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 ‘고흐’의 전시회에서 얻은 치유의 길 / 송민후 > 한국문인협회 인니 지부

본문 바로가기

팝업레이어 알림

팝업레이어 알림이 없습니다.
사이트 내 전체검색

ae7a633ecc5aba50dda8fe8871ff253a_1671380259_2972.jpg

한국문인협회 인니 지부 (111) ‘고흐’의 전시회에서 얻은 치유의 길 / 송민후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수필산책
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7,022회 작성일 2020-06-18 17:51

본문

<수필산책 111>                                 
'고흐'의 전시회에서 얻은 치유의 길
                                            
송민후 / 시인, 문인화가 (한국문협 인니지부 회원)
 
 
지난해 9월이 시작되고 나의 간헐적 지병이 도졌다. 경도의 대인기피증이다. 나에게 매년 9월은 이미 한 해의 마지막 같은 기분이 든다. 내려놓아야 하고 조용한 곳으로 숨고 싶은 달이다. 약속도 미루고 외출하기도 싫어진다. 그냥 음악 듣고 책보고 가끔 드라마도 보며 한껏 게으름을 피웠다. 아침에 일어나서 남편과 아이를 보내고 클래식 음반을 꺼내 들었다. 오래된 홈시어터에는 다섯 대의 스피커가 연결되어 있어 어떤 음악을 틀어도 섬세하고 웅장하게 효과음이 잘 들린다. 그날기분에 따라 음악의 종류는 가리지 않지만 대체로 잔잔하고 조용한 선율을 즐긴다. 그림을 그리기도 하고 글도 쓰는 거실 한 켠 나만의 공간이 요즘 제일 편하다.
 
커피 한잔을 들고 책장을 뒤적이다. ‘반고흐, 영혼의 편지’ 란 책에 눈이 멈췄다. 몇 년 전에 사두고 군데군데 읽었던 책이다. 문득 지난 초겨울 다녀온 전시회가 생각난다.  그때 꼭 읽어야지 하고서 무심코 흘러버린 시간들이 아깝다. 조용히 나만의 시간에 흠뻑 빠져 책이 친구가 된다. 책장을 넘기다 해바라기 그림과 ‘반고흐’의 초상화를 보니 그때의 영상들이 떠올랐다.
 
 
한국에서 아침거리를 걸어가다 문득 가을을 만났다. 뒤늦게 땅에 내린 곱게 물든 단풍잎이 눈에 깔리어 웅크리고 있었다. 걸음을 멈추고 빨강, 노랑 두 잎을 주어 물기를 닦아냈다. 녹아나는 눈 사이에 제비꽃이 보도블록 틈 사이에서 안간힘을 쓰며 버티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심장이 쿵했다. 도심 한복판 돌 틈에 피어 여태껏 생을 지탱한 저 꽃이 너무도 안쓰러웠다. 아무런 생각 없이 하루하루 살아가며 무덤덤한 내 마음에 또르르  눈물이 흘렀다. 어느새 햇살은 제 몸을 부풀려 강해졌고 뺨을 스치는 바람은 제법 부드러워졌다. 첫눈이 내렸어도 아직은 가을이구나! 첫 눈치고 제법 많이 내려서 그늘진 곳에 얇게 쌓여 있었다. 부지런한 청소부의 손길에 눈에 섞인 낙엽이  을씨년스럽다. 어느덧 한눈에 보이는 건널목 신호등에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에’ 라는 작품의 일부분 바탕이 ‘러빙 빈센트’라는 커다란 글씨가 적혀있었다. 제대로 찾아왔구나 하는 마음으로 길을 걷다보니 책의 한 페이지를 옮겨놓은 글이 있었다.
 
“난 내 예술로 사람들을 어루만지고 싶다. 그들이 이렇게 말하길 바란다. 마음이 깊은 사람이구나,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구나.” 언젠가는 나도 내 작품을 선보이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다. 날씨 탓도 있고 뭔가 이룬 것 없이 또 한해가 저무는 아쉬움 탓인지 글귀가 가슴을 울린다.
 
