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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인협회 인니 지부 (133) ‘발리’에서 한 달 살기 / 강희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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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산책
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11,015회 작성일 2020-11-19 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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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필산책 133 >
‘발리’에서 한 달 살기
 
강희중 / 제4회 적도문학상 시 부문 특별상 수상자
 
 
올해는 ‘코로나19’ 확산으로 모든 행사나 모임이 취소되어 각자의 시간을 갖는 분위기가 되었다. 이 기회에 뜻있는 지인과 둘이서 발리에서 한달 살기를 추진하였다.
 
나는 20여년간 모아온 골동품과 공예품들로 발리에 갤러리를 열고 싶었고 자카르타 윈드오케스트라 백단장은 발리에 음악학교를 열고 싶어 함께 대지나 건물들을 살피기 위하여 한 달 간 발리생활을 하기로 합의하였다.
 
이동은 차량으로 하고 식사는 직접 요리해서 먹기로 하여 쿠쿠 밥솥과 가스렌지 등 모든 살림장비를 준비하였다. 쌀과 부식 등은 아이스박스에 넣고 수시로 얼음을 보충해 주었다. 운전은 교대하기로 하고 안전을 위하여 하루에 6시간만 이동하기로 하였다. 주로 아침 9시에 출발해서 오후 3시경 목적지에 도착 후 휴식과 식사를 하였다. 운전은 교대로 백단장이 젊으니 2시간을 운전하고, 나는 1시간을 운전하기로 했다. 발리에 도착하기 전 솔로에서 1박을 하고, 쁘로볼링고 바닷가에서 1박을 하고, 페리호에 차를 싣고 발리 북쪽의 ‘먼장안’으로 가서 1박을 하였다. 거기에는 온천과 바다가 함께 있어 ‘힐링’ 하기에는 더 없는 장소였다.
 
 
그리곤 사누르에 있는 수영장이 큰 풀빌라로 향했다. 코로나로 해외 관광객이 입국치 못하는 관계로 평소의 반값에 머물 수 있어 행운이었다. 여행은 항상 새로움을 느끼고 새로운 경험을 하는 인생사의 중요한 여정이다. 발리에서의 매일 시간은 아침 7시에 밥을 먹고, 오전에는 수영을 하고 악기 연습을 하였다. 나는 색소폰을 백단장은 트럼펫을 불면서 독주와 합주 등을 하니 환상의 화음이 되었다. 오후에는 책읽기와 휴식을 즐겼다. 이틀에 한 번씩은 발리의 여러 지인들이 소개하는 적당한 땅을 찾아 나섰다.
 
식사는 매일 밥과 국을 끓이기로 하고 담당은 백단장이 맡기로 하였다. 나는 고조할아버지가 “가선대부”라는 직책의 양반집 자손이고, 그중에도 종손의 장남이라 옛 부터 할머니께서 절대로 부엌에는 들어가서는 안된다고 하셔서 밥이나 음식을 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또한 설거지도 할 줄 모른다고 하니 백단장은 투덜거리며 혼자서 도맡아 했다. 내가 감독을 하며 잔소리를 하면 내일부터는 밥을 안한다고 투정을 부린다. 그런 날은 미안해서 외식을 시켜주면 좋아했다. 외식은 한국음식, 인니 음식, 중국음식, 일본음식, 씨푸드 등 다양하게 하였다. 발리의 돼지갈비와 랍스터 바소는 특별한 음식이었다.
 
 
함께 살다보니 재미있는 에피소드도 있었다. 아침식사 후 매일 커피와 사과를 후식으로 즐겼다. 백단장은 과수원집 아들이라고 사과 예찬론자이다. 아침의 사과는 영양소, 밤의 사과는 독성이란다. 그리고 사과는 껍질채 먹어야 영양소가 풍부하단다. 나는 그러면 사과를 깨끗이 씻어 농약 성분을 제거해야 한다고 하니, 깨끗이 씻었다고 걱정하지 말라며 포크로 사과 한 점을 찍어서 나에게 먼저 주는데 아뿔사 거기에 사과산지 표시의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나는 여지없이 이게 잘 씻은거냐고 핀잔을 주었다.
 
하루는 한국서 가져온 막걸리 분말로 막걸리를 담았다고 자랑을 하였다. 24시간 숙성 후 잘 되었을 거라고 맛을 보라고 한다. 조금 마셔보니 웬지 막걸리 맛은 전혀 나지 않고 쉰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설명서대로 제대로 했냐고 하니 내가 바보냐고 역정을 낸다. 그런데 집을 소개한 지인에게도 막걸리 분말 하나를 주었는데 역시 그 집에도 막걸리 맛이 제대로 나지 않았다. 나는 포장해온 막걸리 분말의 봉투를 찾았다. 그런데 거기서 효소가 나왔다. 효소를 넣어야 발효가 되면서 막걸리가 완성되는데 그것을 빼먹은 것이다. 나는 백단장에게 라면을 끓이면서 스프를 빼고 맛있다고 먹어보라면 어쩌냐고 또다시 핀잔을 주었다. 그럴때면 백단장은 코믹하게 “조용히 하세요”를 연발하였다.
 
