 푸념을 늘어놓았다. 나는 연탄 가게가 아니라 연탄 회사의 부장이라서요. 라고 말할 뻔했다.
 
아버지는 다음 날 선생님께 편지를 썼다. 무슨 내용을 썼는지는 몰래 읽어보려 했지만 한문이 너무 많이 적혀 있어 내용을 온전히 알아볼 수 없었다. 다만 선생님께서 제 미련한 아들에게 좋은 생명을 주셨으니 그 은혜를 두고두고 감사드린다고, 혹 연탄을 보내주면 좋겠지만 댁에서는 기름보일러를 쓴다는 말씀을 듣고 마음을 다리미로 잘 다린 지폐를 보낸다는 내용인 것만은 알 수 있었다.
 
어쨌든 나는 그때 담임 선생님이 왜 나에게 강아지를 주었는지 알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아버지는 연탄장수가 아닌 연탄 회사의 부장이었으니까. 그렇게 우리 집에 온 녀석이 검은 털이 숭숭한 복실이었다. 좋은 집 갔으면 사랑받으며 귀하게 컸을 텐데 내 위로 형과 누나들이 도합 넷이었던 까닭에 복실이는 교실에서 늘 맹물처럼 고여 있는 나처럼 우리 집에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싱거운 존재였다. 일곱 식구가 먹다가 남은 음식이 있으며 그걸 받아먹고, 가족들이 하나 둘 돌아오면 꼬리를 흔들었다. 매일 나와 함께 등하굣길을 함께 하는 길동무가 되었다. 돌보는 사람 하나 없어도 복실이는 용케 집과 가게, 학교는 잘도 찾아다녔다. 예쁘다고 안아주는 사람 하나 없는 그 길을 뭐가 좋다고 그리 부지런히 뛰어다니는지 알 수 없었다.
 
 
하루는 동무들과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교문 앞에서 나를 기다리던 복실이는 내가 나오자 꼬리를 흔들고 좋아했지만 나는 동무들과 함께 하느라 복실이의 반가움을 외면했다. 복실이는 그래도 뒤를 졸졸 따라오며 혼자서 분주했다.
 
동무들이 아버지의 직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동사무소에 다니는 아버지, 트럭 운전수 아버지 그리고 우리 아버지의 차례가 되었을 때 나는 그만 연탄 회사부장이라고 말해 버렸다. 아이들은 부장이면 사장 바로 밑에 있는 사람인데, 너희 아버지 높은 위치에 있어 너는 좋겠다며 부러워했다.
 
골목 모퉁이를 돌아 가파른 고갯길을 내려올 때 아버지와 어머니가 연탄 리어카를 끌며 힘겹게 오르고 있었다. 복실이가 꼬리를 흔들며 먼저 뛰어갔다. 아이들이 너희 집 개가 연탄 배달하는 아저씨 보고 좋아한다고 킬킬거렸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나를 보고 뒤에서 리어카 좀 밀라고 소리를 쳤다. 순간 아이들이 무슨 상황인가 한동안 궁금한 모양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얼굴이 붉게 달아올라 아무런 말도 못하고 잽싸게 고갯길을 내달렸다. 복실이가 쪼르르 따라왔다. 아버지의 야 이놈아 어디가~ 하는 소리가 귀신처럼 쫓아왔다.
 
그날 나는 집으로 돌아와 빈방에서 이불을 들쓰고 한참을 울었다. 그날 저녁 아버지가 시커먼 연탄재를 묻히고 퀭한 모습으로 집으로 들어설 때 막 타기 직전의 숯덩이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이 어둑해지니 이상하게 검정 투성이인 아버지는 더욱 선명하게 보였다. 그리고 목덜미 한번 쓰다듬어 주지 않는 아버지를 향해 좋다고 꼬리를 연신 흔들어 대는 복실이는 속도 없어 보였다. 아버지는 검은 연탄재가 덕지덕지 묻은 양말발로 복실이를 툭쳐서 옆으로 밀쳐냈다. 그날 아버지는 복실이에게 참 매정했다. 복날이 되어도 크기가 작아 먹을 것도 없을 뿐더러, 천방지축 싸돌아다니기만 하니 집 지키는 것도 못하는 것이 무슨 개냐며 마구 성을 내었다. 개도 나를 무시한다며 내일은 개장수한테 팔아버릴 거라고 집안 사람들 다 들으라고 고래고래 호통을 쳤다.
 