그림과 관련된 전시회는 시간을 내서 다니는 편이다. 학창시절 미술시간에 외우던 외국 화가들, 산수화나 문인화 같은 우리 전통 묵화전시도 찾아다닌다. 특별히 어떤 화가를 좋아하거나 미술 지식이 많아서가 아니다. 작품 속 작가의 열정과 세심함이  내게 전해져오는 에너지가 있다. 가끔 똑같은 일상에서 오는 지루함과 게으름이 엄습해 무기력해질 때면 전시장 나들이를 간다. 딸이 복수전공으로 시각디자인을 하게 되니 더 다양한 전시회를 다니게 되었다. 딸은 어렸을 때부터 그림을 좋아했고 재능도 있었다. 미국에 있는 미대에 장학금도 준다는 걸 만류해서 결국 한국에 머물게 했는데 결국은 그림공부를 한다.
 
 
‘러빙 빈센트전’은 2017년에  개봉하고 2018년 12월에 재개봉했던 영화 "러빙 빈센트" 와 관련된 전시였다. 문화생활이 취약한 적도에서 고국에서 열리는 다양한 행사는 늘 동경일 뿐이라 영화를 못 본 게 아쉬웠다. ‘러빙 빈센트’는 처음부터 끝까지 약 65,000여점의 유화그림으로만 제작된 애니메이션 영화다. 세계각지 20개국 출신의 125명의 화가가 참여해 10여년에 걸쳐 제작된 최초의 애니메이션이다. 우리나라에서만 40만 명의 관객이 관람했을 정도로 크게 흥행했다고 한다. ‘빈센트 반 고흐’는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화가임이 입증된 셈이다. 듣기만 해도 열정과 에너지가 느껴지고 존경스럽다. 자세하게 설명도 잘 되어있어서 시간되면 영화를 꼭 봐야지 싶었다. 
 
‘러빙 빈센트전’에서는  해당영화에 담긴 반 고흐의 최고의 회화작품 120점이 전시된다고 했다 .미공개 원작 2점과 영화로 재해석한 회화작품 원화가 전시된다는 점이 관람객을 모이게 하는 거 같았다. 원작과의 비교부터 생생한 제작과정을 코너 별로 자세히 소개되었다. 배우소개, 빈센트의 유년시절부터 죽음에 대한 미스터리 보드를 만들어 두었다. 흑백영화 코너를 옮겨놓은 듯 필름 프레임 구성은 옛 추억이 떠오를 정도로 인상적이었다. 전시 자체가 영화인 듯 했다.
 
 
 
1관과 2관이 나누어져 있는데 요즘 대부분의 전시가 그렇듯 미디어 아트의 진수를 보여준다. 캔버스에 레이저 빔, 360도로 제작된 원형 프로젝션, 움직이는 그림, 마치 가상현실 속에 일치되는 느낌이 들 정도다. 몇 해 전 봤던 구스타프 클림트 전시회와 같은 기획이나 다른 작품 다른 느낌일 뿐이다. 요즘 전시회는 빛과 음악이 그림 뭉쳐진 잔치다. 관객이 작품에 동화되는 활력이 넘치는 체험위주가 대세다. 차분함과 편안함이 아닌 감각적인 전시다. 음식 반입불가 핸드폰 무음 작품에 손대지 않기는 모든 전시의 기본이다. 요즘은 포토부스와  체험공간이 있다 보니 수용인원이 일정하게 제한하고 다음 장소로 이동하기도 하는데 그건 참 바람직했다. 
 
관람을 마치고 포토 존에서 사진을 찍고 M스토어라는 기념품 샵에 들렀다. 전시회를 보면 기념품 가게는 필수코스다. 엽서를 사기 위해서다. 전시마다 특별한 제품이 있으면 사기도 하지만 엽서는 꼭 산다. 나는 어딜 가면 꼭 뭔가 의미있는 것을  들고 와 수집하고 메모하기를 좋아한다. 그러다 보니 잡동사니가 늘어 정리가 시급하다. 딸도 날 닮았는지 꼭 기념품을 챙겨서 엽서만 사는 걸로 합의를 본 지 오래다. 한참을 구경하다보니, 학창시절 미술시간에 배운 내용과 생활에서 보는 반가운 그림들이 있다. 꽃병에 꽂힌 열두 송이 해바라기, 별이 빛나는 밤, 아를에 있는 고흐의 침실, 그리고 어린나이에 무섭기까지 했던 귀자화상도 있다. 이제야 차분히 그림이 눈에 들어왔다. 좋아하는 그림으로 엽서를 몇 장 샀다. 
 
