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4) 자갈돌과 아버지 / 지나 > 한국문인협회 인니 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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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인협회 인니 지부 (84) 자갈돌과 아버지 / 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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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산책
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8,772회 작성일 2019-12-12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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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필산책 84 >
 
자갈돌과 아버지
 
지나/ 수필가,싱가폴 거주(한국문협 인니지부 명예회원)
 
 
흔하디 흔한 자갈돌이었다. 특이한 모양도 탐낼만한 빛깔도 전혀 아니었다. 여느 월요일과 다름없던 햇살 좋은 아침, 아버지가 그리울 일은 없을 것 같던 내게 적도의 땅인 싱가포르에서 아버지가 잠드신 한국의 태종대 바닷가로 내 기억을 끌어다 놓은 회색 자갈 돌 두 개, 아버지와 이별한지 꼭 10년만이다. 그래! 그리움이란 이렇게도 오는거다. 단 번에 온몸의 혈류를 마구 흔들어 놓고, 사막 한가운데 햇살을 뒤집어쓰고 있는 것처럼 무자비하게 뜨거워지다가, 명치 끝을 누르고 방어할 틈도 없이 왈칵 차오르는 눈물로 거칠게 나타나기도 하는 것이다.
 
 
아버지를 깊이 사랑했던 순간을 곰곰이 더듬어 보아도 떠오르는 것이 없다. 저 먹먹한 자갈 돌처럼 무심하게 아버지를 대하던 딸, 그래서일까? 아버지는 돌아가신 후 한 번도 내 꿈에 나타나지 않으셨다. 원래부터 없었던 사람처럼 까맣게 잊혀졌다가 문득 비슷한 걸음걸이를 가진 노인의 뒷모습에서, 생의 마지막즈음에 스러지던 아버지의 모습이 떠오르다 금새 사라지곤 했다. 아버지의 유해가 뿌려진 곳은 자갈 돌이 유난히 많은 부산 태종대 바닷가 근처 큰 바위 아래였다. 아버지를 보내드리던 날, 철썩이는 파도를 버티며 꼿꼿이 서있는 두 개의 큰 바위 사이로, 파도에 온몸을 맡기고 빼곡하게 모여있던 자갈 돌들이 ‘짜그락 짜그락’ 오랫동안 함께 울던 소리를 나는 잊지 못한다. 나에겐 아버지의 살아 생전 목소리보다 더 깊이 박힌 소리가 되었다.
 
 
아버지는 전형적인 경상도 남자였다. 하루 두 세 마디 이상은 하지 않으셨고, 사업으로 항상 바쁘셨다. 그 시대 대부분의 아버지들이 그러했듯이, 가족을 사랑하셨지만 가족과 어떻게 시간을 보내야 하는 지를 잘 알지 못하셨다. 친할아버지와 너무 일찍 떨어져 부정을 배우지 못한 젊은 가장. 그런 아버지에게 나는 불만조차 없었다. 애초에 살가운 아버지를 기대조차 하지 않은 것은 나였는지도 모르겠다. 아버지라는 사람은 일용할 양식과 학교의 등록금과 가족들이 원하는 것들을 위해 당연히 희생해야하고, 다정하지 못한 것은 아버지의 태생이라고 생각했으니까. 한 인간으로서의 아버지에 대한 관심과 연민을 갖지 못한 자식의 이기심이었다.
 
내 기억 속의 아버지는 미군 파일럿이 입었다는 허리 짧은 연한 국방색 메뚜기 점퍼를 즐겨 입으셨다. 폭이 좁은 골댄 바지에 ‘랜드로바’ 형 가죽구두를 신으면 아주 폼이 났다. 걸음은 날아다니는 것처럼 빨랐고 권투도 잘 하셨다. 다부진 체구에 언제나 에너지가 넘치는 사나이였다. 어느 날, 그렇게 건장하시던 아버지는 새벽 등산길에 큰 사고를 당하셨다. 병원에 입원하신 아버지는 급격히 노인이 되어갔고, 아주 느린 걸음으로 조금씩 걷는 것이 아버지에게 허용된 유일한 신체의 자유였다. 갑작스런 사고로 인한 후유 장애는 아버지의 자존심을 심하게 상처 내며 할퀴었고, 가족을 제외한 외부인을 아무도 만나려 하지 않으셨다. 아버지의 시대가 저무는 쓸쓸하고 고독한 오후가 오랫동안 이어졌다.
 
 
아버지의 존엄이 무너지기도 전, 아버지는 시신기증에 동의한다는 서명을 하셨다. 3일장이 끝나자 두 손을 나란히 모은 모습으로 구급차에 실려가던 아버지의 창백했던 얼굴이 마지막이었다. 아주 낯선 이별이었다. 시신이 연구 목적으로 사용되고 난지 2년 후 화장터에서 아버지의 유골을 수습할 때, 아버지가 “꼭 막내가 다니던 대학 뒤편 바닷가에 나를 뿌려다오.” 하셨다는 걸 알았다. 비릿한 미역냄새가 휘감고 자갈돌들이 물에 쓸려 ‘와글와글’대는 그 바다에서, 아버지는 러시아 선장, 이태리 선장 등과 협상을 하던 혈기왕성한 젊은 시절의 당신을 만나고 싶으셨을 것이다. 가장 사랑하던 막내아들의 스무 살 대학시절을 추억하면서…
 
가만히 눈을 감고 태양아래 뜨거워진 메마른 자갈 돌을 만져본다. 다섯 손가락으로 셀만큼 몇 안 되는 아버지와의 추억들이 서해를 건너 싱가포르 해협을 지나 내 갈비뼈 사이를 아리게 누르면서 가지런히 일어나고 있다. ‘아버지가 자갈돌을 통해 나에게 말을 걸고 계신 것일까?’ 문득 그런 생각이 뇌리를 스친다. 서툴렀지만 가족들을 많이 사랑했었다고 아버지는 그렇게 깊이깊이 말해주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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