발리에 외국 관광객이 끊기자 한국 사람들이 운영하는 여행사, 빌라임대, 식당, 선물가게, 맛사지 집들이 대부분 문을 닫아 안타까웠다. 일반 쇼핑상점들도 80퍼센트는 문들 닫아 발리 분위기는 초상집 같은 분위기였다. 그 덕에 어디를 다녀도 차가 밀리지 않고 조용해서 좋기는 했다. 우리는 발리에서 편하게 지내며 남자 두 사람이니 저녁식사 후에는 홀딱 벗고 수영을 할 수 있어서 색다른 맛도 느꼈다. 어릴 때 개울가에서 옷 벗고 놀았던 시절이 생각났다.
 
놀아도 매일매일 시간은 왜 그리 빨리 가는지 세월을 잡을 수는 없었다. 우리는 건강을 생각하며 밥은 고급 흰쌀에 현미찹쌀과 빨간 쌀을 섞고 반드시 검은 콩도 넣었다. 백단장의 지론은 밥만 맛이 있으면 반찬은 적어도 된다고 반찬은 잘 먹지 않고 밥만을 즐긴다. 그러나 나는 반대다. 밥은 적게 먹고 반찬을 골고루 먹는다. 매일 국도 미역국, 청국장, 된장찌개, 김치찌개, 오뎅국 등을 끓이고, 반찬은 배추김치, 부추김치, 마늘 짱아찌, 깻잎, 콩자반, 김, 감자볶음, 계란 오믈렛 등 고르게 먹고, 가끔은 카레라이스, 짜장으로 밥을 비벼 먹기도 하고 김밥도 해먹고 라면과 쌀국수 등으로 간식을 곁들이니 외식을 거의 할 필요는 없었다.
 
한번은 발리 수산시장에 가서 랍스터와 갑오징어 등을 사와 발리 지인들을 초청해 저녁 대접도 하였다. 발리에서 한국 분들이 모이는 풍습은 집집마다 음식을 한가지씩 해오는데 외식보다도 훨씬 좋았다. 특히나 돼지갈비찜이나 잡채는 맛이 일품이었다.
 
한국 목사님의 소개로 발리 북부의 싱아라자 지역의 고아원을 방문하여 색소폰과 트럼펫 연주를 해주었다. 그들은 이런 악기들을 처음 보았으며 연주소리도 처음 들어 모두들 기뻐하고 한 곡씩 끝날 때 마다 박수도 크게 쳐 주었다. 참 보람된 시간이었다.
 
 
고아원에 간다고 하니 자카르타에 계시는 뜻있는 분들도 후원을 해 주셔 훈훈한 정을 함께 나눌 수 있었다. 코로나로 어려운 시기이지만 어려운 이들을 도우는 것은 평소의 따뜻한 마음이 없으면 실천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 분들께 감사드린다. 한국의 ‘본죽’ 팀이 발리에 출장을 와서 함께 가본 장애인 마을에서는 그들을 보는 내내 가슴에 눈물을 맺히게 하였다. 태어나면서 부터 장애인으로 일어서지도 못하며 20살 가까이 된 사람도 있고, 세자매가 모두 장애인인 사람도 있어 이들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생활을 하며 이를 지키는 부모들도 얼마나 큰 헌신일까를 생각하니 가슴이 찢어졌다. 쌀과 부식과 초코파이 등을 선물하니 너무 고마워했다.
 
 
발리에서의 한 달 생활은 많은 것을 느끼게 하였다. 그렇게 북적이던 발리가 폐허가 된 풍경이 너무 안타깝다. 우리의 생활에는 끊임없는 저축이 필요할 것 같다. 우리 인생에 어려움이 닥쳤을 때를 항상 대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돌아올 때는 카와이젠 화산에 들릴까 했으나 우기로 출입이 통제되어 브로모 화산으로 향했다. 해발 약 2,700미터에 호텔과 게스트 하우스등이 즐비하였으나 한산했다. 높은 곳인 만큼 밤엔 정말 추웠다. 창조주가 만든 대자연의 신비함과 웅장함은 인간으로서는 만들 수 없는 신비의 화산이었다. 다시 가보고 싶은 곳이다.
 
이후 족자에서 2박, 반둥에서 1박 후 자카르타로 돌아왔다. 살아오면서 평생 처음 한 달 간의 여행을 경험하면서, 여러 곳을 돌아다니다 보니 감동이 새롭고 뿌듯하였다. 인도네시아는 나라도 크고, 볼 것도 너무 많은 곳이다. 지역마다 문화와 풍습이 다르고 음식도 다르고 주택 모습이나 의복도 다르고 언어도 달라 정말 다양성 속의 하나가 된 나라이다.
 
“백 단장! 그 동안 수고했고, 고마웠어. 미래에 발리로 이주하여 빅 밴드를 만들고, 논두렁 음악학교도 만든다고 하니 부디 성공하기를 기원하겠네. 나도 빨리 합류해 성심껏 지원하겠네.”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우리의 발리생활이여!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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