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인협회 인니 지부 (138) 외로움과 행복 사이 /김준규
페이지 정보
수필산책
본문
< 수필산책 138 >
외로움과 행복 사이
김준규 / 시인 (한국문협 인니지부 운영위원)
어릴 적 소풍 길에 낙엽을 헤치며 찾던 보물은 끝내 찾지 못했다.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한 행복의 언저리에서 맴돌던 꿈, 연륜의 틈새에 기생한 집착은 시렁에 매달린 메주처럼 아직도 쾨쾨하다. 낙엽이 흩날리는 늦은 가을날 붉게 타오르는 석양을 바라보고 있으면 진한 외로움을 실감한다. 태양이 지평선에 잠기고 분신처럼 뒤 따르던 발아래 그림자는 긴 꼬리를 늘이다가 홀연히 섬뜩한 어둠으로 돌변한다. 누군가의 이름을 부르며 말을 걸고 싶다. 고갈된 인내에 쫓기듯 몸에 배인 조급함, 의지 할 곳이라곤 문명이 선물한 편리함에 기대는 일이다. 스마트 폰의 밋밋한 창문을 문지르며 신경 줄처럼 인지된 지인의 이름위에 표시된 빨간 신호에 다시 가벼운 터치를 시도한다. 비오는 날 무수히 쏟아지는 빗방울을 바라본다. 중력을 거부하다 기력을 상실한 물 알갱이가 연잎 위에 또르르 구르다 하나로 결합하며 무게에 눌린 연잎은 끝내 길쭉한 물줄기를 연못위에 쏟아 붓는다. 무수하던 물방울이 연못의 모습으로 재현되는 과정, 결과는 늘 예상치 못한 유 불리의 혼돈 속에 분열하다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속성이 있다. 알지 못할 이 합의 관계 속에서 이성과만나고 사랑 하는 일, 자식이 생기고 무리의 일원으로 뭉치는 모양새가 이와 같지 않을까.
어릴 적 소풍 길에 낙엽을 헤치며 찾던 보물은 끝내 찾지 못했다.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한 행복의 언저리에서 맴돌던 꿈, 연륜의 틈새에 기생한 집착은 시렁에 매달린 메주처럼 아직도 쾨쾨하다. 낙엽이 흩날리는 늦은 가을날 붉게 타오르는 석양을 바라보고 있으면 진한 외로움을 실감한다. 태양이 지평선에 잠기고 분신처럼 뒤 따르던 발아래 그림자는 긴 꼬리를 늘이다가 홀연히 섬뜩한 어둠으로 돌변한다. 누군가의 이름을 부르며 말을 걸고 싶다. 고갈된 인내에 쫓기듯 몸에 배인 조급함, 의지 할 곳이라곤 문명이 선물한 편리함에 기대는 일이다. 스마트 폰의 밋밋한 창문을 문지르며 신경 줄처럼 인지된 지인의 이름위에 표시된 빨간 신호에 다시 가벼운 터치를 시도한다. 비오는 날 무수히 쏟아지는 빗방울을 바라본다. 중력을 거부하다 기력을 상실한 물 알갱이가 연잎 위에 또르르 구르다 하나로 결합하며 무게에 눌린 연잎은 끝내 길쭉한 물줄기를 연못위에 쏟아 붓는다. 무수하던 물방울이 연못의 모습으로 재현되는 과정, 결과는 늘 예상치 못한 유 불리의 혼돈 속에 분열하다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속성이 있다. 알지 못할 이 합의 관계 속에서 이성과만나고 사랑 하는 일, 자식이 생기고 무리의 일원으로 뭉치는 모양새가 이와 같지 않을까.
바람의 관성에 길들여진 기러기의 유유자적함, 허공의 정연한 질서를 거스르지 않는 날개 짓, 자로 잰 듯 거리를 바르게 유지하는 비결은 무엇일까? 개체는 각각의 행복을 추구하려 애를 쓰지만 존재의 연결고리는 무리의 존속과 무관하지 않으리라. 공생의 힘은 위대하고 영원과 순간의 운명은 촌각에 가름한다. 기러기는 무리 중에 힘겨워하는 동료가 생기면 나는 위치를 번갈아 바꾸며 등을 밀어 격려한다고 한다. 무리의 경험은 냉엄하지만 안정되고 오만은 판단을 왜곡하여 오류와 불행으로 연결되기 쉽다. 혹여 무리에서 낙오자가 생기는 날이면 기러기의 운명은 천길 아래의 가혹한 외로움과 절망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우리가 사는 일이 힘 안들이고 거저 얻어지는 것 같아도 엄연한 도덕의 기준이 존재하고 사회적 질서가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가기에 가능할 것이다. 일상에서 외로움과 행복은 보일 듯 말듯 술래잡기를 이어간다. 가지런한 행렬, 조잘대며 길을 가는 한 무리 젊은 학생들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라! 더없는 행복의 몸짓이다. 여럿이 흘려보내는 티 없이 맑은 웃음소리에 외로운 그림자는 한껏 목을 움추린다.
