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인협회 인니 지부 (122) 고난에 대한 단상(斷想) /문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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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필산책 122 >
고난에 대한 단상(斷想)
문인기 / 시인 (한국문협 인니지부 회원)
살다보면 밝은 길을 걸을 때도 있지만 어둡고 답답한 길을 걸어야 할 때도 있다. 지금은 세상이 뒤숭숭하고 어둡다. 전염병으로,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받는 압박감으로 인해 마음이 각박해지고 날카로워지는 것을 느낀다. 뉴스 시간마다 전 세계적 코로나 확진자와 희생된 사람의 숫자가 어제보다 늘었다는 근심된 소식으로 시작한다. 정치적으로는 서로를 탓하며 끝없이 서로를 비난하며 남 탓하는 가시 돋친 말도 퍼붓는다. 경제는 위축되다 이제는 굳어가는 듯하여 정부는 당황하고 이를 보는 국민은 벌써 피부로 느끼며 근심이 깊어졌다.
나 자신도 우려되는 점은 이런 와중에서도 마음 한구석에 안일한 생각이 꽈리를 틀고 있다는 것이다. “어찌 되겠지!” 하는 한숨 섞인 한마디나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는 속담은 위로를 주는 말인가 아니면 자포자기의 한숨인가? 이미 상황이 심각해져서 소망의 끈조차 끊어질 위기의 징후를 말해주는 것이 아닐까? 용기가 되는 한 가지는 유구한 민족의 역사에서 수많은 외침과 지배의 수모를 당하며 수없이 아리랑 고개를 넘어온 터라 우리 민족은 막상 팔 걷어붙이고 위기에 대처할 때는 놀라운 모습을 보여 왔다는 점이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팔을 걷어붙이기 전에는 사람들은 “이 또한 지나가리라” 라는 말로 덕담을 하며 겉으로는 태연한 모습을 보인다. 이런 말을 서로에게 건넨다는 것은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상황이 만만찮고 심각하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다.
물론 이 또한 지나가겠지만 가볍게 생각하는 말투로만 내뱉기보다는 좀 더 상황을 반추해 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한다. 닭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는 말처럼 어떠한 고난도 시간이 흐르면 어쩔 수 없이 지나가는 것이 ‘세상이치다’ 라고 생각해버리기에는 당면한 고난의 의미가 너무 크다. 부닥친 곤경의 상황이 왜 우리에게 닥쳤는가를 깊이 생각해 본 후 얻은 교훈에 합당한 마음가짐으로 곤경에 대처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흔히 어려움이 닥치면 당황하고 불평하거나 소망을 잃고 사기가 꺾기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당면하고 있는 고난이 담고 있는 의미가 무엇일까를 차분히 생각해 보는 사람은 그야말로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주인공이 될 것이라 믿는다.
짧은 인생을 살아온 경험으로도 깨달은 것 하나는 무엇 하나 인생 여정에서 불필요한 경험이 없다는 것이다. 누구나 늘 안정되고 편안한 삶이 이어지기를 소망하며 살아가지만 현실은 우리가 바라는 대로만 펼쳐지지 않는다. 착하고 성실하게 자기의 위치에서 책임을 다하며 살면 하늘도 도우셔서 복을 받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은 인간적 생각이지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착하게 살아가는 사람 중에서도 어려움을 당하는 경우를 많이 본다. 법이 없어도 살 사람이라는 평판을 받으며 사는 사람들도 당하지 말아야 할 험한 일을 당해서 이웃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경우도 본다.
반대로 나쁜 짓으로 돈을 긁어모으는데도 교만한 부자가 되어 누리며 사는 사람들도 있다. 정직하고 성실하게 살아가면서도 고난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사람이 이런 불공평한 경우를 보면서 불평할라치면 하늘을 향해 삿대질까지 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착하고 성실한 사람은 대개가 그 천성 그대로 남을 보고 상대적 빈곤감이나 차별을 느끼거나 하늘을 향해 불평하지 않는 성정을 가진 분들이다. 그렇기에 법 없어도 살 사람으로 본이 되는 사람이라고 주변으로부터 칭찬받는 인품의 소유자가 아니겠는가. 환경을 탓하지 않고 오히려 고난에도 감사하며 묵묵하게 평소대로 성실과 정직으로 살아내는 사람, 나도 그런 사람이 되기를 소망해본다.
인생 70을 살았어도 늘 절감하는 것 하나는 나는 아직도 부족한 점이 너무 많은 존재라는 것이다. 남의 글을 읽으며 “어쩌면 이런 고상한 어휘를 자연스럽게 사용할까!” 감탄하고 남이 가진 특기나 재주를 보고 들으며 노래 한 곡 끝까지 가사 틀리지 않고 제대로 부르지 못하는 나로서는 나의 부족함에 겸손해진다. 몸담은 단체의 리더들이 모여 회의를 할 때면 젊은 층 리더들의 유창한 외국어 실력과 논리적으로 훌륭한 자기 견해를 발표하는 모습을 보며 그들보다 인생 더 살았지만 나는 아직 멀었다는 것을 새삼 발견하게 된다. 이렇게 나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기에 나이가 들수록 말이 많아지고 과거의 이야기를 많이 함으로써 부족함을 덮으려 하는 것이 아닐까, 길게 말함으로써 듣는 사람들을 지루하게 만드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어느 생각 깊은 분이 오늘날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전례가 없는 이 팬데믹의 곤경을 유익한 쪽으로 적용한 글을 써서 발표한 것을 읽었다. 마스크를 반드시 착용하라는 것은 쓸데없는 말을 줄이고 “잠잠하라”는 뜻이며, 손을 자주 씻으라는 것은 이참에 “마음도 깨끗이 닦으라”는 뜻이고, 사람과의 거리를 두라는 것은 “자연을 가까이하라”는 뜻이며, 대면 예배를 하지 말라는 것은 “언제 어디서나 하나님을 바라보라”라는 뜻이고, 모이지 말라는 것은 그동안 등한하였던 “소외된 이웃과 함께하라”는 뜻이라는 아름다운 적용이 마음에 와 닿았다.
고난이 우리를 다듬고, 고난이 우리를 가르치고, 고난을 통해서만이 얻는 교훈이 있다는 것을 다시 상기해보며 고난을 기회로 바꾸는 자가 되고자 하는 마음이 간절해진다. 아파 보지 않은 사람은 병들어 신음하는 사람의 심정을 이해하지 못하기에 진정한 위로나 격려가 될 수 없을 것이다. 고난을 통과하며 담금질을 받은 자는 앞으로 닥칠 또 다른 고난도 견디고 극복할 넉넉한 능력을 갖추게 된다는 것에서 내가 지금 이 고난을 긍정적인 자세로 감내할 용기를 얻는다. 이런 용기와 소망적 교훈도 고난 가운데서도 낙심하지 않고 고난이 닥친 연유와 의미가 무엇인가를 깊이 반추해보는데서 생겨나는 것이다. 그 반추의 결과를 가지고 대처하는 자세, 당면한 고난이 인생의 앞날에 작용할 선한 영향력을 고려하여 긍정적으로 적용하는 태도가 중요하다 생각한다.
아직도 많이 덜 다듬어져 부족하기 그지없는 나로서는 오늘도 사방이 막힌 것 같은 제약의 답답한 상황 속에서도 나름 깊은 묵상으로 통과하며 교훈을 캐고 있는 자신을 보면서 안도하고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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