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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인협회 인니 지부 (191) 음과 양 /하승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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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산책
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15,353회 작성일 2021-12-31 10:49

본문

<수필산책 191>
음과 양
 
하승창/ 한국문협 인니지부 회원
              
밤새 내린 비를 촉촉이 머금은 가로수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빛의 나라였다. 새벽의 밑바닥까지 환해졌다. 동쪽으로 쭉 뻗은 대로의 초입에서 걸음을 멈췄다. 반년 전만 해도 큰길 왼편 숲에서 느지막이 뜨던 해가 이제 오른편 높직한 삼층집 위에서 대지를 비추고 있다. 연중 낮이 가장 긴 날, 자카르타의 하지가 다가오는 것이다.
 
자전축이 비스듬히 기울어진 지구는 태양을 공전하며 북반구와 남반구의 절기를 반대로 돌린다. 그래서 자카르타의 하지는 곧 한국의 동지, 즉 어둠의 기운이 최고조에 이르는 때가 된다. 그러나 '물극필반(物極必反)'이라 했듯이 음기의 절정은 곧 양기가 태동하는 전환점이기도 하다. 그래서 옛사람들은 '동지'가 되면 하늘에 제물을 바치고 긴 밤의 끝과 태양의 부활을 기뻐했는데, 우리 조상들도 이때를 양기가 소생하는 날로 여겨 작은 설이라 불렀다.
 
피가 태양을 움직이는 원동력이라는 믿음은 고대 마야인들만의 것이 아니었지만 문명이 발전함에 따라 제례를 위한 제물의 피는 붉은 팥죽으로 대체되었을 것이다. 해를 상징하는 새알심을 먹는 것은 곧 나이를 먹음을 의미했는데, 요즘은 정월에 먹는 떡국에 더 큰 의미를 두기는 하나, 동그랗게 썬 가래떡이 상징하는 대상 또한 새알심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는 않은 것 같다.
 
 
2년 가까이 이어지는 팬데믹의 시대, 마침내 긴 겨울의 끝자락이 보인다는 희망에 우리 가슴은 설레었다. 하지만 변종 바이러스의 거듭되는 출현은 고대하던 봄을 다시 저만치 돌려보내려는 것 같다. 이 어둠의 끝이 어디인지 누가 알겠으며, 한탄 한들 어찌 하겠는가. 세상 만물은 탄생과 소멸, 성장과 쇠락의 순환으로 균형을 유지하기에 음과 양에는 우열이나 선악이 없는 법이다. 그래서 낮과 밤의 우열을 따지는 것은 마치 들숨과 날숨 중 어느 것이 나은가를 따지는 것과 같고, 여름과 겨울의 선악을 논하는 것은 먹는 것과 싸는 것 중 어느 쪽이 중한지를 논함과 같다.
 
아마도 대자연은 한배의 자식들인 바이러스와 인간이 공존을 위한 조화를 이루는 때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 아닐까. 이처럼 음양은 상호 대립하는 동시에 서로를 보완하기에 옛 현인들은 이런 자연의 섭리를 통해 세상의 근원을 밝히고자 했던 것 같다. 동양의 사상가들이 '음양오행(陰陽五行)'을 우주의 운행 법칙으로 여겼다면,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들은 공기와 흙, 불과 물의 네 가지 원소가 세상을 구성하는 근본 물질이라고 생각했다. 하늘의 불이 땅을 데우고 하늘로 올라간 물은 다시 땅을 적셔 만물의 생장과 소멸을 도우니, 이 4원소설에도 각각의 물질이 상징하는 음양의 조화와 순환 원리가 담겨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세상 만물의 근원이 오행이나 4원소가 아닌, 원자라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다. 다만 재미있는 것은, 원자 또한 양전하를 띠는 원자핵과 그 주위를 떠도는 음전하인 전자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이다. 즉 천지라는 거시 세계의 운행과 원자라는 미시 세계의 구성이, 한가지로 음양의 이치를 따르고 있는 것이다.
 
더불어 또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우리가 살고 있는 아날로그 세상의 운행 원리와 마찬가지로 디지털 세상 또한 '0과 1'의 이진법으로 작동하는 음양의 시스템이라는 점이다. 요즘 아이들은 아날로그 전화기를 본 적이 없어서 스마트폰의 통화 아이콘에 그려진 전화기가 왜 그런 모양인지 궁금해 한다. 이렇게 디지털은 이미 우리 삶의 일부가 되었고 인류는 지금 메타버스라는 돌이킬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을 맞이하고 있다. 지극히 이질적으로 보이는 가상 세계와 현실 세계, 디지털과 아날로그, 음과 양이 융합되는 세상이 눈앞에 다가온 것이다.
 
향후 주력 사업으로 메타버스에 집중하고 있는 페이스북은 최근 회사 이름을 '메타'로 변경했다. 이들이 무한대 기호를 새로운 회사 로고로 채택한 이유는, 바로 이런 음양의 무한한 순환과 조화를 암시하려는 것이 아닐까. 내가 알기로, 음양의 운행 원리와 더불어 공기와 흙, 불과 물의 4원소 우주관을 그 국기에 천명한 민족은 이 지구상에 두 개가 있다. 서쪽과 동쪽에 각각 뿌리를 두고 있는 이들 두 집단은 비슷한 점이 참 많은 것 같다. 우수한 두뇌, 높은 교육열, 근면함, 그리고 오랜 기간 외세의 핍박에 시달려 왔음에도 지금까지 문화적 정체성을 굳건히 유지하고 있다는 점들이 바로 그것이다.
 
그 첫 번째 집단은, 최초의 근대적 주식회사인 동인도 회사의 설립을 시작으로 네덜란드와 영국, 미국으로 이어지는 세계 패권을 주도한 핵심 세력이자, 현재 전 세계의 금융과 산업 전반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으며, '메타'와 '구글'을 비롯한 최첨단 정보 기업들을 설립하거나 투자 지원하면서 4차 산업혁명을 주도하고 있는 유대인이다. 그렇다면 나머지 하나는 어느 민족인가?
 
4차 산업과 우주 개발의 핵심인 반도체와 배터리 분야에서 세계 최정상급의 기술을 보유하고 있으며, 뛰어난 창의력으로 영화와 드라마, 음악 등 문화 콘텐츠를 통해 전 세계에 한류의 거대한 물결을 일으키고 있는 사람들, 바로 한국인이다. 팬데믹의 위기를 기회로, 두려움을 용기로 바꿀 수만 있다면, 4차 산업혁명 이후에 펼쳐질 세상은 우리에게 눈부신 번영을 선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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