 
고흐의 그림은 배움에서 느낀 슬픔과 경외감이 다였다. 세월이 흘러 나이가 먹어가면서 보는 고흐의 그림은 삶의 아픔과 상처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생전에 단 한 점의 그림도 팔지 못했고 물감 구입도 여유롭지 않았던 천재화가. 그 짧은 일생이 얼마나 격정적이고 굴곡이 많았는지 전해져오는 에피소드를 통해 더 잘 이해할 수 있었고 마음이 먹먹해졌다.  고흐는 37년이라는 세월동안 지독한 가난을 겪으면서도 그림에 대한 열정과 고독한 삶속에서도 가족과 동료들에게 668통의 편지를 보냈다고 한다. 그는 그림을 그리면서 편지를 쓰면서 삶의 고통을 스스로 치유를 하며 살았다.  "반고흐, 영혼의 편지" 이 책은 동생 테오에게 보내는 편지글과 작품이 실려 있다. 전시회 출구 쪽에 죽기 전 동생 테오에게 보낸 마지막 편지가 있었다.
 
나가는 길에는 '악수를 건네며' 라는 멘트와 함께 ‘당신의 러빙 빈센트’라는 문구가 검은 화면에 떠있었다. 그 마지막 여운이 지금 이 순간 가슴을 적신다.  늦은 나이에 글을 써보겠다고 이 책 저 책 읽는다. 머리를 쥐어짜도 한계에 달한다. 여고시절 부터 시작된 작가의 꿈은 늘 가슴 한구석에 자리 잡고 있다가 한 번씩 울컥 인다. 결혼해서 짬짬이 끄적이고 있다. 나도 미뤄두었던 꿈을 향해 고흐처럼 열정을 쏟을 수 있을까? 그에 비하면 나는 참 나태한 인간이다. 편지글 하나하나가 작품이다. 화가가 아닌 작가이다. 너무 와 닿는 몇 문장을 적어본다. 
 
"나는 그림을 그리고 싶고, 사람을 만나고 싶고, 그리고 우리 삶을 만드는 모든 것, 네가 원한다면 인공적인 것이라 불러도 좋은 모든 것을 접하고 싶다. 그래, 진정한 삶이란 다른 어떤 것일 테지, 그러나 나는 살아가고 고통 받을 준비가 되어 있는 그런 사람은 못되는 것 같다. 붓을 한 번 움직이는 것은 얼마나 신기한 일인지, "그래 내 그림들, 그것을 위해 난 내 생명을 걸었다" 문구 하나 하나에 사랑과 열정이 가득하다. 무엇보다 용기를 준다. 어떤 일을 하는데 동기 부여가 되는 멘토 같은 말들이 가득하여 에너지를 솟아나게 한다. 나의 딸들을 비롯해 꿈을 향해가는 신세대들이 고흐의 삶을 통해 목적을 향해 진실하고 강해지길 바란다. 나의 삶도 저물어가는 시기에 와있다. 지나온 시간, 뭔가 해야 한다는 강박감에 아이들 키우면서 바쁘게 열심히 살았다.  그럼에도 늘 마음 한 곳에 휑하니 바람이 지나가는 건 더 열심히 살라는 신호다. 오직 한가지만을 위해 영혼을 바치고 살다간 화가에게서 받은 에너지로 꿈을 향해 ‘나만의 치유의 길’을 가고 싶다. 언젠가 나도 내 작품을 선보이고 싶다. 이 보잘 것 없는 내가 가슴에 품은 따뜻하고 깊은 사랑을, 비록 많은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더라도 누군가 단 한 사람이라도 위로 받고 희망을 가질 수 있다면......*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Copyright © PT. Inko Sinar Media.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