연못 속의 겁쟁이 작은 송사리도 떼를 지어 이동하는데 익숙하다. 무서울 것이 없는 바다 속 굼뜬 고래도 약삭빠른 작은 물고기의 사냥을 위해서 단합된 무리의 온갖 지혜를 동원한다. 바람막이 없는 평지에 덩그러니 심어놓은 한 그루 꽃나무는 외로움을 견디지 못하고 금새 시들어 버리기 십상이다. 심술스러운 바람은 줄기와 뿌리를 흔들고 내리꽂는 태양은 치근덕거리며 여린 잎을 가만 놔두지 않을 것이다. 숲이 우거진 비탈에 서있는 나무가 강건하고 꽃무리와 어우러져 피는 꽃이 더없이 아름다운 이유가 아닐까. 조용한 음악의 선율과 커피향이 그윽한 카페, 각기 다른 의상과 환한 표정 속 얼굴을 마주보며 무르익는 대화, 하루의 근로에서 기쁨을 일궈내는 직장의 뿌듯한 소속감, 어지러 놓은 일과의 틈 사이에 버려진 자잘한 시간의 자투리도 그냥 버릴 수 없다. 잠시 떨어진 가족과 친구에게 전하고 싶은 안부, 귀를 여는 잔잔한 카톡 소리에 외로움의 그림자는 접근을 포기한다. 이성이 그리운 것도 종자 번영을 위하여 자연이 선사한 기막힌 선물일 텐데 누군가를 기다리다 시든 꽃 잎, 그늘이 드리워진 젊은이의 푸석한 안색에서 외로움의 그림자를 본다. 가을비 추적추적 내리던 날 정년퇴직 서를 쓰고 귀가하는 아버지의 허리 굽은 뒷모습을 보았는가? 평생을 측은지심으로 자식에게 모든 걸 다 내어주고 보상으로 얻어낸 마른 살 꺼풀 주름사이에 피는 웃음은 행복한 외로움이리라. 다중의 무리 속에도 외로움은 진화한다.
찬연한 음악 속에 화려했던 공연이 끝날 즈음 무대 아래의 우렁찬 갈채소리는 한순간의 행복을 뒤로하고 경각에 닥쳐올 외로움의 서막을 알린다. 관객이 버리고 간 빈 공간의 을씨년스러움, 종휭으로 무대를 주름잡던 주인공의 옆구리에 허허롭게 스치는 바람은 화려한 인기의 그늘에 똬리를 튼 중압의 외로움 일 것이다. 과연 외로움의 끝은 어디일까? 청록의 계절에 매끄러운 윤기를 뽐내던 나뭇잎은 잠시 왔다 화려한 추억을 뒤로하고 붉은 미소를 흘리며 쇄락의 순간을 맞이한다. 무영의 캄캄한 우주 속, 어느 순간 빛과 생명이 숨 쉬는 이 땅의 부름을 받고 축복 속에 태어날 때도 혼자였듯이 파란만장한 여정을 끝내고 죽어서 돌아가야 하는 곳도 저 우주 속 까마득한 암흑일터, 외로움의 끄나풀에 코 끼어 조마조마 했던 삶이 종국에는 깊고 깊은 외로움의 나락으로 돌아가야 하는 일이 아니겠는가. 지구라는 아름다운 행성에 초대받은 일도, 보이지 않는 행복을 찾아 열심히 살아온 일도, 외로움을 떨치기 위한 끈임 없는 수고였다. 무리 속에 동행하며 푸른 허공에 가슴을 내밀고 숨 쉴 수 있는 동안이 고맙고, 외롭다고 투정할 수 있는 동안이 더없이 행복한 이유이다.
- 이전글(139) 자신의 건강과 행복을 가꾸는 새해가 되기를 / 서미숙 20.12.31
- 다음글(137) 수필가와 유튜버의 꿈 / 엄재석 20.12.17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