어느 날부터 복실이는 나와 길동무가 되어주지 못했다. 그렇게 바쁘게 싸돌아다니던 녀석이 가게 귀퉁이 연탄들과 포개져 잘 움직이지를 않았다. 아버지는 그런 복실이를 보며 그래서 생명을 함부로 거두는 게 아니라며 내게 면박을 주었고, 걸그치니 네가 학교 간 틈을 봐서 어디 버리고 올 것이라며 엄포를 놓았다. 집으로도 학교로도 논두렁으로도 더이상 쏘다니지 않는 복실이는 점차 연탄이 되어갔다. 그래도 나를 보면 힘든 몸을 일으켜 꼬리를 흔들고, 혓바닥으로 내 손바닥과 얼굴을 핥았다.
 
나는 앓고 있는 복실이를 아버지가 어딘가에 버릴 것만 같아서 학교가 끝나면 동무들과 놀지도 않고 가게에만 머물렀다. 가끔 연탄을 한 장 두 장 낱장으로 사러오는 손님이 연탄을 집어가다가 시커멓게 웅크리고 있는 복실이를 보고 깜짝 호들갑을 떨기도 했다. 다시 온 동네가 김장 품앗이에 시끌벅적해지고, 집집마다 연탄을 쟁겨 놓기에 바빠질 무렵 가게 빈방 아랫목에서 산수 숙제를 하던 나를 아버지가 불렀다.
 
어서 나와 봐라. 복실이가 힘들게 숨을 쉬고 있었다. 내 발걸음이 들리자 꼬리만 두 어 번 휘젓다가 몇 번 가쁜 숨을 고르고는 고개가 꺾여 버렸다. 아버지는 죽었다 말했다. 배에 물이 차서 죽었다고. 가난한 연탄 집에 와서 불쌍하게 죽었다고. 나는 툭하면 복날 개장수한테 팔아야 한다고, 때를 봐서 어디 멀리 버리고 오겠다는 아버지의 말이 떠올랐다.
 
해가 뉘엿뉘엿 질 무렵 리어카에 죽은 복실이를 싣고 아버지와 함께 학교 뒷산에 올랐다. 너를 제일 잘 따랐으니 네가 제일 잘 보이는 학교 뒷산에 묻어주는 거야. 하는 아버지의 말이 귓전에 웅웅거렸다. 겨울을 준비하는 땅은 많이 차가웠다. 아버지는 구덩이를 깊이 파고 복실이를 내려놓았다. 굵은 땀을 주르르 흘리던 아버지가 내게 삽을 안겨주었다. 너무 힘드니 흙 덮는 건 네가 해라. 나는 흙을 쏟아내며 쉼 없이 눈물을 쏟아냈다. 삶에서 생명과 이별했던 첫 순간, 나는 죽음 앞에 할 수 있는 일이 우는 것밖에 없다는 사실을 처음 깨달았다.
 
복실이를 묻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는 아버지가 끄는 연탄 리어카에 올라 더 이상 슬퍼할 수 없는 순간까지 울다가 잠이 들었다. 겨울 초입에 바람은 뼈 속까지 스며들었고 땅 속에서 처음 잠을 자는 복실이 생각에 가슴이 미어졌다. 집으로 돌아와 아버지는 한참 동안 손을 씻었다. 손톱에 낀 연탄가루가 오늘따라 잘 지워지지 않는다고 비누에 문제가 있다며 푸념을 했다.
 
그날 잠들 무렵 아버지가 내 등을 토닥여주었다. 잘 기억해라. 오고 가는 것은 슬픈 일이지만 피할 수 없는 것이고, 복실이처럼 바쁘게 쏘다녀도 있는지 없는지 모르는 게 인생이란다.
너는 연탄 집 복실이만 닮지 말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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